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94화 (294/522)

# 294

부화 (8)

헨리의 비명은 한결같았다.

높고 처절한 형태의 비명.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엘라곤과 성녀가 치유술을 퍼붓고 몇 명의 학파장들이 통증 완화를 위해 마력을 쏟아붓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낱 7서클 마법사 따위가 8서클의 경지를 손쉽게 손에 넣기 위해선 그만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비명은 탑 내부를 가득 메웠다.

분명히 최상층에서 울리는 비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헨리의 비명은 어느새 탑 전체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에 마법사들은 모두 합장하여 기도했다.

그들은 비록 등급이 낮아도 마법사이기에 신을 믿진 않았지만, 위대한 진화를 행하려는 헨리를 믿기에, 마치 헨리를 신처럼 여기며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헨리의 비명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파사삭-!

조각나는 소리.

품속의 진주가 마침내 부스러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진주가 부스러짐과 동시에 부스러진 진주로부터 회색빛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가스가 뿜어져 나왔음에도 헨리를 포함한 마법사들은 가스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단 한 명, 성녀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 기운은 뭐지?’

자신의 신력을 제외하곤 방 전체가 마력투성이여야 할 탑의 최상층 내부에서, 성녀는 낯선 신력을 포착했다.

그러나 포착된 그 힘은 너무나도 찰나의 순간이라 다시 그 기운의 행방을 추적하려 하였을 땐 이미 감각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런데 그 순간.

“끄아아아!”

번쩍!

지속되던 헨리의 비명이 절정에 치닫자 탑 내부 전체에 에메랄드 빛 광휘가 번쩍였다.

피이잉-!

눈부신 광휘 때문에 탑 내부의 사람들은 눈을 뜨지 못했고 모두의 귀에서 이명 비슷한 것이 들렸다.

그리고 모두가 다시 눈을 뜰 수 있게 될 때쯤, 일곱 명의 마법사들과 성녀, 그리고 엘라곤은 마법진 중앙에 고개를 들고 있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헨리였다.

“대…… 마법사님?”

잠깐의 침묵 끝에 먼저 용기를 내 말을 건 것은 로어였다.

로어가 이들을 암묵적으로 대표하기 때문에 먼저 말을 건넨 것도 있었다.

그 순간 로어의 물음에 고개를 들고 있던 헨리의 머리카락이 점점 더 길어지기 시작했다.

길어지기 시작한 머리카락은 어느새 바닥까지 늘어졌고 새카맣던 머리색은 물에 풀어놓은 물감처럼 형형색색으로 일렁이더니 다시 원래의 길이로 짧아지며 검게 물들었다.

고개를 천천히 내리는 헨리.

헨리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헨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새카맣던 헨리의 눈동자에는 어느새 헨리가 다루던 에메랄드 빛 오러가 은은하게 맴돌고 있었다.

“하아…….”

헨리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오랫동안 고통에 묵혀 온 숨이었다.

그리고 묵힌 숨을 내뱉는 순간, 헨리는 전신에 휘몰아치는 낯선 청량감에 입꼬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흐흐.”

너무 기쁜 나머지 헨리는 진심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정수리부터 엉덩이의 꼬리뼈까지.

신체의 어느 곳 하나 청량감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청량감의 이유는 마력 때문이었다.

늘 느껴오던, 대기 중에 흩어져 있던 대자연의 에너지, 마력.

그러나 8서클이라는 대륙 유일무이의 단계에 이른 헨리에게 마력은, 더 이상 단순한 마력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지상 최고의 에너지가 된 셈이었다.

척-!

헨리가 웃음을 흘리자 헨리의 기상과 함께 같이 일어났던 일곱 학파장들이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인 이들을 대표해 로어가 선창했다.

“위대하신 대마법사, 헨리 모리스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입니다!”

선창에 잇따르는 후렴.

학파장들은 모두 7서클이 되었다, 꿈에도 그리던 7서클에.

하지만 헨리는 또 누군가의 꿈일지도 모를 8서클의 영역에 다다르고 만 것이다.

그러니 경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난, 없는 존재일 줄로만 알았던 죽은 대마법사의 유일한 수제자가 자신들이 동경해 마지않던 헨리의 기적을 다시 한번 재현해 냈으니까.

“모두 일어나.”

척-!

헨리의 명령에 마법사들은 마치 군인처럼 절도 있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눈빛에는 사뭇 비장함까지 어려 있었다.

그들의 비장한 눈빛을 본 헨리가 어깨관절을 휘휘 돌리며 말했다.

“어느 나라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지. 말보다는 직접 보여 주는 게 더 낫다는 뜻이야. 모두에게 보여 주마, 스승님께서 이루셨던 8서클의 경지가 어떤 힘인지 말이야.”

“오오……!”

8서클의 힘을 보여 준다.

이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에 8서클을 이루었던 헨리는 마탑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룬 8서클의 힘을 딱 한 번밖에 보여 준 적이 없으니까.

이유는 별다를 게 없었다.

단지 다른 마법들처럼 8서클 경지의 마법을 남발하기엔, 발견한 마법의 수도 몹시 적었을뿐더러 그 하나하나가 가지는 위력 자체도 몹시 거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헨리는 자신이 8서클을 이루어 냈다는 증거로 단 한 번만 8서클의 마법을 보여 주었다.

그것도 제국의 제일가는 이들을 소집한 뒤에나 말이다.

‘어쩌면 그때의 시연이 방아쇠를 당긴 걸지도 모르지.’

막대한 힘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헨리가 더 이상 8서클 마법을 모두에게 공개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대륙이 한 제국으로 통일된 뒤 그만한 힘이 필요한 곳도 없었지만, 언젠가 그 힘이 필요한 날이 온다면 거리낌 없이 그 힘을 사용하겠다고 헨리는 다짐했다.

그래서 헨리는 동료들이 죽어 나가고 자신이 독을 마시기 전까지도 8서클의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의 헨리는 정치 싸움에 8서클 마법이라는 어마어마한 힘을 사용하기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멍청했어.’

몇 번이나 과거의 잘못을 떠올리면서, 헨리는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물렁하고 무능하며 멍청한지 몇 번이고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생각을 마친 헨리가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지이잉!

헨리가 하늘 위로 손을 뻗자, 돔 형태로 덮여 있던 탑의 최상층부, 그러니까 헨리의 집무실 천장이 좌우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오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최상층 부의 천장은 헨리가 처음부터 열리지 않게끔 만든 하나의 건축물이었다.

그런데 헨리는 그것을 너무나도 쉽게 열었다.

아니, 열었다기보다는 마치 지우개로 지워 내듯 천천히 양옆으로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휘오오오!

살게라에서 가장 높은 곳.

여느 설산보다도 높은 설탑의 지붕이 개방되자 곧 지붕으로 살게라 특유의 냉풍이 휘몰아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차가운 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머리카락을 휘날린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바람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헨리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헨리는 맹렬하게 강풍을 토해 내는 살게라의 하늘을 응시했다.

“좋군.”

대륙이 탄생하고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매일 같이 강풍을 낳은 곳이 바로 이곳 살게라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제국에서 추방당한 추방자들이나 사는 땅이 되었고, 동시에 버려진 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버려진 땅을, 헨리는 재기의 발판으로 사용했다.

그동안 헨리는 단 한 번도 이곳의 강풍을 원망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곳의 강풍을 철저하게 이용했다.

하지만 이제 그 역할은 모두 끝난 듯싶었다.

살게라는 재기의 발판으로써 충분을 역할을 해 주어 헨리가 더 이상 이곳에 숨을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이제 보답을 받아야 할 건 헨리가 아닌 살게라였다.

헨리는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마치 나무를 끌어안듯, 천천히 둥글게 들어 올린 두 팔은 헨리의 기운이 가진 특유의 푸르른 잔상을 만들어 내며 궤적을 그렸다.

헨리는 수인을 맺지 않았다.

그리고 주문도 외우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과거에 만들었던 어떠한 마법의 발동 원리대로, 그 마법의 형태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동시에 마력으로 현실에 구축해 놓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조건들이 충족된 순간, 눈을 번쩍 뜨며 머리 높이 두 손을 빳빳하게 치켜들었다.

‘웨더 컨트롤.’

콰과과과과!

마음속으로 시동어를 외친 순간, 헨리의 전신으로부터 에메랄드 빛 광선이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쏘아진 빛은 주변으로 방사되지 않고 광선처럼 형태를 억제하며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대략 5초 남짓.

필요한 만큼의 광선이 모두 쏘아지고 난 후, 광선 줄기는 잦아들었다.

헨리는 두 팔을 내렸다.

그리고 여전히 전신에 흐르는 에메랄드 빛 오러를 한데 모아 손뼉을 쳤다.

짝!

그러자.

휘오-!

“……!”

“……!”

헨리가 손뼉을 친 순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매섭게 불던 강풍이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마치 갓난아기가 울음을 뚝 그치듯이 말이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사시사철 구름이 가린 하늘로부터 엄청난 추위의 강풍이 불었고 강풍을 동반한 폭설과 우박 등이 떨어진다.

그래서 살게라의 맑은 하늘을 보는 것은 좀처럼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항상 가득 차 있던 먹구름으로부터 눈발과 강풍이 멎고 살게라 전역에 침묵과도 같은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이, 이 마법은……!”

“이 마법을 살아생전 다시 한번 보게 될 줄이야……!”

전생에 헨리가 8서클을 이룩하고 처음으로 선보였던 마법.

그리고 환생한 직후 헨리가 8서클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인 마법.

두 마법은 같은 마법이었다.

마법의 이름은 바로 ‘웨더 컨트롤’.

문자 그대로 날씨를 통제할 수 있게 해 주는 마법이었다.

헨리는 들어 올렸던 팔을 내려 뒷짐을 진 후 몸을 돌려 감격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곱 마법사들을 보았다.

그리고 입꼬리를 씩 올려 보이며 말했다.

“대강의 준비가 끝난 것 같군. 그럼 지금부터 아서스 그놈을 상대할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담담하게 다음 계획의 진행을 알리는 헨리에게, 살게라의 하늘로부터 보기 드문 맑은 햇볕이 내려와 헨리를 비추기 시작했다.

이에 일곱 마법사가 다시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며 말했다.

“대마법사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아서스가 말한 한 달이 되기 하루 전.

모두는 약속한 대로 다들 무슈의 의회장에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곳은 무슈가 자유도시에서 하나의 독립국이 되면서 만들어진 곳으로, 무슈의 지도자 불카누스를 비롯한 각 분야의 최고 장인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곳이기도 했다.

회장에는 먼저 도착해 후발자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반과 맥도웰, 바할드 같은 기사들이 그러했다.

맥도웰이 말했다.

“여어, 로난. 듣기로는 한 달 동안 골방에 틀어박혀서 수련만 했다지?”

“그렇습니다.”

“기대해도 되나?”

“물론입니다.”

맥도웰의 물음에 로난은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절도 있는 대답으로부터 신뢰가 두텁게 느껴졌다.

킹턴은 참여하지 않았다.

애초에 킹턴은 로난의 부관으로 인정은 받았지만 이런 중요 회의에까지 참석할 만큼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자네들은 좀 어때? 특히 알렌 자네는 검을 부숴 먹었지 않은가?”

“그 문제라면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바실리포는 훨씬 더 강해졌거든요.”

“그래?”

맥도웰은 시선을 돌려 용병국 3인방 알렌과 워커, 그리고 마실라에게 질문했다.

이에 알렌이 모두를 대신해 가슴을 두드려 보이며 대단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믿음직스러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례대로 헥터와 발락, 헤라리온과 비람 등 각각 주요 인사들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러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다들 한 달간 이룩해 낸 강대한 힘의 냄새는 결코 숨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

마침내 신성국의 대표, 성녀 아이리네와 불카누스까지 회장에 참석하자 맥도웰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이제 슬슬 다들 온 것 같은데…… 아직 제일 중요한 얼굴이 나타나지 않았군.”

“저, 여기 있습니다.”

그때였다.

맥도웰이 헨리의 존재를 언급하는 순간, 모두의 귓전에 헨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헨리는 문을 열고 등장하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텔레포트를 사용할 때마다 광명을 흩뿌리며 요란하게 등장하던 과거와는 달리, 지극히 신사적이고 절제된 동작이었다.

널찍한 의회장의 중심에 위치한 발제자를 위한 단상.

그곳에서 헨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심스럽게 등장한 헨리가 말했다.

“다들 오랜만이네요. 그럼 지금부터 일 얘기를 한번 시작해 볼까요?”

씨익.

여유가 가득한 미소.

헨리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보며, 의회장에 모인 모두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헨리는 더 이상 과거의 헨리가 아님을.

그리고 그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존재가 되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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