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7
업그레이드 (2)
헨리는 혼자서 다시 무슈로 돌아왔다.
헤라리온과 비람은 아직 샤하트라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았기에 헨리는 나중에 오라며 텔레포트 스크롤을 쥐여 주었다.
무슈의 해는 아직도 쨍쨍했다.
샤하트라의 문제들을 반나절 만에 해치운 탓에 아직도 오후가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헨리는 무슈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시청의 대장간을 찾았다.
깡! 깡! 깡!
대장간 어귀에 다다르자 규칙적인 망치질 소리가 들렸다.
불카누스가 메질하는 소리였다.
“불카누스 님?”
한창 작업에 몰두중인 불카누스를 향해 헨리가 알은체를 해 보였다.
그러자 불카누스가 손을 들어 올려 잠시 기다려 줄 것을 요청한 뒤, 담금질을 확실하게 마무리 지은 후에야 허리를 폈다.
그가 목에 걸친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말했다.
“어, 그래. 자네 왔는가?”
불카누스의 표정에는 꽤나 여유가 있어 보였다.
왠지 안심이 되는 얼굴이었다.
헨리가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자네가 부탁한 것들 말이지? 처음에 방문했던 이들 외에도 나머지 놈들까지 모두 호출해 확실하게 주문을 받아 놓았네.”
“그렇군요.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혹시 그중에서 제가 도울 건 없습니까?”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자네를 부르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잘 와 주었군. 주문을 모두 받긴 했지만 나 혼자선 역부족인 게 좀 몇 건 있거든.”
불카누스는 헨리가 부탁한 대로 융통성 있게 일들을 잘 처리해 주었다.
덕분에 걱정을 덜었다.
이윽고 헨리는 불카누스가 혼자선 역부족이라고 칭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다.
“일단은 이 정도일세.”
“그렇군요. 이런 문제들이라면 제가 당사자들과 잘 협의해서 금방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자네만 믿고 있겠네. 아 참, 기한은 보름 정도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의 장비를 보름 만에 만들어야 한다라……. 사정은 잘 알고 있지만 역시 빠듯한 건 어쩔 수 없군.”
“죄송합니다.”
“아니야. 죄송할 건 없네. 다른 일도 아니고 대륙의 존망이 걸린 문제인데 몸이 부서지더라도 기일에 맞춰야지. 아 참, 그리고 헨리.”
“예?”
“이건 좀 별개의 이야기네만…… 혹시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나? 자네에게 하고 싶은 제안이 있거든.”
“물론입니다. 그럼 장소를 옮겨서 말씀을 나누실까요?”
“아니, 여기서 나눠도 되는 이야길세. 다름이 아니고 자네가 자리를 비운 동안 쭉 생각해 봤는데…… 자네들에게만 이 가혹한 운명의 짐을 지우기엔 너무 미안하단 생각이 들더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들도 그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말일세. 물론 우리가 가진 무력으로는 자네들의 발목만 붙잡을 게 뻔할 테지. 그래서 말인데, 내가 가진 마스터피스들을 이번 기회에 개방하는 게 어떨까 하네.”
“예? 불카누스 님의 마스터피스들을요?”
“그래, 그리고 개중에는 자네와 처음에 계약을 맺었던 ‘독금’ 또한 포함되어 있지.”
4년마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장인들의 축제, 마스터피스.
그 마스터피스에서 우승한 자가 무슈의 통치자가 되었으며 불카누스는 지난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불카누스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해, 그가 마스터피스 때마다 내놓은 작품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작들이란 뜻이었다.
물론 마스터피스가 역작이라고 해서 모두 세상의 빛을 본 것은 아니었다.
마스터피스는 말 그대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작품이었으나, 개중에는 세상에 큰 해를 끼칠 만큼 위험한 것도 있었기에 마스터피스 때만 출품되고 영원히 어둠 속에 사장되는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마스터피스들 중에는 ‘세상 최악의 독’이라 불리는 헨리의 혈독으로 만들어진 금속, ‘독금’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꽤 오랫동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일세. 어차피 우리가 가진 무력으로는 키메라들을 상대할 수가 없어. 하지만 마스터피스로 이루어진 무구들이 있다면 우리 같은 보통의 사람들도 키메라에 대항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불카누스가 생각해 낸 묘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스터피스 정도 되는 물건이 아니라면 자기들은 헨리에게 있어 짐짝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이에 헨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불카누스 정도 되는 장인이, 자신의 신념에 의해 어둠 속에 묻어 두었던 작품들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겠다는 말은, 곧 엄청난 결심을 했단 뜻이었기 때문이다.
불카누스의 충격적인 제안에 헨리는 반쯤 입을 벌린 채 제자리에서 굳었다.
그 모습을 본 불카누스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
“제안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로군.”
“아, 아닙니다……. 그냥 좀 놀랐을 뿐입니다.”
“후후, 충분히 이해하네. 그건 그렇고 어쩌겠는가? 내가 가진 마스터피스는 총 여섯 점일세. 그중에서 다섯 점은 몰라도 독금만큼은 자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저는…….”
헨리는 생각했다.
불카누스의 말대로, 어쩌면 자신을 포함한 검사들과 마법사들만으로는 키메라와 사도, 그리고 아서스까지 모두 상대하기엔 벅찰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현재 불카누스가 자신에게 하는 제안은 분명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임이 분명했다.
헨리의 대답이 늘어졌다.
불카누스는 그런 헨리의 입을 주시했고 늘어진 대답 끝에 헨리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주신 제안은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불카누스 님.”
“의외군.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뜻밖의 대답에 불카누스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물었다.
이에 헨리가 답했다.
“분명히 저희들만으로는 벅찰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벅찰 뿐이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굳이 위험을 늘리진 않겠다?”
“그렇습니다.”
고심 끝에 헨리가 내린 결론은 거절이었다.
물론 불카누스의 제안대로 마스터피스로 무장한 군대는 분명히 기존의 전력보다 더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기존의 전력이 강화됐을 뿐, 헨리는 그들의 전력이 보강됐다고 해서 키메라를 상대함에 딱히 도움이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소드 익스퍼트 유저조차도 벨 수 없는 키메라들이었으니까.
‘최악의 상황에는 키메라들의 손에 마스터피스가 흘러들어가는 꼴이 된다.’
그렇기에 헨리는 거절한 것이었다.
그리고 설사 그들의 전력이 보강되어 결과적으로 이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하더라도 그다음이 문제였다.
인간은 생각보다 간사한 동물.
한번 손에 쥐었던 힘을 다시 내려놓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그때가 되면 순순히 마스터피스들을 반납하지 않는 인간들로부터 무구들을 빼앗아야만 할 텐데, 그 과정에서 또다시 숱한 살인을 저질러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마스터피스의 개방은 헨리에게는 여러모로 장점보다 단점들이 더 많은 전략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헨리의 거절에 불카누스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심정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도 그럴 게 아서스를 이유로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자신의 역작들이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 버린 꼴이 됐으니까.
하지만 불카누스는 헨리의 뜻을 충분히 존중해 주기로 했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불카누스 님, 그럼 이왕 마스터피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드리는 말씀인데…… 병사들 전부에게 보급하는 것은 좀 그렇고 이번에 제작하실 무구들에 한해서 마스터피스를 사용해 보심은 어떠시겠습니까?”
“음, 부분적인 허용이라…… 알겠네. 그렇게라도 자네들의 전력을 보강할 수 있다면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고맙네. 자네 덕분에 내 새끼들을 이용해 한번쯤은 무구를 만들어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분명히 거절이 오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기이한 자리였다.
두 사람은 마무리로 악수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 헨리는 대장간을 벗어나 불카누스가 부탁했던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그와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기로 했다.
그와 관련된 첫 번째 인물은 다름 아닌 ‘알렌’이었다.
행방을 물어 도착한 곳은 무슈에 마련된 수련장이었다.
알렌은 그곳에서 자신의 검보다 훨씬 더 무거운 무게로 제작된 수련용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후우…….”
수련장에 도착한 헨리는 일부러 인기척을 내지 않고 알렌의 수련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참의 수련 끝에 휴식 시간이 되자, 헨리는 그제야 알렌에게 말을 걸었다.
“알렌 님.”
“마법사님?”
가볍게 미소 지으며 인사하는 알렌.
그런 알렌에게 헨리가 말했다.
“역시 왕이라는 호칭은 아무에게나 붙는 게 아니군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수련장에 다 오셨습니까?”
“다름이 아니고 바실리포 때문에 알렌 님을 찾아왔습니다.”
“바실리포 말입니까?”
마검 바실리포.
용병왕 알렌이 휘두르는 마검의 이름이었다.
알렌은 지난번에 벌인 사도와의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동시에 몸에 글귀가 새겨지는 크나 큰 치욕을 당했고 더불어 자신이 가장 아끼는 보물, 마검 바실리포를 파괴당했다.
헨리가 바실리포를 언급하자 알렌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예, 그렇잖아도 불카누스 님께서 제게 도움을 요청하시더군요. 알렌 님께서 마검의 수리를 맡기셨는데 자신의 힘으론 도저히 마검을 수리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아…… 그렇군요.”
말 그대로였다.
알렌은 부러진 마검의 수리를 부탁했으나 그것은 불카누스가 가진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불카누스는 헨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바실리포를 수리할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알렌의 안색이 더욱 더 어두워졌다.
이에 알렌이 물었다.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겁니까?”
“설마요, 방법은 있습니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예, 하지만 수리하는 건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입니다. 하지만 검을 수리하기 전에 알렌 님께 여쭙고 싶군요. 알렌 님, 정말로 바실리포를 되살리고 싶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그 녀석은 저를 이 자리까지 올려 준 제 목숨과도 같은 녀석입니다!”
“어떤 대가를 요구하든지 말입니까?”
다소 차가운 질문.
이에 알렌은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바실리포를 수리할 수 있는 분에게로 알렌 님을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대신 그 분이 요구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마검 바실리포.
바실리포가 마검이라 불리게 된 까닭은 마검처럼 강력하고 잔인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힘을 가진 물건들은 대게 ‘아티팩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서 불리어 왔다.
아티팩트.
물론 헨리 또한 아티팩트의 제작과 수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티팩트의 제작과 수리보단 다른 분야에 힘을 쏟은 지가 어언 수십 년.
그렇다 보니 답보된 지식보단 그동안 끊임없이 관련 지식을 발전시켜 온 자가 마검을 수리하기엔 적격이라고 헨리는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 아티팩트와 관련된 연금학 최고의 권위자는 다름 아닌 마탑의 연금학파 수장, 메이커 스워스였다.
‘녀석이라면 할 수 있겠지.’
아티팩트의 수리는 대장장이들의 수리 방식과는 매우 많은 방면에서 차이가 났다.
그래서 헨리는 알렌에게 물은 것이다.
바실리포를 다시 되살려야 할 만큼 너에게 의미가 있는 물건이냐고 말이다.
그리고 알렌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다음 행보는 정해졌다.
헨리는 알렌을 데리고 살게라의 설탑으로 텔레포트하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마법사니임!”
“음?”
텔레포트를 사용하기 직전, 무슈의 성벽을 지키는 근위병이 숨을 헐떡이며 수련장에 나타났다.
“무슨 일이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근위병에게 헨리가 물었다.
그러자 근위병이 답했다.
“후우, 후우…… 마법사님! 지금 성문 앞에 킹턴 포람이 나타났습니다!”
“킹턴이라고?”
“예! 근데 그 자가 지금 마법사님을 만나 뵙게 해 달라고 성문 앞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습니다!”
킹턴 포람.
어느 순간부터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갑자기 나타나 헨리를 만나게 해 달라며 생떼를 부리다니?
헨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