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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276화 (276/522)

#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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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다시 무슈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샤하트라에 남은 거의 유일한 환술사라고 할 수 있는 비람에게, 헤라리온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몽땅 다 전달해 주었다.

“결국 이런 일이…….”

헤라리온으로부터 샤하트라의 소식을 전해 들은 비람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헤라리온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국정에 관여해 온 그였기에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 뼈저리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지금 당장 급한 것들과 자신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부터 노련하게 생각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대제사장이야, 헤라리온보다 훨씬 더 침착해.’

유약한 정신력을 보이던 헤라리온과는 달리 노련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비람을 보며 헨리는 생각했다.

‘과연 연륜은 어디 가지 않는군.’

이에 헨리가 말했다.

“대제사장님, 제가 도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돕겠습니다. 그러니 제게 도움을 요청하실 땐 그 어떤 것이라고 거리낌 없이 손을 빌려 달라 청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대마법사님.”

왕궁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잃은 두 사람에게 헨리의 도움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것.

그러니 제아무리 이번에 요청할 도움의 양이 많다고 해도, 비람은 거리낌 없이 헨리에게 손을 빌릴 생각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취하는 체면치레는 오히려 왕국의 멸망을 촉진하는 어리석은 짓이었으니까.

그렇게 세 사람은 한동안 앞으로 샤하트라를 어떻게 유지하고 보수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깊은 토론을 나누었다.

그리고 토론 끝에 얻은 결론은 몇 가지로 함축되었다.

먼저 롬웰의 말대로, 수도를 지키던 환술 결계를 다시 되살려 최소한의 국방력을 회복하는 것.

그리고 헤라리온과 비람이 살아 있음을 샤하트라의 다른 도시들에게 알려 왕권을 넘보지 못하게 선을 긋는 것.

마지막으로 롬웰이 매장한 시체들을 거두어들여 약소하게나마 장례를 치러 주는 것이었다.

헨리는 이 세 가지 항목들 중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경우엔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가지라고 해 봤자 고작해야 왕권 강화와 무덤의 이장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첫 번째의 경우엔 이야기가 좀 달랐다.

무너진 국방의 최소한의 회복.

이는 사막의 마물들로부터 국민들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왕궁이 사라져 아수라장이 됐을지도 모를 수도의 치안을 회복하는 것과 최소한의 법질서를 다시금 세우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폭도들을 절대적인 힘으로 통제할 인력들이 필요한데…….’

헨리는 생각했다.

최소한의 국방력을 회복하기 위해선 다수를 통제할 수 있을 만한 절대적인 무력 집단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는 왕이 샤하트라 전체를 통제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제아무리 왕의 힘이 강하다고 한들 왕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샤하트라의 치안을 위해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을 추려 내 샤하트라에 주둔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지……?’

마음 같아선 샤하트라의 다른 도시들로부터 인력들을 축출해 군대를 꾸리고 싶었지만, 왕권 강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 시기에 다른 도시에 군사를 내 달라고 손을 벌리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그래서 헨리는 고민했다.

자신의 말에 복종하면서도 치안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신뢰 깊은 무력 집단.

그리고 헨리는 결국 떠올려 냈다.

막막한 조건인 듯싶었으나 이번 일에 적격인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성맞춤인 인재를 떠올린 헨리가 말했다.

“잘됐네요. 마침 마땅한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다시 샤하트라로 이동해 볼까요?”

방향이 정해졌다.

그래서 헨리는 두 사람을 먼저 샤하트라에 데려다준 후 ‘그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 서둘러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 * *

“이들은…….”

헨리가 자리를 비운 직후, 헤라리온과 비람은 수도 칸의 환술 경계를 다시 설치하기 위해 커다란 환술식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술식을 그리던 중, 자리를 비웠던 헨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무수히 많은 수의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다 낯이 익은 인물들이었다.

그들을 본 헤라리온이 말했다.

“알……프레드 경?”

퀭한 눈빛.

멸망한 제국의 대후작, 알프레드 이더웨더였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100인의 상급 정령사들.

이들이 바로 헨리가 생각해 낸 샤하트라의 새로운 치안대였다.

놀란 표정과 함께 헤라리온이 알프레드의 이름을 불렀지만 알프레드는 여전히 퀭한 눈빛과 함께 궐련을 빨아들였다.

그들을 본 헤라리온이 말했다.

“헨리 님, 설마 치안대에 적격이라는 인물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바로 알프레드와 휘하의 정령사들입니다.”

운이 좋았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알프레드는 다행히 사도에 대항하지 않았다.

그들은 헨리가 명령했던 대로 그저 ‘가만히’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100인의 정령대 모두가 살아남았던 것이다.

물론 살아남았다곤 했지만 그들의 상태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진 궐련도 거의 다 떨어져 가던 시점이었던 데다가 헨리가 전해 주었던 식량도 진즉에 다 떨어져 피골이 상접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거의 바닥을 드러낸, 얼마 남지 않은 핑크 스왐프 덕분이었다.

‘웃긴 놈들이야, 약을 하려고 악착같이 살아남다니.’

마약에 대한 집착과 욕구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단적인 예시였다.

“헨리 님, 하지만 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이 비리비리하죠? 맞습니다. 실제로도 약물에 너무 절어 있어서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대체 왜?”

“고쳐 쓰면 됩니다.”

“예?”

“예로부터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무엇이든 예외는 있는 법이잖아요?”

헨리의 사람을 고쳐 쓴다는 발언에, 헤라리온과 비람은 그게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몹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금부터 마법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기세 좋게 예고장을 던진 헨리는 이윽고 엘라곤을 소환했다.

-뀨!

엘라곤을 보고 놀라는 두 사람.

하지만 헨리는 그들의 반응에 대꾸해 주기 전에 먼저 엘라곤에게 명령부터 내렸다.

“엘라곤. 이놈들 좀 치유해 봐.”

-뀨뀨!

대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엘라곤.

고쳐 쓴다는 말의 뜻은 말 그대로였다.

굶주림과 약물 중독에 다 죽어 가는 정령대였지만, 엘라곤이 가진 막대한 수준의 회복술이라면 이들을 다시 살려 내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헨리의 명령에, 엘라곤이 곧 치유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화아악!

따스한 빛이 100인의 정령대를 덮쳤다.

그러자 반쯤 감겨 있던 이들의 눈꺼풀이 떠오르는 태양처럼 천천히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곧 생기를 되찾아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회복술이 지속되면서, 입에 궐련을 물고 있던 알프레드는 자기도 모르게 입에 문 궐련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개량된 핑크 스왐프가 주는 강렬한 욕구가 서서히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회복술이 끝났을 때, 다 죽어 가던 좀비 꼴이던 이들은, 어느새 마약을 하기 이전의 생기 짙은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세상에……!”

생기를 되찾은 정령사들이 전신에서 솟아나는 힘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두 번 다시는 느끼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그런 기분이 온몸 구석구석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역시 엘라곤이야. 성녀와 비견될 만해.’

성녀와 비빌 수 있을 정도로 엘라곤의 치유술은 이토록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헤라리온과 비람 또한 경악에 찬 표정으로 회복된 정령사들을 바라보았다.

“그, 그야말로 마법이군요……!”

경탄하는 헤라리온.

그러나 헨리는 그런 헤라리온의 반응을 뒤로 한 채 정령사들에게 말했다.

“회복된 기념으로 다들 한 개비씩 댕기지?”

식후의 담배를 권하듯, 그렇게 헨리는 자연스럽게 궐련을 권했다.

그러자 모두들 습관적으로 품에서 궐련을 꺼내 불을 댕겼다.

그리고 연기를 들이켰다.

“마, 마법사님! 대체 왜!”

“쉿.”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궐련을 권하는 모습에, 헤라리온과 비람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껏 약물 중독에서 치료해 놓고, 왜 다시 마약을 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헨리는 가만히 검지를 입술에 갖다 붙여 보인 뒤, 저들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스읍- 하아…….”

입 밖으로 분홍색 구름이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마약과 굶주림에 절어 있던 정령사들을 새 것처럼 고쳐 냈다.

그리고 다시 그들에게 궐련을 권했다.

그들을 통제하던 근본적인 힘은 공포 따위가 아닌 ‘핑크 스왐프’이다.

엘라곤의 치유술로 마약에 대한 중독성이 완전히 치료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헨리는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아직 그들의 몸에 남아 있을 습관을 이용해 다시 한번 궐련을 빨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개량된 핑크 스왐프는 단 한 모금이라도 빨아들이면 절대로 헤어날 수 없게끔 만들어졌으니까.

궐련을 빨아들이는 정령사들을 보며 헨리는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헤라리온에게 말했다.

“이제 됐습니다. 어차피 저들을 통제하는 건 이 궐련 한 개비니까요.”

“…….”

헨리의 의도를 알아챈 헤라리온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의도를 이해하고 오히려 침묵했다.

헨리가 지금 보여 준 행동에 대해 도덕성을 묻기엔, 저들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했으므로.

그러므로 결국 헤라리온도 헨리의 뜻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치안과 국방 문제는 얼추 해결된 것 같으니 이제 슬슬 환술 결계와 왕권 강화에 대한 작업을 시작해 볼까요?”

샤하트라에 벌어진 문제의 해결.

아마 헨리의 예상이 맞는다면 오늘 안에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 *

“됐군요.”

반나절.

세 사람이 꼽은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는데 딱 반나절의 시간이 걸렸다.

헨리는 우선 각 도시에 정령사들을 보내 왕이 살아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비람에게 술식의 도면을 전해 받은 뒤, 이번에는 왕궁이 아닌 도시를 감싼 장벽 전체에 마법으로 환술식을 새겨 넣었다.

물론 환술 결계를 펼치고 유지하는 마력 또한 비람 혼자선 벅찬 일일 테니 헨리가 대신 마력을 공급해 주었다.

이어서 헨리는 ‘라이징 그랜드 맨션’으로 왕궁을 상징할 임시 건물을 세웠으며, 시체들을 다시 묻을 거대한 왕릉 또한 만들어 주었다.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샤하트라에서 처리해야 될 대부분의 일들을 모두 해결한 헨리는, 칸의 눈이 있을 방향을 향해 무언의 손짓을 해 보였다.

휙휙-

그 모습을 본 헤라리온이 물었다.

“헨리 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생색을 내고 있습니다.”

“예?”

“분명히 영혼의 무덤에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 제가 한 일들을 보라고 생색을 내고 있는 겁니다.”

“그, 그렇군요…….”

헨리의 말대로 선친과 조부의 능력이라면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헨리의 이러한 행동은 조금 황당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생색내기를 끝마친 헨리가 말했다.

“그럼 샤하트라가 떠안은 문제는 대부분 해결된 것 같고…… 이젠 정말로 복수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마법사님. 이 은혜는 저희 왕가가 결코 잊지 않고 대를 이어서 후세에까지 반드시 그 은혜를 갚도록 지시하겠습니다.”

헤라리온은 진심이었다.

만약 헨리가 아니었다면 이 작은 사막의 왕국이 사막 마물들에 의해 모래 속에 파묻혔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이에 헨리가 말했다.

“그럼 그 은혜, 지금부터 갚는 걸로 하시죠.”

“예? 하지만 제겐 지금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가진 것이 왜 없습니까?”

반문하는 헤라리온.

이에 헨리가 말했다.

“전하께선 라의 신력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서스에 대항하기 위해선 그에 준하는 신력이 필요하니, 오늘부터 전하께선 전력을 다해 신력을 강화하도록 하십시오.”

“예? 신력을 강화하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간단합니다, 전하. 앞으로 남은 한 달 동안 전하의 선친께서 그러셨듯이 라의 힘을 완전히 깨우치셔야 합니다.”

완전히 깨우친 라의 힘.

그 말인즉슨, 헨리는 나뉘어 있는 ‘라의 대리자’로서의 능력들을 헤라리온에게 완전히 집결시킬 생각이었다, 헤라볼라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기에 헨리는 신력 강화의 그 첫걸음으로 헤라리온을 새로운 ‘라의 검’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라의 검과 라의 아들.

샤하트라, 그리고 헨리의 복수를 위해 헤라리온은 반드시 사막의 무신이 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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