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
지각의 대가 (1)
“이 빌이먹을 새끼가!”
-키아아아!
키메라의 손톱에 아주 경미한 상처를 입은 알렌이 폭발하는 분노와 함께 자신의 마검, 바실리포를 휘둘렀다.
그러나 마검 바실리포는 분명히 알렌의 오러를 둘렀음에도 불구하고 키메라의 몸을 완전히 베어 내지 못했다.
키메라가 양손을 포함한 신체의 온갖 근육들을 동원해 알렌의 공격을 막아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손은 물론이고 쇄골부터 명치까지 이어진 검상은 결코 알렌의 공격을 막아 냈다고 볼 순 없었다.
이에 키메라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비명은, 쇄골부터 명치까지 그어진 검상에 의한 고통이 아닌, 알렌의 공격을 어찌 됐든 막아 냈다는 희열에 대한 포효였다.
“이 미친놈이……!”
그리고 그러한 포효를 알렌 정도 되는 실력자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기분이 더러웠다.
그러나 기분이 더러우면서도 의아했다.
알렌의 마검은 검날에 베여지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흐르는 혈류를 차갑게 만들어 전신에 걸쳐 엄청난 고통을 선사하는 잔인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왜?’
하지만 키메라들은 즐거워했다, 마치 아이처럼.
절대로 헨리 일행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단 한 번 공격이 성공하고, 단 한 번 수비가 성공한 것에 대해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희열에 기반한 엄청난 기세들을 뿜어냈다.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수천의 키메라가 내뿜는 기세는, 키메라 집단 자체가 가지는 엄청난 위압감은 물론이고, 최상급 경지에 오른 기사들마저도 질리게 하는 소름 끼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한낱 키메라 주제에……!”
그래서 기사들은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고 마법사들은 끊임없이 마력을 퍼부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기분 나쁜 기운에 침식당하지 않도록 말이다.
한참 동안이나 전투가 이루어졌다.
벌써 헨리가 키메라들을 상대로 몇 번이나 초광역 단위의 마법들을 시전했지만, 안타깝게도 키메라들은 일반 병사들이 아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전사들.
키메라 군단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만큼 키메라들은 정신 나간 광전사처럼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모드레드나 왈레드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헨리는 마법과 검을 휘두를 때마다 더더욱 아서스와 드라칸에게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이 개자식들이!’
놈들은 대체 인간의 어느 부분까지 건드려 버린 것일까?
이는 평화교의 사제들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그놈들은 자신들이 행한 이 엄청난 업들이 두렵지 않은 것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들이었다.
검을 휘두르던 맥도웰이 소리쳤다.
“아 왜 줄지가 않는 거야, 이놈들은!”
“자가 치유입니다! 놈들은 죽은 자신의 동료를 먹고 상처를 재생시키고 있어요!”
“으아아아! 빌어먹을 놈들!”
키메라의 전투에는 상식이 없었다.
인륜도, 선악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의 인간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헨리 일행을 공격해 왔다.
상처를 입으면 죽은 전우의 시체를 먹어서 상처를 회복시켰고, 팔이 떨어져 나가면 죽은 전우의 팔을 가져다가 자신에게 붙였다.
또한 놈들은 신체를 이루는 구조가 어떻게 되먹은 건지, 어떤 놈은 머리를 잘라도 살아 있는가 하면, 어떤 놈은 화염에 대한 내성이 극도로 발달되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놈들 모두가 일단은 ‘키메라’라고 불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놈들이 다 똑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실험체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악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군대.
헨리 일행이 상대하고 있는 놈들은 바로 그런 놈들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내세요!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검을 휘두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전투도 점점 더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놈들이 제아무리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고 끊임없이 상처를 회복한다고 한들, 어찌 됐든 죽여 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이나 열기가 과열되어 갈 무렵이었다.
지이잉!
헨리는 다시 한 번 놈들을 날려 버릴, 초광역 단위의 큼지막한 마법을 준비했다.
그런데 마법이 준비되어 가던 중, 헨리의 눈앞에 호출권 특유의 호출 신호가 갑작스레 나타났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해리스.
헨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해리스? 해리스가 갑자기 왜?’
녀석에게 준 호출권은 해리스가 평소 맡은 일을 잘 처리하여 포상으로 내준 것이었다.
딱 한 번.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자신을 부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해리스는 호출권을 받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리고 헨리에겐 호출권을 가보로 모시겠다며 신줏단지처럼 그것을 받들었다.
그런데 그런 호출권을, 지금 전투가 한참 벌어지고 있을 때, 뜬금없이 해리스가 사용한 것이다.
‘설마?’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 예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랐지만 보통 이런 예감이 들 때는 대부분 끝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헨리는 갑자기 조바심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해리스가 현재 머무르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반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그의 고향, ‘앙켈만’이었으니까.
‘젠장, 하필 이럴 때!’
이를 악물고 욕지거리를 내뱉었을 때, 헨리의 손아귀로부터 강렬한 화염포가 뿜어졌다.
뿜어진 화염포는 눈앞의 키메라들을 통구이로 만들었으며 샬롯 고원에 커다란 화재를 일으켰다.
커다란 산불이 났다.
이에 헨리는 한쪽 손으로 비를 내리는 마법을 영창하고 다른 쪽 손으로는 곧바로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마음이 급했다.
눈앞에는 해리스가 있는 위치의 텔레포트 좌표 값이 소환되었는데 헨리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여기서 자신이 빠져 버리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피해가 갈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급해진 마음으로 키메라들을 학살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놈들을 처리하고 해리스에게 가기 위해서 말이다.
‘미안하다, 조금만 기다려라!’
헨리의 두 번째 마법이 시전되었다.
* * *
“……됐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던 키메라가 이젠 하나하나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모두가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두의 갑옷에 자잘한 상처들이 넘쳐 났고 어떤 아크 메이지는 숱한 마력의 소모로 진즉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그런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키메라들을 상대로 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헨리는 마지막으로 공격 마법을 시전한 뒤, 모두에게 외쳤다.
“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금방 돌아올 테니 아주 잠시면 됩니다!”
“알겠어!”
“그래!”
헨리의 부탁에, 모두들 헨리가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오를 때로 오른 독기를 두 눈에 품고서 검을 휘두르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런 검사들 사이에는 반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헨리는 즉시 텔레포트를 영창했다.
그리고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반의 뒷모습에 미안한 눈길을 보내며 생각했다.
‘미안하다, 반!’
부디, 헨리가 지금 반에게 건네는 사과가 섣부른 판단이었으면 좋겠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이윽고 텔레포트의 광명이 헨리를 집어삼켰다.
* * *
번쩍!
빛이 번쩍였다.
헨리였다.
헨리는 호출권이 보내 준 좌표를 토대로 호출권이 찢어진 장소로 텔레포트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헨리가 이미 도착했을 때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대신 바닥에 해리스가 찢은 것으로 추정되는 빈 호출권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헨리는 평범한 종이가 된 찢어진 호출권을 집어든 후 주위를 한 번 살폈다.
고요했다.
기분이 나쁠 정도의 적막함이었다.
이곳이 어딘지는 잘 안다.
이곳은 하즈가 이따금씩 사람들의 눈을 피해 혼자서 휴가를 즐기러 오는 일종의 별장이었다.
헨리는 급한 마음에 별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별장 주위는 역시나 적막했다.
그러나 그 불안할 정도로 적막한 고요가 헨리의 신경을 미친 듯이 자극했다.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불안함이 극에 달한 헨리는 다시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 * *
이번에 헨리가 도착한 곳은 평소 하즈가 공무를 보던 시청의 집무실이었다.
이제는 그 자리를 해리스가 이어받아 앙켈만의 운영에 힘써 왔지만, 무슨 까닭인지 헨리는 집무실에도 해리스와 하즈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헨리는 발걸음을 옮겨 집무실에 난 유리창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앙켈만의 비발디 타워라고 불릴 정도로 앙켈만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모든 자유도시들이 그러하듯 자유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서 시민들을 지켜보며 공무에 힘을 쓰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곳이었다.
헨리는 창문을 통해 바깥을 응시했다.
그런데 바깥을 확인한 순간, 헨리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너무 놀란 나머지 육성이 튀어나왔다.
그만큼 크게 놀랐다는 뜻이었다.
창문의 바깥에는, 그러니까 앙켈만의 바깥 광장에는 마치 한차례의 재앙이 지나간 것처럼 온갖 피투성이의 흔적들과 그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체들이 길가의 돌멩이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학살.
헨리는 그러한 광경을 보고 불현듯 학살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대체 누가?’
물론 바깥에 널린 것은 시체뿐만이 아니었다.
소수이긴 했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헨리는 놀란 마음에 곧바로 블링크를 시전해 앙켈만의 광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붙잡아 이곳에서 일어난 참극에 대한 자초지종을 물어보려고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행색이 남루한 남자였다.
헨리는 뒤통수만 보이는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던 순간, 별장에서 느꼈던 미칠 듯한 불안감이 헨리의 신경을 자극시켰다.
홱!
헨리가 남자에게 손을 올리기 직전, 남자는 갑작스레 고개를 돌려 헨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남자의 안면이 철퇴에 맞은 것처럼, 3할 정도가 찌그러져 있었다.
-그라아아악!
“이런!”
안면이 일그러진 남자는 피부색이 창백했다.
입술은 날붙이를 씹어 먹은 것처럼 너덜너덜했으며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리고 입가에는 주변에 흩뿌려진 핏물처럼 말라붙은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런 남자가 헨리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짐승처럼 입을 찢으며 헨리에게 달려들었다.
서걱!
헨리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저만치 날아가는 남자의 머리.
본능적인 방어였다.
목이 잘린 남자는 목구멍에서 분수같은 핏물을 내뿜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키아아아!
-그라아아악!
고함은, 아니 포효에 가까운 울부짖음은 좀 전에 목을 벤 남자를 기점으로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집무실 창문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갑작스레 대거 등장했다.
그리고 엄청난 기세로 헨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 무슨!”
달려드는 사람들 모두 좀 전의 남자와 비슷한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곳곳에 피가 묻어 있고,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진즉에 죽었을지도 모를 그런 상처들이 전신에 가득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 따위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직 헨리만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해 왔다.
‘이래선 마치…… 좀비 같잖아!’
그리고 헨리는 그들에게서 하급 언데들 중에 하나인 ‘좀비’를 떠올렸다.
끔찍한 연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