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
착각 (3)
저릿저릿!
수천 마리의 키메라들이 내뱉는 울음은, 가히 최상급 소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전신을 저릿하게 할 만큼 그 기세가 엄청난 것이었다.
이윽고 하울링을 끝낸 키메라들의 시선이 일제히 헨리 일행들에게로 쏟아졌다.
“모두 정신차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제일 먼저 소리를 친 것은 다름 아닌 맥도웰이었다.
맥도웰은 곧 일어날 혈투를 직감하고 재빨리 허리에 찬 칼을 뽑아 들었다.
그것은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기랄!’
일이 꼬여도 한참이나 꼬였다.
분명히 스칼을 통해 먼저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선제공격이 성공할 줄로만 알았건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헨리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남들과 같이 전신을 무장하고 칼을 뽑아 들었다.
“망할 개자식 같으니……!”
아서스와의 긴 싸움을 끝낼 마지막 전투라고 생각했건만 그것은 헨리만의 완벽한 착각이었다.
이것은 마지막 전투 따위가 아니었다.
이것은 단지, 대륙 최초의 마검사가 되어 최고라 불리는 모든 실력자들을 한데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서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 추한 모습일 뿐이었다.
-키아아아아!
수천 마리의 키메라들이 일제히 헨리 일행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 * *
“도, 도망쳐!”
150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체구.
처음에는 그 가냘픈 체구 때문에 모두가 귀가 뜯긴 병사의 말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르바에게 건방을 떨던 병사가 세 명쯤 죽어 나가자, 앙켈만의 도시군들은 그제야 무엇이 한참이나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깨달아 봤자 그것은 한참이나 늦은 깨달음이었다.
혈혈단신으로 앙켈만에 입성한 나르바의 힘은 그야말로 압도적, 그 자체였다.
장난처럼 튕기는 손가락에 투구를 쓴 병사의 뇌수가 터져 나갔고 ‘톡’ 치듯 내지른 주먹에 복부가 터져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화살도, 기름병도, 투창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르바는 그저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자신에게 대항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분쇄하며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해 경배할 것을 말했다.
“뭣들 하고 있어? 다들 꿇으라니까?”
“크으윽……!”
한 명.
단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 한 명이 내뿜는 압도적인 투기에 의해, 벌 떼같이 모인 도시군들은 차마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가만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옳지, 잘하네.”
엄청난 굴욕이었다.
수천의 도시군이라고 해도 그중에서 가장 실력 좋은 병사들을 꼽아 봤자 겨우 소드 익스퍼트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리고 좀 전에 죽임을 당한 병사들이 바로 그 소드 익스퍼트들이었다.
그러니 모두가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르바는 그런 도시군들을 마치 말 잘 듣는 애완견처럼 취급했다.
“너희들은 안 꿇어?”
나르바는 고개를 돌려 집 안에 숨어 있는 시민들에게도 명령했다.
분명히 집 안에 숨어 있어 나르바에겐 보이지 않을 텐데, 이상하게 모두의 귀에 나르바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기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나르바는 근처에 숨어 있는 모든 인간들을 찾아냈고,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무릎을 꿇렸다.
이윽고 나르바는 자신에게 굴복한 수많은 시민들 앞에서 촉수로 이루어진 의자를 소환해 냈다.
나르바는 그 위에 왕처럼 앉았다.
그리고 나르바가 의자 위에 앉자마자 의자는 마치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천천히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르바가 말했다.
“여기서 가장 높은 인간이 누구야?”
“…….”
“얼레? 내 말을 무시해? 어이, 거기 너.”
“네, 넷?”
“내 말 안 들려?”
“아, 아닙니다!”
“근데 왜 대답 안 해.”
“그, 그것이……!”
“하, 답답해 뒈지겠네, 진짜.”
촤아악!
나르바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자를 지목해 이곳의 수장이 누군지 물었다.
그러나 겁에 질린 병사는 말을 더듬었고 애석하게도 나르바는 그런 종류의 답답한 행동을 몹시 싫어했다.
나르바의 손에서 촉수가 뻗히며 병사의 목이 꿰뚫렸다.
병사의 몸이 축 늘어졌다.
나르바는 아래로 축 늘어진 병사를 갈고리처럼 끌어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병사의 시체를 흔들어 보였다.
높디높은 허공에서 병사의 핏물이 이슬처럼 아래로 흘렀다.
“다들 기억해. 난 답답한 걸 아주 싫어해. 그러니 앞으로 내가 묻는 말에 재깍재깍 반응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될 거야. 그러니 다들 두 눈 똑똑히 뜨고 잘 봐 두라고.”
말을 마친 나르바는 이윽고 촉수를 움직여 병사의 몸을 좌우로 뜯어냈다.
그 일격에 병사의 핏줄과 내장들이 치즈처럼 길게 늘어났다가 실처럼 끊어졌다.
핏물이 허공에 뿌려졌다.
그 탓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병사의 핏물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아주 충격적인, 그리고 엄청난 공포를 심어 주는 본보기였다.
이윽고 나르바가 코앞의 인간들에게 시체를 집어던진 후 그들에게 명령했다.
“여기서 가장 높은 인간을 내 앞으로 데려와.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 모두를 죽여 줄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압도적인 공포.
명령을 하달받은 시민들은 온몸을 덜덜 떨었다.
제아무리 시민과 병사의 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나르바는 정말로 여기 있는 모두를 죽여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수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앙켈만의 수장을 붙잡아 오기 위해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오로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 * *
“이, 이게 무슨……!”
“하즈 님! 당장 이곳을 떠나셔야 합니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헨리 님께 도움을 청해야만 합니다! 앙켈만의 조잡한 도시군만으로는 절대로 놈을 막을 수가 없어요!”
해리스는 나르바에 대한 소식을 접하자마자 곧바로 하즈에게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해리스도 믿지 못했다.
불청객은 고작해야 한 명이었으니까.
하지만 갑작스레 귓가에 울리는 나르바의 목소리에, 해리스는 이것이 실제 상황임을 깨닫고 부리나케 하즈에게로 달려간 것이다.
“하, 하지만 텔레포트 게이트는 여기서 멀고 설령 게이트가 가까이 있다고 한들 마력석이 없는데 대체 어떻게 작동을……!”
나르바의 목소리는 해리스뿐만이 아니라 하즈 또한 들었다.
그리고 하즈는 광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만의 별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르바의 눈에서 벗어나 몸을 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해리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를 어떡하지?’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도시군을 지휘하는 간부의 증언에 의하면 놈의 손에 벌서 몇 명이나 되는 익스퍼트급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그래서 놈은 자신들 따위가 상대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고 했다.
두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분명히 개죽음을 당할 것 같은 예감이 강렬하게 들었다.
‘제기랄!’
상황이 좋지 않았다.
바깥에선 이미 하즈를 잡아오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그 탓에 수천의 도시군들이 영내를 수색 중에 있었다.
그리고 좀 전부터 그의 귓가에는 하즈에게 순순히 모습을 드러내라는 나르바의 엄포가 속삭여지고 있었다.
그 탓에 하즈는 미친 듯이 몸을 떨었다.
가뜩이나 겁이 많은 남자였다.
그렇기에 환청처럼 속삭이는 귓속말은, 겁많은 하즈를 겁박하기엔 충분한 수단이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그래! 그게 있었지!’
방법을 찾던 해리스는 순간,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즉시 품속에서 옛날에 헨리가 자신에게 주었던 단 한 장뿐인 호출권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부욱 찢어 냈다.
호출권에 적힌 룬어들이 사라지면서 눈앞에 빛으로 이루어진 원이 나타났다.
‘제발, 제발!’
간절하게 바랐다.
그동안 해리스는 이 호출권을 소중하게 간직해 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헨리는 그 지옥 같았던 밑바닥 생활에서 자신을 건져 준 소중한 은인이었기에 그런 은인이 준 선물을 함부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용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개죽음을 당할 것이 뻔했으니까.
…….
그러나 빛의 고리가 생겨난 이후,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에 하즈와 해리스는 놀란 눈초리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뭐, 뭐지……?’
특히나 더 놀란 것은 하즈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히 찢기만 하면 언제든지 모습을 드러내겠다고 약속한 헨리가 무슨 이유에선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찾았다!”
“여기 있다!”
살기 위해 혈안이 된, 광기에 절은 도시군들이 별장에 숨어 있는 하즈와 해리스를 발견한 것이다.
“수, 숨으십시오! 하즈 님!”
해리스는 급히 하즈를 숨겨 보려 하였으나 휴식을 위해 마련된 이곳에 숨을 곳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곧 수십에 달하는 병사와 시민들이 별장을 포위했다.
그리고 문이 열렸고 두 사람은 문을 연 병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문을 연 병사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당신을 데려가지 않으면 우리가 죽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병사는 하즈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그 순간, 허공에 떠올라 있던 빛의 고리가 천천히 종적을 감추기 시작했다.
“아, 안 돼……!”
고리가 사라졌다.
호출권이 그 힘을 다하고 만 것이었다.
이에 하즈는 절망했다.
그리고 해리스 또한 심연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해리스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온 병사들에게 원망 섞인 물음을 던졌다.
“너, 너희들이 어떻게…….”
“……죄송합니다, 해리스 님.”
나르바가 데리고 오라고 한 것은 앙켈만에서 가장 높은 인간, 즉 앙켈만의 수장인 하즈였다.
그래서 병사들은 명령에 포함되지 않은 해리스를 힘으로 밀쳐 낸 후, 겁에 질린 하즈를 붙잡았다.
“하, 하하하…….”
양팔이 붙들린 하즈는 실성한 것처럼 웃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그런 하즈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하즈를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나르바 앞에 하즈를 내던졌다.
하즈를 본 나르바가 물었다.
“너야? 여기서 가장 서열이 높은 인간이?”
“그, 그, 그렇습니다…….”
“그래?”
실성한 듯 웃어 젖히던 하즈는 나르바 앞에 내던져지자마자 다시 공포에 질린 겁쟁이처럼 행동했다.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나르바가 미소년 같은 얼굴에 조그마한 체구를 지녔다지만, 나르바가 내뿜는 형언할 수 없는 살기가 전신을 옥죄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답을 들은 나르바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뻗은 손으로부터 덩굴 줄기처럼 잔뜩 꼬인 촉수가 뻗어 나왔다.
그리고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그래, 그럼 잘 가.”
“그, 그게 무슨…… 컥! 커어억! 커억……!”
손에서 나온 촉수 줄기가 곧 하즈의 복부를 관통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즈는 몸을 떨었다.
엄청난 고통이었다.
하지만 하즈는, 복부를 관통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이는 괴로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난, 난 대체…….”
머릿속에 이는 괴로움은 지독한 원망이었다.
그리고 외로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철석같이 믿었던 헨리가 응답하지 않았고 앙켈만 생활의 대부분을 함께했던 반조차 지금 여기에 없었으니까.
하즈의 눈앞에 곧 죽음을 목전에 둔 채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하즈의 두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만큼, 하즈는 더더욱 괴로워했다.
돌이켜 보면, 그는 한평생 반과 헨리를 위해 앙켈만의 청렴한 공직자로 살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난…… 난 대체…….”
핏기가 가시며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그리고 배에서 쏟아지는 혈류랑이 많아질수록 의식 또한 흐릿해져만 갔다.
추웠다.
세상이 차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더욱 서슬퍼런 것은 주마등 속에서까지 보이는 지독하고 외로운 후회였다.
…….
“죽었네.”
미약하게 떨던 하즈의 근육이 이내 곧 활동을 멈추었다.
나르바는 그런 하즈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나르바가 하즈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드라칸에게 전수받은 지식들 중에는, 갖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만약 그것이 남의 것이라면, 물건의 주인을 해치고 손에 넣으라는 구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르바는 앙켈만의 시민들을 갖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앙켈만을 다스리는 수장인 하즈를 해친 것이었다.
이윽고 나르바는 촉수에 꿰뚫린 하즈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입으로 가지고 와 뱀처럼 아가리를 벌렸다.
그리고 죽은 하즈의 시체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꿀꺽-!
나르바는 자신의 체구보다 더 큰 하즈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그리고 핏물이 묻은 입술을 혀로 닦아 냈다.
“으, 늙어서 그런지 맛이 없네.”
나르바는 촉수를 거두었다.
그런 다음 고개를 돌려 무릎 꿇은 시민들을 보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내가 너희들의 대장이 됐다, 그치?”
경악에 찬 앙켈만의 시민들.
그러나 누구 하나 저항하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나르바는 드라칸의 말이 옳음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