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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256화 (256/522)

# 256

지각의 대가 (2)

앙켈만의 시민들을 무릎 꿇린 나르바는 시민들에게 원초적인 물음을 던졌다.

내가 너희들의 우두머리를 이겼으니 이제부터 너희들을 지배해도 되지 않겠냐는, 서열 싸움에 의거한 원초적인 명제를 말이다.

이에 겁에 질린 사람들은 마지못해 나르바의 물음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신사적인 물음을 던졌다고 생각한 나르바는 시민들의 동의가 떨어지자마자 한스에게 보여 주었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기괴한 웃음을 시민들에게 보여 주었다.

오싹.

인간은 감히 지을 수 없는, 오금이 저릴 정도로 섬뜩한 미소였다.

그리고 나르바는 정말로 기분이 좋을 때만 그런 표정을 짓곤 했다.

“좋아, 아주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흡족한 반응이야.”

동의를 얻은 나르바는 다시 입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비비며 입맛을 다셨다.

“흐음, 그나저나 하즈라고 했나? 이놈, 생긴 것에 비해 꽤 성실하게 살아왔잖아? 얼렐레? 이놈 이거, 헨리라는 놈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었네?”

아서스에게서 이름을 하사받고 드라칸에겐 지식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끝없는 생존경쟁을 통해 서른 마리의 선택받은 키메라들 중 당당한 아홉 사도가 될 수 있었다.

그런 탓에, 사도가 된 키메라들에겐 특별한 능력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포식’을 통한 ‘흡수’.

나르바는 하즈를 잡아먹었다.

그리고 기존에 가진 포식을 통해 하즈의 기억과 하즈가 가진 재능들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 냈다.

이는 굉장한 능력이었다.

이것은 특별한 권능 따위가 아니라 드라칸이 인간을 키메라와 접목시키면서 끊임없이 인간을 키메라의 실험체로 사용한 연구 끝에 터득한, 진화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진화의 증거인 셈.

사도들은 드라칸으로부터 지식을 전수받긴 했지만 지식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예컨대 ‘사회적 공감 능력’ 같은 영역들을 인간의 포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나르바에게 사회적 공감 능력은 딱히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르바가 하즈를 집어삼킨 이유는 ‘하즈만이 가지고 있는 기억들’ 때문이었다.

나르바는 비비던 두 손을 거두어들이고 팔짱을 꼈다.

하즈로부터 흡수한 기억들 중에는 사전에 드라칸에게서 교육받은 ‘헨리’에 대한 것들이 가득했다.

이윽고 나르바가 웃었다.

하즈가 가진 기억 중에 꽤나 재미있는 사실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헨리는 둘째 치고, 반이라는 놈의 별명이 앙켈만의 수호자라고? 이 좁아터진 도시에 대한 애착이 무척이나 강한 놈인가 보군. 게다가 헨리의 검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다……? 좋았어. 이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모른 척할 수야 없지.”

생각을 마친 나르바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나르바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미소를 유지한 채 무릎 꿇은 시민들에게 말했다.

“앙켈만의 시민들이여, 나의 부하가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나르바는 신사적인 어투로 시민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신사적으로 시민들을 대한다고 한들, 나르바가 가진 특유의 살기는 좀처럼 숨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나르바는 시민들이 공포에 떨거나 말거나 제 할 말을 계속 했다.

“우리가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된 것도 다 위대하신 아서스 님의 축복이니,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제가 모시는 아서스 님의 위대한 축복을 내려 주도록 하겠습니다.”

제법 신사적인 어투로 말한다고 말했지만, 경어와 반말이 뒤섞인 기괴한 말투였다.

그러나 나르바는 자신의 연설을 제법 흡족해했다.

그런데.

“아서스……?”

“아서스라고?”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아서스라면 설마 대공작이었던 그놈……?”

괴물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시민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르바가 원하는 반응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이 믿고 모시는 신의 이름을 함부로 막 부르다니, 아서스를 모시는 사도로서 결코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르바의 얼굴이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는 속에서부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갑작스럽게 몰려 왔기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분노한 나르바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런 미천한 놈들이……!”

“어, 어?”

당황하는 시민들.

그러나 나르바의 분노는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네놈들이 감히……! 위대하신 아서스 님의 존함을……! 함부로 지껄여……?”

“위, 위험……!”

“도, 도망쳐!”

척 보기에도 위험함이 느껴졌다.

이에 생존의 위협을 느낀 시민들은 나르바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인파가 벌 떼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르바는 제자리를 유지했다.

대신, 이제는 얼굴뿐만이 아니라 전신이 보랏빛이 된 나르바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쩌렁쩌렁!

앙켈만 전체에 나르바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시민들 모두의 양쪽 고막이 터져 귀에서 핏물이 흘렀다.

그리고 고막이 터진 충격에 의해 모두들 자리에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각자가 도망치려던 방향을 향해 엎드려 쓰러져 있을 뿐.

그러나 모든 시민들이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르바는 여전히 분노했다.

“네놈들은……! 위대하신 아서스 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

나르바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그래서 원래 진행하려던 계획을 물리고 새로운 계획을 실시하기로 했다.

그것도 자신의 분노가 아주 많이 가미된 계획을 말이다.

고함친 나르바의 전신이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르바의 신체가 명치 쪽으로 말려들어 가기 시작하더니 보랏빛 촉수가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르바는 곧 마치 촉수 다발을 뭉쳐 놓은 듯한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변화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얼마 동안 촉수 다발처럼 변화를 진행하더니 이내 곧 촉수로 이루어진 한 송이의 징그러운 꽃이 되었다.

거대하고 굵은, 그리고 징그러운 외형을 가진 보랏빛 꽃.

변형을 마친 그것은 곧 짐승의 아가리처럼 큼지막하게 꽃잎을 펼치더니 이내 곧 보랏빛 포자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포자는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포자는 바닥에 쓰러진 앙켈만의 모든 시민들의 신체에 들러붙었다.

포자와 접촉한 시민들은 이내 곧 엄청난 고통과 마주하게 됐다.

그 극심한 고통에, 급기야 고막의 파열로 잃었던 정신까치 되찾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것은 끔찍한 저주였다.

기절 상태에서 깨어난 시민들은 몸속을 헤집어 놓는 엄청난 고통에 온몸을 배배 꼬았다.

그 고통이 너무 거대해서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시민들은 곧 기괴한 관절 놀림을 선보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끄아아아악!”

누군가는 포자가 건네는 극심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말았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멍한 눈초리와 고통에 의해 생긴 상처들을 가지고 새 생명을 얻었다.

그렇다.

그들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나르바의 새로운 계획대로, 그리고 사도가 가진 능력들 중 하나에 의하여 몇 가지를 제외한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절개되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새 새명을 얻은 시민들이 중얼거렸다.

“위대하신…… 아서스 신…… 만세…….”

기절했던 남자가 다시 일어서자마자 내뱉은 첫마디였다.

* * *

“이 무슨……!”

헨리는 사색이 된 얼굴로 자신의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굉장한 장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데드의 한 종류인, 좀비를 연상케 하는 앙켈만의 시민들이, 정말로 좀비라도 된 것처럼 맹목적으로 헨리에게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처음에 자신에게 달려들었던 남자의 목을 베었다.

그런 다음 사방에서 쏟아지는 좀비 떼를 피하기 위해 플라이를 사용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좀비들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엉겨 붙기 시작하더니 이내 곧 허공으로 날아오른 헨리에게 닿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발판 삼아 어떻게든 헨리와 가까워지기 위해 ‘인간탑’을 쌓았다.

헨리는 그들을 보며 수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과거에 흑마술사들이 자행했던 끔찍한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마치 그때와 같은……!’

살아 있는 인간 전부를 좀비로 만들어 버린 그 사건.

헨리는 그러한 일을 벌린 흑마술사를 찾아내 그가 행한 짓에 대한 마땅한 벌을 내리고, 평화교 사제들의 힘을 빌려 좀비가 된 사람들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다.

매우 많은 시간이 걸렸고 개인이 모두 해결하기엔 몹시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헨리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모두 아무런 죄가 없는 무고한 시민들이었으니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쯤, 그 순간 헨리는, 아서스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설마, 이게 바로 그놈이 말한?’

선물.

아서스는 자신이 선물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짓을 저지를 만한 인물은 단연코 아서스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헨리는 순식간에 차오르는 분노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젠 하다못해 흑마술에까지 손을 대다니?

그러나 분노한다고 해서 지금 눈앞에 벌어진 참극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헨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저들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뿐.

‘제기랄!’

방법은 적었다.

하지만 적은 방법이라도 있기에 헨리는 최선책을 골라 움직여야만 했다.

헨리는 짧게 욕설을 내뱉은 다음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외쳤다.

“……블리자드 스톰!”

휘오오오!

헨리의 에메랄드 빛 마력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북방의 칼바람을 닮은,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헨리는 마력을 아끼지 않았다.

헨리는 범람하는 강처럼, 앙켈만의 모든 것들을 얼어붙게 할 것처럼 끊임없이 마력들을 퍼부었다.

쩌저적! 쩌적!

이에 앙켈만 전체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헨리의 눈보라가 닿은 곳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것들이 말이다.

급속냉각.

그것이 헨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헨리는 좀비가 된 이들을 모두 산 채로 얼려 낸 다음,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평화교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차례대로 사람들을 해동시킨 다음, 좀비가 된 사람들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테니까.

“후우…….”

전신에 식은땀이 흘렀다.

제아무리 7서클 대마도사라지만, 한 개의 도시를 통째로 얼려 낼 만큼의 마법은 대마도사로서도 매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블랙 티어를 섭취해 두길 잘했어.’

여러 모로 헨리에겐 다행인 셈이었다.

헨리는 도시 전체가 꼼꼼히 얼어붙은 것을 확인했다.

그런 다음 엘라곤을 소환했다.

“엘라곤.”

-뀨?

엘라곤을 부르자, 손목에 찬 팔찌가 반짝이더니 이내 곧 헨리의 곁에 엘라곤이 소환되었다.

엘라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허공을 헤엄쳤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하는데, 그동안 얼음이 녹지 않게 좀 부탁할게.”

-뀨!

엘라곤은 물의 정령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얼음의 정령이기도 했다.

그것도 최상급 수준에서 한 번의 진화를 거친 존재.

그런 엘라곤에게 전체가 얼어 있는 도시는 그야말로 놀이터와도 같은 곳.

게다가 엘라곤은 마력 또한 충만했다.

그렇기 때문에 엘라곤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만으로도, 도시는 절대로 녹지 않고 처음에 얼었던 모습 그대로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없어!’

엘라곤에게 냉동의 유지를 부탁한 헨리는 급히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아니, 시전하려고 했다.

좌표는 샬롯 고원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선뜻 텔레포트를 시전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사실을 샬롯 고원에 있을 일행에게 전해야 하는데 그곳에는 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반이 알면 난리가 나겠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감추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헨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샬롯 고원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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