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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250화 (250/522)

# 250

전력 강화 (3)

비취색 눈동자.

그리고 청록색으로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난생 처음 보는 아이였지만, 헨리는 저 아이가 엘라곤임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마른침을 한 번 삼킨 뒤, 용기를 내어 엘라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엘라곤?”

-뀨!

새하얀 피부.

그러나 하프 드래곤처럼 신체의 군데군데 청록색 비늘이 드러내 보이고 있는 엘라곤은 영락없는 폴리모프 상태의 정령이었다.

헨리의 물음에 명랑한 대답을 선보인 엘라곤은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금방 헨리에게 달려와 품에 안겼다.

“엘라곤이 맞구나.”

-뀨!

아직 언어와 관련된 지능이 발달되지 않은 것일까?

외형은 누가 봐도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구사할 수 있는 단어는 여전히 ‘뀨’밖엔 없는 듯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말이야 헨리가 가르치면 되는 것이고, 어찌 됐든 엘라곤은 헨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까.

“반갑구나, 엘라곤. 오랫동안 너를 기다렸단다.”

-뀨!

헨리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헨리의 한마디, 한마디에 뚝뚝 묻어나는 애정을, 엘라곤은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엘라곤은 여전히 헨리가 좋았다.

헨리는 이어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서 천 한 자락이 나타나더니 곧 엘라곤의 몸을 감싸 안으며 단정한 한 벌의 옷이 되었다.

“불편한 데는 없니?”

-뀨!

엘라곤은 활력이 넘쳤다.

그도 그럴 것이 엘라곤이 태어난 이후, 가장 많은 양의 마력을 머금은 날이 바로 오늘이었으니까.

그러니 엘라곤의 컨디션은 지금이 가장 최고조였다.

엘라곤은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오랫동안 알 속에 있어서 그런지 진화 이후에 제대로 된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다행인 점은, 일전에 영지전에서 진화 중에 있던 엘라곤의 알을,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강제로 깨웠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싶었다.

엘라곤은 헨리를 안았다.

마치 아버지의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내 곧 헨리에게서 떨어지더니 뒤편으로 손을 뻗어 보이며 마력을 출력시켰다.

그러자.

츄주죽!

엘라곤의 손바닥 위로 떠오르는 커다란 물방을.

물방울은 곧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더니 이내 곧 맑은 물방울을 보랏빛으로 변환시켜 보였다.

‘독?’

그것은 독이었다.

그것도 독성이 아주 짙은 맹독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엘라곤이 가진 네 개의 속성들 중, 헨리의 혈독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성된 맹독은 이내 다시 맑디맑은 물로 변환되었다.

“……!”

그러나 헨리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물 따위가 아니었다.

마치 여느 종교의 성수를 연상케 하는 그것은 다름 아닌 ‘치유수’였다.

“허……!”

허공에 방울방울 떠다니던 치유수는 이내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치유수를 감춘 엘라곤은 쑥스럽다는 듯이 두 손을 허리 뒤로 숨긴 채 몸을 배배 꼬았다.

‘기특한 녀석.’

그것은 영락없는 재롱이었다.

마치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자랑해 보이는, 그런 종류의 재롱 말이다.

이에 헨리는 엘라곤을 기특하게 여겨 엘라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젠 능력을 제법 능숙하게 부리는 모양이구나.”

-뀨뀨뀨!

헨리의 칭찬을 알아듣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엘라곤.

헨리는 이외에도 몇 가지 정도를 더 테스트해 본 뒤에야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아직 무력 쪽은 시험해 보지 않았지만 감이 좋아. 이 정도면 괜찮은 진화야.’

회복 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수확이었다.

이에 헨리는 이곳으로 온 목적 중에 하나인 ‘엘라곤의 진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윽고 헨리는 책상 위에 올려둔 압축한 두 개의 블랙 티어를 들어 엘라곤 앞에 흔들어 보였다.

“엘라곤.”

-뀨?

“이게 뭔지 기억하니?”

-뀨우……?

엘라곤은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눈앞에 보이는 블랙 티어에 코를 대고 킁킁 맡아 보았다.

인상을 찌푸리는 엘라곤.

고속 성장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블랙 티어가 들어갔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또, 과거에 헨리가 이것으로 7서클의 경지에 진입하려 할 때, 블랙 티어에 의해 죽어 가던 헨리를 엘라곤이 살려 주었으니 더더욱 모를 리가 없었다.

이에 인상을 찌푸리던 엘라곤이 오른쪽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짜증을 냈다.

-뀨! 뀨뀨뀨! 뀨뀨! 뀨뀨뀨!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억양과 톤을 미루어 보건데 결코 좋은 말은 아닐 거라고 헨리는 확신했다.

이에 헨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아보니 다행이구나. 그럼 이제부터 내가 이걸 마실 예정인데, 만약 내가 중태에 빠지면 저번처럼 날 도와주겠니, 엘라곤?”

-뀨뀨?

눈썹을 말아 올리고 양손바닥을 내보이는 엘라곤.

마치 이 위험한 걸 왜 굳이 먹으려 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에 헨리가 다시 엘라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후후, 말려도 소용없단다. 아무튼 내가 중태에 빠지면 저번처럼 다시……. 아, 아니지, 굳이 너의 도움을 기다릴 필요가 없잖아?”

엘라곤에게 부탁을 하던 중, 헨리는 불현 듯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좀 전에 엘라곤이 보여 주었던 ‘치유수’였다.

“엘라곤. 혹시 치유수를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니?”

-뀨?

대답과 함께 검지를 앞으로 내미는 엘라곤.

그러자 엘라곤의 검지 끝에 주먹만 한 물방울이 맺혔다.

헨리는 그것을 빈 플라스크에 옮겨 담았다.

그러자 그 광경이 재미있었는지, 엘라곤이 자꾸만 치유수를 만들어 냈다.

“그만, 그만! 이제 됐어. 그만 만들어도 돼.”

-뀨!

엘라곤이 재미로 만든 치유수는 어느덧 욕조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이 생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헨리는 여러 곳에 가득히 옮겨 담은 플라스크를 한참이나 보더니 이내 곧 손가락을 튕겨 나무로 된 욕조를 소환했다.

그리고 여러 곳에 옮겨 담았던 치유수들을 욕조 안에 모조리 쏟아부었다.

‘한번 해 보자.’

얼핏 보면 맑은 물이 가득 담긴 욕조였다.

하지만 가열하지 않았음에도 묘하게 따뜻함이 느껴지는 치유수는, 표면에 가만히 손을 올려 두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준비는 이것으로 끝났다.

헨리는 책상 위에 올려둔 두 개의 블랙 티어 압축분을 집어든 후, 옷을 입은 채로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첨벙!

욕조를 채우고 있는 치유수에 비해 욕조를 크게 만들어, 다행히 치유수가 넘치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헨리가 욕조로 들어가는 것을 보자 엘라곤 또한 잔뜩 기대어린 표정으로 욕조 안으로 몸을 내던졌다.

첨-벙!

-뀨뀨뀨!

물장구를 치며 즐거워하는 엘라곤. 이에 헨리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 가까이 붙어 있는 게 오히려 좋을지도.’

헨리는 심호흡을 했다.

그런 다음 양손 위에 두 개분의 블랙 티어를 올려둔 후 그것을 하나로 합성하는 작업을 개시했다.

지이잉……!

떨리는 두 개의 유리병.

두 유리병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이내 곧 자석처럼 찰싹 붙었다.

그리고 진동하며 서로의 몸을 부비는 듯싶더니, 이내 하나의 유리병으로 물질 변환을 시작했다.

펑!

그리고 조그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검은색 연기가 났다.

헨리는 입으로 바람을 불어 연기를 없앴다.

연기 속에는 엄지만큼 작아진 하나의 유리병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2천 회 분의 블랙 티어가 하나로 응축된 고농축의 블랙 티어였다.

꿀꺽.

500회 분의 압축 블랙 티어가 주는 고통을 알고 있기에 그 4배에 달하는 이것이 얼마나 끔찍할지 대충 어림짐작이 갔다.

하지만 마셔야만 했다.

그리고 고작 이것만으로는 결코 8서클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음을 헨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마셔야만 했다.

꺼려졌다.

그리고 두려웠다.

마셔야만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두려운 것은 제아무리 헨리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아래에는 엘라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것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엘라곤에게 물었다.

“뭘 그렇게 보냐, 네가 마실래?”

도리도리.

고개를 내젓는 엘라곤.

고개를 내젓던 엘라곤은 이내 양손으로 블랙 티어를 헨리에게 떠밀었다.

“너도 이게 뭔지 아는 구나…….”

정확히 말하자면 엘라곤은 이게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굉장히 맛이 없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것은 전신의 감각이 기억하고 있기에 헨리에게 권한 것이다.

제아무리 엘라곤이라도 아프고 맛없는 것은 싫었으니까.

‘그래.’

이에 헨리는 용기를 내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뚜껑을 열고 단숨에 그것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딱 한 모금에 불과한 양이었다.

그래서 게 눈 감추듯이 순식간에 식도를 타고 블랙 티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쨍그랑!

빈 유리병을 바닥에 내던지는 헨리.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헨리는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얼른 두 손을 모아 욕조 안에 담긴 치유수를 떠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우웁!”

위장 가득히 폭발하는 그것.

분명히 몇 줌의 치유수를 털어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랙 티어는 활화산이 폭발하듯 위장 안에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삼킨 것들을 전부 게워 낼 뻔했다.

이에 헨리는 황급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우웁……!”

마치 악마를 삼킨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삼켜진 블랙 티어는 어떻게든 동굴을 빠져나가려는 용처럼 미친 듯이 헨리의 몸속에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뀨뀨뀨!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엘라곤이 물장구를 쳤다.

헨리의 과장된 모습이 퍽 우스꽝스러워 보였는지,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헨리는 죽을 맛이었다.

‘크으윽!’

이마에 혈관이 돋고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뜨거운 증기가 뿜어지는 것 같았다.

두 눈의 실핏줄은 이미 터져서 붉은 샘이 되었다.

헨리는 오한에 걸린 환자처럼 전신을 사시나무 떨 듯이 부르르 떨었다.

‘커, 커허헉!’

눈이 까뒤집힐 정도로 엄청 고통스러웠다.

지금이라도 당장 두 손을 떼서 치유수를 삼키고 싶었는데, 양손을 떼는 순간 입안에 든 것을 내뿜을 것 같아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누군가 자신의 심장에 굵은 소금을 뿌려 놓은 것만 같았다.

전신에 작열통이 초단위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숨이 막혔다.

마치 깊은 해수 속에 잠긴 것만 같았다.

헨리는 생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고통에 정신이 점점 더 혼미해져만 갔다.

-뀨……?

그리고 헨리의 괴로움이 절정에 다다를 무렵, 엘라곤은 그제야 이게 한낱 장난 따위가 아닌 실제 상황임을 깨달았다.

엄청나게 괴로워하는 헨리의 모습에, 엘라곤은 그제야 안절부절못하며 허둥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고통에 부르르 떠는 헨리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화아악!

엘라곤의 몸에서부터 청록빛 광휘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빛은 잉크처럼 퍼져서 이내 곧 욕조 가득히 담겨 있는 치유수 또한 빛나게 했다.

연구실 전체에 광명이 드리웠다.

그리고 광명은 천천히 잦아들더니 마침내 빛에 잠겼던 욕조가 모습을 드러낼 무렵쯤에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치유수가 가득 들어 있던 욕조에는 헨리와 엘라곤, 두 사람 모두 보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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