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51화 (251/522)

# 251

전력 강화 (4)

“…….”

얼마간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커헉!”

단말마를 닮은 짧은 숨소리와 함께 욕조에서 헨리가 몸을 일으켰다.

“하아, 하아……!”

몸을 일으키자마자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헨리.

안색이 창백했다.

그리고 그런 헨리의 몸뚱이에 엘라곤이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뀨우?

숨이 벅찬 헨리에 비해 엘라곤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엘라곤은 물의 정령이었으니까.

헨리는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욕조 한쪽을 붙잡았다.

그리곤 젖어서 축 늘어진 머리칼을 이마 위로 쓸어올리며 혼미해졌던 정신을 붙잡았다.

‘죽을 뻔했다.’

짧고 솔직한 감상평이었다.

그리고 헨리는 정말로 죽을 뻔했다.

과거에 마셨던 미라클 블루나 이전의 블랙 티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웠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고비를 넘겼다.

그것 때문에 엘라곤의 성장을 앞당긴 것이었고, 헨리의 계획은 멋지게 먹혀들었다.

그래도 몸에 남아 있는 고통의 후유증은 쉽게 떨쳐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헨리는 여전히 시큰거리는 내장들을 치유수에 푹 담그고 싶었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치유수를 몇 입 떠다 마시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찰박-.

“후우우…….”

헨리가 욕조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연구실 바닥에 치유수들이 쏟아지며 바닥을 적셨다.

마음 같아선 클린을 사용해 축축해진 바닥을 얼른 치우고 싶었지만 정말이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헨리는 젖은 솜 같은 몸을 이끌고 근처의 의자에 몸을 내던졌다.

그러자 엘라곤이 쪼르르 따라와 헨리의 무릎 위에 앉았다.

-뀨뀨뀨.

엘라곤에게 헨리의 컨디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엘라곤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자신이 기대고 부빌 수 있는 헨리의 촉감뿐이었다.

그렇기에 헨리도 엘라곤이 무슨 뜻으로 이러는 건지 잘 알기에, 천근같이 무거운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라곤을 달리 내치지 않았다.

대신 헨리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몸 안에 간신히 정착시킨 2천 회분의 블랙 티어들의 행방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아아…….

고통의 후유증 때문에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지만 집중을 시작하니 몸속을 헤집고 다니는 마력들을 금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집중력이 고조될수록 주위의 소리 또한 점점 더 들리지 않게 되었다.

헨리는 자신의 심장의 박동을 느꼈다.

그리고 심장 위에 그려진 서클의 진동과 전신에 퍼져 있는 막대한 양의 거친 마력들을 부드럽게 잇기 위해 그 사이의 연결 고리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어쨌든 폭주하는 마력들을 신체 안에 가두어 놓는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미처 정착하지 못한 마력들을 체내에 가라앉게 만드는 것뿐이었으니까.

집중의 경지가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얼핏 보면 마치 의자에 앉은 채 죽은 시체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엄청난 집중의 상태에 다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고요한 상태가 유지됐다.

이에 엘라곤은 조용해진 헨리를 몇 번 정도 올려다보았지만 이내 헨리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에 자장가와 같은 편안함을 느껴 천천히 눈을 감고 헨리에게 등을 기대었다.

그렇게 해가 졌다.

그리고 달이 완전히 떠오를 때쯤, 떠오르는 달과 함께 헨리의 눈꺼풀 또한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후우…….”

바닥에 흥건했던 치유수는 어느새 바짝 말라 있었다.

헨리는 자신의 위에서 눈을 감고 곤히 자고 있는 엘라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엘라곤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넘겨 주며 생각했다.

‘복덩이 녀석.’

반나절간의 명상 끝에, 헨리가 깨달은 사실이었다.

물론 엘라곤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엘라곤이 헨리 위에서 잠든 덕분에 헨리는 엘라곤의 덕을 많이 보게 되었다.

그 단적인 예로, 엘라곤이 헨리의 위에서 잠든 것만으로 헨리는 반나절 동안 꽤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었다.

엘라곤이 가진 특유의 치유력 덕분이었다.

이외에도 체내에 흡수한 마력들이 조금이라도 폭주하려고 하면 엘라곤이 그것들을 다독여 주었다.

그래서 헨리는 엘라곤을 복덩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끔찍하군. 이정도 고통을 감내했는데도 8서클은커녕, 그 기미도 보이지 않다니.’

그리고 이것은 명상 끝에 깨달은 사실었다.

헨리는 2천 회 분의 블랙 티어를 삼켰음에도 불구하고 8서클은커녕, 여덟 번째 고리의 발끝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끔찍하다, 끔찍해.’

얼마나 더 많은 양의 블랙 티어를 마셔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블랙 티어와 엘라곤만 있다면 전생에 8서클을 이루었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다시 8서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어서 헨리는 눈을 감았다.

이번에 할 작업은 다름 아닌 엘라곤과 좀 더 긴밀한 관계가 될 수 있게 하는 ‘영혼의 계약’이었다.

계약을 맺는 이유는 간단했다.

기존의 엘라곤이 헨리를 단순히 ‘둥지’ 정도로 여겨 순전히 헨리에 대한 호감으로만 움직였다면, 이제는 클레버와 같은 든든한 권속이 되어 헨리가 가진 완전한 하나의 힘으로써 세상에 군림시키려는 것이었다.

헨리는 손바닥에 마력을 모아 엘라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헨리의 다정함이 녹아 있는 따뜻한 마력에 엘라곤이 반응하며 부스스 눈을 떴다.

“깼니?”

-뀨…….

“엘라곤,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볼래?”

헨리의 제안에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엘라곤.

이에 헨리는 아이들이 약속을 할때나 사용하는, ‘손가락을 거는 모양새’를 취했다.

거창한 문장이나 과정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헨리와 엘라곤 사이에 필요한 것은 오로지 ‘유대감’이나 ‘우정’같은 따뜻한 감정뿐.

이윽고 헨리와 엘라곤이 서로 새끼손가락을 거는 순간, 엘라곤은 헨리의 손가락으로부터 헨리가 자신과 영혼 깊은 유대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엘라곤은 고민하지 않았다.

비록 엘라곤이 정령계 출신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헨리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정도는 본능적으로 분간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엘라곤은 헨리의 제안에 응했다.

그리고 제안에 응하는 순간, 서로 맞걸은 손가락 사이로 보이지 않는 선 하나가 서로의 영혼을 이어 주었다.

두근-

두근두근-

실이 연결되고 난 직후, 헨리는 엘라곤의 조그마한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클레버와는 또 다른 형태로 계약을 맺게 된 헨리의 두 번째 권속.

이로써 엘라곤과 헨리 사이에는,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은 것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영혼의 계약이 성립되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엘라곤.’

-뀨우…….

계약을 마친 후, 헨리는 머릿속으로 엘라곤에게 앞으로 잘 부탁할 것을 전했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거대한 파도와 같은 헨리의 마력이, 엘라곤의 전신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잔잔한 파도와 같은 부딪힘이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엘라곤이 파도에 스며들 수 있게 아주 천천히 엘라곤을 감싸 안는, 그러한 힘의 전달이었다.

엘라곤은 노곤함에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곤함에 눈이 감길수록 전신에 빛이 새어나오더니, 이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비취색으로 빛나는 손목 장신구가 되어 헨리의 팔목에 덧씌워졌다.

“됐어.”

블랙 티어의 흡수와 엘라곤의 진화, 그리고 정식으로 맺은 영혼의 계약.

헨리는 현재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전력들을 보충할 수 있었다.

* * *

하늘에 떠오른 달이 만월이 될 때면 헤라리온은 샤하트라의 어둠을 수호하는 죽음의 신, 야누스를 위한 제사를 지낸다.

그것은 샤하트라 왕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칸이 짊어져야만 하는 숙명.

이 숙명을 짊어진 칸은 야누스의 힘이 충만해지는 보름달이 뜰 때마다 야누스의 힘을 진정시킬 만한 제물을 바쳐 야누스를 위로해 주어야만 했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숙명을 짊어진 만큼 헤라리온에게도 마땅한 대가가 주어졌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야누스의 대리자이니만큼 그 누구도 감히 다루지 못할 ‘죽음의 힘’을 헤라리온은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고작 야누스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죽음의 힘을 남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헤라리온은 야누스에게서 받은 힘을 사용할 때마다 ‘붉은 피와 마력을 가진 존재의 생명력’을 그 대가로 사용해야만 했다.

그래서 헤라리온은 이 힘을 남용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붉은 피와 마력을 동시에 가진 존재는 인간을 제외하고는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라리온은 여느 때와 같이 야누스에게 바칠 살아있는 제물을 신전의 제단에 올려두었다.

이번 제사에 바칠 제물은 살아있는 돼지 한 마리.

하지만 보통의 돼지는 야누스가 좋아할 만한 제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돼지에겐 붉은 피가 흘렀지만 짐승들에겐 마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하트라 왕가는 오랫동안 짐승을 제물로 바쳐 야누스의 힘을 억눌러 왔다.

왕가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편법’을 통해서 말이다.

헤라리온은 손발이 묶인 돼지의 배에 단검을 박아 가로로 길게 내리그었다.

찢어지는 돼지의 배.

날카로운 검극에 의해 돼지는 금방 장기를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돼지는 죽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 상처로 즉사할 만큼 돼지의 생명력은 나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통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돼지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제물로 바쳐질 돼지는 이미 감각이 마비되는 향을 듬뿍 들이마셨기 때문이다.

헤라리온은 이윽고 품속에서 조그마한 유리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이것은, 다름 아닌 최상급 마력석을 ‘액화’시킨 것이었다.

액화된 마력석.

즉, 이것은 액체로 이루어진 마력이란 뜻이었다.

세간에선 이것을 ‘마정수’라고 불렀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귀한 물질들 중에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력석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귀한데, 그 귀한 마력석을 고도의 공정을 통해 순수한 마력으로 액화시켜낸 것이었으니까.

헤라리온은 마정수가 담긴 병을 내려다보았다.

최상급 마정수.

최상급 마정수 한 병이 가지는 가치는 대도시의 성을 몇 채나 사들일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헤라리온은 이미 한 나라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으니 마정수가 가지는 금전적 가치에 대해선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이러한 마정수를 소모해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정수 한 병을 마련하기 위해 그동안 샤하트라는 자국민들의 고혈을 쥐어짜야만 했으니까.

그래도 한동안은 부담이 덜했다.

헨리의 핑크 스왐프 덕분에 때 아닌 재정적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었으니까.

퐁-!

헤라리온은 이내 마정수가 담긴 병의 마개를 열었다.

냄새는 없었다.

이것은 그저 무미무취의 순수한 마력이었으니까.

헤라리온은 이서서 배가 갈라진 돼지의 내장에 마정수를 흘려 넣었다.

돼지의 내장이 움찔했다.

마비향에 의해 감각은 마비되었지만 마정수 특유의 차가움이 근육을 수축시켰기 때문이다.

이윽고 마정수 한 병을 모두 흘려 넣었다.

그리고 헤라리온은 실과 바늘을 이용해 손수 가른 돼지의 배를 다시 한 땀, 한 땀 꿰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른 배를 모두 꿰매었을 때, 헤라리온은 두 팔을 벌려 야누스를 불러내기 위한 주문을 외웠다.

“……Ekdldjxm sjan glaemfek!”

주문의 마지막 구절을 외우고 헤라리온은 눈을 감았다.

이제 잠시 뒤면, 신전의 천장에 우주를 닮은 짙은 어둠이 펼쳐질 것이고 거센 바람이 일 것이다.

그리고 한참 뒤.

“……?”

신전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꽤애액…….

대신, 마비가 점점 옅어지는 돼지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신전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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