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49화 (249/522)
  • # 249

    전력 강화 (2)

    헨리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다름 아닌 살게라였다.

    이번에는 살게라에 설치된 설탑이 아닌 헨리가 손수 지은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법사님 오셨습니까?”

    간만에 저택에 얼굴을 내비치자 토리안이 헨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에 헨리도 살갑게 대꾸했다.

    “자리를 비운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죠?”

    “예, 마법사님께서 시키신 대로 노예들을 부지런히 돌렸습니다.”

    “노예는 얼마나 남았나요?”

    “놀랍게도 한두 명을 제외한 모두가 살아 있습니다.”

    “식사의 질을 높인 보람이 있군요.”

    “하는 일이라곤 먹고 자고 사이클론 히드라를 상대하는 것뿐인데요, 뭐. 이젠 다들 익숙해져서 꼬리 채취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확보된 블랙 티어는 얼마나 되죠?”

    “후후, 놀라지 마십시오. 무려 2천여 개가 넘습니다.”

    “2천 개라…… 좋네요.”

    잠시 잊고 있었건만 2천 개가 넘는 블랙 티어를 확보해 놓다니,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윽고 헨리는 토리안과 함께 연구실 한쪽에 마련된 유리방으로 입장했다.

    노예들을 감시하기 위해 마련한 유리방.

    안쪽의 사람들은 노예들을 볼 수 있었지만 노예들은 유리 안쪽을 볼 수 없는 신기한 구조였다.

    유리방에 입장한 헨리는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유리 너머를 응시했다.

    과연 토리안의 말대로 한두 명을 제외한 노예 대부분이 살아 있었다.

    그때 때마침 유리 너머에는 꼬리가 재생된 사이클론 히드라를 사냥하고 있었다.

    “오!”

    허둥지둥 대던 초기의 사냥 모습과는 달리, 이젠 모두가 훌륭한 사냥꾼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익숙한 모양새로 사이클론 히드라의 꼬리 공격을 회피하며 적재적소에 칼날을 꽂아 넣었다.

    서걱!

    바닥에 떨어지는 열 개의 꼬리들.

    남자들이 꼬리를 썰면, 여자들이 꼬리를 주웠다,

    그리고 사이클론 히드라가 굶어 죽지 않고 또다시 꼬리를 만들 수 있게 먹이까지 꼼꼼히 챙겨 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꼬리 공장 그 자체였다.

    그 광경을 보여 주던 토리안이 말했다.

    “어떻습니까, 마법사님? 이만하면 잘 교육되지 않았습니까?”

    “흐뭇하네요. 이 정도 작업 효율이면 평생 동안 꼬리 노예로 부려먹을 수 있겠어요.”

    “블랙 티어들은 말씀하신 대로 연구실에 잘 정리해 두었습니다.”

    “역시 토리안 님입니다. 그나저나 토리안 님, 토리안 님은 이런 생활이 지겨우시지 않습니까?”

    “이런 생활이라 함은 어떤 생활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냥…… 과거에 황궁에서 누리던 그런 생활들 말씀입니다. 제가 바쁜 나머지 미처 바깥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이제 여러분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곳을 벗어나실 수 있습니다.”

    “벗어나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실버 잭슨은 죽었고, 아서스 또한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물론 아서스는 곧 제가 찾아내서 처리할 생각입니다만, 아무튼 이젠 더 이상 굳이 살게라에 숨어 사실 필요가 없습니다.”

    “…….”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유지해 오던 토리안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저택에 사는 모든 이가 그러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헨리가 토리안에게 전해 주는 소식들은 사실상 폭탄 발언에 가까웠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교차했다.

    처음에는 그저 구세주가 나타나 거지 같은 추방촌 생활을 끝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런데 구세주는 먹을 것과 옷, 그리고 집과 같은 의식주를 해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평생을 증오해 마지않았던 삼대 가문의 일원이었던 오베르 일가를 잡아다 주었다.

    그리고 그동안 받았던 억압과 핍박을 오베르 일가에게 풀 수 있도록 조치해 주었다.

    사실 이 정도만 되어도 토리안과 사람들은 만족했다.

    추방촌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하나둘씩 잃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들 또한 그들과 같은 전철을 밟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지금 헨리는 실버 잭슨이 죽고 아서스가 도망쳤다는 소식들을 토리안에게 전해 주었다.

    헨리는 멍한 표정의 토리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다시 사고 회로를 돌릴 수 있을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충분히 기다려 주었다.

    마침내 토리안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헨리에게 말했다.

    “꿈이…… 꿈이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너무 늦게 알려드려 죄송합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원하시면 곧바로 수도로 옮겨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배려.

    과거엔 어쩔 수 없이 살게라에 숨어 있어야 했지만 이젠 아니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 주는 것쯤은 헨리에겐 아무런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토리안은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아닙니다, 마법사님.”

    “예?”

    “저희도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원래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으나, 이미 저희가 살던 집은 허물어졌을 테고……. 그리고 지금 고향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들 저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희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진심이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지금 이곳을 비우게 되면 앞으로 블랙 티어는 누가 만들 것이고, 저 노예들은 누가 관리, 감독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마법사님, 마법사님께선 지금 블랙 티어가 필요하신 게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저희의 복수심은 이제 많이 무뎌졌습니다. 이게 다 마법사님 덕분이죠. 그렇기 때문에 사이클론 히드라를 상대하는 노예들에게 여독처럼 쌓인 증오를 푼다고 하기보다는, 이젠 마법사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

    토리안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토리안의 말대로 헨리는 여전히 많은 양의 블랙 티어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토리안은 그런 헨리의 니즈를 파악하여 조금이라도 헨리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될성부른 마음씨였다.

    “맡겨 주십시오, 마법사님. 언젠가 마법사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모두 끝마치고 더 이상 블랙 티어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저흰 그때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저 또한 더 이상 권유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토리안 님.”

    “아닙니다. 마법사님께 입은 은혜야말로 저희가 평생 동안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총입니다.”

    헨리는 못다 정리한 일을 마저 마무리 지으려 했건만 생각지도 못한 배려를 받아 버렸다.

    간만에 느끼는 따뜻한 기분이었다.

    헨리는 토리안과의 대화를 마친 후 다음 연구실 문을 닫았다.

    혼자 남게 된 헨리.

    헨리는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책상 위에는 토리안이 잘 정리해놓은 2천여 개가 넘는 블랙 티어들을 볼 수 있었다.

    헨리는 개중에 하나를 집어 들어 블랙 티어의 상태를 살폈다.

    ‘순도 높은 블랙 티어. 아주 훌륭해.’

    이젠 블랙 티어를 제조하는 것에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겼는지, 제조된 블랙 티어 대부분이 헨리가 만든 것처럼 훌륭한 품질을 지녔다.

    헨리는 그것을 천 개 단위로 나누어, 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나로 압축시켰다.

    두 개로 줄어든 1천 회분의 블랙 티어들.

    헨리는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책상에 올려 두었다.

    그런 다음 손가락을 튕겨 아공간을 소환했다.

    ‘흠, 어디 보자…….’

    헨리는 아공간 속에 손을 넣어 한참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아공간 속을 한참이나 뒤적인 끝에 비로소 원하던 곳을 손에 잡을 수 있었다.

    탁-.

    책상 위에 올려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2차 진화에 들어간 엘라곤의 알이었다.

    파삭!

    한 번의 접촉 때문이었을까?

    알이 된 엘라곤은 껍데기를 한 번 흔들었다.

    “오래도 걸리네, 참.”

    진화를 위해 알로 돌아간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라곤은 여전히 진화할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헨리는 직접 엘라곤의 진화를 앞당기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라곤의 치유술이 없다면 블랙 티어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헨리 혼자선 섭취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품속에서 붓을 꺼내 자신의 피를 잉크 삼아, 연구실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붓을 놀릴 때마다 진홍색이던 헨리의 피로부터 옅은 에메랄드 빛 파장이 흘러나왔다.

    그만큼 헨리의 피는 그 어떤 생물체보다 마력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술식은 이전에 클레버를 진화시켰을 때의 ‘고속 성장’과 비슷한 것이었다.

    하지만 클레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클레버는 근본이 마물이었고, 엘라곤은 정령이라는 것이었다.

    예컨대 강인한 마물에 비해 정령은 한없이 약한 존재.

    그래서 이번 술식에는 이것저것 추가적인 안정 장치들을 많이 구비해 두었다.

    그러나 헨리는 마법진만으로 준비를 그치지 않았다.

    헨리는 아공간에서 최상급 마력석 몇 개와 압축시키고 남은 여분의 블랙 티어들을 마법진 곳곳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헨리의 예상이 맞는다면, 엘라곤은 클레버보다 진화하는 데에 훨씬 더 많은 양의 마력을 필요로 할 테니까.

    여분의 블랙 티어와 최상급 마력석들, 그리고 헨리의 피로 이루어진 마법진.

    비로소 엘라곤의 고속 성장을 위한 준비가 모두 끝났다.

    헨리는 마법진의 정중앙에 엘라곤의 알을 올려 두었다.

    그리고 마법진에서 세 발자국 뒤로 물러나 고속 성장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우우웅!

    마법진이 주문에 반응하며 서로 공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리고 마침내 주문을 모두 외우고 시동어를 읊었다.

    “……고속 성장.”

    조용한 읊조림.

    헨리의 말이 입 밖을 떠난 순간, 공명하던 마법진은 에메랄드 빛 마력을 비산시키며 중심부의 알에게 마력들을 모조리 집중시켰다.

    ……!

    세상에서 가장 찬란하고 조용한 성장 의식이 시작되었다.

    공명하던 마법진은 바닥에 뉘여 있던 마력석을 꼿꼿이 세워 끊임없이 마력을 추출하였으며, 블랙 티어 또한 안에 든 내용물을 안개처럼 끊임없이 분사해 알을 감싸 안았다.

    파삭-!

    알 표면이 갈라진다.

    갈라지고 부서지며 부서진 껍데기들은 다시금 알에게로 흡수되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마침내 알 표면으로부터 작은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파작!

    파자작!

    헨리는 그것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엘라곤은 헨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더욱 빠른 속도로 표면을 깨부수었다.

    그리고 마침내.

    파자작!

    알 표면이 완전히 부서져 바닥에 떨어졌다.

    알을 깨고 나온 엘라곤은 의외의 모습이었다.

    껍데기가 사라진 알은 엘라곤이라도 품고 있을 줄 알았건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살아있는 생물체가 아닌 마치 물리 빚어놓은 커다란 보석이 들어 있었다.

    -뀨?

    “음?”

    그 순간, 헨리는 똑똑히 들었다.

    항상 자신을 향해 앙증맞은 목소리로 부르짖던 엘라곤의 목소리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청각을 통해서가 아닌 텔레파시나 전음 같은,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였다.

    “네가 맞구나.”

    목소리를 들은 헨리는 자연스럽게 껍데기를 벗은 알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뀨!

    엘라곤은 헨리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다시 한 번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엘라곤의 두 번째 울음소리가 끝난 순간, 헨리는 전신에서부터 엄청난 양의 마력들이 빠져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왜 마력을 흡수하지 않는가 싶었다.”

    클레버 때도 엄청난 양의 마력을 소모했다.

    그런데 엘라곤은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아 좀 의아해하려던 찰나, 엘라곤은 클레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을 헨리로부터 뽑아 가기 시작했다.

    “큭……!.”

    현기증이 일었다.

    그만큼 엘라곤은 엄청난 양의 마력을 흡수했다.

    그리고 흡수해 가는 마력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커다랗고 매끈한 보석 같던 엘라곤이 점점 더 사람의 형상을 띠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크기가 아홉 살 먹은 아이만큼 커졌을 때, 투명하기 그지없던 윤곽이 점점 더 불투명해져 가며 사람의 형상을 띠어 갔다.

    파아아앗-!

    뽑히듯 몸속에서 빠져나가던 마력의 송출이 끝났을 때, 헨리는 비취색 눈동자를 가진 한 아이와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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