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격돌 (4)
헨리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인 채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아서스를 보았다.
아서스는 큼지막한 후드를 뒤집어쓴 두 마리의 괴물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헨리가 아서스 옆에 있는 두 명을 괴물이라 칭한 까닭은 간단했다.
두 놈에게선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서스 하이랜더.”
헨리가 나지막이 아서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아서스의 입꼬리가 양 옆으로 천천히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번진 입꼬리는 곧 조그마한 웃음을 터뜨렸다.
“크흐흐.”
무엇이 그리도 웃긴 건지, 아서스는 어깨를 옅게 들썩이며, 동시에 치아를 드러내 보이며 웃음을 흘렸다.
헨리는 그런 아서스의 웃음이 몹시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그러나 딱히 그가 웃는 것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대신 참을성 있게 녀석의 웃음을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웃음을 멈춘 아서스가 말했다.
“헨리 모리스라…….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대공작 시절에나 쓰던 특유의 존댓말은 더 이상 없었다.
녀석은 이제 완연한 한 제국의 황제였으니까.
그 증거로 녀석은 거만과 오만이 뒤섞인 얼굴을 하고서 헨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글쎄, 신이 어지간히도 할 일이 없었나 보지. 그게 아니라면…….”
헨리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 다음 옆으로 살짝 기울였던 고개를 바로 세운 다음, 아서스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가 왕위에 앉아 있는 꼴을, 어지간히도 보기 싫었나 봐.”
가벼운 조롱이었다.
하지만 아서스는 그런 헨리의 조롱으로부터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다름 아닌, 죽은 8서클 대마법사였던, 그리고 동시에 눈앞의 남자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제국의 대현자, 헨리 모리스였다.
아서스는 순간, 죽은 헨리 모리스가 살아돌아운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완벽하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대마법사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는 것은, 단순히 외형적인 문제가 아닌 그 사람만이 가진 세세한 버릇과 사람의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특유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제자는…… 제자인가 보군.”
기분이 더러워진 아서스는 올렸던 입꼬리를 다시 내렸다.
그런 다음 새하얀 비단으로 만들어진 장갑을 낀 손으로 자신의 은빛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겼다.
그리고 즉시 헨리의 빈정거림을 맞받아쳤다.
“혹시나 싶어서 이 녀석들을 준비해 둔 건데……. 정정당당했던 스승과는 영 딴판이로군.”
“글쎄, 당시의 내 스승님은 너무 물러 터져서 말이야.”
아서스는 황궁에 병력이 빠진 틈을 타 쥐새끼처럼 혼자 황궁에 침입한 헨리의 비겁함을 비난했다.
그러나 헨리는 멍청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과거의 자신과 180도 달라져 있었다.
또한 아서스가 비겁함을 논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결격되어 있었다.
그래서 헨리는 아서스의 양심 없는 비난을 다시 한 번 빈정거렸다.
“그래, 그럼 어디 역적의 제자 놈 실력이나 한번 구경해 보지.”
더 이상의 말싸움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서스는, 흥미를 잃었는지 짤막한 인사말과 함께 손을 한번 내저었다.
그러자 양 옆에서 아서스를 호위하던 두 놈이 앞으로 두 발자국 걸어 나왔다.
이에 헨리는 콜소드를 머리 높이 들어 올리며 말했다.
“참 귀찮게 하네.”
쿠구구구……!
헨리가 콜소드를 들어 올리자 푸르른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그리고 먹구름은 곧 금방이라도 폭우를 쏟아부을 듯한 뇌우로 뒤바뀌었다.
뇌신의 외침.
헨리가 창조한 7서클 등급의 벼락 마법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두 명의 최상급 기사를 통구이로 만들어 버린 마법이기도 했다.
꽈르릉!
콰지지지지짓!
경고도 없었다.
헨리는 뇌운을 소환해 내자마자 곧바로 거인의 팔뚝만 한 벼락 두 줄기를 담쟁이 넝쿨처럼 꼬아서 떨어뜨렸다.
1초.
2초.
그리고 3초.
무려 3초에 달하는 벼락이 두 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엄청난 벼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츠와 킨리스에게는 2초 정도의 벼락을 떨어뜨렸으니까.
이윽고 벼락이 멎었다.
벼락이 멎은 자리에는 로브를 걸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숯검댕이가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시시하긴…….”
날린 빙석을 되받아쳤으니 인간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최상급 소드 마스터 같은 초인의 경지에 다다른 자일 수도 있겠지만 아서스에게 인재가 바닥났다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서스에게 남은 패는 키메라뿐.
‘그러니까 얼굴을 가렸겠지.’
그래서 헨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뇌신의 외침을 사용했다.
물론 키메라가 아닌 인간이었어도, 헨리를 막으려 했다면 가차 없이 마법을 사용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파사삭!
검게 그을린 숯검댕이는, 아니 벼락에 바삭하게 구워진 줄로만 알았건만 구워진 것은 키메라가 아닌 놈들이 걸치고 있는 후드뿐이었다.
후드는 바사삭 소리를 내며 잿더미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치 쇳덩이를 용광로에 녹인 뒤, 사람의 형틀에 짜 낸 것 같은 모습을 한, 철인(鐵人)이었다.
‘쇠?’
사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갑옷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로브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두 녀석은 분명히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야, 뭐야?”
놈들은 얼굴이 없었다.
그저 신체 건장한 청년처럼 큼지막한 키와 전신이 금속으로 반들거리는 철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멀쩡하다는 거네?”
뇌신의 외침은 무려 7서클의 벼락 마법이었다.
그런 벼락을 3초간, 그것도 두 줄기나 꼬아서 맞았는데도 멀쩡하다는 것은, 확실히 바츠나 킨리스보단 훨씬 강하다는 뜻이었다.
“간만에 두들길 맛이 좀 나겠어.”
솔직히 바츠와 킨리스에겐 너무나도 많은 실망을 했다.
명색이 제국 십검이자 최상급 소드 마스터인데, 너무 허무하게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키메라인지 뭔지 모를 철인 쌍둥이가 나타났다.
이는 분명히 좋은 기회였다.
바츠와 킨리스에게 시험해 보지 못한 자신의 성장을 테스트해 볼 아주 좋은 기회.
아서스는 철인 쌍둥이에게 손짓을 한번 해 보인 후, 등을 돌렸다.
그런 다음 철인 쌍둥이가 온몸으로 막아 낸 황좌로 다가가 그 위에 걸터앉아 편안한 자세로 다리를 꼬았다.
‘하?’
단순한 행동인 만큼 그 안에 담긴 메시지 또한 심플했다.
어디 한번 힘을 뽐내 봐라. 난 여기서 구경할 테니.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다.
그래서 헨리는 기가 찬 나머지 짤막하게 혀를 찼다.
“오냐, 그래. 내 너를 위해 광대 짓 한번 해 주마.”
이에 헨리는 뽑아든 콜소드를 역소환시켰다.
아서스가 헨리가 가진 힘을 보고 싶어 하니 환생 후에 익힌 ‘검’이 아닌, 그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던 ‘헨리의 마법’을 제대로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그 모습을 본 아서스는 생각했다.
‘패기가 넘치네. 아주 보기 좋은 모습이야. 하지만 네놈이 마법사인 이상, 블랙 미스릴을 온몸에 두른 저 아이들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
블랙 미스릴.
엘프의 마력도 차단한다는 희귀한 금속으로, 과거 처형장 위에 선 헨리에게 채워졌던 수갑의 재질이기도 했다.
그리고 전신에 블랙 미스릴을 두른 두 키메라의 이름은, ‘핌과 림’이란 이름을 가진, 꽤나 악명 높은 무도가 형제였다.
핌과 림.
녀석들은 원래 세인트 홀의 몽크들이었으나 성법을 익히자마자 지루한 수도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 탈출, 이후엔 자신들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았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대표적인 욕망으로는 강간과 살해가 있었다.
형제는 수백 명이 넘는 아녀자와 장정들에게 해를 입힌 후 가까스로 붙잡혀 킬라이브에 복역되었는데, 최근 드라칸의 손에 의해 재탄생된 ‘드라칸의 역작’들 중에 하나였다.
우드득, 우드득.
벼락이 떨어진 후,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이에 핌과 림은, 반들거리는 육신을 앞으로 내세우며 살아 있을 적에 가진 습관대로 전신의 관절을 풀었다.
그리고 곧 자세를 잡았다.
‘박투술?’
기사들이 익히는 박투술은 아니었으나 어찌됐든 저것이 격투술의 한 종류인 것은 알았다.
그래서 헨리는 곧바로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플라이.”
헨리의 몸이 공중으로 부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자세를 잡은 핌과 림이 무릎 관절을 굽히며 몸을 움츠리더니 도움닫기와 동시에 순식간에 헨리를 향해 튕겨져 나갔다.
화살보다도 빠른, 그리고 투석기의 그것보다도 훨씬 파괴적이고 위압적인 돌진이었다.
핌과 림이 화살처럼 튕겨져 올라온 순간, 헨리는 본능적으로 매직 실드를 산개했다.
그러나 핌과 림의 머리가 헨리의 매직 실드에 닿는 순간.
쩌어엉……!
“……!”
핌과 림의 머리가 헨리의 매직 실드 대부분을 뚫고서 헨리의 코앞까지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 무슨……!’
이에 헨리는 즉시 고밀도로 압축된 풍압탄을 날렸고 핌과 림은 저만치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매직 실드를 뚫었다고?’
무려 제국 십검의 검격도 막아 냈던 매직 실드였다.
그런 매직 실드의 대부분을 뚫고 머리를 들이밀었다는 것은 분명히 헨리가 모르는 ‘파괴의 매커니즘’이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헨리는 핌과 림이 튕겨져 나간 사이, 아직 채 복구되지 못한 매직 실드를 눈으로 살폈다.
그 순간 헨리는, 부서진 매직 실드로부터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력이 분해됐어?’
성급히 결정하긴 어려웠지만 매직 실드는 파괴된 것이 아니었다.
마치 상성에 맞지 않는, 아니 상극에 해당하는 무엇인가와 뒤섞여 룬어와 공식으로 한데 묶은 마력 덩어리를 와해시켜 냈다는 게, 도리어 옳은 표현 같았다.
‘설마?’
헨리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리고 놈들의 매끈한 놈들의 표면을 보고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만약 놈들의 몸체에 마력의 응집을 방해하는 물질이 섞여 있다면?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처럼 가만히 고민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헨리는 가설을 세우자마자 곧바로 가설을 확인해 보기 위해 행동으로 옮겼다.
“……폭발 증후군.”
헨리는 주문을 외웠다.
외운 주문은 손가락 튕기기를 통해 상대의 전신에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폭발 증후군’이라는 5서클의 마법이었다.
마도사급의 마법이니만큼 주문을 외우고 마법을 구동시키는 것은 눈을 깜빡거리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헨리는 폭발 증후군의 타깃으로 핌과 림을 지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양손을 이용해 손가락을 튕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법이 발동된 순간, 핌과 림의 몸에서 새끼손톱만큼 작은 불꽃이 일더니 이내 곧 물먹은 양초처럼 사그라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추측이 맞았다.
놈들의 몸은 마력이 통하지 않는 일종의 마력 절연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원리가 뭐지? 이 세상에 마력을 단절시킬 수 있는 건 블랙 미스릴뿐인데? ……설마 블랙 미스릴을 전신에 둘렀다고? 그것도 살아 있는 생명에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추측이 가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을 때쯤, 헨리는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 아서스 저 미친놈이……!’
세상에 마력의 응집을 단절시킬 수 있는 금속은 오직 블랙 미스릴뿐.
그렇기 때문에 헨리에게 채워진 수갑도 블랙 미스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귀한 금속을, 그것도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갑옷 같은 ‘방어구’가 아닌 피부와도 같은 ‘외피’에 박아 넣을 생각을 하다니?
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하는 비인륜적인 발상이란 말인가?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다.
덕분에 헨리는 더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바닥으로 튕겨져 나갔던 핌과 림이 다시 한 번 몸을 구부려 도약을 준비했다.
“잔인한 발상이야. 그 창의력에는 높은 점수를 주지. 하지만…….”
헨리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러자 전신을 휘감고 있던 옅은 기운의 에메랄드 빛 오러가 활화산처럼 폭발하기 시작했다.
“내 마력은 좀 특별하거든.”
핌과 림에 대한 소감을 내뱉은 헨리가 차갑도록 날이 선 웃음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