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34화 (234/522)
  • # 234

    격돌 (3)

    ‘여기가 하이랜더인가?’

    헨리는 능숙하게 하이랜더의 좌표를 계산해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하이랜더는 과거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게 다 아서스 그놈 때문이겠지.’

    물론 원래도 꽤나 발달된 곳이 하이랜더였다.

    아서스는 자신이 소유한 것에겐 꽤나 많은 투자를 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원래도 소중히 여기던 곳이 하이랜더였는데 아서스가 제국을 건국하면서 이곳을 수도로 지정하였으니 도시의 발달 속도는 가히 눈부실 정도였다.

    ‘자, 그럼 어디 한번 슬슬 움직여 보실까?’

    헨리가 전쟁 통에 수도를 기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까닭은 간단했다.

    현재 아서스는 가진 병력 전부를 대륙 정벌이라는 대업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수도에는 헨리를 막을 수 있을 만한 그럴 듯한 병력이 없었다.

    이는 분명히 상식에 어긋난 행동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디 대륙 정벌이란 황제가 직접 참여해야 의의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병력 전체를 대륙 정벌에 쏟아부으면, 분명히 황제의 암살 같은, 예컨대 현재 헨리가 하려는 것과 같은 위험이 있을진데 아서스가 그것을 간과했다는 것은 통상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아서스는 분명히 우사를 통해 7서클 대마법사인 헨리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서스가 모든 병력을 대륙 정벌에 쏟아넣었다는 건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믿는 구석이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

    ‘분명히 키메라겠지.’

    그리고 헨리는 아서스가 믿는 구석으로 여태껏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키메라’를 꼽았다.

    ‘확실히 키메라라면 말이 돼. 키메라는 반조차도 고전할 정도였으니까.’

    그 반조차도 고전한 키메라였다.

    그러니 키메라라면 충분히 믿을만 했다.

    그러나 모드레드 사건 이후, 키메라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 것이냐, 아서스.’

    헨리는 아서스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그 의도를 직접 파헤쳐 보고자 친히 수도를 방문한 것이었다.

    “착검, 착갑.”

    헨리는 무장을 시작했다.

    시간을 질질 끌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현재 연합군은 두 배나 차이가 나는 제국군을 상대로 혈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그러므로 헨리에겐 1분 1초가 몹시 소중했다. 그 찰나의 차이로 몇 명의 병사들이 더 죽어 나갈지 몰랐으니까.

    화르륵!

    헨리가 콜소드와 콜아머를 소환하자 전신에 녹색 불꽃이 휘몰아치며 백색의 무구들이 소환됐다.

    이어서 헨리는 바닥에 발을 굴렀다.

    팡! 츠즈즈즛!

    헨리는 자신에게 두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마법 무장을 시전했다.

    힘이 샘솟았다.

    근력은 물론이고 각종 신경계를 포함해 오감이 극도로 발달됐다.

    ‘간다.’

    쾅!

    첫걸음을 내디뎠다.

    폭발적인 도움닫기였다.

    헨리는 그 기세를 몰아 그대로 아서스의 왕궁까지 질주했다.

    궁 입구에는 황궁의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헨리가 접근해 오는 것을 보자마자 잔뜩 놀란 기색을 하고서 오러가 맺힌 창을 들었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딱히 그들을 설득하고 싶지도 않았다.

    헨리는 전방으로 검을 크게 휘둘러 검격을 내뿜었다.

    부우웅!

    에메랄드 빛 검격이 사위를 가로질렀다. 마치 날카로운 칼바람을 쏘아 보낸 듯, 헨리의 검격은 병사들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

    그러나 헨리의 검격은 병사 몇 명의 허리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뻗힌 검격은 병사들의 허리뿐만이 아니라 뒤편에 펼쳐진 커다란 성벽에까지 길고 긴 검흔을 남겼다.

    마치 거대한 발톱을 가진 짐승이 앞발로 긁어 놓은 것만 같은 형상이었다.

    콰과광!

    “뭐, 뭐야!”

    큰 소란이 났다.

    그만한 검흔을 그어 놓았으니 황궁 내부의 사람들이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갑작스러운 굉음에, 황궁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목을 길게 내뺐다.

    그런데 그 순간.

    쾅!

    기계를 작동시키지 않는 이상 절대로 열리지 않을 황궁의 대문이 판잣집의 그것처럼 가볍게 찢겨 나갔다.

    먼지가 자욱했다.

    그리고 자욱해진 먼지가 가라앉을 무렵, 황궁의 사람들은 녹색 불꽃을 일렁이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헨리였다.

    우득, 우드득.

    헨리는 목관절을 우드득 꺾으며 몸을 풀었다.

    마법 무장 덕분에, 근력이 극도로 발달한 헨리에게 이까짓 대문 따위는 종잇장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무, 무슨……!”

    헨리가 내뿜고 있는 것은 비단 에메랄드 빛의 오러뿐만이 아니었다.

    흡사 악귀를 연상케 하듯, 헨리의 전신에는 형용할 수 없는 흉흉한 살의가 마치 악귀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미친놈, 넓게도 지어 놨네.”

    황궁에 첫 발자국을 내디딘 헨리가 내뱉은 첫 소감이었다.

    헨리는 황궁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수백여 개의 시선들을 보았다.

    시선의 대부분은 경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누가 감히 대낮에, 그것도 제국의 황궁에 홀몸으로 쳐들어올 생각을 다 할까?

    그래서 헨리는 입을 반쯤 벌리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이들에게 나직이 대꾸했다.

    “뭘 봐?”

    한마디면 충분했다.

    이윽고 궁녀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황궁 내부를 지키던 근위병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피식.

    몰려오는 근위병들이 마치 토끼 떼를 연상케 했다.

    그만큼 헨리에게 있어 근위병들은 한낱 토끼만도 못한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헨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얼마나 많은 병력들이 몰려드는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척 보기에도 수백 명.

    근위병들은 모두 오러를 다룰 줄 알았다.

    그리고 마침내 모여든 병사의 숫자가 삼백 명을 넘었을 때쯤, 걸친 갑옷의 장식이 다른 남자가 창을 들이밀며 헨리에게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우스웠다.

    척 보기에도 실력 차가 월등히 나는데 대체 아서스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깊기에 자신에게 창칼을 들이미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교차했다.

    이에 헨리는 한숨을 내쉬며 근위병들을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천천히 공중으로 몸을 부유시켰다.

    “어, 어어!”

    헨리의 몸이 떠오르자 근위병들이 뒤로 물러나며 심히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개중에는 궁병들을 찾았으며 뒤늦게 합류한 몇 명의 궁병이 등에 이고 있던 활을 빼들어 헨리를 향해 시위를 겨누었다.

    “쯧.”

    헨리는 더더욱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궁 안의 사람들 모두가 헨리를 볼 수 있게 됐을 때쯤, 헨리가 말했다.

    “내 이름은 헨리 모리스. 죽은 대마법사의 하나뿐인 제자다.”

    마력으로 증폭된 헨리의 목소리가 황궁 내부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헨리가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자 궁 내부의 사람들은 반쯤 벌어진 입을 더더욱 크게 ‘쩌억’ 하고 벌렸다.

    경악.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악이었다.

    “헤, 헤, 헨리 모리스?”

    “대마법사님의 제자라니?”

    “아니 그보다 마법사?”

    헨리의 존재는 아이니아 제국에서도 극소수만이 아는 사실.

    그러한 상태에서 헨리의 선언은 가히 폭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물론 몇몇은 이 같은 사실을 부정했다.

    하지만 허공으로 몸을 띄워 내고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것만 해도, 그것은 기사가 아닌 마법사의 영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법사 척살령이 떨어진 현 시국에, 마법사가, 그것도 혈혈단신으로 황궁에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를 경악케 하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놀란 것은 궁녀들뿐만이 아니라 헨리를 에워싸던 황궁의 근위병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 말도 안 돼……!”

    “설마, 정말로……?”

    좌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에 헨리가 콜소드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거대한 빙석 하나를 소환했다.

    “지금부터 1분 뒤, 난 이곳을 잿더미로 만들 것이다. 그러니 살고 싶은 녀석들은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라!”

    도망칠 수 있는 잠깐의 여유를 주는 것.

    그것이 헨리가 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하층민들이었으니까.

    헨리의 외침에 다시금 좌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궁녀 한 명이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열린 대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저, 저년이 감히!”

    도망치는 궁녀에게, 헨리의 신분을 물었던 상급 근위병이 덜컥 화를 냈다.

    그러고서는 옆에 있는 궁병의 활을 빼앗아 도망치는 궁녀의 등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피융!

    날카로운 파공음.

    근위병의 화살이 궁녀에게로 쏘아졌다.

    그리고 화살이 궁녀의 등에 닿으려는 순간.

    챙캉!

    거짓말같이 화살이 튕겨져 나갔다.

    “멍청한 놈.”

    헨리였다.

    헨리가 궁녀의 등에 매직 실드를 전개해 주어 궁녀는 살 수 있었다.

    덕분에 궁녀는 무사히 황궁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에 헨리는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커허억!”

    궁녀에게 화살을 쏘았던 근위병의 발아래에 날카로운 가시들이 솟아나 근위병의 몸에 무수한 바람구멍을 만들어 주었다.

    이에 헨리가 다시금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반복한다!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대항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저놈처럼 만들어 줄 테니까!”

    “히이익!”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공포가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다.

    지금이 그랬다.

    헨리의 외침이 허공을 가른 순간, 궁녀를 포함한 근위병들까지, 모두가 너 나 할 것 없이 서둘러 황궁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흥.”

    1분이 훨씬 지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모두가 빠져나갈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궁 사람들 대부분이 황궁을 빠져나갔을 때, 헨리는 소환해 두었던 거대한 빙석을 투석기의 그것처럼 뒤로 당겼다.

    그리고 물수제비를 던지듯이 있는 힘껏 그것을 전방으로 던졌다.

    후웅!

    묵직한 파공음이 공기를 갈랐다.

    헨리는 빙석에 일부러 회전을 넣어 파괴력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헨리가 빙석을 던진 방향은 황궁 내부에서도 궁의 상징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황좌가 있는 곳이었다.

    콰과과광!

    회전력이 더해진 빙석은 몸에 닿은 모든 것들을 산산조각 냈다.

    먼지가 자욱했다.

    이에 헨리는 바닥에 착지한 후 천천히 황좌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꺄아아악!”

    겁에 질려 숨어 있던, 아직 미처 도망치지 못한 궁녀들이 소리를 지르며 헨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헨리는 그들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던진 빙석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우드득! 우드득!

    그때였다.

    가시처럼 깊게 박힌 빙석이 들썩이더니 이내 멀리 튕겨졌다.

    후웅!

    튕겨진 빙석은 헨리에게로 다시 날아왔다.

    이것은 명백히 헨리를 노리고 던진 것이었다.

    이에 헨리는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빙석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빙석이 헨리의 이마로 떨어지려던 순간, 빙석은 거짓말처럼 허공에서 멈추어 섰다.

    “뭐가 있긴 있구나.”

    헨리는 순수한 마력으로 빙석을 멈춰 세웠다.

    그런 다음 그것을 한쪽으로 집어던진 다음, 여전히 황좌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쿠륵쿠륵.

    기분 나쁜 웃음소리.

    익숙한 소리였다.

    이에 헨리가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왈레드였던가? 알프레드의 아들 같은 놈이 또 있나 보네.”

    인간에서 키메라가 됐던 놈이 왈레드인지 시레드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헨리에겐 하잘 것 없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키메라에는 조금 흥미가 있었다.

    그래서 헨리는 이번에도 흥미롭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소리가 난 방향을 주시했다.

    이윽고 자욱한 흙먼지가 걷혔다.

    그러자 그곳에는 두 명의, 아니 두 마리의 괴물과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긴 은발을 늘어뜨리고 화려한 비단옷을 걸친 남자.

    그리고 늘 웃는 낯짝을 띠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기분 좋게 그 웃음을 받아들여 본 적이 없었던 놈.

    놈은 다름 아닌 아이니아 제국의 황제이자, 헨리가 작성한 살생부의 가장 맨 윗줄에 적혀 있던 ‘아서스 하이랜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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