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36화 (236/522)

# 236

더비 매치 (1)

“도망치지 마라! 끝까지 싸워라!”

“와아아아!”

10만 대군의 기합소리는 가히 엄청난 것이었다.

땅 위를 굴러다니는 자갈을 진동시킬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섯 군으로 나뉜 제국군은 제방의 성을 오각형처럼 포위했다.

그리고 준비해 온 공성 사다리라든가 성을 함락시킬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해 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11시 방향을 맡은 1군단.

그곳을 맡은 제국군의 지휘관은 다름 아닌 평화교의 대수도승, 아난다였다.

아난다는 자신이 가르치는 휘하의 수도승들을 중점으로 평화교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을 분배해 군단을 조직했다.

그편이 아난다에겐 훨씬 더 편했으니까.

성벽 앞에 도착한 대수도승 아난다는 민머리에 한쪽 어깨가 드러난 승복을 입고 있었다.

물론 승복만 입지는 않았다.

몽크들은 전시에서나 착용하는 몽크들만의 어깨갑옷, 그러니까 한쪽 어깨부터 팔 전체, 그리고 손을 보호하는 건틀렛까지 연결된 ‘루실랏’이라는 특수 갑옷을 착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몽크들은 전신에 성법을 둘러 맨몸으로 싸우는 격투가들이었으니 최대한 주먹과 어깨를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아난다가 목청껏 소리쳤다.

“방패병들은 앞으로!”

“앞으로!”

“철산고 준비!”

“준비!”

“개시!”

콰아아앙!

다른 수도승들에 비해 덩치가 서너 배는 큰 아난다가 소리를 지르니, 시끄러운 전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리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투박한 외모와는 달리 아난다는 머리가 꽤나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할당된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되는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쏟아지는 화살 비를, 사제의 축복을 받은 성기사들이 방패를 들어 막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길을 열어 주면 루실랏을 착용한 몽크들이 어깨로 상대를 밀어뜨리는 기술, 철산고를 이용해 성벽을 두드렸다.

콰앙! 콰앙! 콰아아앙!

흡사 폭약이 터지는 듯한 소리였다.

그만큼 성법과 루실랏으로 무장한 몽크들의 육체는 가히 엄청난 것이었다.

“저런, 그러면 안 돼지.”

그 순간, 하늘에서 푸른 장미 한 송이가 활짝 피어났다.

거대하고 푸른 장미였다.

피어난 장미는 이내 곧 부드럽게 회전하며 꽃잎들을 흩뿌렸다. 그렇게 흩어진 꽃잎들이 아난다가 이끄는 몽크 부대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과과광!

“피, 피해!”

“으아아악!”

꽃잎은 쉴 새 없이 폭발했다. 아름다운 외형과는 달리, 가시가 잔뜩 돋힌 장미의 그것처럼 말이다.

꽃잎 세 겹이 아난다에게 떨어졌다.

그리고 꽃잎 세 겹이 아난다를 감싸 안고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순간.

“흡!”

새하얀 빛이 아난다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폭발이 끝났을 때쯤, 아난다는 핏줄이 잔뜩 돋은 모습을 하고서 합장을 하고 있었다.

“호오?”

성녀의 수호 성법과 사제들의 축복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가 적지 않았다.

이에 호기심을 느낀 인영 하나가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넌……!”

흙먼지가 걷히자 아난다가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의 눈앞에, 아마리스의 수장이자 철혈여제라고 불리는 헬라 아마리스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난다 앞에 선 헬라가 말했다.

“세인트 홀의 수도승이라고 했나? 듣던 대로 맷집이 아주 쓸 만한데? 혹시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해?”

헬라는 웃는 낯짝으로 태연스럽게 대수도승을 희롱했다.

그리고 그것은 11시 방향의 아난다를 맡기로 했으며, 동시에 오직 여군으로만 이루어진 1만 연합군의 제 1군단장, 헬라 아마리스만의 오프닝 쇼이기도 했다.

그녀가 등장하자 곧 그녀의 주위로 여왕을 호위하는 황궁친위대들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들의 이름은 ‘나인 플라워’.

여제를 수호하는 아홉 송이의 꽃이라는 뜻이었다.

“헬라 아마리스……!”

“어머, 대수도승께서 내 이름을 다 불러 주고, 이거 영광인데?”

금욕의 상징이라고도 불리우는 대수도승의 입에서 헬라의 이름이 언급되자, 헬라는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그녀의 표정은 그것이 놀라움인지 황홀함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헬라는 골든 잭슨이나 헨리처럼 강인한 육체를 가진 남자를 좋아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남들보다 크고 까무잡잡한 아난다는 그녀에게 있어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헬라는 얇고 기다란 레이피어를 주 무기로 사용했다.

레이피어의 이름은 ‘스네이크 텅’.

뱀의 혀라는 뜻으로, 부드럽게 감싸 안아 단숨에 숨통을 끊는, 아마리스 특유의 검술에서 따온 왕국의 하나뿐인 신물이었다.

헬라는 뽑아든 레이피어를 지휘봉처럼 휘둘러 아난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음에 들었어. 공성 사다리가 아니라 맨손으로 성벽을 기어오르려는 패기, 딱 내 취향이야. 그래서 그 노력에 맞게 대접하기 위해 이 내가 직접 내려왔다는 말씀.”

말 그대로였다.

수도승들은 말 그대로 인내하고 단련하는 자들.

그렇기 때문에 전쟁용으로 제작된 공성 사다리 따위가 아닌 두 손과 두 발을 이용해 직접 성벽을 올랐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는 헬라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여 직접 헬라를 성벽 밑으로 내려오게 만들었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고. 소문대로 세인트 홀의 수도승들이 얼마나 잘 참는지 마침 궁금했거든.”

헬라와 나인 플라워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의 상식으로 만들어진 갑옷이 아닌, 노출이 심한 아마리스 특유의 문화가 엿보이는, 보기에 따라 무희를 연상케 하는 그런 종류의 갑옷이었다.

이에 아난다가 헬라의 불손한 태도를 보고 비웃음을 터뜨렸다.

“흥, 웃기지도 않는군.”

“뭐?”

“소문대로 아마리스에는 창녀들만 있다더니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어.”

“창……녀?”

“어디 한번 그 오만한 젖가슴을 흔들어 보시지그래? 그까짓 살덩어리 따위, 나에겐 한 줌의 치즈만도 못하니까.”

수도승들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고깃덩이 대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치즈를 비유로 들었다.

이에 헬라의 얼굴이 장미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나를 조롱한 것에 대한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 주지.”

“누가 할 소리!”

쾅!

문답을 마친 아난다는 양발을 차례대로 들어 바닥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런 다음 두 손을 모아 합장한 뒤, 수도승들만이 외울 수 있는 몽크들의 성법을 외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아난다가 성법을 시전하자 주위에 있던 최상급 몽크들 또한 아난다라를 따라 축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몸에도 아난다와 같은 광휘가 결집되기 시작했다.

“대륙의 평화를 위하여!”

“대륙의 평화를 위하여!”

아난다의 선창에 몽크들이 복창했다.

이윽고 결집된 빛이 전신에 고루 퍼지더니 몽크들이 걸치고 있는 어깨갑옷, 루실랏에 새하얀 빛무리가 연기처럼 이글거렸다.

“가자!”

콰광!

성법의 이름은 ‘숭고한 희생’.

숭고한 희생이 발동되는 동안 몽크들은 고통을 크게 느끼지 않으며 불구덩이 속에라도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얻고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굳건한 인내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니 숭고한 희생은 그야말로 여색 그 자체인 아마리스의 여전사들을 상대하기엔 안성맞춤인 성법이었다.

이에 헬라 또한 소리쳤다.

“가자! 내 사랑스러운 꽃들아!”

“예!”

수도승과 여전사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2군단, 1시 방향.

토성, 아니 성탑과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2군단에는 킹턴이 배치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킹턴은 군단의 총지휘권자로서 성녀와 마실라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성 사다리를 올려라!”

킹턴은 욕심이 많았지만, 극히 상식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전투를 지휘하는 스타일이 크게 튀지 않고 병법에 의거하여 정석적으로 부하들을 다루는 편이었다.

이는 분명히 큰 장점이었다.

무엇이 됐든 기본기가 튼튼한 것만큼 중요한 건 없었으니까.

물론 킹턴의 경우엔 기본기에서 비롯된 튼튼하고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성격 때문에, 영원한 1인자였던 바할드를 꺾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제국 일검이자 기사왕, 그리고 그랜드 마스터는 다름 아닌 킹턴 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킹턴은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했다.

“더 올려라! 더!”

“예!”

킹턴이 부하들에게 공성 사다리를 더 올릴 것을 명령했다.

사다리는 넉넉했다.

좀 전에 언급했다시피 킹턴은 정석을 추구하는 인물이었으므로 아난다가 취하지 않은 공성 사다리까지 전부 킹턴이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킹턴은 투석기의 배치 또한 명령했다.

공성전에서 투석기는 반드시 사용되어야 하는 필수적인 공성 병기였으니까.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킹턴은 전장의 한가운데서 꼿꼿이 허리를 펴고 전장을 지휘했다.

그리고 마침내 공성 사다리들이 계획한 방향으로 올라서기 시작하자, 킹턴은 그제야 검을 빼들었다.

“모두 비켜라!”

칼날에 응축되는 검기.

모든 소드 마스터들이 그러하듯, 마법사나 공성 병기가 부족하다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성벽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석의 기본이었으니까.

그리고 킹턴은 정석을 아주 좋아했다.

이윽고 검신에 푸른 오러가 대량으로 응어리졌다. 그리고…….

후웅!

푸른 반달이 전방으로 쏘아졌다.

엄청난 기세였다.

그리고 푸른 반달이 성벽에 닿기 직전, 킹턴은 자신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끝이다!’

콰과광!

허공 가득히 피어오르는 잿빛 연기.

킹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곧 바람이 불었고 묵직한 잿빛 연기가 허공에서 흩어졌다. 그런데…….

“음?”

당연히 산산조각이 났을 줄로만 알았던 성벽이 멀쩡한 것이 아닌가?

“멀쩡해?”

눈을 의심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할 때쯤, 킹턴은 멀쩡한 성벽에 대한 무안함을 지우기 위해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후웅!

콰과과광!

허공을 가르는 진동이 확실하게 전해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성벽은 멀쩡했다.

“이 무슨?”

흥분한 나머지 이마에 핏줄이 섰다.

그러나 흥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킹턴은 화를 다독이며 두 눈에 오러를 집중시켜 시야를 강화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까 봐서.

이윽고 시야가 강화되었다.

그리고 강화된 시야를 바탕으로 킹턴은 눈을 찌푸렸다.

그 순간, 킹턴은 자신의 시야에 비친 성벽 너머의 풍경을 보고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로난?”

성벽 너머에 칼을 빼들고 있는 이는 분명한 로난이었다.

그리고 로난은, 킹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채고 당당히 킹턴과 시선을 맞추었다.

“로, 로난! 네. 네놈이 대체 어떻게 여길……!”

로난을 발견하자 이셀란에게 받았던 수모들이 순식간에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셀란 녀석이 그렇게 꽁꽁 싸고돌던 녀석이 왜 이곳에 있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로나아아안!”

문답무용.

이유가 어찌 됐든 이제 와서 곱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킹턴은 검을 뽑아들고 로난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동시에 진격 명령을 외쳤다.

“모두 쓸어버려어엇!”

“예!”

사령탑처럼 굳건히 서 있던 킹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킹턴을 위한 특제 거대 공성 사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구구구!

목제 바퀴가 달린 특제 공성 사다리는 보통의 공성 사다리에 비해 그 크기가 네 배는 컸다.

그래서 수십 명의 장정이 달라붙어 간신히 그것을 이동시켰고 사다리를 수직으로 세운 다음, 추를 떨어뜨리듯 그것을 성벽 위로 넘어뜨렸다.

이렇게 하면 제아무리 적군이 방해해도 다리를 연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콰아앙!

떨어진 사다리로부터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먼지가 걷혔을 때, 사다리는 성벽이 아닌 성벽의 바로 앞, 모래사장에 고꾸라져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네놈들! 지금 뭐하는 짓이냐!”

킹턴이 질책했다.

이에 사다리를 옮기던 병사들이 반문하며 킹턴에게 대답했다.

“예, 예? 사령관님? 왜,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냐니? 네놈 눈엔 지금 저게 안 보이더냐!”

“예? 사다리는 분명히 성벽에 걸쳐져 있습니다만…….”

병사의 표정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연기를 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병사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나는 내 할 일을 제대로 했는데 왜 그러느냐, 딱 이런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병사뿐만이 아니라 사다리를 옮긴 모두가 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우왕좌왕하는 병사들.

그것은 비단, 킹턴의 사다리를 옮기던 병사들뿐만이 아니었다.

기존에 사다리를 걸치고 사다리를 오르고 있던 병사들 또한 맹한 표정을 짓고서 허공에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예상대로군요.”

그리고 그러한 멍청이들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헤라리온과 비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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