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10화 (210/522)

# 210

집결 (1)

같은 시각, 무슈와 앙켈만에서도 독립 준비가 벌어지고 있었다.

세 개의 자유도시는 하나의 협약에 의거하여 한날한시에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일을 벌였다.

물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지시는 헨리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자유도시가 하나의 독립국으로 거듭나면서 그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하거나 군사 정책을 수립하는 일 또한 헨리가 주도해 나갈 것이다.

물론 아무리 시장이 독립국을 선포한다고 한들 휘하에 있는 모든 부하 직원들이 그에 응해 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유능한 시장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시장으로서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지, 그 이상의 능력에 대해서까지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시장의 재량으로 자유도시를 독립국으로 선포하려 들면 도리어 기존에 있던 신뢰까지 깎아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제 넘는 행동이었으니까.

그래서 헨리는 유능한 시장의 이미지로도 커버하지 못할, 부하 직원들을 구슬릴 수 있을 만한 새로운 인물들을 각 도시에 투입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 마탑주, 로어 길리언이라고 합니다.”

웅성웅성.

전 마탑주, 로어 길리언의 등장에 비발디 타운의 공무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술렁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 이유는 대륙 전체에 떨어진 마법사 척살령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그가 스스로를 ‘전 마탑주’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로는 벤트 시장과는 전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거물이 벤트 시장을 돕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한차례의 술렁임 끝에 공무원 하나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저…… 시장님?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질문 한 가지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저희들의 급료, 설마 저기 계신 마법사님께서 주신 겁니까?”

“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예?”

“급료를 마법사님께서 지급해 주신 건 맞지만 여기 계신 로어 길리언 님께서 지급해 주신 건 아니야.”

“……?”

원초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원초적인 질문 속에는 필요한 물음들이 모두 다 담겨 있었다.

만약 로어 길리언이 자기들의 급료를 지급해 준 것이라면 곧 건국될 독립국의 뒷배가 눈앞에 있는 대마법사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벤트는 그 질문에 대해서 아리송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럼 대체 어떤 마법사가 저희들의 급료를 지급한 것입니까?”

“그건…….”

“그 부분에 대해선 제가 설명토록 하죠. 괜찮으시다면 제가 대신 대답해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벤트가 공무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으려 하자, 로어가 벤트를 막아선 후 공무원에게 정중히 의사를 물었다.

이에 공무원이 말을 더듬으며 황급히 그래도 좋다고 대답했다.

왜냐면 로어 길리언씩이나 되는 자가 일개 공무원인 자신에게 정중히 의사를 묻는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황송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로어가 대답했다.

“급료를 저희 측에서 지원한 것은 맞습니다만, 급료의 지급 권한이 저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 마법사님 정도 되시는 분께 권한이 없다면 대체 누가…….”

“저보다 더 위에 계신, 새로운 마탑주님만이 오직 그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

공무원은 순간 자신이 무언가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대마법사 헨리 모리스가 사망한 뒤로 2대 마탑주이자 대륙 최고의 마법사로 칭송받는, 그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있다니?

그로선 처음 듣는 사실일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는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슈와 앙켈만에 파견된 스탠 하디라디와 더글라스 킨케이드 앞의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조용!”

공무원들이 다시금 술렁이기 시작하자 벤트가 주위를 조용시켰다.

“흠흠, 놀란 마음들은 이해하지만…… 어때? 이래도 내가 무모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쯤에서 벤트는 로어의 말을 가로막은 뒤 부하직원들에게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영악한 밀고 당기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벤트는 부하 직원들에게 자신이 가진 패를 모두 보여 주지 않았다.

즉, 패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숨겨둔 패를 더욱 더 값지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전법이었다.

그리고 그 밀고 당기기는 멋지게 먹혀들었다.

공무원들이란 은행원들만큼이나 계산에 능하고 약삭빠른 족속들.

그들의 머릿속에는 벌써부터 손익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계산을 끝마쳤을 때, 공무원들 중 가장 서열이 높은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저는 시장님의 뜻에 함께 하겠습니다.”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저도……!”

서열이 가장 높은 공무원이 지지 의견을 표명하자, 그 아래 공무원들 모두가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이는 단순한 물 타기가 아니었다.

지금부터 선택하는 모든 일들 하나하나가 그들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선택이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신중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이에 벤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도시군 소집에 대한 대책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모집 요강이나 급여 같은 조건들은 어떻게 설정하면 되겠습니까?”

모두의 뜻이 하나로 대동단결되자 의욕에 기름이 부어졌다.

그 증거로 벤트가 의견을 내놓자마자 공무원들 모두가 허리춤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의욕을 증명하려 드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것을 본 로어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것들이 헨리가 말한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이에 벤트가 말했다.

“우리의 슬로건은 간단해. 귀족과 노예, 부자와 거지의 구분이 없는 평등한 나라. 비발디 타운은 여러분에게 평등한 삶을 보장합니다.”

“……예?”

파격적인 발언.

본디 나라라 하면 왕과 신하가 있고 백성과 노예가 있는 것이 기본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헨리는 이에 대한 틀을 완전히 깨부수었다.

‘여러 종류의 인간이 모인 자유도시를, 새로운 독립국이라는 울타리 안에 확실하게 집어넣으려면 그들을 확실하게 붙잡아 둘 수 있을 만한 먹이가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헨리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헨리는 그 흥미로운 구심점의 대가로 ‘신분의 장벽’을 완전히 깨부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분제가 존재하는 이 땅에는 비단 귀족과 평민, 그리고 노예뿐만이 아니라도 부자와 거지라는 보이지 않는 신분의 격차 또한 존재했으니까.

이에 공무원들이 당황스러움에 선뜻 펜대를 놀리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벤트가 말했다.

“뭣들 하고 있어? 얼른 받아 적지 않고?”

“하지만 시장님, 독립국을 세우시는데 귀족과 노예가 없는 나라라니, 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왜? 안 될 게 뭐가 있어?”

“예?”

“귀족과 노예가 없다고 했지, 왕이 없다고는 안 했잖아.”

“예? ……아!”

“싱겁긴, 전체를 통치하는 통치자는 반드시 있어야만 해. 그래야 신생 독립국이 나라로서 기능을 할 테니까. 그리고 귀족들이 하던 역할이라고 해 봤자 끽해야 행정 업무였는데, 그게 너희들이 평소에 하던 일과 뭐가 달라?”

벤트는 헨리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생각해 낸 것처럼 유려하게 읊어 댔다.

벤트의 설득은 공무원들에게 멋지게 먹혀들었다. 그러나 확실히 참신한 조건이었기 때문에 이내 곧 다른 공무원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럼 귀족과 노예에 대한 격차는 해소된다고 하더라도 부자와 거지에 대한 격차는 어떻게 해소하실 생각이십니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산 때문에 그 격차는 생각보다 좁히기가 어려울 텐데요?”

“좋은 질문이야. 그리고 그 문제 또한 얼핏 보면 어려운 문제처럼 보이지만, 어지러운 대륙의 정세를 대입한다면 생각보다 쉽게 풀리는 문제지.”

“……?”

벤트의 힌트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던진 공무원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에 벤트가 말했다.

“부자와 거지 사이의 갈등. 그것은 언뜻 보면 복잡한 문제처럼 보이지. 하지만 근본을 따져 보면 거지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부자들이 가졌기에 생기는 것 아니겠어?”

“그래서요?”

“그럼 해답은 간단해. 거지들이 가지지 못해 부자들을 부러워했다면 이제는 어지러운 시국을 대입해 부자들은 가지지 못할 거지들에게만 있을 특권을 하나 쥐여 주면 돼.”

“부자들은 가지지 못할 거지들만의 특권…… 그런 게 있긴 한가요?”

벤트의 이야기를 듣던 공무원들은 그것이 궤변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거지들은 가졌지만 부자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이라면 ‘가난’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에 벤트가 말했다.

“그럼! 평화로운 태평성대의 시대라면 모를까,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를 지금 같은 시국에는 제격인 상품이 있어. 그것은 바로 ‘군대’다.”

“군대라면 도시군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일단은 군대라고 특정지었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소속감’을 말하는 것이지.”

“소속감, 소속감……. 부자들이 거지들의 소속감을 부러워할까요?”

“개인이 가졌을 땐 보잘 것 없지만 집단이 함께 가지게 되면 힘을 발휘하는 게 소속감이지. 물론 소속감 자체만으로는 그 격차를 해소할 순 없어. 그러니 우리는 거지들이 부자들을 부러워하지 않게끔 특별한 혜택을 쥐여 줘야 해.”

“그럼 그 혜택은 어떤 것입니까?”

“밥이야.”

“예?”

“매끼 제공되는 식사. 그리고 이따금씩 제공되는 술과 고기. 이 정도면 충분해.”

“그게 무슨…….”

고작해야 매끼 제공되는 식사가 파격적인 혜택이라니?

벤트의 말에 공무원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벤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런 멍청한 놈들…… 그럼 어디 한번 물어나 보지. 자네는 지금 매 끼니를 어디서 해결하고 있나?”

“예? 그거야 물론 비발디 타운, 공무원 식당에서 해결하고 있습니다만…….”

“그렇지? 공무원들이 누리는 혜택 중에는 매 끼니를 공무원 전용 식당에서 싼값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게 왜 혜택이 되는지는…… 아!”

“이제 알겠어?”

앞서 언급했던 논리들이 워낙에 화려하다 보니 공무원들은 잠시 현실을 잊고 있었다.

그렇다.

현재 비발디 타운 내의 물가는 말도 안 되게 치솟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엔 딱딱한 빵 하나를 동전 한 닢에 살 수 있었지만, 이젠 은화 한 닢을 줘도 빵 반 조각도 못 사. 이러한 상황에서 매끼 제공되는 식사만큼 파격적인 혜택이 어디 있어?”

벤트의 말대로였다.

현재 비발디 타운에는 모든 식료품들을 포함해 철광석이나 완성된 무구 같은 물자들이 없어서 구하지 못할 정도로 그 값이 폭등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타운 내로 물자들이 들어오자마자 텐이 죄다 사들이고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비발디 타운 내에선 때 아닌 대기근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자유도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에 말한 슬로건을 잘 정리해서 홍보 문구로 인용토록 하고 급여나 복지 문제는…… 음, 좋아! 매끼 제공되는 식사 외에도 기본적인 장비 정도는 지급한다고 해. 그리고 만약 군과 관련된 경력자나 자신의 장비를 가지고 입대한 놈이 있으면 고기나 술을 내주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제법 괜찮은 전략이었다.

부자들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한들, 현 시국에서 돈보다 더 귀한 것은 바로 의식주의 해결이었으니까.

그리고 기근에 시달리던 거지들이 도시군에 입대하여 거대하고 풍요로운 소속감을 형성하게 되면, 부자들에게 가지던 부러움 따위는 단숨에 처리될 문제였다.

이에 벤트의 논리를 몇 번이나 곱씹던 공무원들이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 대마법사님이셔. 명분은 그럴 듯하게, 실속은 확실하게. 그분께선 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보고 계신 걸까?’

벤트의 말에 그제야 납득하는 공무원들을 보며 로어는 다시 한 번 헨리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회의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벤트의 뜻을 확실히 전해 들은 공무원들은 새로운 비발디 타운의 준비를 위해 부리나케 움직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