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11화 (211/522)
  • # 211

    집결 (2)

    “헨리 님. 세 개의 자유도시에서 각각 도시군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래?”

    발락을 산 채로 체스트에 수납한 헨리는 비발디 타운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텐으로부터 각 자유도시에 지시한 일들에 대한 진행 상황들을 보고받았다.

    “반응은 어때?”

    “폭발적입니다. 아무래도 피난민 대부분이 값비싼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굶주리고 있던 차였으니까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돈 앞에 장사 없다지만 상황에 따라 더 귀해지는 것이 바로 의식주였다.

    황금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황금을 입고 먹을 순 없었으니까.

    헨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고 이에 헨리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잘됐네. 그럼 넌 앞으로도 모든 상인들로부터 될 수 있는 한 모든 식료품들과 무구들을 매입해.”

    “그렇잖아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만…… 물가가 어느 정도 폭등하고 난 뒤부터는 상인들도 슬슬 불안함을 느꼈는지 물자를 내놓지 않고 꽁꽁 싸매고 있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아무래도 기존의 수십 배에 달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물가가 솟았으니까요.”

    화폐의 가치가 일정하고 안전하다면 물가가 오를수록 당연히 판매자들은 신날 수밖에 없다.

    물가가 오르니 평소보다 수입이 늘어날 테니까.

    하지만 화폐의 가치가 불안정하고 물가가 상식선을 벗어나는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큰일이 일어난다.

    화폐의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때때로 원초적인 화폐, 즉 밀이나 철이 금보다 더 귀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시국이 딱 그러했다.

    물가가 기존의 시세보다 수십 배나 폭등하자 더 이상의 화폐는 쥐고 있어 봤자 짐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슬슬 때가 된 것 같네.’

    상인들이 더 이상 상품을 내놓지 않는다는 건 대륙 전체에 퍼진 불안함이 절정에 치달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에 헨리는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에 잠겼다.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때가 찾아오긴 하였으나 목표로 생각하고 있던 물자는 충분히 수집하였으니 슬슬 연합국을 움직여도 된다고 생각했다.

    ‘첫 회의를 소집해야겠군.’

    헨리는 두스카인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국을 연합국에 가입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휘하의 장로급 마법사들을 시켜 각 동맹국마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설치했으며 헨리가 그것들을 모두 컨트롤할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해 두었다.

    “텐.”

    “예, 대마법사님.”

    “말 안 해도 알아서 잘 할 테지만 그래도 아까 말한 거 잘 부탁할게. 아참, 그렇다고 너무 무리한 값에 사들이진 말고.”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해.”

    지이잉!

    명령을 마친 헨리는 저택에 설치된 게이트를 통해 다시 설탑으로 이동했다.

    “오셨습니까, 대마법사님.”

    “로어, 때가 된 것 같아. 지금 즉시 두스카인을 제외한 모든 동맹국들의 수장들을 설탑의 최상층으로 모셔 와.”

    “예, 지금 즉시 이행토록 하겠습니다.”

    부학파장이나 1등 마법사들에게 시킬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크 메이지급 마법사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까닭은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연합국 멤버들에 대한 예우.

    힘든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연합국에 가입해 주었으니, 이 정도 대우는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명의 장로급 마법사들이 모습을 감춘 뒤 헨리는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생각에 잠기는 동안 시야에 뻣뻣하게 긴장한 로난이 눈에 보였다.

    그것을 본 헨리가 씨익 웃으며 로난의 이름을 불렀다.

    “로난.”

    “어, 어?”

    고작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심히 당황하는 모습.

    과하게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동기인 줄로만 알았던 헨리가, 실은 로어 길리언보다도 뛰어난 마법사에 그 위대한 헨리의 직계 제자라는 사실이 알게 모르게 위화감을 들게 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긴장 하지 마.”

    “아, 아냐……! 누, 누가 긴장했다고 그래?”

    “그렇지? 넌 이셀란 부사령관님의 추천으로 내가 데려온 사람이니까 기죽을 필요 없어. 너도 여기서는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자격을 지닌 한 명의 인재라고.”

    “그래……!”

    헨리의 격려가 위로가 되었던 것일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텐과 맥도웰이 귀엽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쟤야? 킹턴, 그놈이 데려가려다 실패했다는?”

    “응. 헤밀턴의 코를 납작하게 누르고 스스로 포람의 성을 버렸다잖아.”

    “평민 출신이지? 그런데도 금발에 금안이라…… 어째, 귀족보다 더 귀족같이 생긴 것 같다?”

    “귀족이 별 게 귀족이냐? 잘생기면 귀족이지. 날 봐. 척 봐도 귀족같이 생겼잖아.”

    “웃기고 있네. 얼굴을 고쳤다고 과거까지 고쳐지냐?”

    “과거가 중요하냐? 현재가 중요한 거지. 하여튼 못생긴 것들이 그런 자잘한 것들을 따지지…….”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설탑의 최상층에 동맹국들의 수장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샤하트라와 아마리스, 그리고 소레국과 제방.

    각 동맹국들의 수장과 그들을 보좌하는 보좌관들이 학파장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여기가 바로 그 새로운 마탑이란 말이지?”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아마리스의 철혈여제, 헬라였다.

    그녀는 평소에 입는 것보다 훨씬 더 고혹적인 복장을 갖추고서 설탑에 대한 품평을 늘어놓았다.

    이에 헨리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서오세요, 여왕님.”

    “헨리!”

    품평을 늘어놓던 헬라는 헨리를 보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와 헨리를 끌어안았다.

    물컹한 촉감이 헨리의 얼굴에 닿았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방 안의 모든 남자들이 나지막이 감탄사를 흘렸다.

    “오오…….”

    “저분이 바로…….”

    철혈여제라고는 하나 아마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바로 헬라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자나 특이성욕자가 아닌 이상 모두가 헨리를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이에 헨리가 헬라를 밀어내며 말했다.

    “하하…… 보시는 분이 많으니 격한 환영 인사는 이쯤 해두도록 하죠.”

    “뭐야, 반응이 왜 이렇게 시큰둥해? 설마 그새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질문과 함께 헬라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헨리의 그곳을 손으로 콱 움켜쥐었다.

    이에 그를 지켜보던 모두의 얼굴에 시뻘건 놀라움이 번졌다.

    “와우, 화끈한 여자였네.”

    그리고 맥도웰은 휘파람을 불었다.

    “흠흠, 그런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고…… 일단은 자리로 돌아가 앉아 주시겠습니까?”

    “호호, 딱딱한 남자 같으니라고. 물론 난 남자는 딱딱해야 된다고 생각해.”

    쉴 새 없는 음담패설.

    그리고 그녀가 자리로 돌아가던 중 헨리의 주위에 선 남자들, 예컨대 반이나 맥도웰, 바할드, 그리고 로난 등을 보며 말했다.

    “이야……! 멋진 남자가 대체 몇 명이야? 할 수만 있다면 여기 있는 남자들과 전부 아이를 낳고 싶을 정돈데?”

    찡긋.

    남자들에게 윙크를 해보이는 헬라.

    그녀는 진심이었다.

    이에 헨리는 그녀의 융단폭격에 결국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거참, 정말 쉴 틈 없이 치고 들어오는구먼.’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겉보기엔 젊디젊은 20대의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알맹이는 마흔이 넘은 아줌마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곳에서 헨리를 포함해 몇 없었다.

    이어서 샤하트라의 수장, 헤라리온 칸과 새로운 태제, 홍월. 그리고 아흔의 나이를 넘긴 도올이 각자의 보좌관들을 데리고 도착했다.

    각자가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원탁에는 헨리를 포함한 다섯 명의 대표들이 둘러앉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헬라였다.

    “근데…… 두스카인 측은 안 보이네?”

    “두스카인 측은 전략적인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연합국에 가입된 건 맞지?”

    “지금은 전략적인 이유로 가입시켜 두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면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뒤 연합국에 합류하게 될 겁니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헨리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똑부러지는 헨리의 설명에 아무도 초완족의 부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윽고 헨리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따로 허례허식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연합국의 첫 회의를 기념한 열병식 같은 것들 말이죠.”

    “괜찮습니다. 그런 고리타분한 행사, 저희 샤하트라에서도 그다지 즐기지 않거든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저희 연합국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알아야 될지에 대해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합국을 형성한 기본적인 이유들은 모두들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그동안 자신이 준비한 계획들, 예컨대 자유도시들을 독립국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나, 텔레포트 게이트가 어디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등, 앞으로 사용할 전략들에 대해서 읊어 주기 시작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을 헨리 혼자서 계획하고 실행해 왔다는 것 자체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있는 그 누구도 헨리가 연합국의 총사령관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알려 드려야 할 정보는 대부분 알려드린 것 같고…… 그럼 지금부턴 저희들이 무슨 일을 하면 될지에 대해서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설명이 꽤 길었다.

    하지만 긴 설명이 나열되는 동안 그 누구도 지루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아차, 하마터면 제 페이스대로 회의를 진행할 뻔했군요. 잠시 5분 정도만 휴식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헨리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갖자고 말했다.

    그리고 휴식 시간이 주어진 순간, 헨리가 헤라리온에게로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전하, 잠시 귀를 좀 빌려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얼마든지요.”

    흔쾌히 허락하는 헤라리온.

    헨리는 헤라리온이 귀를 허락하자마자 그의 귓가에 대고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헨리가 말을 마쳤을 때, 헤라리온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살갑게 대꾸했다.

    “그런 일이라면야 얼마든지 도와 드려야지요.”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휴식 시간이 끝났다.

    그리고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갔고 헨리는 회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모두에게 말했다.

    “여러분, 회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가벼운 선서를 좀 하고 싶은데, 어떻게…… 동참해 주시겠습니까?”

    “그게 뭐가 어렵다고. 선서 정도야 기꺼이 해 주지.”

    헨리의 제안에 헬라가 흔쾌히 허락했다.

    그녀가 선뜻 허락하자 다른 이들 또한 모두가 긍정의 의사를 내비쳤다.

    “그럼 모두 오른손을 귀 옆까지 들어 주시고 선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서는 제가 선창을 하면 모두들 끝말을 따라해 주시길 바랍니다.”

    척.

    모두들 손을 들었다. 각 동맹국의 수장을 포함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말이다.

    그리고 헨리가 선창을 시작했다.

    “나는 이곳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을 연합국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

    “않겠다.”

    “나는 연합국의 미래와 안녕을 위해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며 끝까지 투쟁하여 신념을 지킬 것이다.”

    “것이다.”

    “나는 절대로 연합국을 배신하지 않겠다.”

    “않겠다.”

    선서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헨리가 손을 내린 후,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다소 유치할 수도 있었으나 선뜻 제안에 따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헤라리온 전하?”

    선창이 끝나고 헨리는 헤라리온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헤라리온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맙소사……!”

    한동안 웃음을 터뜨리던 그는 곧 입가의 미소를 지으며 헨리에게 말했다.

    “헨리 님의 말이 맞았군요. 이곳에 밀고자가 있었을 줄이야…….”

    밀고자.

    그 단어가 회장에 언급된 순간, 회장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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