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73화 (173/522)

# 173

왈레드 (1)

“비명?”

비명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나다스만이었다.

이에 헨리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감추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확인해 보도록 하지.”

금세 헨리와 나다스만을 포함한 수색대가 편성됐다.

헨리를 위시한 수색대가 고지 너머로 고개를 내민 순간, 헨리를 제외한 모두는 경악에 찬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다.

“저, 저게 대체 뭐야?”

“드, 드래곤?”

“마, 말도 안 돼! 드래곤이라니?”

제각기 다양한 반응들.

하지만 폭주하는 엘라곤을 처음 보는 이라면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건 당연히 드래곤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나다스만이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헨리에게 질문세례를 던지기 시작했다.

“헤, 헨리 님! 저게 대체 뭡니까? 괴물을 이용한다더니, 설마 그 괴물이 드래곤이었습니까?”

“아니, 저건 정령이다.”

“예?”

“정령이라고, 그것도 최상급의.”

헨리는 낮에 천부장들과 함께 지형 순찰을 마친 다음, 처음부터 테헤른 고지를 자신이 설 첫 번째 무대로 정해 두었다. 그런 다음 밤이 깊어지자마자 여전히 진화중인 엘라곤의 알을 고지의 정상 부근쯤에 박아 두었다.

‘확실히 저렇게 보니 공포스럽긴 하네.’

헨리는 나다스만의 질문에 무심히 대꾸하며 시선은 여전히 폭주하는 엘라곤을 향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엘라곤을 전략적 병기로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엘라곤을 전략적 병기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엘라곤에게 억지로 진화의 알을 섭취시킨 날 발견한, 엘라곤의 특별한 변화를 경험한 후였다.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군.’

진화의 알을 섭취한 엘라곤은 진화를 위해 스스로 알을 만들어 진화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당연히 그 사정을 몰랐던 헨리는 자연스레 엘라곤의 알에 손을 댔다.

그러자 광명과 함께 표면이 무너지면서 알의 크기가 조금 줄어들었다.

변화는 그제 전부였다.

이에 헨리는 크기가 조금 줄어든 것 외엔 별다른 변화가 없자, 또다시 알 표면에 손을 댔다.

그러자 표면이 또다시 무너지면서 알의 크기가 전보다 훨씬 더 작아졌다.

그러기를 여러 번.

이에 바윗덩이만큼 커다랗던 엘라곤의 알은 어느새 여느 짐승, 이를테면 다 자란 수퇘지 정도의 크기로 작아졌고 헨리가 호기심에 한 번 더 손을 댄 순간.

‘펑!’ 하고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고 말았다.

물론 헨리 또한 에드와두가 그랬던 것처럼 본능적으로 매직 실드를 전개해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폭발은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헨리의 매직 실드가 거의 부서질 뻔하였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알 표면에서 뿜어져 나온 그 어마어마한 폭발이 끝이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특이한 케이스이기는 해. 스스로 진화를 멈추고 외부의 위협과 맞서 싸우는 생물은 확실히 보기 드무니까.’

보통의 생물들은 탈피나 변태의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 진화의 과정을 멈출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장 취약한 상태가 되며, 그래서 가장 목숨을 많이 잃는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엘라곤은 달랐다.

엘라곤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끊임없이 광명으로 경고 신호를 보냈고, 알 크기를 줄여 가면서까지 스스로를 보호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계속되는 위협에 진화 중이던 엘라곤은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스스로 진화를 중단시킨 후 외부의 적을 제압하기 위해 알을 깨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진화를 중지시킨 엘라곤의 정신은 몹시 불안정했다.

그 증거로 첫 번째 폭주가 시작되었을 때, 엘라곤은 헨리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한 것을 들 수 있다.

게다가 최상급 정령, 그 이상으로 진화 중이었던 엘라곤은 마법에 대한 강력한 저항력을 갖게 되어 수면 마법인 ‘슬립’조차 통하지 않는 몸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헨리는 어쩔 수 없이 평화적인 방법을 포기하고 무력으로 엘라곤을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물론 헨리는 엘라곤의 이 같은 폭주의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일부러 두 번이나 더 같은 행위를 반복하였지만 말이다.

‘뭐, 어찌 됐든 덕분에 엘라곤은 훌륭한 전략적 병기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

연속된 경고를 무시하면 폭발과 함께 스스로 진화를 중지시키고 외부의 적을 섬멸한다.

그것이 바로 진화기에 접어든 엘라곤의 ‘새로운 습성’이었다.

이에 헨리는 이 같은 엘라곤의 습성을 완벽하게 파악한 다음, 고지로 배치될 정령사 부대를 쓸어버리기 위해 ‘엘라곤의 알’이라는 탐욕스러운 함정을 설치해 둔 것이었다.

‘왈레드가 걸려든 것은 좀 의외였지만 말이야.’

시레드의 정보를 통해 상급 정령사쯤 되는 천부장이 고지로 배치될 것이란 건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천부장들 중 하나가 왈레드일 것이라는 사실은 좀 의외였다.

-크르르!

진화를 방해받은 엘라곤은 이윽고 입안 가득히 에너지를 모아 브레스를 준비했다.

녀석이 뱉어 낼 브레스는 다름 아닌 산성이 가득한 ‘애시드 브래스’.

현재 엘라곤의 속성은 ‘독’.

헨리는 몇 번의 실험 끝에 진화를 중단한 엘라곤은 진화를 멈춘 상태에서는 한 가지 속성밖에 다루지 못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헨리는 현재 몸체가 검은색으로 물든 걸 보고는 현재 속성은 가진 네 가지의 속성들 중 독 속성에 해당하리라고 생각했다.

-크롸라라라라!

그리고 헨리의 예상은 맞았다.

닿기만 해도 모든 것을 녹여 버릴 끔찍한 산성의 숨결이 전방으로 뿜어졌다.

“피해!”

쿠구구구!

불안정한 정신의 엘라곤은 말 그대로 폭룡,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발광하는 폭룡으로 인해 고지 너머는 말 그대로 산성의 지옥을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크러렁!

콰직!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바람의 사자, 실라이온.

허공에서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바람의 사자는 이내 폭주하는 엘라곤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그로 인해 엘라곤은 애시드 브레스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동요하지 말고 모두 진형을 갖춰라!”

‘호오?’

아수라장 속에서 목청껏 고함을 내지르는 존재.

그는 다름 아닌 왈레드였다.

모두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급급할 때, 왈레드는 바람의 상급 정령인 실라이온을 소환하여 누구보다도 먼저 폭룡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저놈에게 저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군. 음? 그런데 저놈은 분명히……?’

지휘관으로써 병사들을 진정시키고 사기를 끌어올리려 한 것은 분명히 칭찬받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가 왈레드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분명히 왼팔이 잘려 없어야 할 왈레드가 양팔을 바쁘게 놀리며 정령들을 조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거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의료용으로 제작된 연금학파의 의수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저것은 분명한 녀석의 팔이었다.

그 순간, 헨리는 머릿속에 인체 연성술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설마 인체 연성술을?’

다른 이라면 몰라도 아서스의 측근인 알프레드의 아들이라면, 충분히 인체 연성술로 시술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서스는 인체 연성술을 기반으로 한 키메라를 제작하고 있었으니까.

‘저 정도로 정교한 시술이라면 최소한 마도사급이 개입되었을 터. 이로써 마탑이 관여되었다는 건 거의 확실해진 셈이로군.’

그러나 헨리는 화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키메라가 제작되고 있다고 했을 때부터 그보다 더한 충격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멀쩡하게 돋아난 왈레드의 팔을 보고 어떤 마법사가 시술했을지 호기심이 생길 정도였다.

‘재능이 아깝군.’

좋은 의도라면 얼마든지 부분적인 허가하에 시술을 시행해도 괜찮다.

하지만 그런 놈들치고 제대로 된 인성을 가진 놈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분명히 저 시술을 한 마법사는 분명히 키메라 제작에도 관여하고 있을 것이다.

힘을 가진 인간에게 도덕적 규제를 풀어 주면 인간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일들을 벌인다.

특히 그것이 호기심 많은 마법사들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저…… 헨리 님?”

“왜?”

“이제 저희는 어떡하죠……?”

헨리는 몸을 숨기지 않고 고지 위에 서서 당당하게 엘라곤을 구경했다.

하지만 헨리와는 달리 나다스만을 포함한 수색대원 전부는 겨우 얼굴만 빼꼼히 내민 채 고지 아래의 지옥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쩌긴 뭘 어째? 저 괴물이 알아서 싸워 주고 있으니 우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지.”

“괴물이 이길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예?”

“수를 보아 하니 정령사로만 천오백이야. 물론 괴물 또한 최상급 정령이긴 하지만……. 글쎄? 괴물이 밀린다 싶으면 우리가 나서서라도 괴물을 도와줘야겠지?”

농담처럼 대꾸하긴 했지만 헨리는 솔직히 엘라곤이 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왈레드가 병사들을 어르고 달랜다고 한들, 한 번 무너진 사기를 다시 끌어올리기란 좀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캬오오오오!

콰아앙!

엘라곤은 겁도 없이 자신의 목덜미를 문 실라이온을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자 실라이온은 볼품없이 뒤로 나가떨어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실라이온은 애초에 신체 능력에서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부대의 둘밖에 없는 상급 정령이 저렇게 허무하게 당해 버렸다.

에드와두는 여전히 깊은 내상으로 각혈을 토하고 있었고, 중하급 정령사들 대부분은 이미 꽁무니를 뺀 뒤였다.

‘끝났군.’

승패는 결정되었다.

이로써 헨리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이더웨더군의 주요 병력인 정령사 부대를 말끔히 격퇴시킬 수 있었다.

“크윽!”

이윽고 엘라곤의 앞발 치기를 감당하지 못한 실라이온이 역소환되었다.

이에 왈레드는 역소환된 여파에 의해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캬오오오!

폭룡은 포효했다.

왈레드는 무참히 패배했다.

그리고 산성의 지옥 속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왈레드는 폭룡이 내뿜는 거대한 공포 앞에 무기력하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안 돼……!”

왈레드는 뒤늦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근처에 남은 사람은 왈레드 한 명뿐.

덕분에 엘라곤의 시선 또한 자연스럽게 왈레드에게로 옮겨졌다.

-크르르……!

한껏 분풀이를 하고 나자 엘라곤의 기세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이에 엘라곤은 혼자 남은 왈레드를 향해 그 거대한 머리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크르르……!

그러나 기세가 조금 수그러들었을 뿐이지, 진화를 방해받은 엘라곤의 분노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그르르……!

그렇기에 왈레드는 엘라곤의 분노를 잠재울 피날레로 낙점되었다.

이에 엘라곤은 다시금 입안 가득히 애시드 브레스를 품고서 공포에 벌벌 떠는 왈레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크롸라라라라!

쿠구구구!

왈레드에게 쏘아지는 애시드 브레스.

조력자는 없었다.

왈레드는 자신을 향해 뿜어지는 애시드 브레스를 보며 그만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거대한 산성 줄기가 왈레드를 덮쳤다.

‘끝났군.’

이에 헨리는 왈레드의 최후를 보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볼 것도 없었다.

왈레드는 죽었고 정령 부대는 와해되었다.

그리고 고지전은 헨리의 승리가 되었다.

그리고 엘라곤은 위협이 될 만한 외부의 적들을 모두 제거하였으니 이제 다시 진화기에 접어들 것이었다.

‘슬슬 복귀하면 되겠군.’

다시 알이 된 엘라곤은 밤중에 회수하면 됐다.

그리고 이쯤이면 헥터 또한 맡은 임무를 끝내고 슬슬 신호를 보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다스만을 포함한 함께 온 삼백의 병사들은 죽일 필요가 없었다.

이 거짓말 같은 상황을 호들갑스럽게 증언해 줄 입들이었으니까.

이에 헨리가 등을 돌려 막사로 복귀하려던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키에에에!

거대한 폭음.

그리고 고통에 울부짖는 엘라곤의 비명.

이에 헨리는 돌린 등을 다시 돌려 황급히 상황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그곳에는.

-뀌륵, 뀌륵!

폭발의 근원지는 엘라곤이 뱉어 놓은 산성 웅덩이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산성 웅덩이가 없었다.

좀 전에 일어난 거대한 폭발이 산성 웅덩이 자체를 증발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성 웅덩이가 증발된 자리에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흉측한 외모를 가진, 아니 인간이라고 부르기에도 뭣한 존재가 괴이한 형상을 하고서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증식시키고 있었다.

‘저건……!’

그리고 헨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인간이라고 차마 부르기 힘든 것.

그것은 다름 아닌 키메라가 된 ‘왈레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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