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
왈레드 (2)
“헤, 헨리 님! 저, 저건 또 무슨……!”
경악에 찬 헨리가 잠시 돌처럼 굳어 있자, 곁에 있던 나다스만이 더더욱 떨리는 목소리로 헨리를 종용했다.
이에 헨리는 그만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개후레자식 같은 놈이……!’
키메라.
그것은 키메라가 확실했다.
그리고 키메라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좀 전에 에시드 브레스를 뒤집어쓴 왈레드가 분명했다.
-키에에에!
왈레드가 일으킨 폭발은 강력한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헨리는 폭발이 일어날 타이밍에 퇴각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어떠한 방식으로 폭발이 일어났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어마어마한 폭발이 엘라곤의 기세를 꺾어 놓을 만큼 엄청난 것이라는 것이었다.
-뀌륵, 뀌륵.
키메라가 된 왈레드.
그 모습은 흡사, 반이 헨리에게 말해 주었던 키메라가 된 모드레드에 대한 묘사와 매우 유사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끔찍함에, 헨리는 반쯤 입을 벌리고 가만히 눈동자를 굴릴 수밖에 없었다.
“헨리 님!”
“시끄러워!”
후웅!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헨리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답답함에 나다스만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헨리의 심기를 자극하는 멍청한 짓이었다.
이에 헨리는 홧김에 팔을 휘둘러 광범위 수면 마법을 사용했다.
털썩! 털썩! 털썩!
그러자 나다스만을 포함한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백의 병사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제기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러한 상황은 계획에 전혀 없던 것이었다.
그리고 변수와는 별개로 헨리는 너무나도 화가 났다.
‘알프레드 이 개자식이, 어떻게 자기 아들에게 이런 짓을……!’
헨리가 분노한 까닭은 간단했다.
아무리 왈레드가 부족한 인성의 망나니 자식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친아들이었다.
그런 친아들에게 키메라 시술을 받게 하다니……. 그것은 천륜을 거스르는 비인간적인 행태였다.
물론 이는 확실한 정황이 없는 단순한 감정적인 오해였다.
하지만 오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신이 된 왈레드의 인체 연성술을 허락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보호자인 알프레드였을 테니까.
헨리는 가슴 속에 휘몰아치는 분노의 폭풍을 입 밖으로 천천히 내뿜었다.
“후우……!”
뜨거운 숨결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가슴 속이 불타 재가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이에 헨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콜아머.”
지이잉!
헨리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변수가 일어났다면 해결하면 될 일이었고, 분노의 원인이 있다면 응당 그 원인을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특히 이 같은 일은 결코 두 눈 뜨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콜소드.”
지이잉!
이윽고 순백의 갑옷이 헨리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손끝에는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날카로운 콜소드가 쥐여졌다.
-게륵, 게륵, 게륵.
신체의 증식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러 못 본 체를 하는 건지, 왈레드는 아직 헨리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뀨르르…….
맥이 빠져 있는 소리.
엘라곤이었다.
헨리는 맥아리가 빠진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중상을 입어 몸체가 줄어든 엘라곤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뀌륵, 뀌륵.
신체를 증식하던 왈레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은 곧 신체 한 곳에서부터 고깃덩어리 같은 촉수를 뽑아냈다.
그런 후 그것을 꼬리처럼 움직여 바닥에 쓰러진 엘라곤을 향해 불순해 보이는 촉수를 뻗기 시작했다.
‘어딜 감히.’
이에 헨리는 초단거리 이동 마법인 블링크를 시전했다.
그리곤 순식간에 쓰러진 엘라곤을 품에 안고 검을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다.
“플레임 월.”
화르륵!
땅바닥에 선을 긋듯이 검을 휘두르자 검 끝을 따라 화염의 장벽이 생겨났다.
뜨거운 열기에 잠시 주춤하는 촉수.
그사이에 헨리는 낑낑대는 엘라곤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고생했다. 이젠 정말 편히 쉬어라.”
-뀨우…….
거대한 덩치와 걸걸했던 목소리는 폭주의 부작용일 뿐이었다.
혹여나 엘라곤이 정령왕으로 진화한다고 한들 엘라곤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헨리는 덜덜 떨고 있는 엘라곤을 역소환시켰다.
그런 다음 자신이 뿌려 놓은 화마의 혓바닥 사이로 차가운 눈빛을 쏘아붙이며 말했다.
“금방 죽여 주마.”
헨리는 검을 곧게 뻗어 칼끝을 왈레드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천천히 하늘 위로 검날을 치켜들며 말했다.
“뇌신의 포효.”
쿠르릉!
주문을 외우자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맺힌 먹구름은 왈레드가 아닌 헨리의 머리 위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지지지지짓!
헨리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거대한 벼락.
그 소리는 마치 수천 마리의 새들이 날아드는 듯한 굉음이었다.
헨리는 여전히 검을 하늘 위로 뻗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떨어지는 벼락을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칼끝으로 그것을 받아 냈다.
피뢰침.
헨리의 콜소드는 마치 피뢰침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정말로 피뢰침의 그것처럼 떨어진 낙뢰들이 헨리의 콜소드에 응집되기 시작했다.
치지지지짓!
벼락을 머금은 헨리의 콜소드는 곧 굉장한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치 고통에 몸부림치는 짐승의 울음처럼 말이다.
이에 헨리는 벼락을 머금은 콜소드를 천천히 우측으로 내렸다.
-뀌륵, 뀌륵!
동시에 왈레드의 증식 또한 드디어 끝난 듯싶었다.
증식을 마친 왈레드는 처음에 보았던 것보다 네 배쯤은 커져 있었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사람이라 부르기도 뭣한 형태가 되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마물의 숲에서나 볼 법한 ‘미트 골렘’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불쌍한 놈 같으니.’
키메라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잘 만들어진 키메라는 훌륭한 연금체로 인정받아 헨리의 보물을 지키던 ‘실더’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것은 연금체도 무엇도 아니었다.
온전히 살상만을 위해 태어난, 인간이라는 존엄성마저 집어던진 추악한 욕망의 집합체.
즉, 한낱 괴물일 뿐이었다.
-퀴에에에!
왈레드가 포효했다.
키메라가 된 왈레드의 본능은 분명히 헨리를 죽이라고 외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헨리에게는 꼭 그것이 왈레드가 지르는 비명처럼 들렸다.
퉁!
이에 헨리는 바닥에 한 번 발을 굴려 마법 무장을 시전했다.
시전한 마법 무장은 여태껏 사용해 오던 것들 중 가장 강력한 종류의 것이었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잖아도 강력한 마법 무장이었는데 콜트아이언으로 만들어진 콜아머의 영향으로 마법 무장의 효율이 몇 배나 늘어난 것이다.
이윽고 벼락의 칼을 손에 쥔 헨리가 말했다.
“블링크.”
슈슉!
초단거리 이동 마법 블링크.
헨리가 도착한 곳은 왈레드의 뒤였다.
헨리는 왈레드의 뒤를 붙잡자마자 우측으로 바로 검을 휘둘렀다.
치지직!
고속으로 휘둘린 검은 비대한 왈레드의 몸뚱이에 거대한 검흔을 남겼다.
-키에에!
비명을 지르는 왈레드.
초고압의 벼락에 의해 순식간에 그을음이 생기고 탄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그러나 그런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왈레드는 모드레드처럼 재빨리 반격기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고압의 벼락이 왈레드의 몸에 닿는 순간, 온몸이 찌릿해지며 전신의 근육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이어서 세로로 검을 휘둘러 등짝에 십자가 모양의 검흔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끝이다.”
푸욱!
헨리는 아공간에서 불카누스가 만들어 준 독금제 단검을 꺼냈다.
그런 다음 십자가로 만든 검흔의 중앙에 못을 박듯이 단검을 박아 넣었다.
“블링크.”
슈슉!
헨리는 다시 블링크를 사용해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그런 다음 살모사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왈레드를 응시했다.
-키킥, 큭, 킥, 켁, 크극…….
한 번의 벼락도 감당키 힘들었는데 두 번은 오죽할까?
왈레드는 두 번의 초고전압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눈깔이 뒤집히고 전신의 근육이 뒤틀린 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치직.
벼락이 사라졌다.
헨리의 검에 깃든 벼락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나서야 모습을 감추었다.
이 모든 일들은 찰나에 이루어졌다.
헨리의 뛰어난 신체 능력과 더불어 향상된 마법 무장이 더해져 초인과 같은 움직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불카누스의 역작, 독금으로 만든 단검을 등짝에 꽂아 넣었다. 왈레드는 곧 온몸이 검게 물들고 피를 토하며 죽게 될 것이었다.
-퀴륵, 퀴르륵, 퀴레…….
극심한 고통에 바닥에 쓰러져 부들거리는 왈레드.
그 모습을 본 헨리는 생각했다.
‘생각보다 약한데?’
헨리가 강한 것도 있었지만, 강하기로 따지자면 반도 헨리에 뒤지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헨리보다 더 강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반은 생사를 넘나들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반면, 헨리는 고작 한두 번의 칼질로 왈레드를 제압할 수 있었다.
이에 헨리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휘이이잉!
쓰러진 왈레드 옆으로 돌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바람은 흰색과 녹색이 섞인 영롱한 빛깔의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돌풍이 한데 뭉치더니 곧 한 마리의 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라이온?’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바람의 상급 정령 실라이온이었다.
실라이온은 왈레드와 계약된 정령.
그런데 술자가 저 모양이 됐는데도 여전히 계약이 유지되고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크르르르…….
모습을 드러낸 실라이온은 쓰러져 부들거리는 왈레드를 핥아 주었다.
그것은 마치 짐승이 자신의 새끼를 핥아 주는, 그런 모양새였다.
‘그렇군. 정령과의 계약은 영혼의 계약, 그러니 왈레드가 죽지 않는 이상 계약은 유지될 수밖에 없겠군.’
핸리의 생각대로였다.
정령사는 가진 친화력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계약할 수 있는 정령의 종류가 달랐다.
하지만 일단 한번 계약을 하고 나면 영혼의 동반자가 되기 때문에,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지 않는 이상 계약이 파기되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그리고 정령은 술자와 영혼의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술자의 감정을 그 누구보다도 잘 느끼는 존재였다.
-키이잉…….
용맹한 실라이온의 입에서 비탄의 신음이 새어 나왔다.
녀석은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비참한 말로를 겪게 된 자신의 계약자의 운명과 그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서 말이다.
-퀴르륵…….
왈레드의 전신은 점점 더 거무죽죽해져 갔다.
등에 꽂힌 독검에 의해 전신이 맹독에 중독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왈레드는 죽어 가기 전에 거무죽죽해진 촉수를 꺼내 움직여 자신을 핥아 주는 실라이온을 어루만졌다.
‘죽기 전에 제정신이 돌아온 모양이군.’
슬픈 광경이었다.
헨리는 저렇게나마 자신의 정령과 마지막 교감을 나누는 왈레드를 보며 그의 죽음에 대해 자그마한 기도라도 올려 주기로 했다.
그런데…….
콰득!
-크허엉!
실라이온의 비명.
실라이온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던 촉수로부터 갑작스레 무수한 가시들이 튀어나와 실라이온의 목덜미를 관통했다.
‘저게 무슨?’
이에 헨리는 진행 중이던 묵념을 중단하고, 실라이온을 구하기 위해 마법을 영창하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강력한 돌풍이 헨리를 덮쳤다.
“크윽!”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정령술사들이 사용하는 정령술의 일종이었다.
이에 헨리는 마법의 영창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쩌저적!
바닥에 쓰러져 있던 왈레드의 비대한 몸집이 번데기의 껍질처럼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목덜미를 관통당해 정령계로 역소환되려던 실라이온이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크허허헝!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는 실라이온.
그러나 촉수의 힘이 더 강했다.
실라이온은 결국 왈레드의 갈라진 몸뚱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갈라진 몸뚱이는 파리지옥의 아가리처럼 다시 입을 닫았다.
그리고.
-퀴에에에에!
쓰러진 왈레드의 전신으로부터 괴이한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이내 곧 여러 개의 촉수가 튀어나와 왈레드의 몸뚱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무슨……!”
전신을 시커멓게 물들였던 중독 증세가 빠른 속도로 완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티링!
다시 몸체를 일으킨 왈레드가 가시를 뱉어 내듯 독금제 단검을 바닥에 뱉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