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21화 (121/522)

# 121

과거 청산 (2)

“죽여 버려!”

웨튼과 살롬의 죽음으로 분위기가 대번에 험악해졌다. 이에 디알로가 분노에 참 고함을 내질렀다.

서걱!

그러나 헤글러의 움직임이 한 박자, 아니 두 박자 정도 더 빨랐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헤글러는 달려온 반동을 이용해 허리 축을 회전시켰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두 남자의 가슴팍을 베어 냈다.

“크악!”

“뭣들 하는 거야!”

그렇잖아도 타고난 재능을 가진 헤글러가 반이라는 천재적인 스승을 만나 혹독한 수련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동안 실력이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까닭은 헤글러의 대련 상대가 반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같은 익스퍼트 유저였지만 오러의 운용술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좌아아악!

헨리에게서 받은 헤글러의 검이 맹수의 앞발처럼 날카롭게 흉갑을 찢어 냈다.

허공에 분사되는 핏물.

그러나 그 핏물이 헤글러에게 닿기도 전에 헤글러는 다음 상대를 찾아 도약했다.

“뭐 하고 있어! 잡아!”

그러나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수적 열세는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은 병사들은 더더욱 분노를 입에 물고서 헤글러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미친!”

카앙!

마치 성난 호랑이 같았다.

호랑이는 쉴 새 없이 발을 놀리며 상대를 교란시켰고 머리, 목, 가슴, 복부 할 것 없이 급소라고 생각되는 모든 곳들에 발톱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호랑이는 털 한 가닥 베이지 않는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느리다. 스승님의 움직임에 비하면 한참이나 느리다!’

그러나 수의 차이는 헤글러에게 있어 단순한 숫자 놀음에 지나지 않았다.

오합지졸은 아무리 많이 모여도 오합지졸일 뿐이라는 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게 익스퍼트 유저라고?’

엄청난 기세였다.

그리고 검 끝에 묻어나는 파괴력을 보며 다른 익스퍼트급 유저들은 차마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절제되지만 않았을 뿐이지, 저 정도 출력량이라면 거의……!’

어쩌면 출력되는 오러의 양만 놓고 보면 이미 소드 마스터를 훨씬 뛰어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반이 흡족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거기서 방향을 꺾고 우물쭈물하는 놈은 대번에 목을 긋고……. 옳지, 바로 그거지!’

같은 익스퍼트급 유저라도 그 급이 달랐다.

오러를 깨우치기 위해선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극한의 상황에까지 몰려야만 하지만, 마스터의 경지는 그야말로 한 끗 차이의 깨달음으로 얻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글러는 여태껏 그 한 끗 차이의 경지를 깨닫지 못해 익스퍼트의 경지에 머물러 있었다.

의문스러웠다.

익스퍼트와 마스터의 차이는 불안정한 오러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출력시켜 내느냐의 차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러는 정신의 영향을 받는 힘.

이에 반은 헤글러의 오러가 불안정한 이유로 헤글러 내면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는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꼽았다.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던 게지. 안정된 직장도 집도 가지게 되었지만 디알로에게 쫓기고 있다는 사실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혔던 거야.’

그래서 반은 헨리와의 협의 끝에 직접 그 불안함의 원인을 없앨 수 있게 이러한 무대를 마련해 준 것이었다.

‘자, 어디 한번 마음껏 날뛰어 봐라. 그리고 네 힘으로 똑똑히 증명해 내라. 네가 쓸 만한 놈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짧은 기간이었지만 헤글러는 믿을 만한 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은 더더욱 헤글러가 성장하기를 바랐다.

“크아아악!”

바닥에 쓰러지는 사병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헤글러의 오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켜 몸집을 불려 내는 끔찍한 화마처럼 말이다.

기세가 흉흉했다.

적들을 베어 넘길수록, 그동안 마음고생을 했던 만큼의 울분들이 분노의 화약이 되어 오러를 더더욱 이글거리게 했다.

이제 남은 병사는 고작해야 셋이 전부였다.

“뭐, 뭣들 하고 있는 거냐, 대체! 왜 열 놈이서 한 놈을 못 이긴단 말이더냐!”

불여우처럼 웃던 디알로의 눈에 드디어 조바심이 드러났다.

그리고 조바심은 역성이 되었고 커져만 가는 역성은 점점 더 병사들을 위축케 했다.

“비켜라.”

방금 막 한 놈을 베어 넘긴 헤글러가 칼끝을 치켜들며 병사들에게 말했다.

눈빛에 살기와 분노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 눈빛을 본 폴암과 메이스를 든 두 병사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있는 힘껏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서걱!

두 병사가 줄행랑을 택한 순간, 가장 뒤편에서 디알로를 지키던 검사가 검을 휘둘러 두 병사를 베어 냈기 때문이다.

“쯧, 한심한 놈들 같으니.”

검사는 검날에 묻은 핏물을 털어 냈다. 그리고 태연스러운 표정으로 헤글러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오랜만이구나, 헤글러.”

전신에 풀 플레이트 메일을 걸치고 콧잔등에 긴 검흔을 가진 남자.

그는 덱스터가의 유일한 권속이자 유일한 소드 마스터이기도 한 사병대장, 웨이퍼였다.

“웨이퍼!”

디알로를 폭행하고 도망치던 날.

하마터면 덜미를 잡힐 뻔하였다. 바로 저 웨이퍼라는 남자 때문에 말이다.

그는 마스터의 경지를 이룩한 베테랑 검사였으며, 한때는 제국군에서 복무하기도 했던 명망 높은 기사 출신이기도 했다.

“상사의 이름을 멋대로 부르다니, 범죄자 주제에 건방지구나.”

“웃기는 소리!”

웨이퍼의 말대로였다.

헤글러 또한 한때는 덱스터군에 소속된 몸이었으니 웨이퍼는 헤글러의 상사가 맞았다.

가벼운 조롱.

과거의 위계질서를 들먹이며 자신을 모욕하는 웨이퍼를 향해 헤글러는 쏜살같이 검을 쑤셔 넣었다.

그런데.

카앙!

“도망자 신세 주제에 꽤나 잘 먹고 다닌 모양이로군.”

“……!”

그러나 예상 밖의 결과가 벌어졌다.

당연히 웨이퍼의 검을 베어 낼 줄로만 알았던 헤글러의 검이 거짓말처럼 멈춰 섰기 때문이다.

“표정을 보니 꽤나 놀란 모양이로군.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따위 오러로는 날 베기는커녕 토끼 한 마리도 죽일 수 없을 것 같은데?”

“허튼소리이!”

츠즈즈즛!

웨이퍼의 조롱에 헤글러의 분노가 더더욱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헤글러의 감정에 영향을 받아 오러 또한 덩달아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호오?”

이젠 거의 헤글러의 키만큼이나 더 높은 오러가 허공에 넘실거렸다.

실로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이에 웨이퍼가 흥미롭다는 듯이 입술을 오므렸으나 이내 곧 입꼬리를 올려 보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서걱!

신장의 두 배를 훌쩍 넘는 헤글러의 오러를, 웨이퍼는 허수아비를 자르듯이 너무나도 손쉽게 잘라 내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맞부딪히는 검.

그로 인해 순식간에 헤글러의 기세가 수그러들고 말았다.

결국 오러 또한 검사가 가진 기운의 일부.

그런 기운을 직접 잘라 냈으니 기세가 수그러드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크흑!”

그러나 헤글러는 끝끝내 검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마치 낭떠러지에 매달린 것처럼 손가락이 부들거렸지만, 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손에서 피가 났다.

엄청난 압력에 살가죽이 벗겨지고 손 가죽이 쓰라렸다.

그것을 본 웨이퍼가 말했다.

“그래도 간만에 제법 쓸 만한 놈이 들어왔다고 기뻐했었는데 말이지. 대체 왜 그런 것이냐?”

이유를 뻔히 알면서도 물었다. 그만큼 웨이퍼에게 있어 부하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냉혈한과도 같은 가치관이 웨이퍼의 정신을 안정시켰던 것이었고 그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이 그를 마스터의 경지로 끌어올렸던 것이었다.

이에 헤글러가 매서운 눈빛을 번뜩이며 웨이퍼를 노려보았다.

“너 같은 놈 따위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글쎄, 그따위 이해는 내 쪽에서도 사양이라서 말이야.”

챙캉!

대답과 함께 웨이퍼는 검을 밀어냈다. 그리고.

서걱!

대각선으로 그어지는 검.

여태껏 한 손으로 검을 다루던 그가 두 손으로 검을 잡고 헤글러의 몸뚱이를 대각선으로 베었다.

검은 한 치의 막힘이 없이 부드럽게 그어졌다. 마치 두부를 자르듯이 말이다.

그리고 웨이퍼의 검이 지나간 자리로부터 헤글러의 붉은 혈흔들이 울컥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흑!”

콰직!

검을 지팡이 삼아, 헤글러는 쓰러질 뻔한 것을 가까스로 버텨 냈다.

그러나 상처가 너무 깊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헤글러의 오러가 출력량이 월등하다고는 하나, 마스터의 경지를 이룬 웨이퍼의 오러와는 그 경도의 차이가 나무와 무쇠만큼이나 달랐기 때문이다.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냐?’

그리고 그런 헤글러를 보며 반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사태를 관망했다.

아니,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자신이 개입하면 헤글러는 평생 성장하지 못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죽이지는 않겠다, 헤글러. 백작님의 말대로 네놈은 그냥 죽이기엔 그 죄질이 너무나도 크기에 평생에 걸쳐 그 죗값을 치르게 해 주마.”

“크크크, 그래! 역시 웨이퍼다! 역시 내 하나뿐인 권속이야! 웨이퍼! 너에겐 저놈의 딸년을 포상으로 내리겠다!”

“감사합니다, 백작님.”

아비를 눈앞에 두고 그 아비의 딸을 욕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무너지게 되면 그 말이 진짜 현실이 되리란 것을 헤글러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너무 깊었다.

쏟아지는 혈액이 너무 많았고 벌써부터 현기증이 일기 시작했다.

“크크크, 니아라고 했던가? 가만 보자, 그년 나이가 올해로 네 살이라고 했던가? 네 살이면 어른이지, 암! 어른이고말고. 그러니 충분히 교육시켜 줄 필요가 있겠어, 이히히히!”

역겨웠다.

현기증에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지만 두 귀로 흘러 들어오는 끔찍하고 역겨운 소리만큼은 너무나도 뚜렷하게 들려왔다.

‘안 돼!’

불가항력으로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그래서 지팡이처럼 바닥에 세운 검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잡았다.

“소나 그년은 치아를 다 뽑은 다음 평생 동안 내 욕받이로 써먹어야겠어. 난 앵앵거리는 년은 딱 질색이거든!”

무너지는 헤글러를 보며, 조바심을 내비쳤던 디알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느새 헤글러의 코앞까지 다가와 헤글러를 모욕하기 시작했다.

‘결국 여기까지인가?’

결국 사태를 지켜보던 반은 팔짱을 풀 수밖에 없었다.

가망이 없어 보였다. 아무리 헤글러가 걸출한 재능을 가진 검사라곤 하지만 스스로가 깨닫지 못하면 결코 넘을 수 없는 것이 마스터의 경지였다.

이에 반의 오른손이 허리춤에 찬 검 손잡이에 오르려던 순간이었다.

철걱.

‘음?’

헤글러의 꿇었던 무릎이 당겨지며 다시금 대지를 밟았다.

“호오? 그 공격을 받고도 일어나겠다는 것이냐?”

철걱.

굽혀졌던 무릎이 올곧게 펴지며 두 다리가 다시금 땅 위를 곧게 디뎠다.

‘헤글러, 저놈이 설마?’

좀비처럼 일어서는 헤글러.

그가 땅 위에 두 발을 뻗고 다시 일어서자 불꽃처럼 타오르던 오러가 점점 그 기세를 수그러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크기가 보일 듯 말 듯한 아주 작은 얇은 막으로 잦아들었을 때였다.

“죽……인……다아…….”

“의지는 칭찬해 주지. 좋다! 그럼 어디 한번 베어 보아라. 네놈이 얼마나 나약하고 하등한 놈이지, 그리고 그 힘으로 네 가족조차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깨닫게 해 주마.”

기만이 하늘을 찌르는 웨이퍼는 기어코 자신의 검을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흰자위가 돌아간, 정신을 잃은 채로 움직이는 헤글러에게 두 팔을 활짝 벌려 보였다.

엄청난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익스퍼트 유저의 검기로는 마스터 유저의 육체에 아주 약간의 흠집도 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헤글러는 팔을 들었다.

가까스로 오른팔을 머리 위까지 당겼다. 그런 다음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 화살처럼 팔뚝을 휘둘렀다.

툭, 투두둑, 툭툭…….

“……!”

바닥을 나뒹구는 웨이퍼의 머리.

그리고.

털썩!

최후의 일격을 가한 헤글러가 그대로 뒤로 넘어가 쓰러지고 말았다.

“웨, 웨이퍼!”

생각지도 못한 웨이퍼의 죽음.

이에 디알로가 황급히 웨이퍼의 검을 주워서 쓰러진 헤글러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던 찰나였다.

번쩍!

“끄아아아악!”

푸른 섬광이 번쩍이더니 이내 곧 디알로의 양손이 잘려 나갔다.

반이었다.

반은 잘린 두 손목으로부터 분수 같은 피를 내뿜는 디알로를 멀리 걷어차 보인 뒤, 흰자위를 뒤집은 채 쓰러진 제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미친놈.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이런 식으로 마스터를 이뤄 낼 줄이야.”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나머지, 결국 헤글러는 기절하고 말았다.

하지만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헤글러의 처절한 무의식이, 육체를 지배함과 동시에 맨정신으로는 넘을 수 없었던 마스터의 경지를 훌쩍 뛰어넘게 만들었다.

“내 손! 내 소오온!”

“거참, 시끄러운 놈일세.”

이윽고 반은 양손이 잘려 울부짖는 디알로에게 다가갔다.

그런 후 품속의 종이 한 장을 꺼내 디알로의 얼굴에 들이밀며 말했다.

“잘 봐. 이게 바로 아이젠 대후작님께서 직접 내리신 면죄부라는 거다. 이 시간부로 헤글러의 죄는 모두 사면 처리 되며, 이 이후의 보복은 쇼난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겠다.”

“뭐, 뭐라고? 지, 지금 대체 그게 무슨……!”

“불만 있으면 직접 찾아오든가. 아 참, 그리고.”

서걱!

반의 검이 디알로의 고간을 관통했다.

소변처럼 축축이 바지를 적시는 혈액. 검 끝에 자그마한 살점이 뜯겨 나가는 이물감이 들었다.

“너야말로 쉽게 죽이지는 않으마. 그리고 남의 여자를 탐하려던 죗값으로 두 손과 그곳을 가져갈 테니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고.”

털썩!

그 강렬한 고통에 그만, 디알로는 끝끝내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반이 쯧쯧 혀를 차며 힐링 포션 한 병을 꺼내 디알로의 몸 위에 뿌려 주었다.

이대로 과다 출혈로 죽어 버리기엔 그 죗값이 너무나도 막대하였기에.

“오래오래 살아라. 바퀴벌레처럼 질기고 튼튼하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