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47화 (47/522)

# 47

하즈 시장 (2)

생각지도 못한 부탁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묘하게 우습기까지 했다.

“허락하마.”

헨리가 흔쾌히 허락하자 곧 헨리의 어깨 위에 눈처럼 새하얀 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 실컷 보아라.”

클레버가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지막한 감탄사.

-우와…….

순수한 감탄. 고양이의 입에서 사람의 감탄사가 나오니 제법 우스운 모양새가 그려졌다.

“바다는 처음이냐?”

클레버는 평생을 마계와 마물의 숲에서 보냈기에 인간계의 바다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계에도 비슷한 곳이 있긴 했지만 물빛이 새카만 오물처럼 생겼습니다.

“그럼 감탄할 만도 하네.”

둘은 한동안 수평선을 따라 걸으며 조용히 대자연의 평화를 즐겼다.

이윽고 클레버가 물었다.

-주인님, 반이라는 사람이 정말로 여기에 있을까요?

“아마도.”

-확신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녀석은 똑똑한 애국자거든.”

-예?

‘당돌한 놈이었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왕의 목을 베어 바쳤으니.’

통일 전쟁 시절, 앙켈만은 원래 조그마한 영토를 가진 작은 왕국이었다.

그래서 헨리는 왕국을 공격하기에 앞서 교섭단을 꾸려 앙켈만의 왕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애초에 군사력이 약한 곳이었으니 무의미한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앙켈만의 왕은 이를 거절했다.

그는 왕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항쟁하겠다며 헨리에게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사건은 그 직후에 벌어졌다.

서걱!

교섭 자리에 있던 반이 협상이 결렬되자마자 왕의 목을 베어 버린 것이다.

“네 이놈,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이에 놀란 총사령관이 고함을 지르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반은 총사령관의 목까지 단칼에 베어 버렸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당시의 반은 앙켈만의 유일한 소드 마스터로,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그 실력을 인정받아 부사령관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과 사령관의 목을 베어 넘긴 반이 이윽고 담담한 목소리로 주변인들에게 말했다.

“이제 앙켈만에서 나보다 높은 사람은 없다. 불만이 있다면 지금 즉시 칼을 뽑아라, 도전을 받아 줄 테니.”

왕국의 유일한 소드 마스터가 반란을 선언했으니 그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못했다.

이로써 부사령관은 왕국에서 가장 높은 서열로 등극하게 되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반은 그제야 헨리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 이름은 반이라고 합니다. 저희 앙켈만은 저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교섭단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앙켈만 국민이 제국의 노예가 된다면 저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어쩌시겠습니까, 헨리 경?”

그것이 반과 헨리의 첫 만남이었다.

‘완전히 미친놈이었지.’

누군가는 반에게 배포도 없는 놈이라며 손가락질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헨리가 보기에 반은 현명한 애국자였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전쟁은 애꿎은 국민들만 피를 흘릴 뿐이다. 그럴 바엔 오만한 지도자의 머리를 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헨리는 앙켈만을 귀족령이 아닌 제국에서 관리하는 자유도시로 지정해 주었다.

그리고 그를 계기로 두 사람은 부쩍 가깝게 지내면서 두터운 신분을 쌓아 갔다.

‘반이 내가 말한 대로 움직였다면 녀석은 반드시 앙켈만에 있을 것이다.’

먼 훗날, 귀족들의 음모로 인해 동료들이 모두 당하고 헨리는 혼자 남게 되었다.

그 때문에 헨리는 먼저 간 동료들의 식솔들을 챙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먼저 간 동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도리였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헨리의 발목을 붙잡는 무거운 족쇄가 되었다.

무거운 책임이었다. 평생토록 결혼도 하지 않았던 헨리에게 챙겨야 할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희생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헨리는 귀족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나누어 주며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그것 또한 헨리가 저지른 큰 실수 중 하나였다.

귀족들은 호랑이의 이빨과 발톱을 모두 빼앗자 이번에는 가죽을 탐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헨리는 일찌감치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고 측근들에게 유언 아닌 유언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너희들을 지켜 줄 힘이 없다. 그러니 너희들은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겨라. 내가 죽고 나면 다음은 너희들 차례일 테니.’

측근 중에는 당연히 반도 포함되어 있었다. 헨리와 친분을 쌓는 동안 그에게 ‘헨리의 검’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였으니까.

이후, 헨리의 측근들은 헨리의 명령대로 다들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헨리는 자신의 검이라고 불렸던 남자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그가 가장 사랑했던 도시에 왔다.

‘우선은 하즈 그놈부터 만나야겠지.’

하즈는 헨리와 반이 직접 임명한 앙켈만의 2대 시장이었다.

원래는 원칙대로 연고지가 없는 인물을 초대 시장으로 앉혔으나, 초대 시장의 부정부패가 워낙에 심한 나머지 반이 직접 시장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래서 두 번째 시장만큼은 헨리와 반이 꼼꼼히 골라 은행원 출신의 하즈라는 남자를 시장직에 앉혔다.

하즈를 고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는 수에 밝고 유능한 인물이었지만 겁이 많아 반을 몹시 두려워했는데, 그 덕분에 앙켈만은 깨끗하게 운영될 수 있었다.

헨리는 한가롭게 거닐던 산책을 멈추고 인근의 빵집에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빵집에 들어서자 주근깨가 잔뜩 있는 젊은 소년이 헨리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실례지만 말씀 좀 묻겠습니다.”

“넵! 얼마든지요.”

어린 종업원은 귀티가 폴폴 나는 남자가 자신에게 경어를 사용하자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하즈 시장님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시장님요? 시장님이야 당연히 알고 있죠.”

“그럼 혹시 하즈 시장님이 퇴임하신 후 어디에 계시는지도 알고 있습니까?”

하즈 같은 고위 공무원의 근황을 알아보기엔 이런 빵집처럼 시민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제격이었다.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지만 공무원에 대한 평판이나 근황은 기가 막히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퇴직요? 설마 시장님께서 퇴직하셨나요?”

“네?”

“아닌데? 그저께까지만 해도 시장을 돌면서 상인들을 격려하시는 걸 내 눈으로 봤었는데?”

헨리의 질문에 종업원이 의아해했다. 그리고 그런 종업원의 대답을 들으며 헨리 또한 의아해했다.

‘하즈가 아직까지 시장이라고?’

하즈는 헨리와 반이 앉힌 인사였다. 그래서 헨리는 당연히 숙청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하즈가 시장직을 박탈당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하즈는 여전히 이곳의 시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상했다. 하즈가 일을 잘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결코 청렴한 것은 아니었다.

하즈의 청렴함은 반의 주기적인 감사에서 나오는 것이었기에, 결국은 반에 대한 공포 때문에 깨끗한 일 처리를 해냈던 것이다.

“그럼 시장님에 대한 평판은 좀 어떻습니까?”

“하즈 시장님은 그야말로 최고의 시장님이시죠. 벌써 십수 년째 단 한 번의 부정부패도 없이 훌륭하게 도시를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심지어 평판까지 좋았다. 반이 사라지고 난 후 반의 직접적인 감사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확실히 수상하군.’

이제 황궁에는 부정부패의 상징인 더러운 귀족 놈들만 남게 되었다.

윗물이 썩으면 아랫물도 썩는 법.

하지만 그 겁쟁이 하즈가 썩지 않았다는 건, 필시 하즈를 압박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였다.

‘설마 반이?’

별안간 헨리의 머릿속에 기묘한 퍼즐들이 맞춰졌다.

이후 헨리는 종업원에게 1실버짜리 은화를 팁으로 건네준 뒤 빵집을 벗어났다.

“클레버.”

-예, 주인님.

“마물의 숲에서 수거했던 킨 머시룸의 포자, 아직 가지고 있지?”

-당연히 갖고 있습니다. 포자 하나 죽지 않고 전부 팔팔하게 말이죠!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선 자신이 직접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선 하즈를 직접 만나 볼 필요가 있었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만날 수는 없었다.

헨리는 이제 아무 이유 없이 고위 공무원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신분이 아니니까.

“어디 그럼 명분을 한번 만들어 볼까?”

해가 지고 밤이 깊어졌을 무렵, 헨리는 클레버와 함께 하즈를 만나기 위한 밑 작업을 시작했다.

* * *

촌타는 앙켈만에서 나고 자란 전형적인 어부였다.

그는 배를 타는 대신 양식업으로 생계를 잇는 양식업계의 큰손이었는데, 그가 다루는 품종은 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해산물 중 하나인 ‘그릴새우’였다.

촌타는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새우들의 밥을 주기 위해 양식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거대한 양식장에 10개의 칸을 나누어 사용했는데 항상 1번 양식장에 있는 새우들부터 밥을 주었다.

그런데 밥을 주려고 양식장의 불을 밝힌 순간, 촌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뭣이여?”

1번 양식장을 까맣게 뒤덮은 정체 모를 불청객들.

처음엔 그것이 이끼나 녹조류 같은 것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석탄가루를 닮아 있었다.

게다가 한층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양식장 벽면에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버섯들이 가득했다.

“아, 안 디야! 곧 수확해야 할 시기인디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이래!”

포자들은 이미 그 안에서 헤엄치고 있던 수많은 새우들을 잡아먹은 뒤였다.

“자, 잠깐. 설마 옆에도?”

1번 양식장을 보고 넋이 나간 것도 잠시, 촌타는 문득 바로 옆에 위치한 2번 양식장의 존재가 떠올랐다.

“흐, 흐미!”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1번 양식장에서 넘어온 포자들이 2번 양식장의 새우들을 잡아먹기 위해 조금씩 점령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으악! 이게 뭐야?”

“이, 이거시 뭔 일이당가!”

피해자는 촌타뿐만이 아니었다.

앙켈만에서 양식업을 하는 대부분의 어민들이 킨 머시룸 포자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 킨 머시룸의 끈질긴 번식력 때문에 어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장님! 좀 나와 보셔유!”

“좀 나와 보랑께! 지금 업장에 난리가 났구만!”

“아이고! 내 새우! 내 새우우!”

피해를 입은 어민들은 한데 모여 꼭두새벽부터 시청 문을 두들기며 피해를 호소했다.

“이게 무슨 소란이야?”

덕분에 하즈 또한 새벽부터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웰, 밖에 무슨 일이야?”

“양식업자들입니다. 아무래도 양식장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일? 뭐, 도둑이라도 들었대?”

“듣기로는 석탄가루처럼 생긴 이끼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끼?”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수십 명에 달하는 어민들이었다.

게다가 몰려든 어민들 상당수가 앙켈만에서 내로라하는 큰손들이었다.

“끙…… 이거 골치 아프게 됐네. 전염병 같은 건가? 피해 규모는 얼마나 돼?”

“벌써 양식장 두어 개를 날려 먹은 어민들이 상당수입니다.”

“미치겠군.”

사실 천재지변에 의한 피해는 시청에서 보상해 줄 의무가 없었다.

그들이 아무리 앙켈만의 토박이 어민들이라고 해도, 어찌 됐든 그들의 양식업은 개인적인 사업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손 놓고 방관할 수만은 없었다.

앙켈만의 큰손인 그들의 세금이 시청 입장에서는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민들 중 일부는 상인들에게 선박을 빌려주는 부가적인 경제활동도 함께 하고 있었다.

“당장 수의사들과 사제들에게 연락해.”

그러니 결국 하즈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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