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하즈 시장 (3)
“뭐? 모르겠다고?”
“예. 수의사들이 말하길, 애초에 자기들은 이끼를 연구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자기들이 보기엔 이끼가 아니라 버섯의 포자 같다고 했습니다.”
“버섯이 왜 양식장에서 나? 그럴 수도 있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사제들은? 사제들은 뭐래?”
“기도해 주고 갔답니다.”
“뭐?”
“양식장에서 일어난 일인지라 자기들이 해 줄 수 있는 게 달리 없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럼 뭐, 축복이라든가 성수 같은 거라도 좀 뿌려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가 매달 지급해 주는 종교 보조금이 얼만데 기도만 하고 땡이야?”
“시장님, 사제들이 만능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오, 이 쓸모없는 종교쟁이들 같으니!”
“그거 신성모독입니다, 시장님.”
“난 신 안 믿어!”
사실 처음부터 사제들에게 큰 기대를 걸진 않았다. 하지만 사제들이 기도를 올리는 쇼맨십을 보여 준 덕분에 당장의 불만을 잠재울 순 있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임시방편일 뿐, 지금 하즈에게 필요한 것은 이 사태를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시장님, 귀인께서 시장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시는데요.”
시청 입구를 지키던 병사가 하즈에게 귀인의 방문을 알렸다.
“귀인?”
“예. 은으로 된 신분 패에 푸른색 별이 3개 정도 박혀 있었습니다.”
“귀인 맞네.”
그러나 하즈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근데 지금은 안 돼. 바빠 죽겠는데 귀인이랑 노닥거릴 시간이 어디 있어?”
평상시라면 모를까, 하필이면 비상사태가 터졌을 때 방문하였기 때문이다.
“웰, 네가 가서 어디 쉴 곳이라도 마련해 드리고 와.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고, 지금 우리 사정 좀 잘 말씀드리고.”
“알겠습니다.”
하즈가 웰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병사가 우물쭈물하며 어렵게 대답을 내놓았다.
“저…… 시장님.”
“뭐야? 아직도 안 내려갔어?”
“귀인께서 말씀하시길, 지금 양식장을 위협하고 있는 포자들을 해결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만…….”
“뭐? 그걸 왜 지금 말해!”
병사의 말을 들은 하즈는 그제야 부리나케 응접실로 달려갔다.
* * *
“귀인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즈는 응접실에 도착하자마자 헨리에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저도 시장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귀인께선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헨리 모리스입니다.”
흠칫.
헨리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자 하즈의 얼굴근육이 크게 움찔거렸다.
“헤, 헨리 모리스요?”
“하하, 너무 놀라실 것 없습니다. 처형당한 대마법사와 이름이 같아 종종 놀라시는 분들이 있는데, 단순히 동명이인일 뿐입니다.”
대답과 함께 헨리는 자신의 신분 패를 내밀어 보였다.
‘정말이군.’
은으로 된 신분 패와 거기에 박힌 3개의 별. 확실히 동명이인임을 증명하는 물건이었다.
“제가 결례를 했군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이런 이름을 지어 주신 아버지를 원망해야겠지요.”
“아닙니다! 아주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가요?”
“예. 아, 참! 그건 그렇고, 듣기로는 이번 양식장 사태에 도움을 주실 수 있다고요?”
“아, 물론입니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양식장을 보았는데, 거기에 제가 아는 익숙한 것들이 있더군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정체불명의 포자들에 대해 헨리가 알은체를 하자 하즈의 눈동자가 심히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포자입니다. 마계 버섯이라 불리는, 킨 머시룸이라는 버섯이죠.”
“마계 버섯요?”
“예. 우선 마계 버섯에 대한 설명을 하기 전에 제 소개를 간략히 하자면,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물의 숲에 위치한 칼리번 요새에서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그래서 별을 3개나 가지고 계셨던 거군요.”
“그렇습니다. 당시의 저는 특임대의 소대장으로 활동했는데, 양식장에서 발견된 킨 머시룸의 포자와 똑같은 것을 마물의 숲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마물의 숲에서요?”
“그렇습니다. 녀석들은 아주 지독한 놈들입니다. 보통의 기생식물들처럼 숙주의 영양분을 흡수하되 번식에 대한 욕망이 강한 놈들인지라, 잠깐만 방치해 두어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번식해 버리는 게 특징이죠.”
“그,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다행히 놈들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던 저는 놈들을 퇴치하는 방법을 알고 있긴 합니다만…….”
“합니다만?”
“흠흠, 일단 시장님과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헨리가 헛기침을 해 보이자 눈치 빠른 웰이 즉각 고개를 숙인 후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이제 이 방에는 우리 둘뿐입니다.”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헨리 경께선 어떠한 사례를 원하십니까?”
눈치가 빠른 것은 하즈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즈는 사족을 붙이지 않고 즉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킨 머시룸은 상당히 지독한 놈입니다. 대체 어떤 경로로 마계 버섯이 앙켈만으로 유입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이놈들이 뿌리를 내렸다면 완전한 제거는 불가능합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도 임무를 나갈 때마다 필요한 만큼만 제거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으음…….”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질 것 같은 예감에 하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지속적인 관리, 그 말인즉슨 지속적인 예산이 필요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인데…… 저를 고용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헨리 경을요?”
“이런 일에 대해선 제가 전문가입니다. 어차피 얼마 전에 전역한 뒤로 마땅한 일거리도 없는 몸, 저를 고용해 주신다면 어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확실하게 관리해 드리겠습니다.”
“으음…….”
고민하는 기색.
계획에 없던 지속적인 예산의 지출은 그로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대해선 충분히 논의를 거친 뒤에 답변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그럼 일단 현재 양식장에 분포되어 있는 녀석들부터 좀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거래는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난 뒤에 진행하고 싶었다.
하즈가 조바심을 보이자 헨리 또한 서둘러 조건을 제시했다.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죠. 그런데 시장님, 아직 제 보수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만…….”
“아차차, 제일 중요한 걸 깜빡하고 있었군요. 그래서 보수로 얼마나 지급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500골드.”
“예?”
“이번 일에 대한 보수로 저는 500골드를 원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헨리가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하자 하즈는 자기도 모르게 발끈하고 말았다.
“아니, 헨리 경! 500골드라니요! 500골드는 너무 많지 않습니까?”
“시장님.”
“예?”
“놈들은 무려 마물의 숲에서만 발견되던 마계 버섯입니다. 저 또한 목숨을 걸고 겨우 개발한 퇴치법인데 어떻게 500골드가 적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그, 그거야 그렇지만…….”
한 번의 청소로 500골드는 과한 액수가 맞았다.
하지만 헨리는 이 정도 액수는 불러야 하즈에게서 반감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깝겠지. 이번에 500골드를 주고 나면 다음번에도 500골드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 테니까.’
예산을 집행하는 시장 또한 결국엔 숫자 놀음을 하는 장사꾼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장사꾼은 이익을 남겨 부를 쌓아야 했고 공무원은 예산을 아껴 실적을 쌓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상 범위 이상의 숫자는 의심과 불만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특히 그것이 지출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시장님이 지금 이렇게 고민하시는 동안에도 어민들은 계속해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단지 액수만 밝혔을 뿐인데 은인에서 사기꾼으로 대접이 바뀐 듯했다. 하지만 헨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시장을 재촉하기에 바빴다.
‘이놈 이거……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나는데 딱히 증거도 없고 이것 참…….’
수상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썬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하즈는 결국 고심 끝에 헨리의 제안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먼저 헨리 경의 능력부터 입증해 주시지요. 보수는 그 이후에 지급하겠습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 * *
500골드짜리 약속을 받아 낸 헨리는 하즈와 함께 개선장군처럼 어민들 앞에 나타났다.
“이분이 악성 포자들을 제거해 주실 겁니다.”
“오오, 이분이!”
“저희 어장부터 좀 봐 주십시오! 벌써 양식장 3개가 놈들한테 먹혔습니다!”
“내가 먼저 왔어, 왜 이래!”
“자, 자! 다들 싸우지 마시고, 가까운 곳부터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도시에는 이미 양식장이 오염됐다는 소문이 퍼져 수많은 구경꾼들이 몰린 상태였다.
하지만 헨리에겐 구경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었다. 여론을 등에 업을수록 하즈의 고민은 깊어져만 갈 테니까.
퇴치 작업은 금방 이루어졌다. 애초에 클레버가 뿌린 포자들을 다시 거두기만 하면 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다만 포자들을 거둘 땐 구경꾼들의 시선을 현혹시킬 만한 약간의 쇼를 선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헨리는 소금과 모래를 섞어 만든, 포자 퇴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가루들을 양식장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하즈가 물었다.
“지금 뭘 뿌리시는 겁니까?”
“퇴치 가루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놈들을 빠르게 제거할 수 있거든요.”
“혹시 퇴치법이란 게 이걸 말씀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아까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주기적으로 뿌려 줘야 합니다. 놈들이 언제 다시 자라날지 모르니까요.”
“그렇군요…… 근데 이 퇴치 가루란 거, 만들기 어려운가 봅니다?”
“예, 그래서 항상 제조법을 들고 다니고 있습니다. 방법이 꽤 복잡해서, 저도 만들 때마다 일일이 레시피를 확인해야 하거든요.”
퇴치 가루의 제조법이 존재한다는 말에 하즈는 더 이상 가루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헨리가 뿌리는 가루들을 유심히 지켜볼 뿐이었다.
‘클레버, 시작해.’
-예, 주인님.
헨리가 포자의 수거를 명령하자 물속에 스며들어 모습을 감추고 있던 클레버가 온몸으로 포자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오오……!”
개방된 체스트 덕분에 포자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저마다 감탄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훌륭한 연출이었다.
“어떻습니까?”
“으음…… 효과는 확실하네요.”
더불어 하즈의 신뢰까지 얻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한참 뒤, 대부분의 양식장에서 포자 문제를 해결하고 나자 어민들은 헨리에게 머리를 숙이며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감사하구만요. 선생님 덕분에 겨우 한숨 돌렸습니다요.”
“저한테 감사하실 것 없습니다. 이번 일은 시장님께서 발 빠르게 대처해 주셔서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상에, 겸손하시기까지…….”
헨리가 하즈에게로 모든 공을 돌리자 하즈가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해 보였다.
“흠흠. 헨리 경, 저 또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차피 돈 받고 하는 일인데 그렇게까지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하, 뭐 그렇긴 하죠……. 그나저나 헨리 경, 그런데 말입니다.”
“예?”
“아까 전부터 쭈욱 생각해 봤는데…… 헨리 경께서 직접 퇴치 가루를 뿌리시는 것보다 그냥 저희에게 제조법을 판매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편이 훨씬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요.”
예상했던 대로 하즈는 훨씬 나은 효율성을 위해 헨리에게 제조법의 판매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를 예상하고 있던 헨리는 계획대로 제안을 거절했다.
“그건 좀 곤란합니다.”
“예?”
“시장님이 어떤 뜻으로 이런 제안을 하시는 건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군 복무의 결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제조법을 남한테 쉽게 넘긴다는 게 좀 마음에 걸려서 그럽니다.”
“그렇군요. 혹시나 해서 여쭈어 본 것이니 너무 기분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혹시 지금 따로 묵고 계신 곳은 있으십니까?”
과연, 하즈는 노련한 사람이었다. 헨리가 제안을 거절했다고 해서 결코 기분 나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되려 다른 이야기를 꺼내 자칫 어색해질 수도 있는 분위기를 재빨리 환기시켰다.
“오늘 막 도착해서 아직 숙소를 정하진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헨리 경을 위해 따로 예약해 둔 호텔이 있는데 그리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저는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장님.”
“아닙니다, 오히려 모실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 * *
에스코트는 그의 비서관인 웰이 대신했다.
방에 도착하자 웰은 하즈를 대신하여 헨리에게 보수를 지급하며 말했다.
“시장님께서 업무가 바빠 함께 식사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공사가 다망한 분이신데 괜찮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인사를 마친 웰은 가볍게 묵례를 한 후 조용히 방을 나섰다. 그가 건넨 주머니에는 백금화 5개가 들어 있었다.
“부업치곤 쏠쏠하네.”
이로써 계획한 작업들이 모두 실행되었다.
보란 듯이 먹음직스러운 미끼들을 사방에 뿌려 놓았으니, 이제 남은 일은 고기가 미끼를 물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아주 느긋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