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210화 (210/248)

6일 동안의 특별 훈련은 레오의 예상 외로 흘러갔다.

“...이게 왜 되지?”

실망한 것이 아닌 인정하는 의미에서 레오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상보다 순조롭고 빠르게 저들의 실력은 성장해갔다.

[...훈련 시킨 놈이 할 말이야?]

“그래도 예상한 정도라는 게 있잖아.”

아리아스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레오 본인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시점에서 예상한 수준을 아득히 넘겼다.

“어둑시니님께서 감탄할 수준이라니... 다행히 흑암의 명예는 지켰군요.”

세 명의 크리스은 여섯 자루의 얼터 블레이드를 공중에 띄우며 자랑스럽게 엄지를 들었다.

분신을 쓴다는 시점에서 어떻게 한 것인지 레오에게는 원리와 노력이 눈에 선했다.

“너희들도 대단한데? 기대 이상이야.”

“...하...하... 이젠 3분 정도죠...?”

“사랑의 힘으로...! 극복했습니다아...!”

저번보다 치료하기 힘든 출혈 형태와 복합 골절임에도 루미네와 리오스는 회복 속도를 몇 배는 단축시켰다.

레오나 아리아에 비하면 느린 축이었지만 서포트 역할에 가까운 저 둘이 저런 재생능력을 갖춘다면 전력으로서 두 단계 정돈 진화한 것이었다.

“...너희들, 내가 시키는대로 안 하고 뭐 더 했지?”

미소를 짓던 레오나르도는 정색한 표정으로 그 셋에게 따지듯 물었다.

자신들의 성과에 자랑스러워하던 세 명은 그 한 마디에 싸늘한 공기를 체감했다.

레오의 추리대로 자신들은 레오의 계획과는 달리 더한 훈련으로 몸을 혹사시키고 단련했다.

칭찬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혹여나 레오가 계획했던 훈련에 차질을 만든 것이 아닐까 불안감이 정신에 엄습했다.

{스스로 노력하고자하는 향상심을 폄하거나 질책을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들 또한...}

“누가 질책을 한다고 했어?”

그 기류 속에서 앤젤라는 저 어린 양들을 위해 자애로운 변호를 했지만, 레오는 애초에 저들을 문책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확인할게 있을 뿐.

“보통 동기가 있기 마련이잖아. 갑자기 이런 훈련에 필사적으로 변한 이유가 있나 싶어서.”

크리스의 어검술은 넘어간다 쳐도 루미네와 리오스의 훈련법은 자해를 동반하는 고문의 형태, 아무리 근성이 있더라도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습성이었다.

그걸 극복한다는 건, 의지를 자극하는 동기가 없고서야 불가능했다.

“...그건...”

진정한 동기는 레오가 짜낸 계획 기간보다 빨리 능력을 습득해야했기 때문, 레오가 생각한 2달의 여유는 존재하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레오 본인에게는 설명할 수 없었다.

[‘말하지 마. 합리적으로도 알게 하는 건 위험해.’]

마왕의 토벌에 레오를 데려가지 못하는 건, 감정적인 문제만이 다가 아니었다.

마왕의 그릇 중엔 레오나르도도 포함되어있을 가능성이 농후했고, 그에 대한 적합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어쩌면 레오라는 인간이 마왕의 강림에 가장 큰 초석이 될지도 몰랐다.

“...발목을 잡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크리스는 최대한 중요한 부분을 감춘 채로 동기를 표명하고자 했다. 거짓말은 능숙지 않았지만 이건 어른으로서 그녀가 직접 대표해야했다.

“라인하르트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숨길지언정 이 마음은 진심이었다. 크리스도, 루미네와 리오스까지도 이 이상의 무리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레오는 항상 그 이상으로 자신의 영혼을 깎아왔으니까.

“...거참, 숨기는 건 못하네. 눈만 봐도 알겠어.”

숨기는 노력과는 무관하게 보자마자 낌새는 대강 알아챌 수 있었지만 말이다.

첫 생에는 크리스를 처음으로 스승으로 모신 레오인 만큼 그녀의 감정 정도는 가볍게 간파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크리스티나는 거짓말에 능숙지 않은 것이 가장 컸다.

“그래도 뭐 기특한 거니까 더 따지진 않을게.”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크리스의 두 눈이 다른 방향으로 뻘쭘하게 돌아가는 걸 보는 것만으로 그다지 추궁할 의도는 없었다.

저런 눈빛만으로 악의적인 모략을 꾸미지는 못할 거라는 게 한 눈에 보였으니까.

“성과를 냈으면 잘했다고 칭찬하는 게 맞잖아? 안 그래?”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크리스의 본체를 바로 찾아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분명 스승보다 작았을 터인 레오의 키는 그녀를 내려다봐야할 정도로 성장해있었다.

“...괘, 괜찮습니다! 그보다 전 이런 걸 받을 나이는 한참 지났는데...!”

크리스는 짐짓 당황한 듯 격조있게 성을 내며 한발이 물러났다. 레오가 싫은 건 아니었으나 영문모를 살기가 몸에 소름을 일으켰다.

“30대는 나한테 애인지라, 예전 생각나네. 그땐 내가 받는 처지였는데 말이야.”

그러건 말건 레오나르도는 나름 옛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에서 기본의 기초부터 배우던 시절에서 이젠 자신이 가르쳐주는 입장이 되니 감회가 기묘하게 새로웠다.

“아, 그렇군요.”

“그렇지. 그 때는 딱히 생각없이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옛 추억에 빠질 틈은 없었다.

레오의 정면에 있는 모두는 입을 떡 벌린 채로 동공을 파들거렸다. 현자도, 앤젤라마저 덜덜 떨리는 입술로 정면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내 레오나르도는 깨달았다.

방금 대답한 이가 누구인지를.

“...아리아, 일찍 나왔네...? 아직 네가 훈련할 시간은 아닌데...”

레오의 뒤에 한참 전부터 있던 아리아스필은 실눈을 뜬 채 웃으면서 말했다. 웃고 있음에도 약간 도드라진 혈관만으로 레오의 혈압이 불안하게 치솟았다.

“아, 레이널드 님께서 고생하시는 것 같아 간단한 간식을 챙겨왔어요. 크리스 님과 즐겁게 훈련하면서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네요~”

굳이 리오스와 루미네가 있음에도 딱 크리스를 찝은 시점에서 아리아가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는지 대강 감이 왔다.

아리아가 든 간식 바구니의 손잡이가 애꿎게 떨리며 압축되는 소리를 내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자자, 아리아 얼른 훈련하자! 간식도 같이 먹고!”

레오는 급히 아리아의 등을 밀며 최대한 상황을 수습했다. 크리스에게 한 행위엔 딱히 별 뜻이 없었지만 아리아의 눈에선 전혀 다른 게 들어왔을 것이다.

“괜찮아요! 지금 분위기도 좋아보이는데...”

“애들아! 너희들 잘하고 있으니까 오늘은 여기서 끝! 푹 쉬어!”

아리아스필이 발로 제동을 걸고 악착같이 삐진 것을 드러내자 뒤끝이 두려운 레오나르도는 급히 달래주러 부랴부랴 몸을 움직였다.

저 남자가 처음엔 아리아스필을 죽이겠다 난리를 치고, 자신이 유일한 맞수이자 필연적 대적자라 말한 것이라는 게 이젠 믿기지도 않았다.

[...나 무서운 생각 하나 들었어.]

{여기서 더 무서울 게 있나요? 현자?}

이미 레오와 아리아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운 성녀였지만, 현자의 노파심은 그것마저 초월한 영역에 있었다.

[쟤 설마 칼렌 후손 딸내미를 저렇게 꼬신 건 아니겠지?]

{...저 오늘만 현자를 안고 자도 될까요?}

[잠은 안 자지만 생각해볼게. 진짜 소름끼치네...]

현자의 말에 모두가 식겁하게 가버리는 레오를 바라보았다. 악의없는 옴 파탈이란 레오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이들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 * *

폭음이 울려퍼진다. 저택 창공으로 광선이 뿜어지며 폭발과 파열의 향연이 지면을 가득 채운다.

이 싸움이 대포로 일어나는 공성전이 아닌 고작 두 인간이 검격이 맞붙치며 일어나는 굉음이라는 걸 아무도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허억...아이고... 이제 좀 쉬자...”

아리아의 성혈투술까지 동원한 폭격에 먼저 지친 레오는 숨을 몰아쉬며 휴전을 요청했다.

“벌써요...? 하아... 전 아직 더할 수 있는데...?”

아까의 뒤끝이 아직도 남은 탓일까 아리아는 체력과 마나 모두 끝에 다다르고 있음에도 괜한 오기를 부렸다.

“...나도 더할 수 있는데...! 그냥 좀 쉬자고...! 간식 다 식었겠다...!”

“...어쩔 수 없네요...! 저도 사실 더는 못 싸우겠어요...!”

“난 싸울 수 있지만 봐주는 거지만 말이야...! 아이고...!”

유치한 말싸움이 오간 끝에 둘은 그대로 자리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이미 연무장은 둘의 전투만으로 크레이터와 균열로 뒤틀려있었지만 지친 둘에겐 그런 것따윈 사소한 문제였다.

“...하... 저 이제 가르친 것도 잘하죠...? 히히...”

아리아스필은 주방장이 싸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물며 배시시 웃어보였다. 잘하는 게 당연해야 했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칭찬을 받고 싶은 게 소녀의 욕심이었다.

“그래... 엄청... 잘해... 그래서 걱정도 되고...”

레오도 샌드위치를 입에 물며 하늘을 응시했다. 하늘은 경험했던 미래와는 달리 맑고 푸르렀다.

“...걱정이요?”

걱정이라는 말에 아리아는 짐짓 당황한 듯 레오의 안색을 살폈다. 설마 아직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인가.

“그냥, 어디가 특별하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네가 너무 잘하니까 괜히 무리할까봐 그러지.”

레오의 걱정은 미묘히 달랐다.

충분히 잘하고 있기에 무리를 서슴치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었다.

“...레오...레이널드 님도 많이 무리하시면서...”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너 성혈투술 쓸 때는 꼭 내부형 위주로 써. 혈액을 방출하는 건 너한테 위험해.”

성혈투술에는 두 가지 형질이 있다.

체내의 혈액을 사용하는 내부형.

외부로 출혈을 사용하는 방출형.

상황에 따라 이를 병행해 사용하는 게 성혈투술의 테크닉이었다.

“...그런가요...? 그래도 외부까지 쓰면...”

“선생님 말 듣는 게 장래에 좋다. 너 재능은 다 괜찮지만 체구가 약간 나보다 작잖아.”

아리아는 몸의 질과 강도는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레오가 양철이라면, 아리아스필은 아다만티움 정도의 강도니까.

하지만 객관적인 체급으로 봤을 때엔 아리아의 체내 혈액은 레오보다 결과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레오의 말에 못 이겠다는 듯 아리아는 그대로 하늘을 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의 걱정은 다른 사람이 말할지라도 지당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야.”

그런 대답을 들으며 레오는 하늘을 본 채로 맑게 웃었다.

이곳의 하늘은 아리아의 눈처럼 맑고 푸르렀고 그 사이에 낀 구름은 아리아의 머릿결처럼 새하얗게 끼어있었다.

“지금은 너랑 같이 마왕하고 싸울 수 있어서. 왠지 어떤 적하고 싸워도 너랑 같이 있으면 안심이 돼.”

“...그....렇군요.”

아리아스필은 그때 레오나르도가 그대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게 다행으로 느껴졌다.

지금 자신의 얼굴은 죄악감과 죄책감으로 뒤섞여있을테니까.

레오가 겪은 시련에 비하면 한참 별 볼 일 없음에도 말이다.

* * *

그림자가 짙게 깔리고

악이 허공을 뒤덮은 곳.

그 존재는 그 장소에서 존재했다.

[이곳을 알아낸 것 같아.]

[어차피 넘어야할 시련이지만 말이야.]

그 존재에는 혼자서 있는 자리에서 다같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용사 아리아스필이 온다면 제압하고 성검을 봉인해야한다. 레오나르도는 그 뒤고.]

[난 이해가 안 간다.]

근엄한 목소리 뒤로 둔한 어투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대화는 되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레오 그 인간이 가장 위험하다. 난 안다. 용사보다 위험하다.]

[확실히, 용사는 강하지만 레오나르도는 위험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 한 곳에서 그 생각을 공유했다.

아리아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이들 중 가장 강했지만 레오나르도는 여태까지 봤던 이들 중에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가치가 있지. 그릇으로서 가치가 있기에 아리아스필보다 나중에 제압해야해.]

[이유 궁금하다.]

지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질문이었지만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그럼 만약 이 상황에서 2대 용사가 죽고 3대 용사가 출현한다면 누가 제일 위험할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일제히 외쳤다.

이건 겪은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레오나르도.]

[그래, 그렇기에 제압만 하고 그릇을 차지하는 게 완승으로 이어지겠지.]

“알겠다.”

이윽고 한 존재밖에 없던 자리에는 또 하나가 새로 나타났다.

[지금 가능한 건 너 뿐이다. 가능한 모든 걸 먹어치워라.]

“그게 나다.”

광전사는 그 존재에게 실현되고 알현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병맛 여담(?)]

“근데 궁금하다.”

[뭐가 말이지?]

“아리아, 레오 애 낳으면 어떡하나?”

[...뭐야 몰라 그건... 생각하기 무서워...]

<본편과는 관계가 없을 겁니다. 없을 거예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