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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211화 (211/248)

고요한 새벽밤, 모두가 잠들고 레오마저도 잠든 어둠의 시각.

아리아스필과 라인하르트는 이미 집결지로 향해가고 있었다.

계획대로 레오나르도는 완전히 배제된 상태, 주둔된 병력은 라인하르트 직계 전원과 일부 방계, 본가에 소속된 정예 기사들이었다.

“...레오, 도중에 일어나지는 않겠죠?”

암습을 하듯 은밀히 바깥으로 군사를 이끌었지만 아리아는 안심할 수 없었다. 레오라면 어떤 수를 써서든 쫒아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현자를 신뢰해야죠. 지금 현자가 강제로 수면에서 깨지 못하게 억제하고 있으니까요.}

레오는 평범한 수면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잠든 것 자체는 평범했으나 현자는 마법으로 강제로 그 수면의 길이를 늘리고 있었다.

현자의 돌이 심장에 있는 것만큼 신체의 시간 감각을 뒤틀어놓고, 수면 상태를 지속시키는 건 다른 때보다 간단했다.

게다가 외부적인 자극으로는 깨지 않도록 레오의 방에는 아인이 호위하고 있으니 이론적으로는 레오는 절대 이 상황을 알아챌 수 없었다.

“게다가 안다고 해도 올 방법이 없습니다.”

레오에겐 집결지부터 토벌 장소까지 전부 기밀로 해두었다. 만약 먼저 가버린 걸 안다고 할지라도 전투에 참여하는 건 불가능했다.

토벌을 벌일 전장 위치조차 모르니까.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

이내 아리아는 더는 걱정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주위에는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각오를 다진 병사들과 동료가 있었다.

용사인 자신이 약한 소리를 해서야 의지가 약해질 뿐이지 사기가 오르지는 않을 거다.

용사으로서의 책임이 처음으로 육체로서 체감되었다.

자신은 용사의 성검을 들고 마왕의 목숨을 치러간다.

성공할 수 있을까, 실패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1회차의 자신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이런 감정을 매순간 느낀다면 레오에게 의지하고 싶어도 홀로 불안히 싸우러 나갈 것이다.

자신이라도...

“...불안해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단련을 쉬지 않아왔잖아요.”

아리아가 처음으로 전투 전에 손을 떨자 루미네는 성인으로서 용사의 정신을 안정시켰다.

루미네도 사실 불안하긴 매한가지였다.

마왕과 직접 상대하러 가는데, 긴장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인간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이긴다는 것만 생각해야했다.

그러기 위해 이 자리에 이르렀고 레오에게 특훈까지 받은 것이니까.

“...네...!”

아리아는 결의를 표명하며 성검을 쥐었다.

다른 때보다도 성검은 손에 완벽히 감겼다. 늘 성검을 발도해왔던 아리아스필이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컨디션은 최고점에 도달해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물러날 수 없었다.

“...도착했군.”

집결 장소까지 군사를 지휘한 글라디오는 혼잣말을 하듯 도착을 알렸다.

집행기사단을 이끈 크리스와 마르켄도 집결지의 막사를 보자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부터 진정으로 마왕과의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오셨습니까?”

이 토벌을 진행한 에일린 템페리우스는 라인하르트 일가를 맞이하고자 직접 나와 그들을 응접했다.

그녀 뿐만 아니라 마탑주들 또한 차례로 잇따라 막사에서 나타났다.

“...아메리...! 네가 왜...?!”

그곳에는 흑탑주 대리 아메리 에스프마저 이 전장에 있었다. 리오스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경악하며 달려갔다.

아메리는 마도구 제작에서 뛰어난 마법사일 뿐, 전장에선 결코 맞지 않는 초짜나 다름없었다.

“...마탑에선 인력 부족이니까요. 게다가 난 마탑주 대리이기 하고요.”

아메리는 공적인 자리인 만큼 평소와 달리 경어를 사용해 리오스를 대했다.

“...하지만 위험하다고! 이 자리는 다른 때와는...!”

“리오스.”

리오스가 흥분한 채로 격조 없이 말하자 글라디오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상황을 상기시켰다.

아무리 친목이 있는 사이일지언정 그런 사사로운 행동과 감정은 발목을 잡을 뿐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쇼. 아메리 흑탑주 대리는 후방지원 담당입니다.”

청탑주를 포함한 다른 마탑주는 그런 기본적인 특성은 고려해 포진을 짰다.

마도구에 해박한 아메리는 후방에서 마도구를 이용한 지원과 서포트를 맡도록 역할을 분담해두었다.

“...아, 그렇군요...”

흥분했던 리오스는 머쓱하게 자리에서 조심히 물러났다. 혹여나 당장 아메리와의 관계가 들킨다면 상황이 곤란할 테니 몸을 사린 것이었다.

‘...오빠도 연애를 참 힘들게 하네.’

이미 아리아스필은 속사정을 전부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순애를 사랑하는 사람치고는 연애 수완이 영 시원치 않은 게 보여 자연히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그럼 전군이 모였군요.”

막사에 가자 다른 조직 소속의 병력들도 집합해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각 조직의 특성이 구별되어 굳이 설명치 않아도 어느 소속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저 정도 수의 적룡기사단... 알만하군. 우선 간을 보겠다는건가.”

적룡기사단의 병력 수는 딱 보낼 만큼 보낸 감이 컸다. 숫자 자체는 많았지만 이름을 떨친 맹장과 거물들은 한두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매도할 수는 없지만, 마르켄은 그런 안일한 의도가 눈에 보여 찌푸리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가주님. 용사님은 오랜만에 뵙는군요. 당시엔 추태를 부려 죄송했습니다.”

적룡 기사단을 주둔한 2황자 레굴루스 드라고닉은 다른 때와 달리 진중히 라인하르트 일행에게 허리까지 숙였다.

저 인사와 사과가 단순한 허식은 아닐 것이다.

본래 그는 적룡기사단의 소속은 아니었기에 이 전장에 오지 않아도 됐을 거다.

그럼에도 이곳에 왔다는 건, 라인하르트에 받은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물론 썩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아리아스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마저도 속으로는 그렇게 신랄한 평가를 내렸다.

그나마 병력이 많은 이유에 그가 한몫을 한 걸 생각하면 그 용기는 좋게 평할 만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리아스필 용사님. 전 적룡기사단 2번대 대장인 론 레드리븐입니다.”

적룡기사단의 지시를 담당하는 지휘관은 그 자리에 당당하게 자신의 풍모를 드러냈다.

다른 기사가 봤다면 그 모습은 든든하다 말할 만했지만 라인하르트 직계의 눈에는 기준에 미달에 가까웠다.

해봤자 5성의 오러 코어, 그것도 형성된 마나의 순도는 라인하르트의 것보다도 못할 것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리아는 형식 뿐인 인사로 회답하며 이번엔 신전 측을 바라보았다.

‘...이단 심문관부터 신전 기사회까지.’

신전 측은 용사와 성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듯, 거물급의 인물들이 정예병으로 모여있었다.

군사적 물량은 황실이 담당했다면, 질적인 면모는 신전에서 담당한 것처럼 아리아의 눈에도 익숙한 인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용사로서 신전에 있던 만큼 면식이나 대화가 오간 사제와 성기사도 몇몇 보였다.

“...아.”

그 중에서는 가급적이면 만나고 싶지 않은 악연들도 있었다.

“...오랜만이군요. 용사님, 성인님.”

이단심문관인 갤러위드와 샤를리안.

레오와 아인에 대해 함부로 폄하를 했다 아리아스필에게 합법적인 구타를 당한 두 성기사가 그 자리에 있었다.

“...두 분도 오신 건가요?”

“...마왕을 토벌하는 일이라면 이단 심문관으로서 참여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리아스필은 입으로 매도하진 않았지만 아니꼬운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저들의 싹수가 더러운 건 레오를 폄하하기 전부터 반쯤 감을 잡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기사에 대한 일은 유감을 표합니다. 용사님께서 총애하시던 분이셨는데 불미스러운 일을 겪으셨군요.”

언뜻 듣기에는 레오를 걱정하는 말처럼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용사가 총애했음에도 그렇게 한심하게 가버렸다는 의미가 숨어있었다.

애초에 그들의 표정에는 약간이지만 이죽대는 기색마저 내보이고 있었으니까.

루미네가 이에 대해 지적하려던 순간,

“이곳은 전장이지 애도식장이 아닙니다. 그런 말은 삼가세요.”

아리아스필은 그 자리에서 냉철하게 그들의 실언을 꼬집어내었다.

그때 라인하르트 일행은 레오가 그토록 묘사했던 1회차 아리아스필의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레오는 당신들에게 유감을 받을 만한 처지도 아닐뿐더러, 당신들이 유감할 자격이 있는 입장도 아닙니다.”

지금 짓고 있는 아리아의 표정이 당시와 똑같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차가운 기류가 흘렀지만 그게 전장에서 방해될 일은 되지 않았다. 갤러위드와 샤를리안은 이미 구타당한 후로 용사인 아리아에게 반항할 의사가 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포진을 구성하고 적진으로 돌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일행들은 전략대로 진형을 구축했다. 이미 이들은 일반 전투과 집단 행동의 익스퍼트, 대열의 형상은 빠르고 정교히 구축되었다.

형태가 잡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단은 작전대로 돌입을 시작했다.

이는 성전의 시작을 알렸다.

“...성검이...”

그에 공명하는 것처럼 아리아의 성검을 떨렸다.

두려움과 같은 하찮은 감각이 아니라.

원수를 기다리는 것처럼 분노에 치가 떠는 것만 같았다.

저곳에 마왕이 있었다.

* * *

“괜찮을까요?”

[괜찮도록 노력해야지.]

아인의 순수한 질문에 현자는 여타의 생각없는 답변과 달리 진중한 의지를 담았다.

현자도 사실 불안했다. 아리아스필과 일행들이 완패할 가능성은 없었지만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감수해야할 것이다.

이 싸움은 단기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운이 나쁘면 서로가 피가 말릴 장기전이 될 터.

게다가 이쪽은 레오나르도를 뺏기면 우린 쪽은 완패나 다름없는 악전이었다.

[‘왜 하필 지금 상태가 돼서...’]

지금 어린 소년의 모습은 임시방편, 형상만 유지할 뿐 마법은 외부로는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레오가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서클에 돌을 공명시켜 마법을 보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레오로서는 그런 협공은 기대할 수 없었다.

[‘역시... 사라지더라도...’]

“...으으...”

현자가 고민에 잠길 틈도 없이 레오는 감은 눈을 떨며 힘겨운 비명을 내었다.

“...아버지? 악몽이라도...”

[그럴 리가 없는데...]

지금 레오는 수면 시간을 늘려 깊은 잠에 빠졌을 것이다.

그건 시간이 삭제되는 듯한 감각일 터, 꿈은커녕 저렇게 잠에 깰만한 지독한 악몽은 꾸지 않을 터였다.

“...그만... 안...”

하지만 레오는 꿈을 꾸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영혼은 깨어있는 채로 외부의 자극을 전해받았다.

콰직거리는 소리가 입에서 울리고, 그 입에는 피와 살점이 넘쳐 야만적인 식탐을 채운다.

내가 먹고는 있는 건 아니었으나 입에 들어가는 감각은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어딨지?!]

그 외침에 레오의 눈이 번뜩였다.

“광전사...!”

잠기운 따위는 없었다. 방금까지 레오는 악몽으로 치부할 수 없는 현실을 눈을 감는 것으로 체감했을 뿐이었으니까.

[...레오...!]

“아버지... 어떻게...!”

현자와 아인 모두 레오나르도를 보며 경악했지만 레오나르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뛰쳐갔다.

“...아리아 어딨어...?”

어디에도 아리아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리아 뿐만이 아니라 다른 라인하르트 일가와 루미네의 인기척마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 진정하십쇼...!”

[진정해...! 우선 설명...]

“...어딨냐고...!!”

레오나르도의 눈은 광기로 가득 차있었다. 저들이 어영부영 대답을 못하자 그 광기는 두려움으로 뒤바뀐다.

무의식에서 보았던 것이 단순한 악몽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왜 그러는데...?! 무슨 일이...!]

“가야해...!”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문을 벌컥거리며 손잡이를 돌렸다. 하지만 자물쇠와 마법으로 굳게 잠긴 출구는 레오의 외출을 막아내었다.

“...광전사가 사람을 먹었어...! 그 자식이 사람을 먹을수록 판이 커진다고...!”

레오의 설명은 잠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횡설수설하게 뒤섞였다. 평소 일목요연한 대화법을 못할 정도로 그의 감정은 흐트러졌다.

[...그걸 네가 어떻게...? 어떻게...]

현자는 이내 레오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를 제대로 캐묻지 못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원치 않아도 지식과 지혜에 따라 머리에 구성되었다.

“...우선 진정하시죠. 어디있는지 위치도 모르잖습니까.”

이 둘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바로 레오에게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단지 이 조건으로 레오가 대화할 의사와 진정할 시각을 주고 싶었을 뿐.

“...알 것 같아. 거기에 있어.”

미친 소리 같지만 레오는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다.

광전사가 살점와 뼈를 씹을 때마다 육체의 여섯 번째 감각이 나침반처럼 그 방향을 향해 좌표를 알려준다.

마치 이어져 있는 쇠사슬처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담-거짓말은 안 했다.]

“근데 제가 취했을 때... 어떻게 고백했나요?”

술기운에 고백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면서도 아리아는 호기심에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취중이면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을지 몰랐지만 자신의 고백 내용 정도는 기억하고 싶은 아리아였다.

“...고, 고백 내용...? 그게 말이지...”

레오의 머릿속에는 다시금 그 고백 겸 폭로가 연상된다.

[레오가 흘린 머리카락이나 버린 손톱을 모으고 있었어요...!]

[레오가 어렸을 때 사진부터 다른 사진들까지 베개에 넣어서 몽정하는 꿈도 꿨어요...]

[레오가 쓰는 피붕대도 가슴 붕대로 대신 써서... 가슴골에 레오 팔 끼워넣기도 하고...]

[레오 아기즙을 마구마구 빨아 먹었어요오오....!! 정말 잘못테써요...!]

생각할수록 음란하고 한편으로 불끈거리는 성벽 고백. 이걸 그대로 저 대외적으로는 숙녀이자 처녀인 아리아에게 말한다면.

‘...분명 죽고 싶겠지...’

나름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레오는 선의의 거짓말을 입에 담았다.

“내 머리부터 손톱까지 안 좋은 곳이 없고, 나이가 적든 많든 상관없이 사랑한다고도 했고, 내 피가 얼마나 더러워도 사랑한다면서 얼마든지 내 애까지도 받아주겠다네?”

푸쉬시시... (고작 이걸로) 아리아의 머리에는 김이 올랐다.

“...그, 그렇군요...”

거짓말은 안 했다.

거짓말만 아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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