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회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축제는 중지를 요청했지만, 예상대로 기각될 수밖에 없었다.
축제에 들인 비용만 생각해도 축제를 중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무리였다. 이 축제까지 남은 날짜도 얼마 없었기에 연기도 불가능했다.
그랬다는 이 사업에 투자한 귀족들이며 투자받은 마법사들까지 한순간에 알거지가 될 테니까.
결과적으로 회의에서 축제는 계속해서 진행되도록 결정되었고, 경비 인원을 늘리는 것으로 보완한다고 공표하였다.
그렇게 허겁지겁 해치우듯이 회의는 끝이 났다.
“...그래서...어...”
그렇게 끝났을 텐데.
회의의 결과를 보자 리오스는 심히 눈치를 보며 말을 머뭇거렸다.
평소라면 ‘아우~’라면서 실실거리며 달라붙거나, ‘순애의 신이시여~’하며 경건히 말을 올렸을 텐데.
“...그니까... 시체를...”
지금 벌인 독단 행동에는 눈을 둘 곳이 없었다.
“판매하겠다고 공표했죠. 마탑주들님께.”
“...아...어...음...”
라인하르트에선 시체에 관한 결정은 전적으로 레오나르도에게 맡기겠다고 결정했다.
저택 내에서 검사할 당시에도 본인들의 판단보다 레오나르도의 결정에 중심을 둔다고 공표했을 정도니까.
그랬기에 판매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없었는데.
“...그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윤리적으로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진짜 부모의 시신이 아닐지라도 그래도 똑같이 생겼는데, 레오나르도에게는 동요는커녕 감정 변화가 한 꼬집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도박이긴 합니다. 적이 추가적인 패가 있다면 시체를 날린 걸 수도 있겠죠.”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닌데...”
아리아스필도, 오브라이언도 거기에 뭐라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었지만 본인이 제일 태연해하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마치 회귀 전에 일어난 모든 비극을 일정한 목소리 톤으로 어제 먹은 점심밥 설명하는 것처럼 말했기에 더더욱 딴지를 걸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 문제지.”
이윽고 회의를 끝낸 에일린이 레오나르도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잔뜩 식은땀을 흘려 미역처럼 축축해진 머리칼은 그녀의 피로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시켜주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거리를 한 건가?”
“...에일린 씨, 제2왕자님하고는 이야기 잘하셨는지요?”
“아직 안 만났고, 그 얼간이 이야기할 기분 아니다.”
그 제국의 직계 황자를 동네 바보형마냥 대놓고 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는 에일린 밖에 없을 것이다.
“확실히 그 얼간이 황자가 짜증나긴 하지.”
아니, 아리아스필도 가능하기는 하구나.
새삼스럽지만 지금 옆에 있는 이들의 직급이 피라미드 꼭대기 꼭짓점에 서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들이 가진 힘이라면 제국의 군단 중 연대 정돈 가볍게 박살낼 수도 있을 테니 굽히지 않는 것도 납득은 되었다만 말이다.
“그래서 이유를 설명 듣고 싶다만. 어째서 이런 도박을 한 건지.”
말투에서는 에일린의 고압적인 압력이 느껴질 정도로 무거웠다.
다른 이들에게는, 특히나 아리아스필이나 리오스에게는 자주 쓰는 어투였지만 레오에게만큼은 보이지 않았던 태도였다.
“...미리 설명하지 못한 것은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과는 됐다. 대답이나 해라.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납득이 안 돼서 물은 거니까.”
에일린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의문스럽긴 매한가지였다. 다들 에일린의 의견에 반론하지 않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었다.
“...만약 배신자가 이 행동을 본다면 어떤 선택지를 고를까요?”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한 탓일까, 에일린의 표정은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에일린은 레오가 물은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적어도 나라면 고유 마법을 희생해서 시신을 손에 넣을 거다.”
이 키메라는 복제는 가능할지언정 양산은 불가능한 형태였다. 가능했다면 2명만 쓸 것이 아니라 아예 군단을 만들어 밀어버리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거기에 다른 마탑주의 손에 들어간다면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흑탑주의 말처럼 대응할 무기나 배신자 본인을 알아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배신자라면 고유 마법의 술식을 알려주는 것도 위험하지 않나? 자기의 필살기를 까발리는 건데.”
에일린과 상반되는 의견이었지만, 리오스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고유 마법의 술식을 알린다는 것은 자신의 밑천을 전부 알린다는 의미였다.
고유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자신이 특기인 분야를 전부 알린다는 의미이기에, 한편으로는 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래서 납득이 안 된다는 거다. 차라리 배신자를 색출할 거였다면 돈으로 받는 편이 확실할 텐데.”
그렇기에 에일린은 레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배신자를 색출할 거였다면 돈을 받는 게 그나마 확실했을 텐데 말이다.
“아뇨. 차이는 없을걸요.”
이에 대해 이견을 낸 것은 아리아스필이었다.
의외의 인물이 나선 탓일까, 모두는 제법 놀란 눈치로 아리아스필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대로 돈으로 해도 마찬가지... 오히려 판단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죠. 결국 배신자보다는 당장 돈이 많은 쪽이 시신을 가져갈 수도 있잖아요?”
짧은 지적이었지만 근거는 있었다.
마탑주라는 직책이 아무리 천문학적인 돈을 쥐어준다 할지라도, 같은 마탑주 간에는 당연하게도 자금력에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축제 덕에 다량의 장비를 대여하고 판매해 수익을 올린 흑탑과 축제를 노려 마법 개발 및 연구에 투자를 밀어붙인 청탑.
만약 둘이 자금력으로만 맞붙는다고 했을 때, 누가 이길 것인가.
물을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다.
“...생각보다 논리적이군.”
“무슨 말이에요?”
“아, 그저 힘으로 용사가 된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의미지.”
에일린의 시비 같은 칭찬에 아리아스필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이 여자는 정말...’
저 여자는 좋게 봐주려고도 해도 저 삐뚤어진 입술로 미움을 사는 재주가 있었다. 말 한마디로 신경을 울퉁불퉁한 손톱으로 박박 긁는듯한 불쾌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저 가증스러운 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에일린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불쾌감만 놓고 보자면 에일린이 느끼는 고통이 아리아의 감각을 몇배는 상회할 것이다.
‘...고명한 마탑에서 그렇게 문란한 짓을...!’
감히 학문의 정수인 마탑의 기숙사에서 그런 질척하고 추잡스러운 밤을 보내다니, 마법사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용사라는 년이 저리도 문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신이란 정녕 장님이란 말인가.
“두 분은 질리시지도 않습니까? 싸우려고 오신 게 아니잖습니까.”
에일린와 아리아의 그런 섬세한 심리도 모른 채로 레오는 질린다는 듯이 지적을 꽂아넣었다.
그런 레오의 말에 에일린은 분함에 목이 막히는 걸 느끼면서도 이성을 부여잡으며 화를 삭였다. 이 이상 날뛰는 것은 추태일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네 판단은 뭐지? 배신자의 어떤 행동을 노린 거냐?”
화제를 돌려 나온 질문에 레오나르도는 짧게 대답했다.
“탈취.”
짧은 대답이었지만 울림은 있었다.
“누가 사든 상관없이 탈취하는 게 제일 현명하겠죠.”
다른 마탑주의 손에 들어가면 대응할 무기나 배신자 본인의 정체를 들킬 위험이 있었고,
그렇다고 본인이 직접 구매하면 고유 마법을 전부 드러내어 전력을 손실하는 출혈을 감수해야한다.
“그렇기에 탈취한다는 건가?”
“제일 이득이 큰 선택지니까요.”
에일린은 한숨을 내쉬면서 찌푸려진 미간을 부여잡았다.
“...배신자가 몸을 사릴 가능성은 고려를 안 했나? 그리고 탈취한다고 쳐도 그게 성공하면 그것대로 문제지.”
에일린의 지적대로였다.
배신자가 오히려 레오의 돌발 행동에 위험을 느끼고 큰 행동을 줄일 가능성도 있었고,
설사 정말로 시도한다고 할지라도 배신자가 누군지도 명확하지 않은데, 탈취에 대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건... 미안하지만 저 여자 말이 맞아. 레오.”
아리아마저 이것만큼은 편을 들어주기 힘든 눈치였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더라도 명확한 근거 없이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우둔하다 못해 해악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그죠. 그게 맞는 지적이에요.”
레오나르도도 인정하는 바였다. 레오가 인정하자 오히려 이해할 수 없었는지 에일린이 얼굴을 붉히며 독기어린 시선을 부라렸다.
“아무리 너라도 지지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없는 부분이 있다. 조금 더 소통을 나누고 깊게 생각했더라면...”
“그러니까 저희가 먼저 탈취하죠.”
예상 밖의 말에 에일린의 시선이 풀어졌다. 리오스도, 아리아마저도 풀어진 눈빛으로 레오나르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쉬익...”
그런 기묘한 정적이 흐르고 있을 때, 건물 바닥 틈에서 무언가가 울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기어나왔다.
길게 꿈틀거리는 형태는 지렁이를 연상케했고, 온몸에 난 비늘은 이 생물이 곤충이 아니라 파충류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뱀?”
이곳에 있는 모두 뱀 한 마리에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뱀 정도는 손짓 한 번에 일소할 수 있던 까닭도 있었지만, 저 뱀이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아인이?”
“네, 저 맞습니다. 어머니.”
이윽고 작은 뱀은 점차 몸이 부풀어 오르며 한 명의 작은 소녀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흰 머리와 자색의 눈은 그녀가 누구의 딸인지를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버지. 냄새에 따라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괜찮아. 이 정도면 아주 잘한 거야.”
레오나르도는 아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의 딸의 노력을 칭찬해주었다.
단순히 의욕을 북돋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인이 해준 활약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이지? 정찰을 한 것 외에 추가로 한 것이 있었나?”
“할머니의 냄새가 가장 짙게 나는 장소를 식별해 접선 장소를 찾아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인의 할머니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레오의 어머니가 누구인지만 안다면 누구라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접선 장소가 있단 말인가...? 그럼 여태까지 정찰을 시켰던 이유는...”
“접선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서였죠.”
고작 엿듣는 이나 침입자만을 대비해 그렇게나 많은 정찰을 시킨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인을 늑대 인간으로 변신시켰던 것도, 후각이 뛰어난 까막독수리로 공중 정찰을 시킨 것도, 그리고 지금처럼 뱀으로 변신시킨 것까지.
모두 접선 장소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선배, 그렇다면 증거를 찾은 거군요! 밀서나 연구 자료 같은...”
“그건 아닙니다. 그곳은 폐저택일 뿐,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인이 찾은 장소는 마탑에서 떨어진 외진 산속의 폐저택.
아인은 그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마땅한 단서나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이곳을 찾아낸 후각마저도 렌의 복제품 외에는 어떤 이가 추가로 있었는지 알려주지는 못했다.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유일하게 표정이 변하지 않은 것은 레오나르도였다.
애초에 두 키메라가 해치워졌다는 시점에서 접선장소에 있는 증거는 모두 말소당한 것은 예상하고 있는 범위였다.
“그러니까 저희가 먼저 탈취하자는 거죠.”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말로 하는 설명 대신에 레오나르도는 작은 손톱을 꺼내들었다. 흰 빛깔에 길이가 짧은 것이 맹수의 것보다는 사람의 손톱에 가까웠다.
“아인아, 잠깐... 실례할게.”
“예. 괜찮습니다.”
레오나르도가 손톱을 아인에게 찔러넣자 아인의 육체는 골격째 뒤바뀌듯 점차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와이번 수준까지는 아니었으나 아리아 정도의 신장될 만큼 아인은 성장해있었다.
“...아인이가...”
아인이 변신한 이는 렌의 키메라였다.
“키메라 자체가 아인의 데이터를 중점으로 만들었기에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죠.”
키메라의 육체 일부에 아인의 데이터, 그리고 추가적으로 현자의 도움을 받아 아인의 상태를 조정했기에 변할 수 있는 형태였다.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되는군.”
에일린은 앓던 이가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상쾌한 표정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몇 이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해 눈을 크게 깜빡이기만 할 뿐이었다.
“만약에 이렇게 변한 아인이 시체를 훔친다면 어떻게 될까요? 거기에 마탑에서 보관 중인 현자의 목걸이까지 훔친다면?”
그제서야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이해했다.
“어떻게든 아인한테 접근해올 겁니다.”
‘배신자’의 입장에서 보인 돌발 행동의 경위를 묻기 위해서라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현자와 리오스]
[리오스, 무서운 얘기 하나 해줄까?]
<뭔데요?>
[쟤네들 어제 정말 잠만 잤어.]
그날, 리오스의 신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