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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62화 (162/248)
  • 흑색 마탑의 한 응접실

    레오나르도는 그 자리에 앉아 내준 커피를 마시면서 반대편에 있는 이 마탑의 관리자를 마주보았다.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게 됐군.”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제가 판매하겠다고 했으니까요.”

    시체를 가장 먼저 매입하겠다고 말한 마법사는 흑색 마탑의 마탑주 베르난 베르데인이었다.

    레오나르도가 예상했던 것과는 약간 다른 흐름이었다.

    마법과 마나 그 자체를 연구하는 청탑이나 마법과 생물의 연관성을 주로 잡고 있는 백탑이면 몰라도.

    마도구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흑탑에서 먼저 나설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욕심이 나서인가? 아니면...’

    “커피는 입에 맞는지 모르겠군.”

    레오나르도가 생각하고 있던 찰나, 베르난은 창백한 입술로 미소를 지으며 차맛에 대해 물었다.

    “아메리 씨께서 지치지 않고 마실 만하군요.”

    아메리가 들으면 들고 일어날 농담을 던지며 레오나르도는 커피를 홀짝였다.

    커피는 맛으로 보나 감각으로 보나 독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선 어떤 암살이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서 고유 마법을 넘기면 바로 시체를 주는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고유 마법의 확인 절차도 있고, 시체 양도도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되니 바로는 못 드릴 것 같습니다.”

    레오에겐 핑계였지만 명분은 있었다.

    고유 마법의 술식은 보는 것만으로 진위여부를 판단할 만큼 쉬운 것이 아니었고,

    키메라 시체 또한 흑마법의 위험이 있기에 보증과 허가를 받아야 했기에,

    작전을 들킬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가? 알겠네.”

    베르난은 딱히 불만이 없어 보이는 눈치였다.

    오히려 초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태도에 레오 쪽에서 기이함을 느낄 정도였다.

    “문제가 된다면 보증서를 추가로 작성해도 좋습니다. 위약금을 물어서라도...”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베르난은 커피가 반 정도 담겨진 잔을 내려놓으며 슬며시 짧게 입을 열었다.

    “고유 마법을 주는 것인데, 돈이 의미가 있겠나?”

    “...맞는 말씀이네요. 그럼 매매하실 건가요?”

    “...자네는 부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난데없는 질문에 레오의 표정이 뒤바뀌었다.

    차를 마시고 있던 도중, 레오의 표정이 일그러질 정도로 난데없는 질문이었다.

    “...질문의 맥락을 이해할 수가 없네요.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시는 이유가 뭐죠?”

    “‘물건’을 사는 이로서 자네의 심리를 물은 것이지.”

    레오나르도는 흔들리는 감정을 다시 냉정히 부여잡았다. 의도는 이해할 수 없지만, 베르난의 말은 정신을 흔들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습니까? 10살 때 이후로 이별한 부모입니다.”

    그래서 슬펐다. 계속 돌아올 거라고 믿고 기다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지금 드러내서는 아니되었다.

    “저를 몇 년 동안 보지도 못한 부모인데 지금 와서 감정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 이상하죠. 지금 상황에선 득이 될지, 실이 될지만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성적이며 침착한 답변, 부모를 건들이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메마른 태도로 레오나르도는 대답했다.

    “...훌륭한 마법사로군. 아주 냉정해.”

    그런 태도에 베르난은 마법사로서 칭찬을 해주었다.

    감정을 지닌 사람의 대화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랬기에 레오도 마탑에서 베르난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조언을 얻었음에도 그에게 정을 가지지 않았다.

    이성적으로는 납득할 수 있는 이였으나 감정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남자가 베르난이었다.

    “...그렇다면...”

    베르난은 갑작스레 마나를 전개했다. 그의 발치에 있는 그림자가 의지를 지닌 것처럼 흘러 움직이며 창처럼 솟아올랐다.

    기류의 변화에 레오나르도는 빠르게 태세를 변경해 기습에 대비했다. 설마 했던 일이지만 흑탑주가 적일 거라고는...!

    “너무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군. 이걸 보여주려면 시간이 필요하거든.”

    이윽고 일어난 변화엔 레오나르도는 김이 샌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는 것밖에는 할 것이 없었다.

    “...이게 뭡니까?”

    창처럼 솟아오른 그림자의 결정체를 보자 김이 새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내 고유 마법이지.”

    그림자는 베르난의 커피잔과 복사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커피의 양부터 색, 커피잔에 새겨진 꽃의 문양까지도 완벽히 복제했다.

    “...많이 놀랍긴 한가 보군. 그렇게 날붙이까지 빼들면서.”

    “...행동엔 사죄드리지만,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검은 돌은 이미 나이프의 모양으로 변형되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이프를 쥔 팔은 언제라도 베르난의 목을 날릴 수 있을 정도로 자세가 취해져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민망한 나머지 헛기침을 연신 내며 자리에 앉았다.

    “미안하군. 자네 행동은 이해가 되네.”

    커피잔은 검게 녹아내려 다시 베르난의 그림자로 흘러들어갔다.

    “내 고유 마법 ‘프로젝션(projection)’은 내가 생각하는 물체를 마나를 사용하는 것으로 즉시 복제하는 것이 가능하지. 다만 유지 시간에는 한계가 있지만 말이야.”

    레오나르도도 고유 마법을 만든 이지만, 레벨이 다르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무예와 마법의 아리아’는 술식 자체는 단순하나 이것을 실행하는 실전 능력과 신체 능력이 부족하다면 절대 실행할 수 없는 마법인 반면,

    ‘프로젝션(projection)’은 마법 술식부터 고도의 계산이 들어가 있는 고등 마법이었다. 본다고 해서 본인만의 능력으로 실행할 수 있을지 레오도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만약 내가 창이나 폭탄을 연성시켰다면 충분히 기습도 가능하지. 그렇게 대응하니 오히려 안심되는군.”

    “...보여주신 이유는 뭡니까?”

    “어차피 넘겨줄 것인데, 보여준다고 해서 손해될 것은 없으니까.”

    망설임 없는 행동거지와 함께 베르난은 테이블 위에 자료를 올려놓았다.

    책상에 올려진 노트와 책들은 인쇄기나 마법으로 작성된 것이 아닌, 모두 손으로 일일이 적어낸 수기였다.

    “이건...”

    “내 고유 마법을 만들어낼 때, 찾았던 자료지.”

    태연하게 내뱉은 말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내용이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저 낡은 책자 안에는 그림자만으로 물체를 복제한다는 터무니 없는 마법의 비밀이 내재되었다는 것이다.

    “...선불입니까?”

    노트와 책을 건들지도 않은 채 물은 질문이었다. 지금 고유 마법을 줄 테니 시체를 넘겨달라는 의미로도 해석은 가능했다.

    “아니. 그냥 가져가게.”

    “...예?”

    레오나르도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저 남자는 자신의 고유 마법을 그냥 넘기겠다고 말한 것인가.

    “...시체를 안 받겠다는 의미이십니까?”

    “확실히 흥미는 있다만... 내게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자네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았으니 말이지.”

    흑탑주 베르난은 창백한 얼굴로 웃어보이며 말했다.

    “마탑 내의 배신자가 있는 거겠지. 안 그런가?”

    베르난의 말에 레오나르도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 이렇게 설명하는 편이 좋으려나. ‘마탑에서 흡혈귀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자가 있다.’라는 정도로.”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레오나르도는 주저하지 않고 물었다. 베르난이 고유 마법을 보여주었다는 시점에서 그는 자기증명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설사 그게 거짓이라고 한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검을 휘두르면 그만이었다.

    지금으로서는 흑탑주에게 정보를 듣는 것이 먼저였다.

    “...확신한 건 자네가 고유 마법을 보자 전투 테세를 잡은 때였을까?”

    “...그것도 심리전이었습니까?”

    “적어도 자네가 마탑주 한 명을 배신자라 의심하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지.”

    베르난의 말에 일리는 있었다.

    본인도 마탑주 한 명이니 직접 고유 마법으로 위협하는 것으로 확인해보는 것이 제일 확인하는 것이 빨랐을 것이다.

    “...배신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나도 오랫동안 짐작만 하고 있을 뿐, 누구라 집어 말하기는 어렵더군.”

    이윽고 베르난은 다시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그래서 자네가 세우고 있는 계획이 성공했으면 해서 도움을 준 것일세.”

    “...베르난 님이 아니라는 증거는...”

    베르난은 이윽고 옅은 미소와 함께 건네준 고유 마법의 자료를 가리켰다.

    “배신자가 자신이 지닌 마법의 전부나 다름없는 고유 마법 자료를 줄 리가 없지 않은가.”

    “...”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베르난은 행동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본인에게 손해가 클 텐데, 이런 희생을 감내할 만큼 레오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었다.

    “...시간이 어느새 다 되었군. 아메리가 자네를 찾고 있던데 한번 가보는 게 어떤가?”

    “...그러도록 하죠.”

    시간이 되었고 더 물을 것도 없었다.

    하물며 묻는다고 대답해줄지도 의문이었다.

    계획이 실행되기 전까지 아메리에게 제작된 물건을 받아야했기에 레오나르도는 나가는 것을 택했다.

    “...실례했습...”

    레오나르도가 수기를 들고 나가려던 순간,

    “레오나르도.”

    베르난은 그런 레오나르도를 불러 잠시 멈춰세웠다.

    “...아까와는 상황이 달라졌기에 다시 한번 물어보겠네.”

    잠시 망설이는가 싶던 파리한 그의 입술이 이내 다시 움직였다.

    “...자네가 내 제자와 양자를 거부한 이유는 친부모 때문이었나?”

    “...”

    레오나르도는 마탑에 4년 동안 있으면서 여러 스카우트 제안과 러브콜을 받았었다.

    외부 마법사 조직만 해도 100건이 넘는데, 마탑주들이라고 제안을 안 할 리가 없었다.

    그건 흑탑주 베르난 베르데인도 마찬가지였다.

    베르난은 당시에 레오나르도에게 양자를 제의했고, 그걸 거절하자 직속 제자라도 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었다.

    물론 지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레오나르도는 그 제안마저도 단호히 거절했지만 말이다.

    “...아뇨. 그때도 말씀드렸듯이 전 라인하르트의 기사로 있는 편이 좋았습니다. 흑탑주가 되어 흑탑을 책임질 자신도 없었고요.”

    “...당연하다는 듯이 차기 흑탑주를 자신하는군.”

    “지나치게 겸손한 탓에 욕을 많이 먹어서 말이죠.”

    그 말에 흑탑주는 큭큭대듯 웃음을 내었다. 평소 그의 창백하고 음산한 느낌을 생각한다면 어울리지 않는다 말할 만한 큰 웃음이었다.

    “...말해줘서 고맙네. 덕분에 크게 한번 웃는군.”

    분명 큰 웃음이기는 했으나 그게 기운찬 웃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파리해보이는 흑탑주를 바라본 채로 레오나르도는 인사를 하며 문을 다시 열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하... 오래 붙잡아서 미안하네. 아메리가 기다리고 있겠군.”

    문턱을 넘어서려던 순간,

    “...흑탑주 님.”

    레오는 끝까지 하지 못했던 말을 이어 말했다.

    “...지금까지 해주신 일, 정말 감사합니다. 마탑에 있는 동안 많이 탑주님의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흑탑주가 아인을 위해 해부를 반대하는 쪽으로 투표한 것도,

    고유 마법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 것도,

    그리고 지금 자신의 고유 마법을 자신에게 준 것도,

    감사를 표해야 마땅했다.

    “...다행이군. 도움이 되어서.”

    레오의 붉은 눈과 흑탑주의 붉은 눈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윽고 레오나르도는 인사를 끝내고 방 바깥으로 나갔다.

    “...다행이군...”

    베르난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다시 잔을 들었다. 하지만 파르르 떨리던 손에서는 이윽고 찻잔이 떨궈졌다.

    쨍그랑...!

    찻잔이 산산조각이 나며 그대로 잔해가 바닥에 쏟아졌다. 응접실에 방음 마법이 설비되지 않았더라면 바깥에 소리가 울려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쿨럭...”

    실수에 이어 연이어 나오는 기침.

    급히 소매로 막아보지만 옷자락에는 붉은 자국이 남았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나...”

    베르난은 입가에 피가 묻은 채로 그렇게 되뇌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제 소설이 불법사이트에 퍼져있더군요.

    근데 웃긴 점은 99화에서 끊겼더군요.

    그래서 말했습니다.

    "아하하 꼴좋다. 100화에서 아리아가 회귀를 알아차리는데!! 평생 답답하게 소설 봐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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