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위화감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때 폭주했던 때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자신이 자신으로서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용으로 변하는 거하고는 조금 달라.’
용족화가 되는 것은 정신이 갉아먹히는 느낌이었다. 영혼과 기억이라는 커다란 살점이 작은 벌레들에게 뜯기는 감각, 몸에 남는 것은 육체라는 껍데기뿐.
만약 에일린과 루미네가 제때 치료제를 주입하지 못했다면 아마 정말 용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때 에일린은 ‘무골에 재능은 없으니 잘해봐야 리자드맨의 1인자로 변하겠지. 하긴 2인자보단 낫나?’라고 재수없는 농담을 날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폭주는 달랐다.
상쾌한 감각이었다.
슬픔과 절망이 온몸에 가득 채워져 터질 것 같았음에도.
스스로가 사라지는 감각이 쾌감으로 느껴졌다.
그런 것에 쾌감을 느낀 자신이 역겹고.
동시에...
두려웠다.
마치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어 나비가 되어가는 과정, 뱀이 스스로의 허물이 벗어던지는 감정.
새가 알을 깨고 스스로의 형상을 뒤바꾸는 감각이었다.
[...가설은 가설일 뿐이야. 너무 믿지 말라고.]
현자는 그렇게 말하며 ‘시간 역행마저도 가능케한 기적 같은 놈’이 풀이 죽어서야 쓰냐고 일갈 같은 격려를 하는 건 덤이었다.
<...현자님.>
레오는 어두운 표정으로 현자에게 지혜를 갈구했다. 그는 덕담보다 이런 조언에 더 적성이 맞기도 했으니까.
<용사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용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아리아스필이라는 소녀가 용사가 되기 이전, 라인하르트라는 가문이 생기기 이전의 살았던 신화의 인간.
루벤 라인하르트.
그 남자의 정체를 물었다.
[...자유를 이해한 녀석이었어.]
<초대 용사님이 자유로운 분이셨나요?>
용사 루벤은 라인하르트 서고에 있던 기록이나 대륙에 내려오는 구전으로는 문무를 겸비한 정석적인 영웅의 느낌이었다.
물론 초대 현자와 성녀에게 가지고 있던 환상이나, 특유의 상상은 파도에 쓸린 모래성처럼 붕괴되어버렸지만.
다행히 용사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라인하르트 사람들에게는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레오조차 사실 루벤이 여자에 미친 난봉꾼이라거나, 도박에 미친 타짜 같은 거일 가능성을 미리 상상해서 정신 공격에 대비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뭐... 감성이 자유로운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말한 건 조금 방향이 달라.]
현자는 드물게 점잖고 행복한 목소리로 300년 전의 인물을 소개했다.
평소에는 싫어도 경박하고 까칠한 말투를 써대기 바빴고, 특히나 300년 전 인물에게는 그런 말투가 참모습을 발했는데.
용사 루벤에게만에는 진심어린 존중과 경애를 담아 소개를 이어갔다.
[그 애는 자신의 자유를 인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타인의 자유도 이해했어. 타인을 이해하는데 가장 뛰어난 건 루벤이었지.]
현자는 자신의 아들을 긍지있게 자랑하듯, 루벤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다. 평소 타인을 깎아내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그로서는 정말 드문 모습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긴... 두 분을 이끌고 꾸역꾸역 마왕 토벌까지 했으니...’>
현명하게 고자짓을 즐기던 독설가 마법사와 어린 소년·소녀 지나치게 자애하는 마조히스트 성인을 지휘하는 인격자였으니,
레오나르도로서도 진심으로 용사 루벤을 경배할 수밖에 없었다.
[...다 들려 새끼야.]
현자에게는 그 경배가 모욕적으로 느껴진 것이 흠이었지만 말이다.
째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곗바늘이 점점 움직인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지금의 시각이 아직 일출이 찾아오지 못한 깊은 새벽임을 명시해주고 있었다.
초침이 몇 번 움직이고,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운 레오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마왕은 어떤 존재입니까?>
지난 몇 년 동안 현재에게 몇 번 물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자는 이런저런 핑계로 대답하는 것을 피했다. 말한다고 할지라도 뭉그러뜨려 추상적으로 설명할 뿐, 제대로 된 윤곽을 그려주지 않았다.
그건 앤젤라도 마찬가지였다.
마왕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마치 그 설명을 꺼리는 것처럼.
[...우리가 상대한 마왕은... 이 모든 악을 담아낸 존재였어.]
현자는 그 존재에 대해 입을 열었다.
<...악이라...>
레오는 떠올린다. 아리아가 받은 계시를.
‘어둠을 만나 거악과 맞서라.’
그 지금은 그 어둠과 악이 누구일지 짐작이 갔다.
문제가 있다면 어둠인 자기자신이 동료로서 있을 수 있는가일 뿐.
레오나르도는 양손에 잡고 있는 가족의 손을 감싸안았다. 이 이상으로 망설이는 것은 무의미했으니까.
<...정확히 어떤 능력을 지녔죠?>
현자는 짧게 설명했다.
그 공포를 장황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는 것처럼.
[실체만으로 주변을 마경으로 침식시키는 존재.]
왕이기 이전에 하나의 신이여도 이상할 게 없는 존재라고.
***
아리아스필이 꿈속에 있는 시각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금 잠을 청하는 이 자리조차 꿈 같았기에 몸의 생리 자체가 숙면이라는 행위를 거부했다.
거기에 오랜 시간 아리아의 베개가 되어주었던 레오라면 몰라도, 아리아스필은 이미 레오의 살결에 풍기는 체향과 온기 밑에서 충분한 숙면을 취한 뒤였다.
단지 지금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급히 잠을 청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면은 아리아의 도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하게 표현하지만 옆에 있는 수컷의 체향과 숨소리, 그리고 생명의 유혹이 아리아의 감정이 고조시켰다.
도주할 마음조차 본인 스스로가 포기할 정도로.
아리아는 흥분하고 있었다.
냄새는 어떨까?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씻지도 않았는데.
속옷은 어떻지? 대련한다는 이야기 때문에 편한 차림으로 있었는데, 지금도 그런 수수한 재질로 입고 있었나?
혹시 못 참으면 중간에 하게 될 수 있는데... 오늘 안전한 날인가? 피임을 하면 괜찮으려나...
“...으으...”
아리아는 머리가 핑핑 도는 것을 느꼈다.
뒤에 있는 남성의 따스한 숨결이 귓가에 스칠수록 몸도 그에 맞춰 떨렸고.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성숙한 숙녀의 몸이 청년의 몸에 비벼졌다.
이성은 이미 밤에 취해 마비되어있었고, 유일하게 반응하는 것은 밤에 취해 더욱더 충동적으로 변한 본능 뿐이었다.
‘...조금만...’
아리아의 몸이 천천히 방향을 바꾼다. 방향을 틀 때마다 느껴진 팔근육의 감촉이 몸을 간지럽게 한다.
어깨, 쇄골, 그리고 팔에 부드럽게 가슴이 안착하자 잠들어있는 자신의 남자가 눈앞에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새근거리며 잠에 들어있는 레오는 단단한 대흉근이 떠올랐다 가라앉으며 방금 전 맛본 부드러운 입술로 숨을 쉬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런 욕구가 아리아와 레오의 호흡이 점점 가깝게 만들었다.
1mm씩 거리가 줄어들 때마다 호흡이, 박동이, 몸 안으로 더 깊게 스며든다. 심장에 따라 레오의 팔에 흐르는 혈액의 온도가 아리아의 체온에 섞인다.
몸이 가까워질수록 달아오른다. 하지만 이 열기가 싫지 않았다.
감기와 같은 고통의 열기가 아니라, 극적인 승리에 온몸이 전율해 발현되는 온기가 아리아의 행복을 계속해서 자극하고 있었다.
“...하아...”
아리아는 힐끗 눈앞의 반려를 살펴보았다.
살짝 타버린 피부와 근육은 달빛에 비쳐 탐스럽게 음영을 자아내고 있었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채로 무방비한 모습을 내보이는 것은 탐욕스러운 육욕을 깨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인이는...?’
분명 자고 있을 때에는 아인이 레오의 옆에 누워 자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자신도 아인의 손을 분명 어루만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두리번거리던 찰나, 이 넓은 침대 옆 서랍장에 적혀있는 작은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저는 정찰을 다녀오겠습니다. 2시간 동안 바깥에 있을 테니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기계가 쓴 것처럼 균일한 글씨로 아인은 본론 아래에 나간 시각까지 빠짐없이 적어놓았다.
기특하다 칭찬하기도 전에 아리아는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붉혔다.
‘...방해하지 않겠다니...’
마치 ‘그 행위’를 연상케 하는 단어이지 않은가, 엄마로서 이런 말을 쓰는 것은 따끔히 혼을 내야했다.
그랬지만.
“...하아...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리아는 욕망에 젖어드는 것을 참아내지 못했다. 엄마로서의 모성을 상기하지 이전에, 여자로서 엄마가 되는 행위를 격정적으로 즐기고 싶은 아리아였다.
‘...아인이가 나간 지는 1시간 정도 됐지...’
그렇다는 것은 아직 1시간 동안 물고 빨 시간이 있다는 의미였다.
아니, 1시간 밖에였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났다면 더 많이 레오를 맛볼 수 있을 텐데, 그럴 기회가 없는 것이 아까웠다.
‘...이건 레오가 기운 나라고 하는 거야...! 암 그렇고 말고...!’
대부분의 남자는 여자와 이어지는 것으로 쾌감과 기운을 얻는다고 들었고..
게다가 레오나르도는 자신을 상상하며 쌓여있는 남자로서의 번민을 해소했지 않은가!
이 말은 지금 당장 자신과 이어져도 레오는 괜찮다는 의미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레오 쪽에서 먼저 키스하며 참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건 분명 레오가 먼저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아리아는 어설픈 자기합리화를 마치고, 레오의 하반신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불을 걷어내고 튼실한 허벅지와 허벅지 사이에 난 중심에는 거대한 봉우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꿀꺽...
아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면바지여서 탄성도 없을 텐데, 꽉 눌린 우람한 살덩이는 마치 천으로 강제로 누른 굵은 뱀을 보는 것 같았다.
가느다라고도 굵은 살이 잔뜩 박힌 손가락이 남자의 골반을 타고 들어갔다. 거칠게 하면 살이 쓸려 레오가 깰 테니 조용히 할 필요가 있었다.
‘...핑계라도 대서 안 할 수도 있으니까...’
자신도 대련에서 무언가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아리아의 욕정이 손가락을 접히게 만들었다.
손가락이 집은 부분은 바지의 단추였다. 그 단추를 살짝 풀며 아리아는 코로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보면 저번에는 여기에서 실패했었다. 레오가 중간에 깨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방해할 이는커녕, 자신을 도와주는 효심 깊은 딸까지 있다.
천천히 바지를 벗겨내렸다. 자신과 달리 레오의 골반은 허리와 큰 차이가 없어 바지는 슬슬 아래로 내려갔다.
“...하...”
아리아는 레오의 속옷을 보자 소리를 지를 뻔한 것은 간신히 한숨으로 치환시킬 수 있었다.
레오가 입은 속옷은 자신의 눈색과 같은 진한 청색의 사각팬티였다.
단추가 메여져 있어 구멍에 레오의 ‘물건’이 맨살로 튀어나오지는 않았지만,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적나라했다.
레오의 생리적 본능은 언제라도 이성과도 이어질 수 있도록 당당히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
더는 참지 못한 아리아도 천천히 잠옷의 단추를 풀어내었다. 푸른 잠옷이 바닥에 떨어지자, 동시에 가슴에 매던 붕대도 풀어내었다.
레오가 마탑에서 많이 다쳤을 때, 사용했던 붕대를 챙겨왔던 것이었다. 처음으로 신성술을 사용해 방부 처리가 된 자신의 성결한 성유물.
항상 이 피붕대를 매고 있으면 레오가 자신을 가슴을 어루만지며 보호해주는 감각이 들었다.
‘...직접 하는 건... 당장 하고 싶지만...’
실오라기 하나 없이 드러난 자신의 상체를 천천히 쓸어넘기며 아리아는 생각을 정리했다.
만약 정말 교접해서 자신의 처녀가 파과된다면, 혹여나이지만 용사로서의 신성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녀 홀로 한 추측에 몇몇 빛의 교도들의 지독한 교리가 더해진 것일 뿐이었지만, 아리아는 용사로서의 책임감을 지키기 위해 남자와의 행위는 물론, 스스로 직접 위로하는 것도 해보지 않았다.
꿈 속에서 홀로 절정에 가는 게 유일한 성욕의 해소일 뿐, 직접 손으로 자신의 물건을 어루만져 가버린 적은 없었다.
그건 결혼하고 나서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교접만 안 하면 된다는 의미 아닌가.
아리아는 슬며시 자신의 젖가슴을 손으로 들었다. 출렁이는 살덩이의 지방은 한시라도 빨리 모유를 토해낼 수 있는 몸이 되어달라고 애원해대고 있었다.
터억...
“하양...”
가슴골 중앙에 난 흉터에 레오의 봉우리가 닿자 강렬한 쾌감이 느껴진다. 당장이라도 이 거추장스러운 천을 벗겨내고 싶지만, 아리아는 그럴 수 없었다.
바로 살결이 닿으면 인정사정도 없이 덮쳐버릴 테니 이 몸에 조금이라도 면역을 가져야만 했다.
“...하아...하아앙...”
쾌감이 흐른다. 분명 심장과 하반신은 가장 멀리 있는 부위일 텐데, 박동이 명확하게 들리고 있었다.
자신의 가슴에 있는 심장과 레오의 하반신에 울리는 소리가 서로 화음을 만들며 공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속옷 아래의 물건은 터질 것처럼 자라났다. 부푸는 풍선처럼 이제는 팬티를 떠뜨릴 기세로 물건은 힘겹게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레오의 속옷을 끌어내리던 아리아의 얼굴에.
대롱, 하며 아리아의 입술에 요사스러운 방망이가 내밀어졌다.
“...하... 이제...”
도저히 못 참았다.
‘못 참겠어...!’
아리아는 이성으로 하반신의 욕정을 억누르고.
‘사랑해...! 내 레오...!’
상반신의 발정을 이끌어냈다.
꿀꺽...
이번에 삼킨 것은 침이 아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승부다. 노벨피아. 미성년자의 저력을 보여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