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47화 (47/248)

EP.47 아리아는 배운다-1

이제는 쓰레기들끼리 알아서 자멸하기를 기다리면 그만이다.

[그럼 이제 뭘 할 거냐?]

<글쎄요, 마법도 공부해야돼고, 아리아스필의...>

“농담암살자.”

경기를 일으키는 발언에 레오나르도는 짜증이 일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아가씨?”

뒤에는 잔망스러운 미소를 짓는 아리아가 있었다. 손가락으로 뺨을 부드럽게 누르는 건 그녀의 잔망을 더욱 요염하게 만들었다.

“귀엽네. 내 농담암살자.”

“자...장난이 지나치시네요.”

그 짓궂은 놀이에 레오는 고개를 돌리며 당황스럽게 익은 얼굴을 숨겨야만 했다.

[진짜 꿈에서 뭔 일이 있었던 거냐?]

<제가 묻고 싶어요. 진짜.>

악몽 사건을 겪은 뒤로 아리아스필은 무언가 변해있었다. 트라우마나 PTSD 같은 것이라기 보단... 조숙해졌다고 해야할까, 성숙해졌다고 해야할지...

[...애가 뭐 저리 요망해졌냐?]

격조없는 표현이었지만, 사실 그 표현이 제일 적절했다.

“왜? 부끄러워?”

아리아는 그 부끄러운 표정을 보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다가가게 했다. 그럴 때마다 레오는 더 고개를 돌리고 익어가는 얼굴을 가릴려고 했다.

“많이 더운가? 얼굴이 많이 빨개.”

“예예...! 그렇네요!”

레오의 대답과 반응에 그녀는 퍽 만족스러웠는지 쿡쿡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근데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아누스 촌장님이 소개해주신 분, 혹시 아는 분인가 해서.”

아리아스필은 아누스에게 받은 쪽지를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마을을 떠나기 전에 촌장님은 아리아에게 쪽지 하나를 내밀어주었다.

“피시스 나트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그럼에도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회귀 전에도 비슷한 이름을 들었던 것 같은데...

[어렵게 생각할 것 없지. 가보면 알잖아.]

그건 현자 말대로였다. 촌장님이 소개해준 사람이고, 곤란한 요구를 하러 가는 것도 아니니 그리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우선 가보죠. 보면 기억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그러자.”

그 순간, 아리아는 레오의 손을 잡으며 앞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아...! 아가씨?!”

“응? 왜?”

아리아의 표정은 태연하면서도 얄밉도록 맹랑했다. 그런 얼굴을 보자 차마 레오나르도는 아무 말도 못했다.

[...]

<닥쳐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마음 속으로 했으니 상관없다. 어차피 또 시원치 않은 소리나 할 테니 미리 입막음하는 게 나을 것이다.

“여긴 것 같아.”

도착한 곳은 풀과 나무가 많이 심겨 있는 숲과도 같은 장소, 유리로 된 벽이 둘러져 있는 걸로 봐선 온실이라 칭해도 무방했다.

“저번에 아메리 씨께 여쭤봤는데, 여기에 자주 있다고 들었거든.”

“그래요? 식물이라도 연구하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아리아는 온실의 문을 열어 들어왔다. 그 사이에도 굳게 붙잡고 있는 레오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근데...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온실에는 식물과 나무만 있을 뿐, 사람은커녕 산새 같은 동물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

레오나르도는 갑자기 아리아가 잡은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곤 한팔로 몸에 갖대 안기까지 했다.

“레...! 레오?!”

“나와. 안 나오면 적으로 간주하지.”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검을 기울인 방향에는 웃음 소리가 났다.

“안 보던 사이에 많이 날카로워졌는데? 레오나르도?”

숲에서 난 소리였지만, 나무 사이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무 자체가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대담해졌다고 봐야할까?”

카랑카랑한 목소리, 이 여성의 것이라 판단해야 적절하겠지.

아카시아 나무의 가지는 떨리더니 이내 사람의 팔 형상으로 변했다. 가지 뿐만 아니라, 몸통도 잎사귀도 점차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으아, 뻐근하다.”

완전히 사람의 형태를 한 여성은 레오나르도를 바라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네. 레오나르도.”

“...아는 사람이야?”

아리아는 미소를 살짝 지운 채 레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육감적인 여성에 대한 본능적 경계심이 그녀의 표정을 굳게 만들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단순히 얼버무리거나 무시의 의도가 아닌, 진심으로 의문의 의미였다. 사실 누구인지 아예 감도 안 잡혔다.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마탑에는 알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거 섭섭하네. 몇 년은 됐다지만, 누나를 잊어? 그럼 기억나게 해줄까?”

누나는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이거 기억 안 나? 그때 내가 가져온 걸로 찍은 건데.”

내민 사진에는 레오나르도 자신과 사진을 내민 그녀가 찍혀있었다. 다만 특징이 있었다면 그 사진에 찍힌 레오는 십대보다도 어린 아이처럼 작고 귀여웠다는 점에 있었다.

“...이건...확실히 저이긴 한데...”

“...하아...그렇...하아...구나...!”

갑자기 들리는 거친 숨소리, 숨을 헐떡이며 그녀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붉어지고 땀을 흘리는 모습이 가히 이형적이라 느껴졌다.

‘...세상에

이런 귀여운 생물이 존재할 수 있구나...! 13살 때보다도 순수하고 귀여워. 저 볼을 잡으면 무척 부드럽겠지? 부드러운 빵처럼 잘

늘어날 거야...! 흉터 있는 몸도 매력적이지만, 저 때는 더 사랑스러워. 지금이라도 껴안아서 몸에 비비면 정말 좋을 텐데...

왜 난 이때 레오랑 처음부터 만나지 못한 거지...!!’

독백과 상상만으로도 아리아는 극상의 행복을 맛볼 수 있었다. 입가에는 군침도 살짝 돌았다.

“저기...? 아가씨?”

“흐...헤... 왜애...?”

“뭣 때문에 흥분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 숨은 고르시고요. 얘기는 계속 하셔야죠.”

그 말에 아리아는 침을 다시며 사진에서 얼굴을 떼며 피시스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아리아... 그런 취향은 아니지?]

<무슨 취향이요?>

[...아냐. 내 머리에 마가 낀 거지. 신경쓰지 마라.]

뭔가 말에 가려운 부분이 있었으나, 눈 앞에 여성은 그 부분을 신경을 쓸 시간도 주지 않았다.

“그래도 놀랐어. 그때 꼬맹이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거든.”

“저기... 정말 죄송한데... 이 사진에 찍힌 게 저인 건 알겠거든요. 근데 여전히 기억이 안 나서...”

그 말에 누나는 더욱 활기찬 기운을 뿜어내며 기억의 되살리는 것을 도왔다.

“예전에... 대략 10년 전 쯤인가? 아누스 선생님께 내가 무릎 꿇고 가르침을 달라고 빌었잖아. 그러고 나서 두세달 동안 선생님께 배우면서 너랑 같이 놀기도 했고.”

“...아....아아...!!”

이제야 기억났다. 그때 그 사람이었구나.

“누나였어? 그때 정령술 배웠던?”

“어! 이제야 기억난 눈친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니... 그렇잖아! 이름하고 성까지 다 바뀌었는데!”

“사정이 있다보니 그렇게 됐어. 아무래도 ‘피순’이라는 이름은 엘레강스하지 못하잖아.”

그건 그렇긴 했다. 하도 뇌리에 남는 이름인지라 ‘피시스’라는 개명이 되려 잘 기억에 남지 않았다.

[예전 이름이 훨씬 나은데?]

<...아...뭐...네...>

새삼 현자가 어느 시대 사람인지 되새길 수 있었다. 현자의 시대엔 저 이름이 오히려 세련됐을 것이다.

“같이 숨바꼭질도 하고 책도 읽어줬잖아. 아, 이제 기억나네.”

“기억나지? 같이 목마도 태워주고, 누나 하면서 쫄래쫄래 따라왔었는데. 그땐 참 귀여웠어.”

옛 고향을 추억이 되살려진다. 생각해보면 아누스 다음으로 레오나르도가 잘 따랐던 사람은 피시스(피순)이었다.

“아, 그래?”

“네. 이제야 생각나네요.”

어느새 아리아는 흥분한 표정을 차갑게 식히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비수와 같은 시선은 레오의 몸을 따갑게 찌르고 있었다.

“같이 숨바꼭질도 하고, 책도 읽어주고, 목마도 태워주고, 누나라고 부르면서 따랐다는 거잖아."

감히도

"아니야?”

“...맞긴 한데요...”

어느샌가 레오는 죄인과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죄목도, 죄명도 잘 모르겠지만 저 차가운 시선을 보면 어느새 고개를 숙연히 숙이게 되었다.

“아, 그렇구나. 알겠네. 잘 알겠어. 그러니까 저 사람이 같이 저 사진에 나온 레오 너랑 어렸을 때 즐거운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는 거잖아.”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대화의 핀트가 몹시... 삐뚤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추측은 사실이었다.

‘...감히... 저렇게 어린 레오를 독점했다고...?’

참고로 마을 사람들과 다 같이 있었으니 독점은 아니었다.

‘그리고 같이 놀고 몸을 비비고...’

논 것은 단순히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숨바꼭질 정도였고, 몸을 비빈 건 목마를 태우다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애당초 당시 레오는 다섯 살이었다.

‘게다가...’

아리아가 가장 화가 난 부분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누나...누나라고?! 감히...?! 나도 듣지 못한 말인데...!!’

참고도 아닐 것이 아리아와 레오는 동갑이었다. 아리아스필도, 레오나르도 또한 이미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저기... 미안한데, 편지 좀 있을까? 아누스 선생님께서 자세한 내용은 그걸로 확인하라고 하셔서.”

“네.”

아리아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내밀었다. 이마의 혈관이 도드라진 것이 그녀의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저기...음...”

“왜요?”

아리아는 도드라진 힘줄에 힘을 살짝 빼며 미소를 지었다.

“너 손가락 악력 장난 아니구나?”

피시스는 간신히 편지를 가져가며 그녀는 쪽지를 펴보았다.

“음...음... 그렇구만. 이해했어.”

“무슨 내용인데? 누...”

“하하, 레오. 지금부턴 여자들의 시간이여서 나가줘야겠어.”

아누스 때와 같다고 느끼는 거면 착각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게 무슨... 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라도 더...”

“자자, 얼른 나가시라고. 부정 탈라.”

영문도 모른 채 레오는 온실 밖으로 쫒겨났다. 그리고 온실 내에는 어느샌가 김이 서려 내부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자, 이제 얘기를 해볼까?”

“무슨 얘기요?”

레오가 사라지자 아리아는 거리낌없이 적의를 들어내었다. 그 적의가 역으로 귀여웠는지 피시스는 배시시 웃었다.

“귀여운 질투인데~ 그래도 또래끼리만 해. 아줌마가 낄 때는 아니잖아?”

“아시면 왜 레오만 빼고 말하시는 거죠?”

여전히 가시가 돋친 발언, 그럼에도 피시스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런 대화는 일대 일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

그러곤 피시스는 자신의 손가락을 튕겨 마력을 전개했다.

[무슨 일이지? 피시스?]

나무에서 정령이 튀어나오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 등장에 아리아는 흠칫 놀라게 되었다.

“역시~ 너 보이는구나?”

“보인다니... 당연히 보이는 거 아닌가요?”

[정말 보이는 것 같군. 시선이 일정해.]

정령조차 놀란 눈치로 아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증오어린 질투로 차있는 아리아의 시선은 어느샌가 의문으로 뒤바뀌었다.

“당연하지 않을걸. 정령을 본다는 건,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드문 일이야.”

정령사, 결과는 마법사와 비슷하지만 과정과 원리라는 마법사와 결이 달랐다.

“정령사는 마나에 축복받은 사람이야. 마나의 정수인 정령과 대화할 수도 있고, 계약할 수도 있지.”

“하지만 레오도 정령을 봤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아누스의 정령들의 외모를 알 리가 없었다.

[그건 촌장이 직접 실체화시켰기 때문이지. 그 소년은 정령술에 재능이 없는 쪽에 가까워.]

실제로 레오나로드는 전생에도 아누스를 통해 정령술을 배우려 했으나 몇 번이고 실패했다.

“정령술은 마법과 달리 재능이 8할이야. 마법사들도 정령사를 할 수는 있겠지만 재능이 없으면 거의 쓸모가 없어서 하지를 않지.”

“하지만 저는...”

아리아는 눈앞에 있는 나무의 정령을 바라보았다. 실제 사람만큼이나 명확하게 보이며, 또렷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자네가 재능이 있다는 증거다.]

“정령술은 마법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사용이 가능해. 오히려 지식이 없기에 더 효율적으로 쓸 수도 있을 걸.”

아리아는 지근거리의 쾌검을 다루는 검사, 그렇기에 마검사인 레오나르도와는 달리 중거리나 원거리에 불리한 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알아본 선생님이 널 나한테 보내신 것 같아. 아무래도 나도 강의라면 몇 번 해본 적 있으니까.”

[보아하니 자네는 검사인 듯한데, 정령술을 배우면 분명 도움될 테지. 정령인 내 입장에서도 추천하겠네.]

그녀 입장에선 분명 좋은 기회이자 제안이었다. 하지만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있었다.

“감사하긴 한데... 아누스 님께서 쪽지에 어떻게 적으셨길래...”

뭐라고 적었기에 마탑의 정령사에게 직접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건지, 그녀 입장에선 조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아, 별거 없어.”

피시스는 자신이 든 편지를 내밀었다.

[내 손주 며느리 될 애다. 정령술에 재능은 있는데, 성교육이 부족하니 그런 걸 고려해서 잘 가르쳐라.]

그녀는 완전히 얼굴이 붉어졌다.

“...으...아...”

그런 붉은 귀에 피시스는 작게 이 말을 속삭였다. 반지가 끼워진 손은 그녀의 가정이 어떤지를 은유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레오 꼬시는 법도 어른의 방식으로 잘~ 알려줄게. 내 남편도 내 기술에 못 참고 먼저 덮쳤거든. 어때?”

잠시 고민하던 아리아는 이후 어린 레오의 사진을 준다는 말에 바로 지장을 찍었다.

거절하기엔 너무 크나큰 오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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