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46화 (46/248)

EP.46 마탑-8

“...으아...”

레오나르도는 잠에서 깨며, 마치 아침에 기상하는 것처럼 기지개를 켰다.

[이번엔 뭔 일이 있었냐? 엄청 끙끙대던데?]

눈앞에 있는 건 현자, 아무래도 현실에는 잘 돌아온 것 같았다.

<...그게... 분명...>

분명 꿈에 들어간 건, 확실히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뒤 일들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고, 흐릿했다.

떠올리려고 할수록 기억의 안개가 더욱더 자욱이 퍼지고, 생각을 끄집어낼수록 머리에 통증이 올라온다.

[기억 안 나면 생각 안 하는 게 나을 거다. 자기 꿈도 2분만에 잊는 게 태반인데, 남의 꿈은 오죽하겠냐?]

그 말대로긴 했다. 오히려 아리아에게는 사생활적인 것도 많이 섞여있을 테니 기억하지 않는 편이 나을 테지.

“...그보다 아리아는 어떻게 됐죠?”

중요한 건 그것보다 아리아의 안전이었다. 본목적인 아리아가 무사하지 못한다면 이 작전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아리아스필 양은 이미 깨어났어요. 저쪽에...”

아리아스필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관으로 썼던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 일어났어? 레오.”

악몽에 시달린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리아스필은 맑은 미소로 레오에게 눈웃음을 지어보었다.

[...쟨 아까부터 왜 저렇게 싱글벙글이야? 짐작 가는 게 아예 없냐?]

<글쎄요... 꿈에서 안전하게 깨서 그런가...>

어설픈 추측이었지만, 불확실한 기억으로는 그 정도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레오.”

아리아는 귓가 뒤로 머리를 넘기며 레오의 입술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입에 뭐가 묻었어.”

그렇게 말하곤 요염한 웃음을 지은 채 그녀는 다시 책을 정리했다.

...

.....

.........

[너 섰...]

<닥치세요.>

자다가 깨다보면 어쩔 수 없는 생리 현상일 뿐이다. 그런 것이며 그런 것이어야 했다.

***

우선 현자의 유산을 찾는 건, 여기서 중단하기로 했다.

필요한 유산들은 전부 모였고, 이번처럼 위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기에 유산을 찾는 건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 사이 레오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아리아도 자신의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근데 어디에 신고할 거냐? 역시 마탑주?]

모은 증거들을 보며 현자는 찡그린 얼굴 물었다. 지금까지의 범죄 행각이 어지간히 엄중한지라 차마 현자마저 농담이나 쌍욕도 하지 않았다.

<아뇨. 마탑주들에게 신고해서야 증거로 증명한다 해도, 백이나 돈 있는 녀석들은 솜방망이로 처벌 받겠죠.>

그것도 레오나르도가 직접 신고해선 오히려 본인 입이나 막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하긴... 윗 대가리라고 만능은 아니니까. 오히려 제약이 더 많지. 그럼 어떻게 하게? 대자보라도 붙일 거냐?]

<아뇨. 제가 안 할 겁니다.>

그 의문스러운 말에 현자는 이해를 할 수 없었는지, 되물었다.

[그럼 뭐? 누가 대리로 해주겠대?]

<오, 역시 현자님이시네요.>

[이게 왜 진짜냐?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이미 판을 다 깔아뒀고, 나머지 그 새끼들이 서로 알아서 자폭할 겁니다.]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든 증거물과 같은 것들을 들었다.

[그게 왜 두 개냐?]

<복사본입니다.>

정확히는 인쇄용 마도구로 복사한 사본, 증거 효력은 없는 복제품이었다.

<이 사본들을 몇몇 마법사들한테 뿌렸죠.>

[몇몇? 그럴 바엔 신문사에 보내는 게 낫지 않아?]

<언론이 우리 편이었던 적이 있습니까?>

마음 같아선 신문사 기자들을 농담(물리)로 다 암살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보고만 계세요. 발표만 끝나면 알아서 서로 죽고 죽일 테니까요.>

[그래. 뭐... 나도 궁금하긴 하네. 애들 반응이 어떨지는 궁금하긴 해.]

현자의 말에 레오나르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자 연구부실로 걸어갔다.

“아메리 씨!”

“아, 레오나르도 군!”

아메리 에스프는 그날따라 정갈하고 생기있는 차림으로 부실에 앉아있었다.

눈그늘도 사라져있고, 피부도 무척 매끈하고 촉촉하게 변했으며, 머릿결도 깔끔히 묶여있으며 빗으로 쓸어내려져 있었다.

[유산을 찼다고 사람이 이렇게 변해?]

<화장한 거겠죠.>

[그것도 마찬가지인데?]

익숙지는 않은 깔끔한 모습이었지만, 이런 허름한 동아리실에 있을 사람은 아메리 밖에 없었다.

“정말 여기서 모여도 될까요? 마탑주님들이...”

“유산을 찾은 것도 저희, 이런 허름한 공간을 현자로 연구하는 부실로 내준 건 마탑 측입니다. 저흰 꿀릴 것도, 잘못한 것도 없어요.”

대학원생인 그녀에겐 하나하나가 학점이 깎이는 상황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저자세로 나와서야 졸업은커녕 사회생활도 힘들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그 순간, 허름한 문이 또다시 열리며 마법계의 거물들이 차례로 걸어왔다.

“꽤나 허름하군.”

흑탑주 베르난 베르데인부터.

“꼭 이런 곳에서 모여야겠어?”

백탑의 대마법사 아스피 일리난,

“정말 현자의 유산을 얻은 거지?”

청탑 최상층의 관리인 블루아 블랑,

“들어보면 알 테지!”

적탑주이자 전투 마법사인 제인 나르샤까지.

4명의 현 마법계의 기둥들이 현자부의 동아리실에 왔다. 순식간에 공기가 무거워지며 마나의 밀도가 짙어졌다.

“...그...그럼... 차라도...”

“아니, 괜찮다. 일이 일인 만큼 본론으로 바로 넘어가도록 하지.”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는 발언에 아메리는 바로 기세에 위축되었다.

“본론이라... 이거 말씀이신가요?”

레오나르도는 태연히 ‘진실과 사실의 목장식’을 목에서 잡아들었다.

자연히 그 현자의 목걸이에 대마법사들의 시선이 모였다.

“진짜야...?”

“...진짜로군.”

“아무리 그래도...”

“확인해보면 그만이지!”

먼저 나선 건 적탑주였다.

“난 남자다!”

바보같이 들리는 말이겠지만,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기 쉬운 것은 우문이 제일 적절했다.

지잉

목장식의 눈에서는 붉은 섬광이 빛났다.

“오호~ 그럼 그건 거짓말이다. 난 여자다!”

그 해명에 붉은 광선은 사라졌다.

“오오, 아무래도 진품인 것 같군. 현대의 마법으론 재현할 수 없는 기술이야!”

적탑주의 시험에 다른 마탑주들도 현자의 유산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무엇보다 지금 들고 있는 목장식이 판별해주는 거짓말 탐지 기능이 크게 한몫해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얻게 된 경위를 듣고 싶다만.”

“겨...경위는 보고서에 올린 그대롭니다.”

“이거 말인가?”

흑탑주는 제출받은 보고서를 내밀며 말했다.

“요약하자면... 아메리 학생이 모은 자료를 토대로 레오나르도 자네가 즉석으로 추리해 몇백 년 동안 베일에 감싸진 현자의 유산을 두 개나 찾았다는 것인데... 이걸 신뢰하라는 건가?”

하지만 다들 여전히 의심은 거두지 않았다. 얻은 경위나 시험에 통과한 방식은 정상인인 이상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걸 보시고도 신뢰할 수 없다면 저희 쪽에선 어쩔 도리가 없군요.”

목장식을 내보이며 레오는 말했다. 단순히 유산을 얻었다는 의미가 아닌, 이 목장식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되새기는 의도 또한 섞여있었다.

“...그래. 목장식이 그렇다면야 믿는 수밖에 없겠지.”

“그럼 다음 주제로, 그 유산들에 대한 처분에 대한 문제로 넘어가야겠군!”

그 말에 마탑주들은 각자의 번뜩이는 욕망을 눈으로 드러내었다. 저 유산들이 가지는 가치는 마법사인 이상 모를 수가 없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지. 아메리는 흑탑의 학생, 그리고 현자의 유산은 흑탑의 전문 분야인 마도구학. 그렇게 고려했을 때...”

흑탑주의 말을 자른 것은 백탑주였다.

“그건 전제가 잘못되었지 않나? 흑탑이 마도구의 분야를 다루고 있는 것과 현자의 유산은 별개의 문제지.”

청탑주도 유리한 흑탑주의 견제를 위해 그녀를 거들었다.

“거기에 흑탑의 학생이라는 이유로 유산을 가지는 건 현자님과 학생에 대한 모독 아닐까 싶은데, 내 착각인가?”

“나도 가급적 중립을 유지하고 싶은 입장이다만, 흑탑주 말엔 동의할 수 없군!”

그렇게 의견을 표명하면서도 그들은 슬며시 목장식을 바라보았다. 목장식의 눈엔 아직 빛이 나오진 않았다.

[아무래도 벌써 파훼법을 찾은 것 같은데?]

<괜히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마탑의 꼭대기에 올라온 게 아니죠.>

저들의 말은 대부분 추측과 견해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런 것에는 진실이나 사실의 개념이 모호해지기 마련이니, 거짓이 간파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선 진정하시죠. 저희 쪽에서도 의견을 표명할 권리는 있습니다.”

그 말에 권모술수 마탑주들은 기세와 위압으로 레오나르도를 제압하려고 했다.

하지만 모든 공포에 다져질 대로 다져진 레오에게 무의미했다.

“그래, 말해보겠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이젠 공수가 역전될 것이다.

“저흰 현자의 유산을 양도할 생각 없습니다.”

또다시 압박해오는 감각, 이미 옆쪽의 대학원생은 압도된 나머지 화장 너머로 다크서클이 다시 들어나고 있었다.

“어째서지?”

그럼에도 여기서 물러날 순 없었다.

“애당초 현자의 유산은 자격이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다는 조건으로 마탑에 숨겨둔 거죠. 안 그렇습니까?”

다들 쉽사리 반박하지 못했다. 현자가 스스로 이미지를 깎아먹어서 그렇지, 새삼 그의 위상이 어떤 위치에 안치되어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놓고 봤을 때 저희가 이걸 소유하는 건, 지극히 타당하죠.”

그리고 아메리는 아예 반지의 부작용으로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에 대한 근거는 더욱더 논리적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마탑주님들이 염려하시는 부분도 충분히 고려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레오나르도는 목장식을 벗으며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렇기에 제안 하나 드리죠.”

협상의 주도권은 이미 레오가 잡았다.

***

[진짜 그렇게 해도 돼?]

목걸이가 없는 목을 보며 현자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되니까 했습니다. 괜찮아요.>

목걸이는 마탑에 맡기는 것으로 결정했다.

물론 지금도 명시적 주인은 레오였고, 마탑에 맡기는 건 갱신형 한시적 대여의 방식이었다.

[껍데기만 그런 거지, 주인이라 하기도 애매하고... 무엇보다 얻은 것도 별로 없잖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죠.>

레오가 든 것은《특수 마법 허가서》

중급 마법 허가서보다도, 심지어 상급 허가서보다도 유용한 허가서였으니 손해라 할 것까진 없었다.

<고유 마법이라는 것도 개발하려면 일일이 허가받아야 합니다. 그럴 바엔 지금 받는 게 낫죠.>

[...그래 뭐... 그것도 방식은 가르쳐줄 테지만...]

현자는 정면에 있는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방에는 레오가 대여시켜준 목장식이 들어있었다.

[...굳이 저 개코딱지만한 전시관을 만들 필요는 있냐? 그것도 저렇게 조촐하게 할 바에는 박물관에 기증하는 게 낫겠다.]

<있죠. 사실은 그게 본목적입니다.>

[그게?]

레오나르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예약서에 적혀있는 인물들을 이름을 살폈다.

“그 페도 새끼도 있고... 횡령범... 그리고 나머지들도 잘 있네.”

[...뭐가? 뭔데 그래?]

현자도 어깨 너머로 예약 리스트를 살펴보았다.

<제가 몇몇 마법사들한테 증거 복사본 뿌렸다고 했잖아요.>

[그랬었지. 마탑주한테는 하면 안 된다며.]

<정확히는 여기 있는 9할의 마법사들이 대리로 해줄 겁니다.>

레오나르도는 리스트를 넘겨보여주며 말했다. 리스트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동태 같던 현자의 눈에 생기가 불어넣어졌다.

[...어...야... 혹시 너 얘네들한테...]

<원래 쓰레기 새끼가 쓰레기를 잘 잡아요. 자기를 잘 아니까요.>

지금 복사본을 보낸 상대들은 리스트에 적혀있는 인물을 포함해, 그 인물의 적대적 상황에 놓인 인물이었다.

<뭐 특허 경쟁부터 해서 교수직, 논문, 서열, 파벌 싸움까지도. 그 인간 말종들이랑은 안 싸우고 못 배길 놈들로만 엄선했죠.>

의심은 당연히 할 것이다. 바로 증거로 사용할 수도 없고 누군가의 함정인 것도 의심할 테지.

하지만 상관없다. 그에 맞는 절대적인 무기도 마련되있으니까.

[하지만 복사본이라며. 법적 효력은 없을...]

레오나르도는 미소를 지으며 작은 방문을 가리켰다.

<저게 뭔 것 같습니까?>

[...와...오...씨... 나 순간 소름 돋았어.]

저 방은 이제부터 진실의 방이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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