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8 아리아는 배운다-2
마탑에서의 생활도 일주일이 지났다.
[그래. 그런 식으로! 옳지!]
레오나르도는 마탑에서 미뤄두었던 3서클의 마법과 3성의 코어를 안정화시켰다.
원래 코어는 전부터 3성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서클과의 안정성을 중시하라는 현자의 조언에 따라 서클의 성장에 따라 균형을 맞춘 것이었다.
<파이어 스톰>
연속적으로 방출되는 파이어볼의 회오리, 위력과 파괴력은 파이어볼과 비교하는 게 죄송스러울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예 표적인 바위 덩어리를 불로 부숴 녹여버렸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렇게 센 마법입니까?”
[원래 이런데, 이 시대의 마법사놈들이 정말 형편없게 쓰는 거야.]
그게 역으로 더 충격적이었다.
[내가 괜히 내실을 다지라 했겠냐?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와... 존경합니다. 현자님.>
이건 존경을 안 하고는 못 배겼다. 전생에도 상급 마법사들과 자주 싸워본 레오로서는 고작 3서클 마법이 이런 위력을 발휘하는 것에 경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낯간지러운 소리는 됐고, 이제 전체적으로 다져질 건 다져졌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어.]
<다음 단계면 4서클 마법인가요?>
[아니, 고유 마법.]
레오나르도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수님의 진도가 너무 빨랐다.
<고유 마법이요? 그... 대마법사들이나 쓴다는...?>
고유 마법, 스스로만이 만들어낸 고유한 특징을 지닌 마법.
대마법사의 위업이라고도 칭송받는 최상급의 마법이었다.
[뭐가 대마법사냐? 그거 사실 초급 마법만 배우면 바로 만들 수 있는 거야. 그게 이 시대에 와서 묘하게 추앙받아서 그렇지.]
현자는 눈과 눈꺼풀을 긁으며 태연히 그렇게 말했다. 사실 레오나르도도 고유 마법을 지닌 마법사들과도 상대해본 적도 있긴 했다.
생각해보면 당시 전투할 때 썼던 고유 마법들도 범용 마법에 비하면 정말 시원치 않기는 했다.
[어쨌든 오늘은 여기서 끝이야. 푹 쉬고, 내일 보자고.]
<근데 어차피 저희 같이 다니잖아요.>
[아, 그러네?]
애당초 저 양반이 본인 심장에 현자의 돌을 박은 인간이었다. 뭔가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따져야 할 것 같았으나 지금은 귀찮은지라 미루기로 했다.
[근데 아리아는 어딨냐?]
<아직 훈련 중이겠죠.>
아리아스필은 일주일 동안 피시스에게 정령술을 배우기로 했다. 최근에는 얼굴도 보는 것이 힘들어졌지.
[..,근데 일주일만에 정령술을 익힐 수 있을까? 재능이 아무리 있어도 반년에서 일년은 걸릴 텐데.]
<될 겁니다. 전생에도 쓰긴 썼거든요.>
대략 17살쯤 정도에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었다. 배에 출혈이 생겼는데, 갑자기 주변의 물 정령이 나타나서 복부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자연스럽게...? 그러니까...]
<그냥 썼어요. 그래서 저도 딱히 선생이 필요 없겠다고 생각해서 놔둔 거죠.>
레오 본인이 가르쳐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리아도 그저 보조기로 쓰기만 할 뿐, 딱히 진심으로 배우지 않았다.
배우면 좋을 수도 있었겠지만, 무리하게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걘 없이도 잘 싸웠거든요.>
애당초 성검을 얻은 뒤로는 검에서 광선을 수시로 발사하는데 정령이 뭐가 대수겠는가.
정령이 바람으로 칼날 만들 때, 아리아는 검풍만으로 절벽을 만들어냈다.
[...흠...그게 사실이라면 좀 무서운데...]
<천재란 게 그런 거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걘 도대체 어떻게 죽은 거냐?]
현자로서는 그런 천재와 괴물의 경계에 있는 인간이, 그것도 용사가 죽는 것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야,네가 모르면 누가 아는데?]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다 미치거나 죽었거든요.>
[...뭐?]
뒤늦게 레오가 현장에 갔을 때 그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그 현장에 아리아스필이 없었더라면, 한 국가가 멸망하는 것도 무리도 아닐 것이었다.
<방에 돌아가서 설명해드릴게요. 그때의 일을요. 아무래도 미루기만 할 순 없으니까요.>
현자는 말로 대답하지 않은 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의 상처는 아직 레오에겐 쓰라린 흉터로만 느껴졌기에, 현자로선 섣부르게 대답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레오!”
그 순간, 이 비극의 주인공이 레오에게로 뛰어왔다.
“아리아 아가...!”
레오나르도는 그 순간 말을 멈췄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우...]
아리아의 옷차림은 평소와는 격이 달랐다.
평소에는 기동성과 편안함을 중시했다면, 지금 옷은 아리아스필이라는 여자의 매력에 모든 것을 치중시키고 집중시켰다.
분명 평범한 블라우스에 긴 치마를 입은 것일 뿐이었지만.
노출이 적은 것은 역으로 특유의 청초함을 나타내면서도, 가슴의 볼륨과 대비되는 잘록한 허리를 강조해 색기어린 매력을 드러내다 못해 과시하고 있었다.
보자마자 심장이 갑자기 거세게 뛰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거 착각 아닌...]
닥쳐라. 착각이라면 착각인 것이다.
“...어때?”
“예?”
그녀가 슬며시 몸을 다가 세우며 물었다.
“피시스 씨께서 주신 옷이야. 어울릴 거라고 하셨거든.”
몹시 적합하고 적절한 스타일링이었지만, 심장 건강에 꽤나 고통스러운 코디네이션이었다.
파시스에 대한 원망스러움과 감사함이 공존해 합일했다.
[그거 그냥 좋은 거잖...]
그거랑은 엄연히 다르다. 다르고 말고. 이 설명을 듣고도 이해를 못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어...때?”
슬며시 자세를 잡은 아리아는 물었다. 어설펐지만 오히려 그게 색기와 귀여움을 동시에 잡는 묘수가 되어주었다.
“아...아름다우십니다. 무척이나...”
레오는 얼굴의 붉은 홍조를 가리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아리아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을 남겼다.
“그래? 다행이다!”
아리아는 순수한 표정으로 웃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작전대로...!’
일주일 동안 아리아가 배운 것은 정령술 뿐만이 아니었다.
***
사실 정령술은 이미 하루만에 진도를 빼둔지 오래였다.
‘...너 진짜 처음 하는 거야...? 진짜...?!’
‘...예? 그런데요...? 뭔가 잘못된 건가요...?’
‘그 반대야...!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지?!’
아리아스필 그녀는 정령에, 마나에게 지나치게 사랑받고 있었다. 지금 피시스가 가르친 것은 정령술조차 아니었다.
‘...그냥 마나를 인격으로 인지하는 법만 알려줬다고... 근데 바로 이렇게...’
아리아는 그 방식을 듣자마자 온실 속 숲의 모든 정령을 자신의 주변으로 집합시켰다.
온 정령들은 말을 짜맞추기라도 한 듯 이 말을 내뱉었다.
[그냥 와야 할 것 같았어.]
생각해보면 아리아스필이 여태껏 만나왔던 정령들은 이미 계약이 된 요정들 뿐이었다.
그런 계약 정령들조차 아리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시점에서, 아리아의 재능은 규격 외나 다름없었는지도 몰랐다.
‘...뭔가를 더 다듬어야할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겠어.’
그 뒤로 피시스는 여태까지의 수업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했다.
원래라면 간신히 부름에 응답한 정령과 교감을 통해 정령 친화력을 높이고 계약을 진행시키는 방향으로 가르치는 게 정석이었다.
‘저도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아니, 넌 계약하는 게 오히려 손해야.’
계약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령과의 인연을 깊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정령과의 연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용할 수 있는 마법과 마나도 늘고, 복잡한 지시나 대화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근데 넌 언제 어디서든 마나만 있다면 정령과 대화가 가능할 거야. 계약을 하면 오히려 종속될 가능성이 높아.’
정령 또한 지성체의 일종, 그렇기에 분노나 질투와 같은 감정을 품고 정령사를 돕지 않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어지간해선 정령사들은 다수의 정령과 계약하는 걸 선호하진 않아. 곤란하기도 하고, 까다로운 제약이 많거든.’
‘아누스 촌장님은 제법 많이 계약하셨던데...’
‘그건 고향 출신의 혜택이지. 같은 출신의 정령들과는 연이 깊을 수밖에 없거든.’
실제로 아누스의 전투에 협력했던 건 계약하지 않는 소정령들도 포함되었다. 정령들은 때론 인간들보다 지연이나 혈연과 같은 인맥을 중시했다.
‘근데 넌 이 세상 모든 곳이 고향이나 다름 없어.’
아리아의 정령 친화력은 과하다 말할 정도로 특출났다. 정령의 지역을 대규모로 파괴하지 않는 이상, 모든 정령들은 아리아스필이라는 존재에게 호의적일 것이다.
‘그러니 굳이 계약할 필요는 없지. 오히려 정령들 관계만 나빠져.’
지금부터 집중할 것은 정령과의 마법 사용 정도 뿐이었다. 정령 마법의 장점은 친밀도만 높으면 마법을 실행하기 쉽다는 것에 있었으니, 지금 아리아에겐 일의 축에 끼지도 못했다.
‘그럼 지금은 조금 여유를 갖자는 의미에서 다른 걸 배워볼까?’
‘다른 거요?’
피시스는 여유있는 미소와 함께 사진을 보여주었다.
‘레오를 꼬시는 법. 사실 이게 본론이잖아?’
아리아는 어느샌가 수첩을 꺼내들고 있었다.
***
‘...계획대로야...!’
아리아는 레오의 저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보며 계획의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지금 입은 옷 또한 피시스가 유혹을 위해 준 옷, 계획의 일부였다.
‘이 옷이 제일이야. 너무 파이거나 벗겨진 옷이면 의도가 보이거든. 근데 이 옷은 가릴 곳은 다 가리지만 몸의 매력을 살려주니까 오히려 더 매혹적으로 보이지.’
그 말대로 아리아스필은 이런 옷을 입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저 앞의 소년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눈치였다.
항상 어른스럽기만 했던 그 레오나르도가 지금은 붉은 얼굴을 감추려고만 하는 것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이제 2단계.’
아리아는 자신의 장점을 최대로 살리기로 했다.
“오랜만에 찌뿌둥한데... 대련이라도 할까?”
“대련이요? 좋네요!”
대련만 하는 것으로는 여성성을 드러내는 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역수가 되어 허점을 찌를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대련 당시도 있겠지만, 대련 끝난 이후야.’
대련 자체에서는 이성적인 스킨쉽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이후라면 다르다.
대련에 지친 것을 핑계로 업히거나 안아들 수도 있고, 상처가 생겼다면 직접 다친 부위에 서로 소독도 할 수 있으며,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대련 후의 마사지
‘어떻게든 야릇한 분위기가 나올 수밖에 없지. 스킨쉽도 자연스럽고 신음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지만, 듣는 쪽은 좋든 싫든 의식하게 되거든.’
그것뿐일까, 만약
아리아 자신이 받는다면 레오가 당황스레 자신의 몸을 주무르는 걸 가장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었고, 자신이 하는 쪽이라면
합법적으로 레오의 몸을 주무를 수 있었다. 어느 쪽이든 쉽게 얻을 수 없는 포상이라는 말이었다.
“....흐...헤...”
[...쟤 왜 저렇게 띨빵하게 웃냐?]
<...>
차마 변호를 못하는 레오였다. 띨빵하다는 건 분명 과한 표현이었지만, 아니라는 반론을 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레오는 당황스럽게 말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대련은...”
“대련이라, 나쁘지 않겠군.”
그 자리로 걸어들어온 것은 쓸데없이 크고 무거운 지팡이를 든 여성이었다.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육감적 몸매는 곡선으로나마 여실히 드러났고 오히려 정장을 통해 어른의 매력마저 끌어내고 있었다.
“실례만 안 된다면 내가 먼저 자네와 해도 괜찮겠나?”
“...오랜만이군요. 에일린 템페리우스 님.”
레오나르도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그녀의 명예 앞에 품격있는 인사를 내보였다.
에일린 템페리우스.
마법계의 정점이라 불리우는 템페리우스 가문의 영애이자.
‘...여자...’
현재 아리아의 연적이 된 여성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