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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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물자를 내려 부두를 만들었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대충 배를 댈 수 있는 간이형이다.
쩌저저적!
곧게 뻗은 나무들도 베어서 통나무집도 만들고. 오토호스를 이용해 땅을 다져 길도 만들었다.
작은 마을이 뚝딱 하고 생겼다.
샤샤샥.
구경을 하고 있던 리안에게 한 그림자가 다가왔다.
“알아 왔어?”
“네. 주군.”
햄토리 한조였다.
그녀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야인의 뒤를 밟아 그들의 본거지를 알아냈다.
“다들 연장 챙겨요.”
리안이 말하자 전투가 가능한 인원들이 부산해졌다.
리안도 오토호스에 올라 천천히 몰았다.
* * *
야인족의 마을은 난리가 났다.
“추장. 허여멀건 놈들이 다가옵니다.”
“숫자는 얼마나 되더냐.”
“우리보다 적었습니다. 게다가 괴물 말을 탄 놈들도 얼마 없었습니다.”
오토호스는 여러 분야의 정수가 담긴 문명의 산물이다.
산업과 마도공학이 발달할 수 없는 유목민 특성을 가진 이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물건.
“부족민의 숫자가 이보다 줄어들면 정말 큰일이다.”
이들은 원래 이쪽에서 활동하던 부족이 아니다.
다른 부족들에게 밀리고 밀려서 이런 척박한 곳까지 흘러온 것이다.
“더 이상 갈 곳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결국 그들은 전투가 가능한 부족민들을 모아 말에 올랐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말과 함께였기에 기마의 귀재들이었다.
다시 말해 모든 부족 남자들이 군인이다.
“가자!!”
그들을 말을 몰라 리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두두두!!
얼마 가지 않아 리안의 군대가 보였다.
그들 중 일부는 이상한 막대기를 들고 행군하고 있었다.
“저것도 무기라고.”
“방심하지 마라. 조선국을 친 왜인들이 저 무기로 조선을 박살 냈다고 하니.”
그에 다른 부족원들이 말했다.
이들도 소식이 아주 깜깜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국의 국경에서 몰래 거래를 해왔기에.
“그래 봐야 활과 거리가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아니야. 위력은 활보다 강하지만, 사거리는 활보다 못하다고 들었어.”
그렇다면 더 환영이다.
어차피 이들은 약한 부족이었기에 갑옷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차라리 사거리 밖에서 치고 빠지는 기병 전술이 먹힌다면, 일방적인 전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자. 형제들이여. 저놈들에게 우리 부족의 따끔한 화살 맛을 보여 주자!”
“끼요오오오오!!”
야인들은 즉시 활을 꺼내 들고 말을 몰았다.
두두두두두!!
그들은 강렬한 기세로 몰려왔다.
“모두 전투 준비.”
대부분이 밀라노정의 상선에 탄 전투원들이었다.
웃기게도 바다를 누비며 다닌 이들은 웬만한 군인들보다 정예였다.
당황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사격 준비가 끝났습니다. 전하.”
밀라노정의 선단장이 말했다.
“적당히 상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전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거리에 들어오는 즉시 마총을 발사했다.
타다다당!!!
마총들이 일시에 불을 뿜었다.
발사 후 이글거리며 남은 마나의 잔향이 마치 악마의 모습 같았다.
“끄아아악!!!”
야인들은 활을 쏘기 한참 전에 꼬꾸라졌다.
방금 전 나눴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사거리가…….’
활이 더 길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발사!!!”
그걸로 끝나지 않고 저들은 뒷열에 있던 자들이 마총을 곧장 발사했다.
타다다당!!!
또다시 얻어맞은 일부 기병들이 바닥에 꼬꾸라졌다.
족장의 명령이 따로 없었기에 이들은 이를 악물고 활의 사정거리까지 들어갔다.
샤샤샤샥!!
야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활을 발사했다.
이쪽이 피해를 본 만큼 갚아 주겠노라 다짐하며.
퍼버버벅!
그런데, 그 화살에 당하는 이들이 없었다.
막대기를 들지 않은 자들이 어설프게 만들어진 방패로 마총들을 가려 주었다.
참고로 나무방패를 든 자들의 대부분은 일반 선원들이었다.
“빌어먹을. 후퇴. 후퇴한다!!”
족장은 돌격을 해 볼까 생각했지만, 저들은 창병도 있었다.
거기다 거리를 좁히다가는 또다시 마총에게 두들겨 맞을 것이다.
부족원을 더 잃었다가는 이겨도 이기는 것이 아니다.
두두두두!!!
야인들은 들어온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물러났다.
겨우 두 번의 마총을 맞은 것만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사상자가 속출했다.
거대한 말조차도 단 한방에 꼬꾸라졌다.
“어찌합니까. 족장.”
부족원들이 분한 듯 눈물을 흘렸다.
도망치고 도망쳐서 마지막에 싸운 자들이 지금까지 상대했던 어떠한 적들보다 강한 것 같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예전에 죽기 살기로 싸웠을 것이다.
“떠나야지.”
이곳도 살기에는 퍽 좋지 않은 곳이다.
간단한 농사는커녕 가축을 키우기에도 적당하지 않다.
추워도 너무 추운 곳이었다.
“족장!! 저놈들이… 곧장 마을로 갑니다!!”
“뭐?! 어떻게 알고…….”
족장은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 처음 정찰을 보냈던 놈들이 뒤를 밟혔던 모양.
재산과 아녀자들을 피난시킬 시간이 있을 줄 알았더니 몸만 빠져나오는 것도 힘들 지경.
“내가… 가 보겠다. 시간을 끌 테니 최대한 많은 이들을 피신시켜라.”
“족장!!”
“너는 지켜보다가 내가 죽는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미련 없이 떠나거라.”
결국 족장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이상한 생김새의 적들에게 단기로 향했다.
달가락. 달가락.
족장이 모는 말은 기운이 없었다.
이미 죽을 각오도 마쳤다.
“멈춰라!”
누군가의 외침에 족장은 말에서 내렸다.
‘다행히 말은 통하나 보군.’
들려온 것은 자신들의 언어였다.
“음?”
그러다 한 인물이 자신에게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게 낯이 익은 인물이다.
“어어어……!!”
그가 가까이 올수록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야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인물.
“나를 아는가?”
“가… 가순신 장군이 아닙니까.”
한때 북방에서도 근무를 했던 가순신이었다.
“나는 네가 기억나지 않는군.”
“제가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장군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알아보지 못하실 겁니다.”
“그런가? 내 얼굴을 봤다는 것은 조선국에 우호적인 부족이었나 보군.”
모든 야인들이 조선국과 적이 아니다.
국경의 일부 야인들은 오히려 조선국과 협조하며 충성을 바쳤다.
“내 주군께서 기다리시니. 일단 가세나.”
“주… 주군이라시면!!”
족장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조선의 장수가 모시는 자라면 단 한 명밖에 없다.
‘조선국 국왕!!! 그가 어째서 이런 곳에…….’
손이 달달 떨렸다.
왕의 군대를 공격한 죄로 일족이 몰살당할지도 모른다.
“전하를 뵈옵니다아아!!”
족장이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예법을 모르니 최대한 자신을 낮췄다.
“내가 왕인 것을 알아보다니. 안목이 좋군. 그래. 네 이름이 무엇이더냐.”
“agsnhh이옵니다.”
“에그스흐흐흐?”
“그게 아니오라. agsnhh이옵니다.”
“엑구우스흐흐흐?”
“그러니까…….”
“아씨. 되었다. 이름이 뭐가 중하랴. 고개를 들라.”
리안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이들의 발음은 흉내 내기가 어려웠다.
“음?!”
족장 agsnhh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분면 왕이라 했는데, 머리 색도 그러하고 복색도 조선국의 것이 아니었다.
“왜 그러느냐.”
“아… 아니옵니다.”
“그보다 너는 왜 나를 공격했느냐.”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전하. 부디 제 부족원들은 살려 주시옵소서. 저들은 아무것도 모르옵니다.”
“그럼 넌 알고 그랬냐.”
“그것이 아니오라…….”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왕을 공격하는 것 자체로 죽을죄이다.
특히나 조선국은 대대로 야인들을 깔봐 오지 않았는가.
“됐다. 나는 너희에게 제안을 하러 온 것이니 경계할 필요는 없다. 그저 오해로 인해 서로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말이다.”
“대초원만큼이나 넓으신 아량에 감사드리옵니다.”
족장은 바닥에 머리를 쿵 하고 박았다.
덕분에 쓰고 있던 모자가 벗겨졌는데, 정수리 부분을 모두 밀었고. 나머지 머리는 땋아서 요상한 모양새였다.
참으로 눈이 적응되지 아니했다.
“과한 예는 되었다. 너는 부족원들을 이끌고 내가 배를 몰고 온 곳으로 오거라.”
“아… 알겠습니다. 전하.”
설마. 회유하는 척하고 다 죽이지는 않겠지?
그렇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명을 어기고 도망쳤다가는?
왕이 다른 부족들에게 현상금을 걸어 버릴지도 모른다.
적당히 놔줬던 다른 부족들은 있는 힘껏 이들을 잡으러 올 것이다.
agsnhh의 부족이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부족들이 적당히 놔 줬기 때문이다.
“서둘러 다녀오겠나이다.”
이럴 땐 최대한 시키는 대로 해서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두드드드!!!
족장은 말을 몰아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은 완전히 아수라장.
서둘러 도망가기 위해 중요한 물건만을 챙기기 위해 분주했다.
“다들 그만!”
“족장님!! 족장님이 돌아오셨다.”
모두의 두려운 눈동자가 agsnhh에게로 향했다.
그보다 살아서 돌아온 것이면 말이 잘 된 것인가?
“어찌 되었습니까?”
“그들은 왕의 군대였다. 다들 가순신이라고 들어 봤을 거다.”
“어어어……?!”
다들 충격으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도대체 이곳이 뭐라고 왕이 행차했단 말인가.
“그런데… 그들은 조선국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는데…….”
“모르지. 근위대나 귀족들은 우리와 생김새가 다를지도.”
“그… 그렇군요.”
이상하게 납득이 되기도 했다.
어차피 태어나 왕을 본 적이라고는 이번이 처음이니까.
“되었고. 전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
“어디로 말입니까?”
“커다란 배들이 온 곳으로 말이다.”
“…….”
그곳이 어디인지 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터를 잡을 만한 곳이 없나 둘러보다 발견했던 몇 개의 후보지 중 하나였다.
넓은 평지와 바람을 막아주는 산을 낀 해안.
“그곳으로는 왜…….”
“일단 부족원들 모두를 데려오라 하셨으니 따라야지.”
“설마. 다 죽이지는 않겠지요?”
“그렇다 해도 가야지.”
가면은 살 가능성도 있지만, 도망친다면 끝끝내 모두가 죽을 것이다.
“중요한 짐만 챙겨서 간다!”
어차피 피난을 가려고 챙기던 중이라 곧장 출발할 수 있었다.
모두 두려운 얼굴로 나섰다.
달그락. 달그락. 메에에~
말과 염소 그리고 사람의 행렬.
리안이 있는 곳은 그리 먼 곳이 아니었다.
겨우 두 시간 만에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 거리.
“어서 와라. 아그스르른흐흐.”
agsnhh는 자신의 이름을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만, 감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족들은 리안의 앞에 모두 엎드렸다.
몇몇 이는 리안의 생김새를 보고 크게 놀란 모양.
“그대들을 이리로 부른 이유는 이 땅을 하사하기 위함이다.”
부족원들은 사실 어이가 없었다.
이곳은 원래 주인이 없던 곳.
영역으로 따지면 자신들이 개척한 땅이다.
“감사드리옵니다. 전하.”
족장도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이곳은 분명 이전에도 와 본 적이 있었다.
마을을 세우기엔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
사냥을 하려면 한참이나 밖으로 나가야 했으니.
“이곳까지 오느라 시장할 테니 일단 먹고 이야기를 하지. 나눠 주어라.”
“네. 전하.”
리안이 명하자 배에서 귀한 곡식들을 주민들에게 나눠 주었다.
북방은 농사가 힘든 땅이라 곡물이 오히려 귀했다.
“저… 정말로 저희에게 주시는 것입니까?”
곡물뿐만 아니라 소금도 주었다.
가축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또 소금이다.
거기에 더해.
“이 귀한 것을…….”
두꺼운 이불도 나눠 주었다.
면포 또한 귀하기는 마찬가지.
고기와 가죽 빼고는 모든 것이 귀했다.
“주상전하! 천세!!! 천세!!!”
이들은 여전히 리안이 조선국의 왕이라 믿었다.
일단 왕이 맞다 하니 오해를 할 수밖에.
철럭!
족장은 따로 고잉미샤호에 초대되었다.
놀랍게도 철로 된 배.
마치 괴물의 아가리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허어어…….”
역시 왕의 배는 다른 것일까?
왕의 방에 초대받은 그는 벽에 문양까지도 감격하며 바라봤다.
스랑 제국에서 만들어진 배라 쓸데없는 곳에까지 사치를 부려 놓은 탓이다.
“뭘 그리 멀뚱히 있는가? 와서 앉아.”
선장의 개인실은 꽤 넓었다.
철퍼덕.
리안의 말에 족장은 리안의 앞까지 다가와 바닥에 엎드렸다.
“아니. 멀쩡한 의자 놔두고 왜 거기 앉아.”
“제… 제가 어찌 감히…….”
“됐고. 일어나서 앉아.”
족장은 리안의 명령에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뭔가 구불구불한 그림이 그려진 종이가 얹어져 있었다.
“이게 무엇인 것 같은가?”
“지… 지도로 보입니다. 보아하니. 저희가 있는 곳은 이곳……?”
족장이 눈치를 봤다.
“감이 좋군. 그래. 그렇다면 내가 왜 지도를 자네에게 보여 주는지 알겠는가?”
“서… 설마. 북방을 정리할 생각이옵니까?”
agsnhh는 가슴이 두근댔다.
북방을 토벌하는 데 자신들이 길잡이로 선택된 것이다.
잘하면 공로로 원래 있던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