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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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하고 후덥지근한 기후.
바닥은 푹푹 빠지기 일쑤고. 어디선가 뱀과 독충이 튀어나온다.
최악의 조건이지만, 병사들의 눈에는 독기가 들어가 있었다.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 식인종이 나온다~!”
리안이 군가도 만들어 줬다.
지형 때문에 대열은 엉망이었지만, 같은 노래를 부름으로써 혼자가 아니라 한 덩어리라는 것을 무의식에 심어 줄 생각이었다.
그 외에 유명한 민요 같은 것이 있으면 공유하게 해서 행군간 부르게 했다.
“적이다!!!”
그때 적들이 나타났다.
휘리릭! 휙!!!
그들은 평소처럼 흩어져 나타나서는 바람총을 쏘아 댔다.
이들은 인간으로 고기를 섭취하기에 전쟁도 인간 사냥의 형태를 띤다.
인간의 가축화.
죽이지 않고 사로잡으면 신선하게 나중에 먹을 수 있으니.
투두두둑!
“뭐야? 뭔가 날아온 것 같은데?”
용병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마취 독을 바른 바람총은 등갑을 뚫지 못하고 박혀버린다.
가끔 틈을 뚫고 들어오긴 했지만.
“내 거다!! 저건 내 거야!!”
어떤 용병의 말을 시작으로 다들 날뛰기 시작했다.
그들에겐 인어에게 구애를 하기 위해서 아즈 제국 병사의 목이 필요했다.
와아아아아!!!
신참이고 고참이고 할 것 없이 적들을 향해 무지성으로 돌격.
그걸 지켜보던 영주 대리인 대설 남작이 입을 쩍하고 벌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그냥 두 손 놓고 구경만 했다.
성인과 초등학생의 싸움에서 굳이 손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푹! 푹!!! 푸우우욱!!
신참 병사들도 적에게 사정없이 창을 꽂아 넣었다.
습하고 높은 온도라 아즈 제국의 병사들은 갑옷은커녕 옷도 제대로 걸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몸에는 험한 문신만 가득했지만, 보기에만 위협적일 뿐 금속으로 된 창칼을 막아 주진 못했다.
“보급은 충분한가요?”
리안은 서류 작업이 귀찮았기에 그냥 영주 대리인을 데리고 전쟁에 나섰다.
그에게 전투 지휘만 맡기지 않으면 되니.
“네. 몇몇 상단들과 계약을 했습니다. 육로 보급을 맡을 일꾼들도 모집한 상태이며······.”
그는 행정적으로는 역시 나름 유능했다.
“좋아요. 그럼 계속 전진합니다.”
“영주님. 너무 우리만 치고 올라가는 것 아닙니까?”
대설 남작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이미 리안이 오기 전 두 번에 나눠 용병들이 진격했지만, 성과는 많이 올리지 못한 상태.
“그래도 나름 정예들 아닌가요?”
그들이 온 곳은 대부분 남신대륙.
이벨 왕국이 정복 활동이 뜸해졌기에 이쪽으로 넘어온 것이다.
이미 신대륙 원주민들과 제법 많은 싸움을 해 본 자들이다.
문제는 그들과 아즈 제국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기후와 지형을 잘 활용했기에 아즈 제국은 여전히 제국이라 불리고 있으니.
“아무래도 이곳이 다른 곳들과는 조금 다른지라.”
“뭐. 우리가 뚫고 올라가면 따라 올라오겠죠.”
다른 두 곳에서 병력을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 된다.
압도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 때 올라가야 한다.
“저는 이곳까지 원하거든요.”
리안은 지도 한 곳에 손가락을 짚었다.
“음?”
정말이지 쓸모없는 곳.
산투성이라 생산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곳.
“호··· 혹시!! 광산이라도?”
대설 남작이 호기심을 보였다.
행정가답게 그가 좋아하는 것은 돈.
돈만 있다면 코파나 영지를 얼마든지 발전시킬 수 있다.
발전이 되면 더 많은 돈이 들어오고 그러면 더 발전하고.
이 공으로 리안에게 확실히 가신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대설 남작의 머릿속엔 장밋빛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딴 건 없고. 더 좋은 건 있죠.”
“거기만 먹으면 여기서 이쪽으로 국경선을 그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나머지 두 부대가······.”
이미 먼저 나눠서 출발한 용병 부대들을 말하는 것이다.
“어차피 협상으로 끝낼 겁니다. 우린 여기까지 진격할 거니까요.”
“네?!!!”
리안이 손가락을 펴자 대설 남작은 기겁을 했다.
***
리안이 군대를 몰아 아즈 제국의 수도 앞까지 진격한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놀란 아즈 제국의 대제사장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막으러 나왔다.
문제는.
“대제사장님!! 정예들이 모두 출병을 한지라······.”
숫자는 많았지만 오합지졸들만 남은 상태였다.
“저들도 별것 없다. 보거라. 저딴 놈들이 무슨 군대라고.”
리안이 이끄는 용병 부대도 그다지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다들 줄도 못 맞추고 제각각 산만하게 퍼져 있었다. 마치 어디 놀러 온 관광객들처럼.
“하지만 저들은 남쪽 도시들의 군대를 뚫고······.”
아즈 제국의 형태는 조금 특이했다.
도시 국가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주기적으로 서로 전쟁을 벌여 패배하는 쪽에선 제국의 수도로 인간을 가축으로 바쳐야만 했다.
도시들이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힘을 빼놓을 수 있었다.
아즈 제국은 전쟁으로 이들을 통제해 온 것이다.
당연이 그들도 나름 뛰어난 싸움꾼이었다.
“그 도시 하나하나가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하다고. 저들은 단일로 2천 명 가까이 되니 막을 수 없었겠지.”
도시 간 협력이 안 되니 대군을 상대하기 힘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다만, 코파나 영지에서 선행으로 출발한 두 용병 부대도 각각 1,500가량이 되었지만 잘 막아 내고 있는 중이었다.
대제사장의 예측과 달리 몇 개의 도시가 서로 연합하기도 했다.
“그보다 저기 우두머리가 좀 어려 보이는군.”
“2천의 대군을 이끄는 자입니다. 어려 보여도 방심하는 것은······.”
“흥! 되었다. 전군에게 명령을 내려라. 총공격을 할 것이다.”
***
아즈 제국의 수도 근방에 있는 넓은 평야 지대.
열대우림의 모습을 한 외각과 달리 수도 근방에는 이런 평야 지대가 간간이 있었다.
땅을 자세히 살펴보니 옥수수 농사를 짓는 것으로 보인다.
“어··· 엄청나게 몰려왔습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대설 남작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용병들도 그들의 숫자를 보고 긴장을 바싹했다.
거의 1만이 거뜬히 넘어 보인다.
“걱정 마세요.”
리안은 오토호스를 몰고 부대 앞에 섰다.
마법사가 나서서 리안에게 마도구를 전달해 줬다.
“저기 보이는 아즈 제국의 병사들은 어중이떠중이들뿐이다. 지금 아즈 제국은 스랑 제국과 대규모로 전쟁 중인 상태다. 힘 좀 쓴다는 놈들은 저 북쪽에서 스랑 제국과 싸우고 있다.”
리안은 천천히 부대 앞을 어슬렁거리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 너희가 여기까지 오면서 싸워 온 그놈들이 저놈들보다 훨씬 센 놈들이다.”
그 말에 용병들의 얼굴이 황당한 빛으로 물든다.
“아니. 그놈들보다 약하면······.”
“설마 저기 있는 놈들은 걸어 다니는 병자들인가.”
병자들은 아니고 민간인에 가까운 자들이 대부분이다.
아즈 제국은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전투에 능숙한 편이지만, 여기 있는 용병들은 이미 여기까지 오면서 전문화가 되었다.
거기에 장비에서 압도적인 차이.
“영주님!! 적들이 움직입니다.”
대설 남작이 급히 리안에게 알렸다.
“그보다 다들 수급은 좀 챙겼나? 이게 마지막 전투인데?”
리안은 그동안 적의 수급을 잘라 오면 소정의 포상금과 표식을 나눠 줬다.
그걸 인어들에게 많이 가져가면······.
-어멋. 용맹도 하셔라. 잠깐 쉬다 가실래요?
이런 식으로 나왔고.
이게 부대에 소문이 돌자 전투 때마다 용병들은 눈알이 완전히 돌아 버렸다.
돈도 벌고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미녀와······.
“마··· 마지막이라니!!!”
“안 돼. 아직 안된다고. 난 아직 한 번도······.”
“아아아. 이번에는 절대 몸을 사리면 안 되겠다.”
다들 동요하는 눈빛.
“자! 다들 보라. 저기 몰려오는 수급들이. 허리가 두둑하게 벌어 보자!!!”
리안이 큰 소리로 외쳤다.
허리가 두둑하단 뜻은 수급을 벤 병사들이 포상을 받기 전까지 전리품으로 얻은 적의 머리카락을 꼬아 허리에 매달고 다녀서 하는 소리다.
와아아아아!!!
용병들의 눈이 벌겋게 변해 갔다.
“가즈아아아아아!!!!”
용병들도 그냥 미쳐 가지고 달려든다.
5배가 넘는 병력 차.
퍼버버버벅!
양측 군대는 곧 충돌했고. 그 결과는.
“아니··· 이게 무슨······.”
대설 남작은 눈을 부비적거리고 있었다.
압도적이어도 너무 압도적이었다.
적들의 엉성한 무기는 용병들의 등갑을 제대로 뚫지 못했다.
그것에 자신감을 얻은 용병들은 압도적으로 적들을 학살해 나갔다.
중간중간 적의 수급을 잘라 허리에 다는 여유도 보이며.
“머··· 먹히기 싫어!! 난 먹히기 싫다고!”
아즈 제국의 병사들에게 공포가 전염되기 시작했다.
용병들의 행동을 보고 자신들 방식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저놈들은 머릿고기를 즐기는 야만인들이다!! 악귀 놈들이야!!!”
아주 기가 죽은 아즈 제국 병사들이 대열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어딜!! 어딜 가느냐!!!”
대제사장이 호통을 쳤지만, 전열이 빠르게 붕괴되었다.
뭐. 처음부터 전열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아즈 제국이 용병들보다 질서정연했던 것은 축제의 영향이었을 뿐 따로 제식 훈련을 받은 것은 아니었었다.
“도··· 도망!!!”
이제는 거의 일방적인 학살 또는 사냥이 되어 버렸다.
5배가 넘는 쪽이 쫓기고 있었다.
“대제사장님!! 일단 몸을 피하심이!!!”
“이··· 이럴수가······.”
주변에 전사들이 있긴 있었다.
그들을 내보낼까 생각했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저들에겐 마총이란 무기도 있으니.
“수도로 일단 돌아간다.”
후방에 위치했던 대제사장도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아즈 제국의 병력은 완전히 붕괴했다.
“대승입니다. 영주님!!”
대설 남작이 방방 뛰며 기뻐했다.
그는 나름 아즈 제국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아주 무서운 식인종으로.
그런데, 단지 리안이 지휘했을 뿐인데 그 악명들은 과장된 소문으로 느껴질 정도.
“대단하십니다!”
그러나 단순히 저들이 소문으로 강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3천의 병력이 먼저 출병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고전하고 있었으니.
“이대로 아즈 제국의 수도까지 점령하시는 겁니까?”
리안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에이~ 그건 너무 갔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수도 안에는 괴물이 산다.
혼자서 정예 병력 만 명은 상대할 수 있으려나? 대답은? 이론상은 가능할 것 같다만 정답은 NO다.
대략 천 명 정도 죽어 나가면 정예병들이라 해도 사기를 잃고 퇴각할 테니.
“소드 마스터 세 명 정도는 데려와야 수도 함락이 가능하겠네요.”
“그··· 그렇게나······.”
소드 마스터 대신 중급과 상급 대전사들을 섞으면 되겠지만, 전방에서 막아 줄 한 명 정도는 꼭 필요하다.
와아아아아!!!!
승리에 취한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잘했다. 용맹한 신의 병사들이어. 논공행상은 적들의 수도 앞에서 하겠다. 전진!!”
리안의 명령에 따라 지쳤음에도 신나게 용병들이 달렸다.
아즈 제국 측에서는 쫓아오는 줄 알고 덜덜 떨며 무기까지 버리고 도망쳤다.
“흰 깃발을 올리세요.”
수도 앞에 도착한 리안은 수도 입구 중 한 곳 근처에 하얀 깃발을 꽂아 놓고 왔다.
하얀색 깃발이 항복 또는 싸울 생각이 없음을 뜻한다는 것을 아즈 제국 측도 알고 있었다.
서방과 교류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
“만나서 반갑소이다. 용맹한 이방인이여. 나는 21번 제사장 손톱의 때요. 그대들은 무슨 용건으로 이곳까지 온 것이오!”
아즈 제국에선 곧장 사자를 보냈다.
만약 적들이 수도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정말 고치가 아파진다.
인어 여왕이 사라지고 날뛰던 케찰코아틀이 이제야 얌전해졌는데, 저들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다시 미쳐서 날뛸 것이다.
이번에는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재앙이 될 것이다.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케찰코아틀이었다.
“우리야 황금을 찾으러 왔지.”
리안이 건방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제사장은 잠시 멍청하게 리안의 얼굴을 뜯어보다가.
“그건 과소문이오! 우리 제국에는 황금이 그리 많지 않다오.”
“흥! 그건 들어가 보면 알겠지.”
“지··· 진정하시오. 그대의 군대가 들어오면 정말 대재앙이 펼쳐질 것이오.”
“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협박을.”
리안은 믿지 않는다는 표정.
물론 저 말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지만.
“됐고! 황금. 우리는 황금을 원한다. 그리고 남서쪽에 있는 산맥에 커다란 황금산이 있다는 걸 알고 왔다.”
“그건 오해이오. 이방인이여. 그곳이 황금산이라 불리고는 있지만 황금이 있어서는 아니라오.”
“됐고!!! 빨리 황금. 그리고 황금 산맥은 우리가 가져간다. 그걸 약속한다면 순순히 물러나 주지.”
제사장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아즈 제국에서도 황금은 귀하긴 했다.
다만, 율 대륙인들만큼은 아니었다.
“일단 대제사장님께 상의를 드리고 오겠소.”
그렇게 제사장이 다급히 물러갔다.
그걸 본 대설 남작은 궁금증을 찾지 못하고 리안에게 물었다.
“도대체 그 산맥에 무엇이 있기에······.”
분명 광산은 아니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