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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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단위의 병력이 대치를 하고 있었다.
대규모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으니 어느 쪽도 함부로 먼저 움직이지 못했다.
“수적으로는 우리가 확실히 우세한데······.”
잉글슨의 장군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은 작게라도 승전을 했다.
리안이 관여했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승리한 여단이 이동하자 대치하거나 추격하던 스랑 제국의 여단들은 후퇴를 할 수밖에.
다시 말해 압도적으로 잉글슨이 숫자가 많았다. 거기다 사기도 높고.
“두 배까지는 아니오. 특히나 요새를 먼저 점거를 하고 있기에 섣불리 움직이기도 힘드오.”
해안 요새로 퇴각하는 스랑 제국의 뒤를 잡긴 잡았지만, 이곳은 원래 스랑 제국의 영역.
큰 요새는 아니더라도 자질한 작은 요새나 진지들이 있어서 접근이 쉽지 않았다.
문제는 적들도 해안 요새로 빠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럴 것이 이곳과 해안 요새 사이의 작은 협곡에 리안이 병력을 투입시켜 놓은 상태였다.
“그보다 총사령관님은 왜 아직 안 오시는 거요?”
그때 임시로 만들어진 군막의 입구가 열리고 소년 하나가 귀를 파며 들어왔다.
“아오, 귀 간지러.”
드르르륵!
리안이 들어오자 장군들이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그들에게 있어 리안은 전쟁의 신이었다.
직접 리안의 도움을 받은 연대가 아니더라 하더라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신대륙의 함대가 빠져나간 걸 들킨 순간 이들에겐 절망이었다.
보급이 없이는 한 뼘의 땅도 지키기 힘들다.
그런 와중에 리안이 온 것이다.
놀랍게도 지키는 것에 끝나지 않고 역으로 적들을 수세에 몰아 버렸다.
이게 전신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총사!! 어서 오십시오. 다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네. 다들 무사하시군요.”
“총사께서 만들어 놓은 식탁에 포크를 얹는 주제에 무슨 별일이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후작 합하가 만든 대승리는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에이~ 다들 겸손하시네. 저 혼자 전쟁을 한 것도 아니고.”
리안이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가장 상석으로 향했다.
군막이 그리 크지 않아 좁았기에 리안이 지나갈 때마다 장군들이 급히 길을 터 줬다.
“보자. 보자. 어디 보자.”
리안은 상석에 도착한 뒤 의자가 아닌 탁자에 대충 걸터앉았다.
키가 쑥쑥 크고는 있다만 아직은 작았기에 의자에 앉아서는 지도를 보기 힘들었다.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네요.”
“죄송합니다. 총사. 적들이 자리 잡기 전에 따라잡았어야 하는데.”
“그게 쉽나요. 중간중간 간헐적으로 다른 적들과도 조우했을 텐데요.”
아무리 양쪽 전선으로 병력을 벌린 스랑 제국이라 하더라도 도시나 요새들이 아주 빈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을 공략하거나 피해서 둘러가야만 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장군중 하나가 리안에게 정중히 물었다.
“적당히 협상하고 끝내야죠.”
“······???”
다들 기대했던 대답이 나오지 않아 적지 않게 당황한 눈치였다.
그럴 것이 리안이 온다면 그 엄청난 용병술로 적들을 완전히 끝내 버릴 수 있으리라 믿은 것이다.
“아. 다들 오해는 마시고.”
리안이 미소를 지었다.
“딱히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굳이 싸울 필요가 없어서이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즈 제국이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서··· 설마. 저 남쪽 아래······.”
다들 그 말에 입을 쩍 벌렸다.
언제 그들을 움직였단 말인가.
“합하께서 처음에 움직이셨던 게······.”
“뭐. 저밖에 못 하는 거라 직접 움직여야 했죠. 제가 없는 동안 여러분들이 잘 버텨 주셔서 지금의 승리도 있는 것입니다.”
리안은 미리 선언했다. 이 전쟁은 승리했노라고.
“아참. 3연대장님.”
“네! 총사!”
“기병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좀 생생한 사람으로 대충 500 정도?”
“얼마든지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리안은 그대로 일어나 군막 밖으로 걸어 나갔다.
“다들 적을 자극하지 말고 적당히 대치만 해 주세요. 그럼~!”
리안이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끼요오옷~~!
***
산 너머는 한창 전투 중이었다.
아니. 이제 약간의 소강상태.
천 단위의 병력이 맞붙는 자리임에도 겨우 몇몇만이 싸우고 있었다.
펑펑펑!!!
땅속에서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우왁아악!!”
그 물대포에 쓸려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
츠츠츠!!!
스랑 제국의 총독은 촉수를 뻗어 물들을 갈라 버렸다.
동시에 빠르게 부선장에게 달려들었지만.
“에엣!!”
부선장은 얼굴에 진흙을 던지고는 뒤로 숙숙 물러나 버린다.
“비겁한 놈!!”
“칭찬 고맙군. 내 직업이 직업인지라.”
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부선장의 얼굴에 붉은 실선이 그려졌다.
‘괴물 같은 놈. 아니 진짜 괴물이군.’
부선장도 나름 상급에 오른 대전사.
그럼에도 저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상대는 형태만 인간을 하고 있을 뿐 패턴이 인간이 아니다.
이쪽은 익숙하지 않은데, 상대는 인간을 상대하는 것이 익숙했다.
“놓칠 것 같으냐?”
스랑 제국의 총독은 눈에 묻은 진흙을 털어 내며 다시 접근했다.
부선장은 급히 회피를 했지만 촉수의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역시나 움직임이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무슨 문어 새끼도 아니고!”
그때.
샤샤샥!!
주변의 풀들이 자라나며 총독을 휘감았다.
“오오~ 세바스! 나이스.”
부선장은 날아오는 촉수를 쳐 내며 또다시 회피.
퍼어엉!!!
그때 다른 간부에 의해 물대포가 쏘아졌다.
총독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물에 맞아 저 뒤로 밀려 나갔다.
문제는 그다지 데미지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저 정도면 최상급하고도 비비겠네. 아니. 더 강한가?’
키메라에 대한 소문을 듣기는 했다.
스랑 제국의 최종 병기.
그들의 전투력은 최상급에서 소드마스터 사이 정도로 추정되었다.
‘저런 놈이 하나가 아니란 게 소름 끼치는군.’
괜히 스랑이 제국이 아니었다.
“도대체 대기사가 몇 명인 거야?”
겨우 1천여 명의 병력.
기병대도 보이지 않건만 기사 중의 기사라는 대기사들이 너무 많았다.
거기다가 평범한 땅개 장교인 줄 알았던 하급 장교들도 모두 각성한 기사들.
“이러니 뚫리지 않았군.”
인상을 잔뜩 쓰는 총독.
그때 저 멀리서 철수하는 아군의 병력이 보였다.
샛길이라도 열라고 보낸 연대였다.
“실패한 건가?”
샛길도 실패했다면 이곳을 무조건 뚫어야 한다.
“하··· 정말이지. 원래 모습은 정말 싫은데.”
총독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때.
투트트트트!!
스랑 제국이 지키고 있는 길목의 뒤로 오토호스들이 일렬로 나오고 있었다.
대략 500기.
“저것들은 또 뭐야?!”
분명 산 너머의 길목은 스랑 제국 쪽 패잔병들이 지키고 있을 터인데 어떻게 넘어온 것일까?
자세히 보니 그들의 오토호스에는 나뭇잎과 풀들이 잔뜩 묻어 있었다.
“주인공! 두두등장~!!”
리안이 새로운 길을 개척해 온 것이다.
500의 기병만 데려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병력의 숫자가 많으면 좁은 길을 이동하는데 병목 현상으로 속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소수 정예로 움직인 것이다.
“돌격!!! 나를 따르라~~”
리안이 선두에서 오토호스를 몰고 달려 나왔다.
“끼요오오오~!!”
그 뒤로 기병들이 바짝 따라붙는다.
“비켜!! 총사령관이다.”
잉글슨의 병사들이 급히 그들에게 길을 내어 줬다.
투트트트!!
리안이 부선장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오우~ 수고했어요. 못난이 아저씨~”
“난 못생기지······.”
“피 묻으니까 더 못생겼······.”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오토호스는 이미 저 멀리 가 버린 상태.
부선장은 서러운 표정을 지었다.
“닦으시죠.”
그때 세바스가 다가와 손수건을 건냈다.
“역시. 세바스밖에 없네.”
“못생긴 얼굴에 피까지 칠해놓으니 못 봐주겠습니다. 부선장.”
“으윽!”
리안은 그들을 뒤로하고 총독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넌. 뭐냐?!!”
“나? 잉글슨 총사령관.”
유치한 대화가 오갔다.
다만, 이후 총독의 팔에서 튀어나온 촉수는 유치하지 않았다.
샤샤샥!!
리안은 그대로 오토호스에서 점프를 하며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촉수가 빠르게 쫓아왔지만 무한대는 아니었다.
“메롱이올시다. 이 간극이 그대와 나의 차이임을 잊지 마시길.”
탕!!
리안은 공중에서 마권총을 쐈다.
팅~
총독의 기괴한 뺨 옆으로 총알이 스쳐 지나갔다.
당연히 키메라인 그에게 머스캣도 아니고 마권총 따위가 통할 리가 없었다.
“······!!”
총독은 눈을 부라리며 리안을 노려봤지만.
슥!!
하늘을 날아올랐던 리안은 저 멀리 오토호스에 안착해서는.
“돌겨어어억!!”
“끼요오옷~!!”
기병들과 합류해 그대로 적진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총독은 이를 갈며 쫓아가려 했지만.
“어디가! 괴물. 2차전을 해야지.”
어디선가 곡도가 날아와 촉수를 베고 지나갔다.
신경이 너무 빼앗긴 나머지 반응이 늦었다.
“이놈이!!”
총독이 분노를 하며 부선장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타다다다당!!
사방에서 마총이 날아왔다.
그뿐만 아니라 후속으로 도끼들도 날아들었다.
리안의 기병이 스랑의 진영을 쓸고 다니니 이쪽의 보병들을 견제할 병력이 없었다.
더군다나 기사급이 다수.
“기사가 무슨 도끼를...!”
휘리리리릭!!
그들은 허리춤에서 손도끼를 하나 더 꺼내 던졌다.
해적 출신이다 보니 손도끼를 다루는 것이 매우 능숙했다.
가끔씩은 단검도 보인다.
와아아아아!!!
마음 같아서는 쓸어 버리고 싶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기병들이 아군들을 거의 학살을 하고 있었다.
“이놈들!! 두고 보자.”
총독은 이를 갈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몸은 자질한 상처들로 가득했다.
아무리 키메라라 해도 기사급들이 던진 도끼에 맞아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후퇴한다!”
총독은 즉시 자신의 주변으로 병력을 똘똘 뭉치게 한 뒤 해안 요새로 퇴각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병이 오면 그쪽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그냥 보내 줄 리안이 아니었다.
퍼버버벅!!
그들의 주변을 대머리독수리처럼 어슬렁거리며 야금야금 쪼아 먹었다.
퍼버버벙!!
요새의 근처에 도착하자 마포가 발사되었고 리안도 더는 추격하지 못했다.
출진할 때에 비해 남은 병력은 반이 되질 않았다.
치욕적이었다.
장군들이 무능하여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무능한 것은.
“나였던가.”
아버지 황제를 볼 낯이 없었다.
“총독!! 괜찮으십니까?!!”
“이딴 상처는 조금만 지나면 낫는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커서 문제지.
휘리리릭!
그때 하늘에서 종이 하나가 떨어졌다.
툭!
리안이 손수 던져 주고 간 것이다.
물론 그걸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뭐··· 뭡니까? 총독.”
“협상을 하러 나오라는군.”
***
스랑 제국의 총독은 협상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해안 요새의 옆으로 바다가 있어 함대의 도움까지 받을 수 있었기에 함락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총독에겐 만 명이 넘는 군대가 볼모로 잡혀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지금 완전히 고립된 상태였고 곧 있으면 남쪽에서도 발생한 패잔병들과 아즈 제국군이 몰려올 것이다.
“어우. 인상 좀 펴요. 아. 불가능한가?”
협상 자리에 나온 총독을 보며 해맑게 웃는 리안.
반대로 더욱 얼굴이 일그러지는 총독.
그럴 것이 총독은 인간의 형태를 벗어난 키메라의 완전체로 변하기 일보 직전인 상태에서 멈추었었다.
“그래서 그대가 원하는 건 뭐지?”
총독의 물음에 리안은 지도를 던졌다.
참고로 일반적인 협상과 달리 멀찌감치 먼 거리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총독이 폭주한다면 단독으로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
“정말? 이 정도로 끝낸다고?”
사실 이 정도로 대승을 했다면 스랑 제국에게 식민지에서 완전 철수도 요구할 수 있었다.
물론 스랑 제국은 그걸 듣지 않겠지만.
여전히 잉글슨은 함대가 부재중이었고. 스랑 제국은 건재했다.
“어차피 많이 먹어 봤자 소화도 못 하니까요. 그래서 협상을 할 거예요? 말 거예요?”
리안이 새로운 영역을 표시한 지도에는 생각보다 훨씬 관대했다.
다만, 알짜배기 땅이라고 볼 수 있는 동쪽의 커다란 반도인 플로리다 지역을 저들에게 내어 주어야 하는 것이 조금 속이 쓰렸다.
“설마 뒤통수를 치는 것은 아니겠지?”
“이래 봬도 전권을 위임받았답니다. 거기 직인 안 보이나요? 이건 국가 간의 협정이에요.”
확실히 그렇다면 믿을 수 있다.
“좋다. 믿어 보지.”
스랑 제국의 총독도 자신의 직인을 찍고 사인을 한 뒤 양피지를 던졌다.
서로 교환한 양피지에 마법사들이 붙어 후처리를 했다.
이것으로 1년간 스랑과 잉글슨 양국은 북신대륙에서 불가침을 약속했다.
스윽.
협정서가 적힌 마법 양피지를 주워 든 리안은 뒤돌아서서 미소를 지었다.
‘븅신.’
다른 장군들도 리안의 표정을 보고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