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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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딱 그런 표정을 한 사내가 벼랑 끝에 초점이 나간 눈으로 앉아 있었다.
“전하. 고생 많으셨습니다.”
리안이 웃으면서 공작의 등을 쓰다듬어 줬다.
“도···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가······.”
“이 모든 것이 저 잘되자고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다. 잉글슨을 위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
그때 뒤에서 쿵쾅거리는 듯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 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주술사.
“달링~!”
이곳에서 연인을 부르는 애칭을 달링이라 한단다.
“아아··· 이대로 뛰어 내린다면 모든 것이 편해지겠지?”
“공작 전하. 대의를 생각해 주십시오. 전하가 아니라면 산신의 호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두 눈을 감고 저희가 돌아올 때까지만······.”
“나중에 귀국하게 된다면, 국왕께 꼭 내가 고생한 것을 말해 주게!”
공작은 터덜터덜 주술사에게 돌아갔다.
주술사는 공작을 번쩍 공주님 안기로 들고 사라졌다.
“참으로 애국심이 넘치는 위대하신 분이다.”
리안의 말에 부선장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꼬맹이. 저걸 보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하는 건가?”
“부선장 아저씨도 백작이 되었으니 보고 배우시죠.”
“차라리 작위를 반납하면 안 될까?”
평소 거칠고 폐기 넘치던 부선장도 기겁을 한 얼굴.
“빨리 다녀오죠. 그게 공작 전하를 위한 길인 것 같습니다.”
“딱히 잉글슨에 좋은 감정은 없지만, 같은 남자로서 저 양반이 불쌍해서 안 되겠군.”
리안은 몸을 돌려 부하들에게 외쳤다.
“출발한다!!”
“우오오오!!!”
혹시나 지친 공작을 대신하게 될까 부하들이 급히 소리를 지르며 마을 밖으로 뛰쳐나온다.
다만, 조금 이상한 것이 그들의 외형이었다.
머리 색이나 피부색 그리고 생김새가 이곳 원주민을 닮아 있었다.
“정말 감쪽같군.”
모두가 바뀐 외모에 신기해하는 눈치다.
산신의 권능.
그것은 외형을 이곳 주민과 비슷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물론 무한정으로 가지는 않는다.
공작이 노력해 주는 만큼 지속될 것이다.
“제발. 중간에 포기하시지 말기를······.”
리안은 마을을 향해 존경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
거대한 호수.
그 중심에는 커다란 섬이 있었고. 수로가 복잡한 형태로 섬을 여러 갈래로 관통했다.
가장 중심에는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의 신전이 있었는데, 그 바로 뒤에는 붉은빛이 도는 작은 웅덩이가 있었다.
스르르.
그 웅덩이 깊은 곳에서 한 미녀가 눈을 떴다.
가느다란 온몸에 쇠사슬이 칭칭 감겨 있었다.
“아직도 나를 구하려는 딸이 있는 건가?”
눈이 멀것 같이 아름다운 여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인어 여왕.
바다의 신을 믿는 종교 지도자.
모든 인어의 어머니.
물론 진짜 어머니는 아니었다.
만약 인어 여왕이 죽는다면, 인어 중에선 새로운 인어 여왕이 탄생하니.
그렇기에 그녀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이었다.
“그냥 돌아가거라. 제발. 아까운 목숨을 잃지 말고······.”
인어 여왕은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분명 사로잡혀 능욕을 당하고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
“하낫. 둘. 하낫. 둘.”
리안은 부하들을 이끌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나아갔다.
다만, 부하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인다.
“선장. 이거 얼마나 가야 하는 거요.”
처음에는 사막. 그다음엔 혹독한 산악. 이번에는 끔찍한 정글.
며칠 사이의 강행군에 계속 바뀌는 환경으로 인해서 부하들의 정신은 피폐해져 갔다.
물론 리안도 그다지 제정신은 아니었다.
그러니 저런 되지도 않는 구호를 외치며 앞장섰지.
“차라리 죽도록 싸우는 것이 났지.”
“해적이었던 것이 참으로 축복이었던 거로구나.”
리안의 훈련 교관인 신컨의 재에게 장교 훈련을 받을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 있었다.
군 운용은 행군으로 시작해서 행군으로 끝난다.
싸우는 것은 행군 다음이다.
“젠장. 그걸 이렇게 몸소 체험하다니.”
그나마 일반적인 전장이었다면, 지휘관급 인물들은 오토호스라도 타고 다녔을 것이다.
“자자. 이리로 모여요!! 한잔들 합시다!”
리안이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우오오. 드디어!!”
선원들은 힘을 내어 공터에 모여 앉았다.
그들은 술을 꺼내 한 모금씩 마셨다.
처음에는 이상한 맛에 거부 반응을 일으켰지만, 더럽게 맛없는 식물 잎을 생으로 먹는 것보단 나았다.
아니. 생으로 먹는 사람이 있긴 있었다.
“으웩크엑뜨!!!”
경기를 일으키며 풀때기를 씹어먹는 리안.
“그냥 한잔하라니까.”
“아직 이 몸은 성장기라고요!! 그것도 가장 중요한 2차 성징 중인데.”
그냥 차라리 리안도 술을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겨우겨우 참아 냈다.
“야. 다들 이거 보이지. 두 잔 먹지 말고 한 잔씩 아껴먹어!!”
술의 정체는 진토닉.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토닉이란 식물을 진에 첨부한 것이다.
토닉에는 퀴닌 성분이 들어 있었는데, 이것이 말라리아의 특효.
참고로 토닉은 아직 이 세계에선 활용되지 않는 식물이었다.
게임 스토리 중반 정도에나 가야 식민지 개척에 어려움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발견된다.
다만, 약효가 있음에도 처음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 이유인즉슨 맛이 더럽게 없었기 때문.
그래서 고심하다 술에 섞으니 그때부터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오히려 나중에는 별미로 받아들여졌고.
리안은 모든 것을 건너뛰고 바로 술로 만들어 부하들에게 준 것이다.
물론 본인은 그 더럽게 맛없는 풀때기를 생으로 씹었지만······.
“후··· 여기서 야영을 하고. 내일 작전을 개시합니다.”
“오오오. 드디어!!”
부하들은 환호했다.
며칠만 더 지속되었다면 정신이 맛탱이가 가 버렸을 것이다.
정글에는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한가득이었다.
독충과 독초들.
이곳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방인인 이들이 기사급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대부분이 죽어 나갔을 것이다.
***
해가 뜨는 즉시 리안 일행은 움직였다.
그들이 향한 곳은 거대한 호수 위에 떠 있는 대도시.
아즈 제국의 수도.
“어디서 온 거지? 못 보던 얼굴이군.”
“산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왔수다. 마을이 곰에게 습격당해서······.”
“거참. 안되었군. 어쨌든 때마침 잘 왔다. 너희가 오지 않았으면 우리가 사람을 보냈으려나.”
관문지기는 말이 많은 자였다.
“이방인들과 큰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만가 열매가 부족해. 그리고 축재 기간이니까 이왕 온 김에 우리 선진적인 문화를 즐기다 가도록. 통과~!”
사실 산에서 생활하는 부족이 한 곳은 아니었다.
관문지기가 얼굴을 다 기억하는 것은 허세였다.
상등품의 만가 열매를 많이 가져왔기에 그저 큰 규모의 마을이라 생각했기에 아는 척을 했을 뿐.
“뭐야. 김빠지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던 부선장이 맥없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생각보다 보안이 허술해요. 제국 수도에 사는 자들이 아니면 다들 이곳에 오는 걸 두려워하니.”
아즈 제국의 정치는 공포.
기본 틀은 옥수수를 재배하는 농경 국가였고. 당연히 기후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강의 신을 숭배하는 그들은 주기적으로 인신 공양을 했는데, 제국의 주변에서 인간들을 사냥해 온다.
가끔 사냥이 시원찮을 땐 수도 인근에서도 잡아 온다.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용하군.”
리안의 말을 들은 부선장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시 간의 경쟁을 부추기거든요.”
말이 제국이지 도시 국가의 모임이었다.
인신 공양의 제물이 되지 않기 위해 도시 간 경쟁을 했고 그 결과 단합하여 대항하지 못했다.
“와아아아아!!!”
때마침 재단에선 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의식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미친놈들이군.”
부선장과 부하들은 그 의식을 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높게 쌓아 올려진 피라미드의 신전 꼭대기엔 제단이 있었고. 그곳에서 산 제물의 심장이 꺼내졌다.
데구르르르.
그다음 목이 잘려 몸통은 계단으로 굴려진다.
“와아아아아!!!”
시민들은 광기에 사로잡혀 환호했고. 신전의 아래에는 고기 파티가 벌어졌다.
가장 앞쪽에는 고위급 인물들이 좋은 부위를 먼저 가져갔다.
“수도까지 육류를 공급하기 힘들거든요. 저들에겐 축제 날이 외식 날이나 다름이 없죠.”
“고기가 없다고?”
“그 크기를 보셨잖아요. 대량으로 사육해서 대륙으로 공급하는 건 힘들어요.”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부하들이었다.
“쯧. 저렇게 많이 잡아먹는데, 나라가 유지되는 것도 신기하군.”
“그만큼 이곳의 땅이 좋아요.”
비옥한 땅은 풍족한 식량을 제공했고. 그 바탕으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오히려 저렇게 인구를 줄여 주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할지도 몰랐다.
물론 리안도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큰 행사 때는 모든 제단에서 저 지랄을 한다더라구요.”
“미친놈들이군. 쯧.”
부선장이 혀를 찼다.
그의 직업은 해적.
잔인한 것을 수없이 봤지만, 상상만으로도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겨우 제단 하나에서만 저 짓을 하는 것만 봐도 이곳이 인세인지 지옥인지 분간이 안 가는 데 말이다.
“후딱 정리하고 가죠.”
“그런데, 제국의 수도라는 곳에서 말썽을 피워도 되는 거야?”
리안이 웃으며 말했다.
“저것들이 정상인지 제대로 보세요.”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광기로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제물들의 몸에 발라 놓은 푸른색 때문일 거예요. 우리로 치면 조미료랄까.”
그러고 보니 제물들의 몸 색이 조금 이상했다.
알몸인 상태에서 온몸에 푸른색이 칠해진 상태.
“아니. 저놈들은 무슨 생각으로.”
“오면서 봤잖아요. 여긴 입구 몇 곳만 지키면 외부의 침입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호수의 한 가운데 떠 있는 섬.
도시로 들어오기 위해선 좁은 돌다리를 건너와야 했다.
“하긴. 수비병들만 정신이 박혀 있으면 되겠군.”
“외침이 있어도 수비병들이 막는 동안 정신을 차릴 시간은 충분하고요. 그리고 군대도 얼마 없어요.”
리안이 잉글슨의 병력을 뒤로 물린 덕분이다.
“자. 그럼 부선장님. 고생하세요.”
“꼬맹이 너도. 조심해.”
리안은 세이나와 인어 아가씨만을 데리고 신전의 뒤로 돌아갔다.
“애들아 가자!!”
“거참. 부선장. 이거 우리가 마치 영웅이라도 된 것 같소.”
부하들도 어이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럴 것이 그들은 해적이었다.
단어 끝에 괜히 적이 붙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한 놈들이 눈앞에 있었다.
투다다닷!!
부선장을 필두로 신전의 외각을 빠르게 달려 올라갔다.
다들 취해 있다 보니 부선장과 선원들을 신경 쓰는 자들은 많지 않았다.
다만.
“제기럴. 군침이 도는군. 하필이면 오늘 근무라니. 지지리 운도 없군.”
“그러니 강의 신께 평소 기도를 많이 드리라고.”
“거참. 너도 근무라고. 이 친구야.”
“아니야. 난 원해서 오늘 근무를 서는 거라고. 운이 좋으면 심장을 먹을 수 있으니까.”
“운이 좋아야 먹는 거지. 윗분들이 좀 남겨 줘야··· 그리고 난 질보다 양이라고. 음식은 자고로 많이 먹는 게 최고야.”
경비들은 광기에 사로잡혀 신전 아래에서 게걸스럽게 고기를 탐하는 시민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물론 열심히 근무를 서는 자들도 있었다.
“저··· 저거 뭐야?!”
빠르게 신전의 측면으로 접근하는 한 무리.
복장은 분명 경비대의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일부는 사제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어수선하다 보니 부선장과 선원들은 일부를 잡아 족쳐 변장을 한 것이다.
“행사에 늦으신 높은 분인가······?”
라고 생각하기엔······.
스윽!!
그들의 앞을 막는 경비의 목이 날아갔다.
하나같이 대단한 실력자들.
최소 전사급으로 보인다.
“어어어······.”
경비대들은 속수무책이었다.
한곳에 모여 있는 것도 아니었고. 멀찌감치서 그걸 목격한 경비대도 몸이 굳었다.
아니. 움직이기엔 적들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강의 신이시여. 비를, 비를 내려 주시옵서소!! 그리고 축북을, 축복을······.”
그것도 모르는 제사장은 열심히 의식에 심취해 기계적으로 제단에 놓인 산 제물의 가슴에 비취 단검을 꼽으려 했다.
“오냐!!”
그때 제사장의 등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거구. 그러나 제사장은 신의 목소리인 줄 착각을 했다.
“드··· 드디어. 신께서 응답으··· 컥!!!”
두꺼운 팔이 제사장의 가슴을 뚫고 나왔다가 사라졌다.
동시에 심장도 사라졌다.
“으어··· 엇?!!”
산 제물의 사지를 잡고 있던 다른 신관들이 당황했다.
거구의 사내는 자신들처럼 사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스악!!
순식간에 제사장의 목이 날아가고 그 몸통이 다른 산 제물들처럼 계단을 굴러 내려갔다.
“와아아아아!!!”
취한 시민들은 환호하며 제사장의 사지를 뜯어 갔다.
“누··· 누구냐!!”
다른 신관들은 당황하며 부선장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저승사자다. 이놈들아.”
부선장은 뒷걸음질 치는 신관들을 발로 걷어찼다.
“으아아악!!”
신관들은 산 채로 계단을 굴러 내려갔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이··· 이거 놔!! 놓으란 말이다!!! 난 제물이 아니라고!!!”
광기에 사로잡힌 시민들.
“와아아아!! 고기가 말을 한다!! 싱싱한 고기가 말을 해!!!”
그들은 산 채로 온몸이 뜯겨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