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80화 (180/253)

< 180화 >

##180

바늘이 피부를 콕콕 찌르는 느낌이다.

몸은 굳어 움직이지 않았고. 귓가에 거슬리는 바람이 툭 치고 지나갔다.

“여··· 여기가··· 어··· 디.”

실눈을 겨우 뜬 공작.

두꺼운 무언가로 꽁꽁 싸매진 채로 누군가의 어깨에 짊어져 옮겨지고 있었다.

“깨어나셨군요. 식량.”

“으허헙!”

자신을 옮기고 있어서 건장한 남성일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가는 얼굴선에 신비로운 눈동자.

그 정체는 인어였다.

“안 깨어나는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식량.”

“난. 식량이 아니다.”

“제가 먹어 본 인간 중 가장 맛있는걸요.”

공작은 일행 중 유일한 마나 유저.

다른 이들보다 체력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이 거슬리는 노린내는 뭐지?”

“염소 가죽이에요. 산에 오르기 전 사냥을 했답니다.”

“염소치고는 너무 큰 거 아니야?”

“식량님 덩치의 두 배는 되어서 좀 잘라 내야 했어요.”

말을 계속하는 도중이었지만, 계속 낭떠러지가 보이는 길을 걷고 있었다.

발을 조금만 잘못 디뎌도 저 아래로 추락할 것 같아 오금이 저렸다.

“그보다 넌 회복했구나.”

“인어는 추위에 약하지 않답니다.”

그러고 보니 유일하게 염소 가죽을 걸치지 않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리하지 말고 더 눈을 붙여요. 아참. 식량에게 식량을 먹여야 하는 걸 깜빡했네요.”

인어가 육포를 오물오물 씹더니 뱉었다.

“서··· 설마. 그걸.”

“지금까진 잘만 받아 먹어 놓고 내숭이 심하네요. 식량.”

인어는 사지가 꽁꽁 묶여 반항하지 못하는 공작의 입에 강제로 씹던 육포를 넣어 줬다.

“쉬어 간다!!!”

앞쪽에서 변성기인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더 자라면 맛있을 것 같단 말이지······.”

인어는 입맛을 다시며 앞으로 걸었다.

잠시 후 작은 동굴이 나왔다.

앞서 도착한 이들은 부지런히 짐을 풀고 불을 피웠다.

“주인님. 어머니에게 가려면 바다로 가는 것이 더 가까울 텐데.”

“바다는 경계가 심해서 안 돼. 그리고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거든.”

리안은 뒤뚱뒤뚱 동굴 입구에 섰다. 염소 가죽이 너무 커서 땅바닥에 질질 끌렸다.

절벽 아래 저 먼 곳에 불빛이 은은하게 비친다.

아마도 저 마을을 경유할 모양.

“주인님. 정말 이 인원으로 어머니를 구할 수 있을까요?”

“아니. 구한다 치더라도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잡힐 테지.”

“그럼······.”

“아. 그건 일반적인 경우고. 난 아니지.”

리안은 돌아서서 손으로 소심한 v 자를 만들었다.

가죽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싸매느라 그런 것처럼 보인다.

***

스랑 제국의 군대는 혼란스러웠다.

그럴 것이 총독의 명령과 장군들의 명령이 미묘하게 핀트가 맞지 않는다고 할까?

“지금이 기회인데, 왜 후방인 이곳에······.”

총독은 이곳 신대륙의 토착 세력인 아즈 제국 국경에 병력을 충원하길 바랐다.

친 총독 성향의 장군들은 자신의 부대 일부를 보내왔다.

반대로 반 총독 성향의 장군들은 전방으로 병력을 싹싹 긁어모아 보냈다.

크게 보면 앞뒤로 빵빵한 나무젓가락 같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기는 세력이 존재했다.

그들은 아즈 제국.

“대족장님께선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던가?”

아즈 제국의 국경을 맡고 있는 장군은 주의 깊게 스랑 제국을 관찰했다.

병력이 빠지는가 하면 충원되고. 또 빠졌다가 충원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것이지?”

결과적으로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병력이 국경에 주둔했다.

그럴 것이 지금 스랑 제국의 영역 중간 부분은 군대가 남지 않았다.

싹싹 모아 양쪽으로 보낸 것이다.

“설마. 대대적인 공세를? 피로도가 높은 군대를 뒤로 빼고 잘 쉰 군대로 진격을 한다?”

“그러기에는 적들의 상태가 너무 평온해 보입니다.”

사기라고 할까. 분위기라고 할까.

척후병들의 조사에 따르면 공격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장군! 대족장의 전언입니다.”

“그래. 뭐라 하시던가?”

“적들의 수준에 맞춰 병력을 충원해 주겠다고 하십니다.”

국경의 병력은 이미 아즈 제국의 숫자가 배는 많았다.

스랑 제국의 병력이 충원된 이후에도 말이다.

무기의 화력 차이가 심하게 났기에 쪽수로 밀어 늘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금보다 더 대규모가 필요해.”

소수의 싸움에서 교환비가 1:2라고 치면, 대규모 싸움에서의 교환비가 10:20이 되는 것이 아니다.

10:30 아니 10:50이 될지도 모른다.

특히나 저들이 쓰는 마총은 규모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욱 위력적이었다.

“안 그래도 대족장께서 우려하셨는지 징병까지 해서 보내 주신다고 하십니다.”

***

작은 산골 마을.

이방인들이 찾아왔다.

피부 톤이 밝은 편이었으며 머리 색도 가지각색.

“이방인들이여. 우리 마을에는 무슨 일로 왔는가.”

경계가 가득한 마을.

알고 보니 이들은 스랑 제국과 잉글슨 왕국의 식민지 개척으로 인해 밀려난 사람들이 만든 마을이었다.

여인들과 아이들은 리안 일행을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물물 교환 좀 할까 합니다.”

“우리는 자연에서 필요한 것들을 이미 얻고 있다네.”

“에이. 이 마을이 무역으로 먹고사는 거 다 아는데.”

산 중턱에 있어 농사를 짓기 힘들었다.

염소와 같은 동물들은 조금 살기에 고기는 얻을수 있지만, 곡물이 귀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방인들에게 만가 열매는 줄 수가 없네! 그대들은 가진 것이 많음에도 어찌 그리 욕심이 많은가.”

만가 열매.

이미 리안은 그것을 섬에 대량으로 재배 중이었다.

배낭에도 상당히 많은 열매들이 들어 있다.

“우리가 사는 곳이 풍요롭지 못한 땅이거나. 아니면 너무 많은 인간들이 뭉쳐 살아서 일지도 모르지요. 그럼 이것과 교환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리안이 짐꾸러미에서 마총을 꺼내 들었다.

그걸 본 주민들은 놀라 바닥에 엎드린다.

이미 마총을 앞세운 개척자들에게 터전을 잃어버린 자들.

마총의 무서움을 몸으로 체감한 자들이다.

“그··· 그건··· 며··· 몇 정이나 줄 수 있는가.”

“10정은 드릴 수 있습니다. 길이 험해서 많이 챙겨 오진 못했거든요. 총알도 500발 분량을 가져왔습니다.”

“이··· 일단. 주술사님과 의논을 해 보겠네.”

촌장은 급히 마을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주술사님을 만나 보시겠다고 한다.”

리안 일행은 마을 안까지 안내를 받았다.

주변에 무장한 주민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건장한 남성은 죄다 모인 모양.

“환영한다. 이방인들이여.”

주술사는 놀랍게도 여자였다.

그냥 여자가 아닌 건장한 남성의 세 배 덩치는 될 법한··· 그것도 옆으로.

아무래도 이 마을은 식량 사정이 좋은가 보다.

“위대한 산지기를 모시는 분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대의 태도를 유추해 보건대. 최소한 기본적인 경외심은 갖춘 자로군.”

주술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줬다.

리안은 주술사가 아닌 산꼭대기를 보며 고개를 숙였기에.

“그렇습니다. 저는 자연과 인간의 순응 그리고 민족과 민족의 융화를 중시하는 평화로운 사람입니다.”

“그런 자가 그런 흉악한 물건을 가지고 왔는가?”

“물건에 흉악하고 흉악하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산이 춥다 해서 산의 잘못이 아니듯이 물건도 사람이 쓰기 나름이지요.”

리안의 말에 주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말이 맞도다. 그래. 물건들을 보여······.”

그때 마을 입구 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촌장님! 주술사님!!! 악마가 내려왔습니다.”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리안은 그들의 반응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자연의 경외는 개뿔.

이들도 결국에는 자신에게 이로운 것은 떠받들고 해를 끼치는 것을 악마라 욕한다.

크르르르릉!!

마을 입구 쪽에서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으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체는 바로.

“이 동네 짐승들은 죄다 크네요.”

곰이었다.

사람의 두 배 정도 크기만 한 염소처럼 곰의 크기도 장난이 아니다.

쿵!!!

곰이 마을 주민에게 앞발을 휘둘렀다.

“으아아악!!”

무기를 들고 저항하던 주민은 저 멀리 튕겨 나갔다.

그걸 태연하게 지켜보는 리안의 일행들.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럴 것이 저 곰을 몰아서 마을로 보낸 것이 리안의 나머지 일행들이었기에.

“저 녀석 마을을 자주 습격합니까? 사냥감도 주변에 많던데.”

염소 한 마리만 잡아도 배부르게 먹을 텐데, 인간은 그에 비하면 간식밖에 안 될 크기다.

“악마라서 인간을 미워하오.”

주술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살이 야들야들해서 그렇겠지.’

리안도 산행 중에 이곳 염소를 잡아서 먹어 보았다.

독이 들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질기고 노린내가 심하다.

아마도 곰에게 인간은 별미겠지.

마치 벌에 쏘이면서도 꿀을 찾아 먹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인간 마을을 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가 도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주술사님?”

“그대가?”

“잘되었네요. 마총을 시연하기에.”

“마음대로 해 보게.”

리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를 향해 손을 살짝 들었다.

그러자 선원들이 마총을 장전해 곰에게 겨눈다.

“발사.”

리안이 손을 까닥이며 말하자 열 개의 마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타다다다당!!

마총병들은 아니었지만, 이들은 전원 각성한 기사급.

특별한 훈련 없이도 저런 큰 표적 정도는 충분히 맞출 정도는 된다.

쿠아아아아!!!

곰이 고통에 포효를 하며 쓰러졌다.

거대한 덩치를 가졌음에도 마총의 앞에선 사냥감에 불과했다.

“대··· 대단하군.”

“제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이 마을의 실력이라면 저 곰을 쫓아 보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 쫓아 보낼 수는 있지. 잡으려면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하고.”

이들은 만가 열매를 채집해 그걸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그걸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

참고로 만가 열매로 영약을 만든 리안과 달리 이곳에선 그저 일시적인 강화제로만 쓰이고 있었다.

그러니 소모품 성향이 더 컸다.

물론 가끔 열리는 희귀 열매의 경우엔 영약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정말 귀한 취급을 받았다.

“어떻게 거래를 하실 생각은 있으십니까?”

“만가 열매를 원하는가?”

개척민에게 마총이 있다면, 이곳 원주민들에게는 만가 열매가 있었다.

그렇다 해도 전투 교환 비율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특히나 가끔 부작용으로 이성을 잃고 날뛰기도 했기에 집단전에선 매우 불리했다.

물론 난전에선 이들이 훨씬 유리했지만.

“아니요. 만가 열매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먹으면 잠시나마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다네. 선택받은 자라면 전사가 될 수도 있고.”

여기서 선택받은 자는 마나 유저. 전사는 기사와 동급이라고 보면 된다.

체계적으로 훈련하고 각성의 원리를 파악한 율 대륙과는 달리 이곳은 워낙 중구난방이라 전사는커녕 마나 유저도 많지 않았다.

마총을 10개만 가지고 온 이유도 이 마을에 마나 유저의 숫자가 20명이 되질 않아서였다.

“저희에게는 그다지 필요한 물건이 아닙니다.”

리안이 힘을 개방했다.

선원들도 동시에 힘을 개방했다.

“이··· 이것은.”

주술사가 놀란 눈으로 리안과 일행을 보았다.

“저희는 모두 전사입니다. 그러니 만가 열매에 의존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그런.”

여기 열 명 남짓한 인원이면 마을을 순식간에 멸망시켜 버릴 수도 있을 거다.

전사는 그런 존재였다.

“도대체 그대들과 같은 강자들이 이 마을에는 왜 온 건가.”

“처음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는 공존을 원한다고. 이곳 문화를 배우러 왔습니다. 마총은 사실 거래품이 아닌 선물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주술사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문화의 교류를 하러 온 것이라고?”

“그렇습니다.”

“미안하지만 그대는 아직 어려 그럴 수가 없다네. 산신님의 허락을 구하려면 건장한······.”

주술사는 아쉬운 표정을 보였다.

“아참. 제가 이들을 이끌고 있지만, 길잡이일 뿐 가장 높으신 분은 따로 있습니다.”

“음? 그런가?”

리안이 가장 약해 보이는 사내의 손을 잡고 왔다.

“별로 힘을 쓰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구나.”

주술사는 공작을 훑어보았다.

“우리 쪽에선 손에 꼽히는 실력자입니다. 분명 산신께서도 만족하실 것입니다.”

“실패한다면 그대들은 마을에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한다네. 산신께서 노하실 것이야.”

저건 겁을 주는 게 아니라 진짜다.

산신의 존재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할 시 꼭대기에 서린 눈들이 마을로 쏟아져 내릴 것이다.

주술사도 자신들까지 리스크를 안게 되는 이런 도전을 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물론 실패하는 즉시 이방인들을 마을 밖으로 추방하면 되겠지만, 리안 일행은 전원 전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마도 실패 시 추방이 아니라 부탁을 해야겠지.

“실패한다면 깔끔하게 마을을 떠나겠습니다.”

“그대는 참으로 박식한 길잡이인가 보군. 우리의 문화에 대해 잘 알아. 그럼. 망설이지 않고 시험에 들어가도록 하지.”

주술사는 두 팔을 크게 벌렸다.

뭔가 빙의를 하는 것처럼 몸을 떨었는데, 볼살이 포들포들 떨렸다.

“산신이시여. 오오··· 산신이시여!!!”

주술수의 떨림이 없어지고 마치 다른 사람처럼 눈빛이 바뀌었다.

“공작님. 그럼. 부탁드려요.”

“음? 뭘 말인가?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이해하질 못하겠군.”

“저분과 저 집에 들어가 보면 압니다. 아참! 실패하면 눈사태로 우리 모두 죽을지도 모르니 최선을 다하셔야 합니다! 화이팅~~”

“큼. 뭔지 모르겠지만. 내 힘을 써 보지.”

공작은 한 나라의 공작이었으며, 율 대륙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인지도 높은 유명인이다.

그는 당당하게 주술사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