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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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밑바닥을 파도가 찰싹찰싹 찰지게 때렸다.
물살이 점점 더 강해졌다.
“섬이 가까워집니다. 선장님.”
똘똘이가 보고를 했다.
아지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레이더에는 잡혔다.
“대충 완성이 되어 가네.”
섬에 야누스의 심장을 때려 넣었고. 이제 숙성이 되어 가고 있다.
이게 완성이 된다면 북신대륙으로 가는 대서양의 물길이 막힌다.
“리바운드를 제압··· 아니 물길을 제압하는 자가 바다를 얻는다!”
리안의 의미심장하게 외쳤다.
솨아아아~!
시간이 갈수록 물길은 점점 더 거칠어졌고. 저 멀리 작은 섬이 보였다.
“오오오~! 신기해요!”
조타를 잡고 있던 흐리아 민이 말했다.
그녀는 손에서 조타를 놓았지만 배는 평온하고 거칠게 섬을 향해 나아갔다.
샤아아.
섬에 도착하니 자연스럽게 새로 만들어 놓은 부두로 빨려 들어간다.
펑~!
부두에서 예포가 발사되었다.
탄이 없는 공포탄으로 고잉미샤호를 보고는 기쁜 마음에 발사한 것 같다.
“내려!!”
배가 부두에 접안하고 해병대장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이유는 배에 많은 마포가 실려 있었기 때문.
섬에 설치하기 위해서다.
이 정도 마포가 활성화 되면 함대가 와도 수장시켜 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전멸당할 때까지 돌격하는 제독은 없겠지만.
“도련니이이임~!”
리안보다 키가 훨씬 작은 꼬마가 달려왔다.
이 섬의 거의 실질적인 수장인 독왕 베지미르의 동생이었다.
“밥을 많이 먹어야겠구나.”
“도련님이 너무 크신 거라고요.”
그게 맞았다.
리안에게 2차 성징의 징후가 보이고 나서 키 크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열심히 우유를 먹기도 했고.
“다음번에 올 땐 젖소를 들여와야겠구나.”
섬에 들러서도 신선한 우유를 먹기 위해서다.
“섬 주변에 해조류도 나오나. 이왕이면 미역이 좋겠는데······.”
이전 세계에서 칼슘과 해조류를 같이 먹어야 뼈에 칼슘이 간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하다.
키가 쑥쑥 크고 있지만, 얼마나 클지 아직은 미지수.
성장판이 닫히기 전에 최대한 늘려 놓아야 한다.
“미역은 없고 톳은 있어요.”
리안의 혼잣말에 베츠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냈다.
오돌토돌한 깨 같은 것이 달린 모양의 말린 해초였다.
“오. 역시 부지런하구나.”
“뭐가 있는지 알아야 나중에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똑똑한 녀석.”
리안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손바닥만 한 책을 꺼냈다.
“자. 선물이다.”
“이게 뭐예요? 드루이드··· 의 비술?”
“뭐야. 너 읽을 줄 아는 거야?”
오히려 리안이 더 놀랐다.
드루이드들의 문자는 지금 율 대륙에서 쓰는 문자와 다르다.
드루이드들이 망한 이유는 지식의 전승이 잘 되지 않아서란 말도 있다.
학자이자 행정가이자 사제인 그들은 자신의 후계를 키울 때 심하면 몇십 년씩 옆에 두고 지식을 암기하게 했다.
그렇다고 문자가 없느냐? 그건 아니다.
그런데, 정보가 유출되지 않게 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서 문자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지금 이 책은 거의 후기에 어느 드루이드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다.
거의 망하기 직전에 지식을 어떻게 해서든 남기려고.
“저희 가문의 비기에도 이 문자가 일부 쓰이는걸요.”
그러고 보니 독왕은 약초에 진심인 가문.
그들이 진짜로 드루이드의 후손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익혔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드루이드들은 고대에 의사 노릇도 했으니.
“잘되었네. 거기에 식물을 재배하는 것들도 기록되어 있으니 익히면 좋을 거야.”
“오!! 감사해요.”
베츠는 식물과 관련이 되었다고 말하니 진심으로 기뻐했다.
녀석에게 이것저것 먹여 놔서 마나 유저인 상태.
익히는 데는 별로 어렵지 않을 거다.
참고로 이 책은 각성을 한 자가 익히지는 못한다.
마법사나 기사가 되어 버리면 힘을 쓰는 매커니즘 자체가 달라져 버리니.
“어이쿠! 이보게. 후자아악!!”
그때 뒤에서 기어오는 건지 굴러 내려오는 건지. 한 남자가 배에 걸쳐진 나무판자에서 내려왔다.
살아 있는 화보와도 같던 인물이었는데, 지금은 볼이 핼쑥해져 환자처럼 보인다.
“아이고. 공작님. 살아 계셨군요.”
“자··· 자네. 정말 나를 죽이려고······.”
“에이~ 설마 그러겠습니까. 국왕 전하가 공작님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는데.”
왕의 친척이자 왕족이라 아끼는 것도 있지만, 공작은 이전 세계의 말로 핵인싸였다.
작은 파티에 공작만 불러도 부녀자들이 참석하고 싶어 줄을 서는 현상이 일어난다.
적은 돈을 쓰고도 국왕의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게 된달까.
-그냥 조촐하게 술이나 기울이려 했는데, 이거 연회가 되어 버렸구만.
꽃을 따라 벌이 날아들 듯이 부녀자가 모이면 젊은 귀족들이 너도나도 찾아온다.
이세계판 클럽이랄까.
“공작님. 설마 무임승차하시려는 것은 아니죠?”
리안이 해리 78,900세 공작의 앞에 쪼그려 앉아 물었다.
“무임승차라니. 내가 인어와 같은 방을 쓰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인어가 바다의 신을 모시는 사제라는 건 상식적으로 알고 계실 거고.”
“그··· 그렇지.”
“그녀들이 신성력을 모으는 방법은.”
“아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공작은 금방 알아들었다. 다만.
“전쟁의 신 사제도 있고. 그 어리고 실력 좋은 의사도 있지 않은가.”
“효율이 떨어져서 그렇죠. 세이나 주교가 모시는 탱글교는 힐에 그다지 효율이 좋지 않아요. 힘들게 모은 신성력을 치료에 쓰는 건 좋지 않죠. 그리고 우리 작은 의사 베지미르는 환자를 돌보는 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아요.”
고잉미샤호는 작은 배였지만, 의외로 자질구레하게 부상을 입는 자들이 나온다.
뱃일이라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뭐. 예전 의사나 사제가 없었던 시절엔 ‘침 바르면 나아.’라고 말하며 참고 넘겼지만, 지금은 작은 상처만 나도 치료를 받는다.
선원 복지를 위해 리안이 지시한 사항이다.
“거참······.”
공작은 한숨을 쉬었다.
어찌 보면 자신은 얹혀 가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만약 국왕이 리안에게 현금으로 지원했다면, 굳이 자신이 이렇게 함께 갈 필요가 없었다.
고잉미샤호의 입장에선 고위 귀족이 하나 더 탄 것이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원래 인어 아가씨는 독방을 써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공작님을 배정한 것도 있어요. 나름 인어 아가씨도 배려를 한 거라구요.”
“그··· 그런가?”
거짓이다.
인어 아가씨가 배에 탄 초창기 땐 거의 매일같이 선원을 바꿨으니 지금은 욕구가 차오르기 전엔 선원들이 그녀의 방을 멀리멀리 피해 돌아간다.
사실 리안이 작은 상처라도 치료받을 것. 이라는 배의 법을 세운 것도 이 때문.
위급한 일이 생기기 전 대비 차원에서 항시 인어 아가씨의 신성력을 최대치로 채워 놓을 필요가 있었다.
“자! 주변을 둘러보세요. 공작님!”
리안의 말에 해리 78,900세가 고개를 돌렸다.
거의 모든 선원들이 공작을 바라보며 따봉을 흔들었다.
“아아! 내가 생각보다 큰일을 하는 건가 보구려. 후작.”
“맞아요. 다들 저렇게 공작 전하를 인정하고 있잖아요.”
공작은 힘을 내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얹고는 당당한 포즈를 취한다.
짝짝짝!!!
멋진 그의 모습을 보며 선원들이 박수를 쳤다.
섬에 남아 있던 선원들도 영문을 모르고 박스를 쳐 줬다.
와아아아!!
뭔지 모르겠지만 환호성도 함께 질러줬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공작은 더 의기양양하게 포즈를 취했다.
“어머. 무슨 일이예요. 주인님.”
그때 인어 아가씨가 뒤에서 나타났다.
청순함과 섹시함을 동시에 가진 묘한 여자.
“자··· 잠깐. 뒷간이 급해서!! 이만.”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공작이 쌩하고 달려간다.
다리가 묘하게 후들거리는 것 같은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누가 따라가서 봐 줘요. 똥 싸다가 어디 굴러떨어질라.”
“알겠습니다. 선장님.”
리안의 말에 누군가 공작을 따라 뛰어갔다.
진짜로 화장실이 급하지는 않았을 거다.
화장실이 정말로 급했다면 가까운 고잉미샤호의 화장실을 썼을 테니까.
“안내 좀 해 줄래? 베츠.”
“저만 따라오세요. 도련님!”
리안은 녀석을 따라 섬 반대쪽으로 향했다.
섬은 두 개로 쪼개져 있었는데, 한쪽은 부두 및 섬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주거 공간으로 쓰이고 반대쪽에는 만가를 재배하는 곳으로 쓰였다.
“많이 자랐네.”
“이걸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악마의 식물처럼 보여요.”
“그럼 열매는 악마의 열매인가?”
한쪽 섬에는 은은하게 비린내가 풍겼다.
그럴 것이 거름으로는 해적 섬 근처에서 나는 물고기들을 쓰고 있기 때문.
요즘도 꾸준하게 물고기를 잡아 납품하고 있단다.
그들은 주거 지역에 터를 잡았고 나름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와··· 진짜 어질어질하네.”
“가꾸기 나름이에요. 혹시나 몰라 복잡하게 기르는 중이고요.”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만가가 자란 한쪽 섬은 덩굴과 줄기로 복잡했다.
이게 얼마나 질긴지 웬만한 도끼로는 길을 낼 수도 없을 거다.
그리 큰 섬이 아님에도 한참이나 빙빙 둘러서 중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오······”
중심에는 처음에 없던 사람 절만 한 크기의 석상이 우뚝 서 있었다.
머리는 하나인데, 얼굴이 두 개가 붙어 있는 기괴한 모습.
웃는 여자와 화난 남자의 면상이다.
어디가 앞통수이고 어디가 뒤통수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여기서 지내는 거야?”
“네. 중요한 곳이니까요.”
야누스의 석상 주변에는 덩굴로 된 침대도 있고. 연구대도 있고. 식탁과 따로 분리된 화장실도 있었다.
하늘도 덩굴로 가려져 있어 비바람도 막아 줄 것이다.
“기특하구나. 연구에는 진전이 있더냐.”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양산형을 90% 조건까지 맞추는 약을 개발했어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감사해요. 헤헤헤.”
독왕의 능력치는 게임에서 본 적이 있다.
괜히 독왕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준수했는데, 아마도 이 녀석이 더 높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드루이드의 책까지 줬으니 이 섬은 이제 요새화가 될 것이다.
한 국가가 전력을 다해 두들겨도 함락당하지 않는.
“이것까지 조작하면 절대 못 뚫지.”
리안은 석상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가슴에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처음 땅에 심은 야누스의 심장이었다.
“요렇게 돌리면.”
심장은 옛날 마우스 볼처럼 뱅글뱅글 돌릴 수 있었는데, 색상이 바뀌었다.
“베츠. 조작법을 가르쳐 줄게.”
“네! 도련님.”
“좌우로는 돌리면 안 돼. 이건 여기 대서양 전체의 해류를 이곳 중심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것이니 지금 이대로를 유지하면 돼. 어차피 돌려봐야 즉각적인 효과도 없겠지만.”
만약 막지 못할 정도로 몇 개의 국가가 대규모로 함대를 보낸다면, 이걸 조작하면 된다.
“즉각적이고 대양에 영향을 주지 않고 주변 바다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면 이렇게 위아래로. 자! 보거라.”
리안이 쭈욱 구술을 돌리자.
“이쪽으로 오시면 바다를 보실 수 있어요.”
베츠는 이곳에 전망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오!! 대단해요.”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졌다.
온 사방에 여울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지옥에 바다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어서 다시 바꿔 놓자꾸나.”
“네!! 조금 있으면 어선이 돌아올 때가 되었어요.”
그렇게 다시 구슬을 원래대로 돌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다는 잠잠해졌다.
물론 잠잠하다는 것은 이전과 비교해서고. 이 주변 바다는 거칠기 짝이 없다.
만약 섬을 관통해서 해류를 따라 이동하지 않는다면, 힘든 항해가 될 것이다.
아마도 이 대양을 운항하는 배의 항법사는 지금쯤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거다.
-배다가 왜 이 모양이야?!!
-시간과 예산만 더 주어진다면······.
항법사들의 곡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고 해야 하나.
“아참. 이거.”
“음? 뭐야.”
“해적왕 할아버지가 전해 달래요.”
참고로 해적왕은 한참 전 이곳을 다녀갔다.
리안이 지원이 필요 없다고 하며 이곳에 대해 말해 줬었다.
-꼬마! 해류를 움직인다니! 한낱 인간이 대자연을 거스르다니. 말이 되지 않아.
거의 망상으로 취급했다.
그런데, 눈으로 직접 보고 충격을 받아 돌아갔단다.
“그 할아버지 완전 넋이 나갔던데요.”
“그렇겠지. 거의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사람이니까. 흐흐.”
아마 충격을 먹어서 한동안 해적 섬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오~ 제법 많이 써 주셨네.”
“그게 뭐예요?”
“영수증. 잉글슨 국왕에게 청구할.”
신대륙에는 해적들을 동원하지 못한다.
그러니 형식상 이쪽 바다에서 대서양으로 오가는 스랑 제국의 군함들을 견제하게 될 것이다.
물론 서류상으로만 말이다.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넌 몰라도 된다. 하하하!”
리안은 베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이런 똘똘한 동생을 가지고 싶다고 해야 할까.
다만, 이 세계의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소원은 영영 이루지 못할 것이다.
“아참. 약은 얼마나 만들었어?”
“이만큼이요!”
베츠가 한쪽에 보관된 상자들을 보여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