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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67화 (167/253)

< 167화 >

##167

리안이 눈을 물음표로 만들었다.

“나··· 나야. 뭐어··· 엄청나지!!”

“오~ 그럼. 인어 아가씨 전담을 아저씨로 돌려도 되겠죠?”

“아니야. 그건!!”

남자의 정을 에너지로 삼는 인어.

시간보다 횟수가 더 중요했다.

거기에 경지가 높으면 더 좋고.

“일단 면접을 좀 보죠. 때마침 인어 아가씨의 일거리도 떨어졌다고 하니.”

이 와중에도 인어 아가씨는 부상자를 돌보는 일을 했다.

좀비 잔당 소탕을 위해 넓은 지역에 산발적인 전투가 있었고 당연히 부상자는 속출했었다.

물론 세이나나 인어 아가씨 외에 각 지에서 온 사제들이 있었기에 부담이 크지는 않았다.

그런데, 둘 모두 주교급이었기에 생각보다 부상자들의 완치가 빨랐다.

이제 손가락 곧 손가락을 빨아야 될 듯했다.

다른 사제들은 일거리가 줄었다고 좋아할진 모르겠지만, 인어 아가씨는 아니었다.

인간으로 치면 식사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나··· 난 약골이라고. 너도 알잖아.”

“엄밀히 말하면 아니죠.”

항법사는 선택적 무능력자였다.

능력이 봉인된 상태라고 해야 하나.

예전에 회식 때 들은 적이 있다.

-귀족집 도련님과 함께 공부하고 대신 맞아 주는 게 내 역할이었지.

나름 귀족에 대해 빠삭한 이유가 있었다.

귀족 자제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대신 맞는 것이 그의 역할.

그 집이 좀 지독하게 공부를 시키는 곳이었고. 어린아이가 따라가기 힘든 스케줄.

당연히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마다 항법사는 맞아야만 했다.

-뭐. 그 도련님이 정신적 압박으로 자살해 버리고 나서야 난 자유가 되었지.

덕분에 항법사도 제법 트라우마를 받은 모양.

어쨌든 그도 마나 유저였다.

조금만 더 익히면 각성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련이 얕지 않았다.

검술도 탑재되어 있었지만, 그때 하도 맞은 기억 때문에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아니. 난 부선장 대신 인어 아가씨를 상대할 수 없다고! 난 장난 아니야! 효율이 분명 좋지 않을 거라고.”

“그건 확인해 보면 알 일이죠. 인어 아가씨!”

리안이 손짓하자 창문 밖을 멍하니 보던 인어가 고개를 돌렸다.

“내 새로운 장난감인 건가요?”

“우리 배에 중요한 인물이니까. 조심해서 다뤄.”

“나를 너무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내가 이제껏 만난 남자들의 숫자가······.”

하긴. 인어들은 남자 다루는 장인이다.

“이게 도움이 될 거예요. 이왕이면 옆에서 케어도 잘 해 주시고.”

“네! 주인님.”

인어 아가씨는 리안에게서 알약을 받았다.

다들 저 알약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아마 내일이면 각성한 항법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환상의 영약인 만가 열매로 제조한 것이었다.

“아··· 안 돼~!!!!”

“돼! 요. 아저씨도 이제 일 인분은 하셔야죠.”

그렇게 항법사가 밖으로 끌려나갔다.

고잉미샤호의 선원들은 배에서 내려도 평온한 날이 없었다.

“자. 이제 대충 다 정리된 것 같네요. 승선합니다. 내일이면 잉글슨에서 사람이 올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제가 부선장님을 대신해서 출항 준비를 마쳐 놓겠습니다.”

“든든하네요.”

***

잉글슨 왕실의 정기 연락선이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세금 징수인들이 주로 타는 배로 쾌속선이다.

“아직 멀었는가?”

“곧입니다. 공작님!”

세금 징수선이 움직인 이유는 다름 아닌 해리 78,900세 때문.

그의 가문은 왕가의 핏줄이었는데, 지금은 우선순위가 한참이나 멀었다.

뒤에 어이없는 숫자가 붙은 것도 오래전 계승에 관련되어 유치한 경쟁을 하다 저리된 것이다.

-뭐?! 장난해? 어떻게 해리 100세가 돼!! 그럼 난 101세다.

-진정한 해리 국왕의 후손은 나다! 난 1,001세다!

해리 국왕은 잉글슨 가문의 왕 중 유능하다고 알려진 자였다.

그는 특이하게도 막내였지만, 왕에 오른 인물.

그러니 이름 뒤의 숫자가 낮을수록 더 그에 가깝다고 생각한 것이다.

웃긴 것은 이름으로 경쟁했던 해리 78,900세의 선조와 경쟁자는 둘 모두 왕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나름 영향력과 실력이 있었는지 왕의 자리를 포기하며 공작이 되었고. 후손인 해리78,900세가 이어받았지만.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그는 뱃머리에 멋진 포즈로 팔짱을 낀 상태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저기 공작님 좀 봐!!

-하루라도 저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면.

-아아. 너무 멋지셔······.

그걸 지켜보던 여자 선원들은 모두 눈을 반짝였다.

그야말로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님이 따로 없었다.

덕분에 공작을 호위하는 자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도착했습니다. 공작님!!”

“벌써? 역시 우리 잉글슨의 쾌속선은 빠르군.”

목소리조차 옥구슬이 굴러가듯 부드러웠다.

잘생긴 얼굴. 슬림하면서도 탄탄하며 훤칠한 키. 부드러운 목소리. 엄청난 재력과 지위.

모든 여자의 살아 있는 로망이었다.

끼이이익!

배가 부두에 닿고 판자를 내렸다.

한 폭의 그림처럼 공작이 배에서 내렸다.

와아아아!

부두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남자라 해도 예외가 없었다.

-해리 78,900세 공작님이다!

그는 이미 유명인이다.

율 대륙의 국가에서도 그에게 막대한 돈을 주며 광고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신문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당연히 잉글슨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아일리 섬의 사람들은 그를 모를 수가 없었다.

-여긴 왜 온 거지?

-국왕 전하의 측근이잖아. 아마도 우리 후작님을 보러 온 거겠지.

-맞다. 우리 후작님이 신대륙 쪽 일을 해결하러 간다고 했지.

이미 아일리 섬의 사람들도 소식을 접했다.

워낙 신문에서 리안에 대해 떠들어 댔으니.

“어···!! 공작님!! 께서 이렇게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부두 관리인이 다급하게 달려가 고개를 조아린다.

만약 그가 올 줄 알았다면, 리안이 부두까지 찾아와 기다려야 하는 것이 예의였다.

“너무 당황할 것이 없다네. 내가 온다는 기별을 주지 않았으니. 그래서 후작은 어디에 있나?”

“저기 배에 있을 것입니다. 후작님은 땅 위의 침실보다 배의 개인실을 더 편하게 여기는지라.”

리안이 이곳에 도착한 뒤 잠은 항상 고잉미샤호에서 잤다.

당연히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았고.

“참된 군인이군. 어린 나이에 대단해. 우리 잉글슨 고위 장군들도 저걸 보고 배워야 할 텐데 말이야.”

“후작님이 대단하신 분이긴 합니다.”

부두 관리인의 얼굴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데스몬드에 있는 사람의 99%는 리안을 추종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민간인은 재산이 늘었고. 군인들은 함께 싸운 전우다.

거기에 더해 욕은 두 사촌 형제가 다 먹고 있으니 무결한 영웅만 남는다.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나? 관리인.”

“영광입니다. 전하.”

부두 관리인은 신이 나서 앞장섰다.

공작은 고고하게 부두 관리인의 뒤를 따랐고.

“누구냐!!”

고잉미샤호에서 보초를 서던 선원이 칼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해적임에도 근무를 설 땐 면도칼 하나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빡빡한 군기를 자랑하는 고잉미샤호의 선원들이다.

그럴 것이 자신의 선장이 후작이 되었으니 자신들의 출셋길도 보장이 된 것이다.

이미 재산도 있겠다. 이제 리안이 안정되면 자신들에게도 한 자리가 떨어질 것이다.

귀족이 된다는 생각은 못 해도. 어디 시골 경비대장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다.

다시 말해 선원들은 리안의 안전에 관해서는 광기 수준.

“해리 78,900 공작이다. 레온 후작을 만나러 왔다.”

“거. 잠깐만 기다려 주십쇼.”

후작의 측근 부하가 되었지만, 여전히 말투나 행동은 어찌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몸에 배어 있었고. 이걸 스스로 교정할 만한 지능은 조금 떨어졌기에.

그래도 나름 저 정도면 굉장히 예의 바른 해적이라 할 수 있겠다.

“끄하하함~ 누가 왔다고?”

“해리 뭐시기 칠 뭐시기 공작이라는뎁쇼.”

“뭐?! 공작이 왜 와. 거참. 국왕님도 참 급한가 보네.”

해리 78,900 공작.

그는 전투력은 0에 가까운 인물이다.

군사적 지식은 거의 전무하며 오토호스라도 탈 줄 아는 게 다행일 정도.

“하긴. 얼굴도 재능이긴 하지.”

다만, 그의 인지도는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

율 대륙 최고의 엄친아.

터벅터벅.

리안은 자다 일어나 머리를 긁적이며 갑판으로 나갔다.

“으하함~ 공작님~ 만나서 영광입니다아~”

리안은 겨우 하품을 참으며 부두 쪽을 내려다보며 대충 인사를 했다.

매우 무례한 처사지만, 리안의 영웅담이 워낙 강렬했기에 공작은 그러려니 했다. 오히려.

‘허례허식이 없는 자로군. 하긴. 저런 자이니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거겠지.’

“천재는 괴짜라더니. 딱 공과 같구려. 올라가도 되겠소? 후작.”

“누추한 곳이라 부끄럽습니다. 올라오십쇼!”

리안의 말투도 가끔 해적들의 일상투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나 자다 일어난 데다가 방금 소식을 전한 선원의 말투가 워낙 강렬한지라 저도 모르게 따라했다.

“고맙네.”

해리 78,900세는 배에 오르자 감탄을 터뜨렸다.

‘이 배가 그 유명한 고잉미샤호인가? 일반 배와는 양식이 다르군.’

워낙 율 대륙 곳곳을 누비며 좋은 것을 많이 본 공작의 안목은 높았다.

“이 배. 혹시 스랑 제국에서 나포한 것이오?”

“오오. 역시 알아보시네요. 공작님.”

리안이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박박 긁었다.

“역시. 그랬군. 이런 배 정도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스랑 제국밖에 없지.”

기술력은 역시 스랑이 최고다.

다만, 해군을 운용하는 기술이 잉글슨 쪽이 높았기에 바다의 패권을 내어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참.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자, 받게나.”

공작은 깜빡했다는 듯이 품에서 봉투를 건넸다.

마법 처리가 된 양피지가 아닌 걸 봐선 공식 문서는 아닌 것 같았다.

스윽.

“어음이네요.”

함께 동봉된 작은 쪽지.

-미안하네. 후작. 지금 사정이 좋지 않아 일단 급한 대로 이것밖에 지원해 주지 못하네.

왕을 친필서신이었다.

어음을 펼쳐 본 리안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왔다네.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전하는 진심으로 많은 금액을 지원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셨네.”

“애효.”

리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것이 이 돈으로 해적들을 고용한다면 해적왕은 고사하고 일반 전투함 20척 정도가 될까?

그것도 겨우 한 달 남짓한 정도의 시간밖에 안 된다.

“그거 아시나요? 해적들은 서로의 영역 너머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 영역을 넘어가려면 최소 수당을 두세 배는 더 쳐 줘야 해요.”

웃긴 것은 적으로 넘어갈 경우 싸울 적에게도 돈을 챙겨 줘야 하는 이상한 해프닝도 벌어졌다.

-고용주가 완강하여 어쩔 수 없이 싸우는 거임. 너희 해적왕에게 말 좀 잘 해 줘.

싸우는 상대에게 쩔쩔매야 하는 상황.

또 쿨한 것이.

-어. 그래. 잘 받았다. 그래도 싸울 땐 안 봐준다.

-나도 널 죽일 생각이거든.

이런 식이다.

어쨌거나 해적을 고용해 다른 바다로 넘어가려거든 고용비가 붕 하고 떠 버린다.

“그··· 그렇군.”

“이 돈으로는 열 척도 힘들어요.”

“정말 미안하게 되었네. 그렇다고 해군을 움직일 수도 없고······.”

공작도 나름 상식 정도는 있었다.

지금 스랑 제국의 함대와 서로 발이 묶인 상태.

둘 모두 식민지의 싸움은 식민지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

“어떻게 안 되겠나, 후작? 돈은 더 모을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문제이고. 추후 국왕 전하가 보답을······.”

“아니. 그건 그렇고. 이 어음. 신대륙에서만 찾을 수 있잖아요.”

암호 양식이 그랬다.

물론 여기서도 현금으로 환전을 할 수 있긴 있겠지만, 그건 상인끼리 교환해야 한다.

최소 10%는 날아간다고 보면 되었다.

“그것도 미안하네. 내 사재라도 털고 싶었지만, 유동 자산은 얼마 되지 않아서 처분하는 데 시간이······.”

“됐어요. 어휴.”

리안은 상대가 개털인 걸 알자 바로 돌변해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그래서. 공작 아저씨도 같이 가야 한다는 거네요.”

“어음이··· 내 명의로 되어 있어서······.”

공작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다른 상인에게 어음을 팔면 10%라 했는데, 정정한다.

최소 30%는 손해가 발생할 것이다.

“아나. 입 하나 늘었네.”

“내 자네 배에 있는 동안 얌전히 있겠네. 당연히 선장실은 내어 주지 않아도 되고.”

“호오~ 좋은 자세네요. 방이 하나 남긴 한데······.”

그때 갑판 아래에서 무언가 꾸물꾸물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 선장!! 살려 줘~~”

평소 애송이란 애칭을 사용하던 남자. 항법사였다.

“에이~ 뭐에요. 큰 소리를 칠 땐 언제고!”

“잘못했어. 선장~ 나를 버리지 말아 줘. 야근을 아무리 시켜도 이제 불평하지 않을 테니. 제바아아아알”

항법사의 다리에 누군가의 손이 올려지고 질질 끌려 갑판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리안이 소리치자 갑판 아래서 쏙하고 얼굴 하나가 올라왔다.

누가 봐도 와~ 할 정도의 미모.

공작도 흥미로운 듯 보았다.

“엄청나군. 어딜 가도 모델로 발탁될 정도야. 흠··· 인어인가?”

“와우~ 역시 공작 아저씨. 안목이 대단해요.”

“인어와 합을 맞춰 화보 촬영을 한 적이 있어서 알아봤지. 역시 인어들은 아름답다니까.”

그 말에 리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잘되었네요. 남는 방이 하나 있긴 한데··· 독방은 아니어서.”

“하긴. 전투력 유지를 위해 간부들이 독방을 쓰긴 해야겠지······.”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짓는 공작.

“아참. 그 룸메이트가 저기 인어예요.”

“저··· 정말인가?!”

표정이 확 밝아지는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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