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65화 (165/253)

< 165화 >

##165

리안은 잠시 숨을 멈추며 목을 가다듬었다.

“일리언 아트로네. 가이스 아트로네. 제라스 트라몰. 세바스 카이토는 앞으로.”

호명하자 네 사람은 리안의 앞에 와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국왕에게 대리로 반지를 수령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손에서 반지를 빼서 건넸다.

왕에게 하사받은 반지를 한시도 벗어 둘 수 없다는 의미에서 대리자들이 끼고 있던 것이다.

“국왕 전하께선 그대들을 지지하는 바이다. 어디에서 어떤 신분으로 태어났건 그대들을 잉글슨의 대귀족으로 인정하니. 그대들에게 주어진 권리를 이용하여 영지를 안정시켜라.”

반지가 수여되자 백작들의 얼굴이 서서히 굳었다.

그럴 것이 14개의 아일리 섬의 백작 중 리안에 속한 사람이 5명이 되었다.

아트로네, 토몬드, 올몬드, 데스몬드, 오스라거.

아니 어쩌면 거기에 데르 백작가를 더해 6명일지도 모른다.

데르 백작가의 계승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이 리안 덕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된 것이다.

당연히 파트라슈 데르는 리안의 열혈한 추종자가 될 것이다.

거의 절반.

영지와 별개로 리안은 일반적인 후작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아일리 섬이 독립이라도 하게 된다면?

귀족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만약. 북신대륙의 사건을 해결하고 돌아온다면?’

‘아트로네 백작의 후계자가 비어 버렸다.’

‘공을 세우고 와서 아트로네 백작가를 공식적으로 얻게 되면······.’

‘이후는 공왕이 되겠네.’

잉글슨에서 리안이 가장 핫한 인물이라는 것은 이제 이들도 알게 되었다.

리안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괴물.

눈앞에는 순해 보이는 어린아이가 아닌 괴물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찍히게 되는 순간 가문이 삭제당할지도 모른다.

“자자. 다들. 고생이 많으셨으니 며칠 동안은 웃고 즐겨도 되겠지요?”

리안이 밝게 웃으며 말했지만, 다들 긴장해 입을 제대로 떼지 못했다.

뱀 앞의 개구리가 된 것처럼.

***

연회의 주인공들은 백작들이 아니라 따라온 귀족이나 고위급 군인들이었다.

좀비들은 정리가 되었고. 피해 복구는 피해를 입은 영지들이 알아서 할 일.

치안이 조금이라도 안정되는 즉시 모두가 돌아가게 될 것이다.

“진짜. 대단했다니까!”

“거기서 그렇게 짠!! 아니 콰과광! 등장할지 누가 알았어.”

“워커맨을 앞세운 드루이드에게 승리했다는 걸 누구도 믿지 못할 거야.”

리안과 함께 마지막 전투를 한 자들은 술에 취해 떠들어 댔다.

“그래. 대단하긴 하지. 그런데 그건 별거 아니야.”

“뭐?!!”

그때 누군가의 말에 술기운이 달아났는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대단하지 않다니. 도대체 여기서 얼마나 더 해야 대단한 거지?”

“어허. 오해들 하는구만. 내 소개부터 하지. 파트라슈 데르 백작님을 모시고 있는 기사야.”

“그래서? 하긴. 데르 가문의 절반은 남쪽 올몬드령에서 싸웠다고 들었지. 직접 못 봐서 그런 거야.”

그러자 데라 가문의 기사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대들은 내 말을 오해한 것이라니까. 나도 직접 봤어. 레온 후작님의 능력을! 너희 데르 가문의 계승 전쟁에 대해 들어 봤나?”

썰을 풀기 시작하는 데르가의 기사.

리안이 적은 숫자로 적의 배후를 막아서 고사시켰다는.

성녀니. 워커맨이니. 강력한 부유선이니. 이런 것이 아니라 지휘 능력에 대한 것이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탱글 님의 화신이 아닌가?!!”

커흠!!

그때 그들의 옆을 지나치는 한 소년.

“어어······.”

“저··· 전신!”

다들 술기운 때문인지 어버버거렸다.

“죄송합니다. 후작님!!”

“하하. 놀고먹는 자리에서 너무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됩니다. 이건 그대들을 위한 자리니까요. 웃고. 떠들고. 마시세요. 그대들이 없었다면 아일리 섬 전체가 지옥이 되었을 테니까요.”

“아닙니다. 후작님이 없었다면 정말 그리되었겠지요. 후작님은 영웅이십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영웅은 제가 아니라 여기 있는 여러분들입니다. 그럼. 아디오스~”

리안은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참고로 백작들은 파티장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안쪽에서 자신들끼리 회의를 이어 나갔다.

앞으로 전후 복구를 어떻게 할 것인지. 피해를 입은 백작령을 도의상 어떻게 도울 것인지.

그 외에도 아일리 섬 전체의 발전을 위해 서로 어떻게 협력하고. 어떤 인프라를 도입해 볼 것인지 등.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파티 자리에서도 아일리 섬을 위해 다른 백작들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존경심마저 들 정도였다.

거기다 고위 귀족의 격식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당당히 걸어가며 잔을 비우는 모습은 모든 기사들에게 동경의 눈빛을 보내게 했다.

다들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리안을 따라 시선이 따라갔다.

캬~~!

다만, 리안이 비운 것은 술이 아니라 우유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끼이이익!

리안은 그렇게 쿨하게 연회장을 떠났고. 곧이어 다른 귀족들도 사라졌다.

이들은 파티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리안이라는 구심점이 생기니 그동안 서로 약간은 앙금이나 사소한 이해득실 때문에 진행되지 않는 것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다.

오늘 승전 파티에서도 봇물처럼 그런 것들이 터져 나왔다.

“애송이. 대단해.”

옆에서 지켜봤던 항법사가 리안을 칭찬했다.

“항법사 아저씨가 웬일로 제게 칭찬을? 내일은 해가 동쪽에서 뜨겠군요.”

“해는 원래 동쪽에서 뜨는 것이다.”

“그만큼 제가 칭찬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요. 헤헷!”

그 말에 항법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어떻게 그렇게 박식할 수가 있지? 네 녀석이 괜히 귀족이 아니었군.”

리안은 그 말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저도 몰라요.”

“응? 뭐가?”

“절반 이상이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하겠던데요?”

“음?”

그랬다.

사실 리안은 알아듣지도 못하며 대충 팔짱을 끼고.

-음? 그렇군요. 그래요? 별로네요. 휴우~ 대단해요. 좋군요.

이런 리액션만 했다.

그러자 다들 알아서 리안의 눈치를 보며 서로 조율을 했다.

조금 빙빙 둘러가는 사안들은 대충 외할아버지인 아트로네 백작의 안색을 보며 판단했다.

“저들에게는 그저 구심점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게 좋은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큰 손해가 일어나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어요.”

“아니··· 그게 그렇게 된다고?”

“저들도 바보가 아니에요. 저는 앞으로 아일리 섬이 뭉쳐서 같이 잘 살아 보자고 불렀고. 제게 잘 보여야 하는 상황에 자기 혼자 큰 이득을 가지겠다고 다른 백작가에게 손실을 전가하는 일은 못 해요. 그러니 제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적당히 양보도 해가며 조율할 거예요.”

가끔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봤죠? 내가 이렇게 착한 사람이니 앞으로 잘 봐 주세요.’ ‘우리 백작가는 아일리 섬 전체를 위해 희생도 할 줄 알아.’라는 표정을 지을 때가 참 많았다.

당연히 리안은 그런 복잡한 내정에 대해선 모른다.

그저 게임만 열심히 한 고인물일 뿐.

“아아. 그래서 그랬던 것이군.”

“네. 저들은 아일리 섬에 공후작이 생기는 걸 반기지 않았으면서도 또 바라 왔죠. 결국. 이 모든 것은 잉글슨이 의도했던 건데.”

“너로 인해서 아일리 섬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겠군.”

“그것이 국가니까요.”

모든 이들이 추측했다.

만약 리안이 북신대륙의 일을 잘 처리한다면, 아일리 섬이 공국으로 분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그 의지가 잉글슨 국왕이 내어 준 반지였다.

“이제 쉬러 가는 건가?”

“아니요. 아직 남았어요.”

리안은 부지런히 궁전의 연회장을 빠져나가 백작 집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으로 향하던 중 한 방에서 요란하게 부서지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항법사가 급히 리안의 뒤로 숨었다.

“도련님!!”

다시 그 앞을 샤로트가 막는다.

누가 보면 리안의 앞뒤를 보호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항법사는 진짜로 리안의 뒤로 숨은 것이다.

고잉미샤호에서 가장 전투력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철컥!

샤로트는 전투태세를 갖춘 채 방의 문을 열었다.

철컥~

샤로트는 조용히 다시 문을 닫았다.

리안도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옆으로 고개를 스윽 돌렸다.

철컥!

다시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아니. 부선장 아저씨. 이런 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곧장 집무실로 오라고 했잖아요.”

“그게··· 그러니까. 나 정도 되는 남자라면 짧은 시간에도 여인 하나쯤은 충분히!!”

“퍽이나. 그러셨겠어요. 에휴~”

그때. 문 뒤로 한 여인이 옷을 추스르며 나왔다.

“레인스타 여백작님!”

아직 어려 보이는데, 다른 후계자를 제치고 당당히 백작 자리를 거머쥔 대단한 여성이었다.

상당히 호쾌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솔직히 일반 귀족 여성이라면 부끄러워 밖으로 나오지 못했겠지만, 백작쯤 되면 당당해도 된다. 여자와 남자라는 성을 뛰어넘은 위치이니.

“너무 나무라지 말아 주세요. 후작 합하. 제 생에 가장 길고 뜨거운 밤이었어요.”

“······????”

리안의 두 눈에 물음표가 한가득 채워졌다.

이미 부선장의 밤 실력은 오래전 보았지 않았는가.

인어 아가씨가 공식적으로 밝혀 주었었다.

‘조심해야 할 여자다. 나쁜 의도로 접근한 것이 틀림없어!’

리안은 그런 레인스타 여백작에게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부선장이 받은 올몬드령의 바로 옆이 레인스타였기 때문.

콕콕!

그때 항법사가 옆에서 옆구리를 은근히 찔렀다.

스윽!

그리고는 손바닥만 한 수첩을 열심히 넘기더니 뭔가를 보여 줬다.

“아······.”

항법사가 리안을 따라다닌 이유는 간단했다.

그나마 고잉미샤호에서 귀족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이 그였다.

그렇기에 사전에 다른 백작들에 대해 사전 조사를 했고. 리안에게 중간중간 정보를 제공했다.

게임은 몰라도 암기력은 지극히 평범한 리안이었다.

끄덕!

“아··· 그렇군요. 두 분 잘되셨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말하고 리안이 먼저 자리를 떴다.

“천생연분이네.”

“그러게요. 토끼는 남자만 있는 게 아니었나 보네요.”

여백작은 어린 나이에도 재혼만 다섯 번째.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였다.

불임이 아닐까 하는 말이 한창 나오고 있었다.

끼익!

리안은 곧장 집무실로 향했고. 부선장도 곧장 뒤를 따랐다.

부선장도 여백작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슬쩍슬쩍 고개를 돌려봤다.

“오. 다들 모였네요.”

데스몬드 백작 궁전의 집무실은 제법 넓었다.

중앙에는 손님용 소파와 테이블도 있었다.

“꼬마. 어떻게 된 일이야?”

손님용 소파의 가장 끝에는 해적왕이 앉아 있었다.

아직 해적 섬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솔직히 신대륙 문제는 우리가 도와주기 껄끄러워.”

“케르비안 해적들 때문이죠?”

“잘 아는군.”

각 바다는 바다마다 해 먹고 있는 해적단이 있었다.

해적왕이라 불리는 자들도 해당 바다를 소유한 국가에서도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최소 상급 실력이거나 이곳의 해적왕처럼 소드마스터인 경우도 있다.

거기에 각 나라의 강력 범죄자들이 끝없이 수혈을 해 주기 때문에 부하들의 질도 나쁘지 않았다.

각 국가에선 그들을 통제를 하기 위해서 사략권을 지급하기도 했다.

“저도 양심이 있어요. 이번 건은 안 도와주셔도 되요.”

그들이 앙심을 품고 서북쪽으로 향하는 배들을 작정하고 털면 어떻게 될까?

그리되면 그쪽 항로의 배들은 무장을 강화하거나. 서로 뭉쳐서 다니거나. 혹은 망해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럼 율 대륙 서북해를 거점으로 삼은 대부분의 해적들은 손가락을 빨아야 한다.

“아무리 잉글슨에게 털리는 식민지 함대라 해도 스랑 제국의 해군은 호락호락한 놈들이 아니다.”

스랑 제국은 본국 함대보다 식민지 해군이 더 강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럼에도 잉글슨은 항상 북신대륙에 스랑을 잘 견제해 왔다.

최근 들어선 조금 앞서가는 상황이었다나.

“전 제대로 상대할 생각이 없어요.”

“뭐? 제해권 없이 어떻게 싸우려고 그러는 거냐?”

“네? 왜 싸워요? 전 잉글슨의 함대가 돌아올 때까지 버티면 그만인데. 흐흐.”

리안의 음침한 웃음.

해적왕은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북신대륙은 크게 총 세 개의 세력이 점유하고 있었다.

위쪽은 잉글슨, 중간은 스랑, 아래쪽은 아즈 제국.

아즈 제국은 식민지가 아니라 본래부터 있던 나라다.

참고로 아즈 제국 바로 아래가 리안이 받은 코파나 백작령이 있다.

“버틸 수 있다고? 내가 육전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한 번 빼앗긴 땅은 되찾기 힘들다고 들었다. 함대가 돌아왔을 때 제해권을 되찾아도 땅은 되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책임을 물어야 할지도 몰라.”

원래라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리안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제해권은 가질지 몰라도 그에 따른 이득은 챙기지 못할 테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