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
##150
리안은 표정을 싹 굳힌 뒤 원래 그려려고 했다는 듯이.
“돌격!!! 공격하라!!!”
간디바의 뒤에 서서 외쳤다.
“우오옷!!”
바닥을 뒹굴던 간디바가 벌떡 일어나며 아군과 엎치락뒤치락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병사들의 목에 건 목걸이들이 붉은색으로 희미하게 빛을 내며 광기에 휩쓸린다.
‘우린 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오토호스에 탄 대전사가 적진에서 튀어나와 깜짝 놀랐지만, 아군의 식별 띠를 두르고 있어서 다시 놀랐다.
그런데, 그 존재가 자신들의 뒤에 있어야 할 아군의 지휘관이란 사실에 다시 한번 더 놀라야 했다.
돌격형 지휘관은 위태롭지만, 병사들에게는 신뢰를 주었다.
‘우리의 총지휘관이 선두가 아니라 적진에서 나오다니!!’
어린 리안을 보고 처음에는 얼굴마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적진에서 나오는 것을 보니 얼굴마담은커녕 그저 그런 지휘관도 아니었다.
죽어!!!
와아아아!!!
가자아아아!!!
승리에 대한 확신이 찬 병사들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참고로 그들이 목에 찬 목걸이는 기분을 더 증폭시켜 줬다.
목걸이의 정체는 전술 목걸이라 부르기도 하는 마도구.
같은 시그널을 발산하는 목걸이를 찬 병사들이 뭉치거나 특별한 형태로 진을 짜게 되면 효과를 발휘하는 물건이다.
진형이 잘 짜인 보병에게 대전사도 함부로 단독 돌파를 하지 못하는 이유다.
리안이 이렇게 쉽게 적 보병 후측면을 뚫고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군이 생각보다 잘 싸워 줘서였다.
“후~!”
겨우 한숨을 돌린 리안.
이대로라면 적들이 충원되기 전 상대 진형을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제는 그냥 쉬어도 되겠지만, 조금 아쉬운 것도 사실.
그때 저 멀리 보이는.
***
토몬드 백작.
그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아직! 재정렬은 아직인가?!!”
“신)올몬드 백작가의 병력과 엉켜서 쉽지 않습니다!!”
신)올몬드 백작의 등장으로 앞뒤로 압박을 받게 된 오스라거 백작.
그는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요새 방향으로 돌파를 시도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돌파가 쉽지 않았고 그 틈에 토몬드와 구)올몬드에게 후방이 신나게 털렸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너무 신나게 털다 보니 구)올몬드 백작군과 토몬드 백작군이 섞여 버렸다.
“일단 피하심이!!”
“쯧. 신)올몬드 측에도 전달해라. 기사를 지원해 달라고.”
이 말을 하는 도중에도 토몬드 백작은 속이 쓰라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기사들이 픽픽 쓰러지고 있는 상황.
아무리 알베찰 요새가 중요하다지만, 요새 하나 얻겠다고 자신의 기사단이 박살 나는 중이다.
기사단은 하루아침에 키우기도 힘들고. 기사단의 핵심 전력인 대기사는 아예 확보하는 것도 힘들 지경.
“신)올몬드와 손을 잡고 오스라거에게 배상금을 물려야겠어.”
영지전을 벌여 영토를 점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잉글슨 왕국의 발작 버튼이나 다름이 없으니.
잉글슨은 아일리 섬에 강자가 나오길 바라지 않는다.
문제는.
‘그게 사실이라면 어쩌지?’
아일리 섬 최대 규모 항구인 더블린을 보유한 데르가의 장녀까지 등장한 상태.
아일리 섬 제일미라 불리는 그녀는 미모만큼이나 실력도 출중했다.
규모는 둘째 치고 두 가문이 함께 군사 작전을 펼친다는 것이 확실히 이상했다.
“주군. 아군의 보병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서!”
지금 당장은 그것보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
많은 병사들을 잃긴 했지만, 아직 절반의 병력이 재정비 중이었다.
어차피 전열이 붕괴해서 뿔뿔이 흩어진 병력 중 대다수는 다시 합류할 것이니 사상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었다.
“알겠··· 컥!!”
탕!!!
그런데, 급히 퇴각하던 도중 백작에게 총탄이 날아왔고 그대로 오토호스에서 떨어졌다.
“주군!!!”
토몬드의 기사단장은 급히 오토호스 아래로 상체를 숙이며 낙마한 토몬드 백작을 낚아챘다.
참고로 토몬드 백작은 대전사가 아니었다.
그나마 일반 기사들이 입는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지만, 정령 갑옷과 달리 정말 운이 나쁘면 마총 한 방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크으으으윽!!”
토몬드 백작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생사를 확인한 기사단장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주변을 살폈다.
‘언제 여기까지 접근한 것이지?’
아까 전 뒷자리에 마총병 하나를 태우고 미쳐 날뛰던 소년 기수가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신들린 오토호스의 조종 실력이었다.
지금 전장은 아군과 적군이 뒤섞여 여기까지 오토호스가 빠르게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행히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 건가.’
일단 여기는 기사단장인 자신도 있었고 친위대도 있었다.
아무래도 중견급 대전사인 자신의 공간 안에 들어오는 것이 꺼려지기 때문일 것으로 보였다.
아까 전보다 마총을 쏜 거리도 조금 있는 것으로 보아 추측이 맞을 것이다.
“크으으으··· 빌어먹을 노옴······.”
“주군!! 괜찮으십니까?”
자신의 품에 안긴 토몬드 백작이 정신을 차리자 급히 몸 상태를 살폈다.
“5대째 내려오던 비싼 마도구가 망가지다니······.”
요새 한 채를 지어도 될 만큼 비싼 마도구였다.
현자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작품이라도 불러도 될 만큼 좋은 성능.
목숨을 건졌지만, 그 귀한 마도구를 날렸다.
“일단 주군께서 사신 것이 천운입니다. 여기서 주군이 잘못되시기라도 한다면······.”
사기가 떨어져 완전히 개판 오 분 전이 될 것이다.
자칫 구)올몬드 백작에게 병력이 흡수되어 총알받지로 쓰이다 버려질지도 모른다.
토몬드 백작군 입장에선 살기 위해서라도 그에게 붙어야 하니.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잉글슨에서 괴물들을 보냈구나. 도대체 누구이지? ”
“아무래도. 리안 레온 백작으로 추정됩니다.”
“뭐?! 저 꼬마가?”
한 번쯤 본 것 같기도 했다.
어렴풋이 희미하게 기억이 떠올랐다.
“그놈. 재능도 없고. 유약하기 짝이 없는 놈 아니었나? 아트로네 백작 그 구렁이 같은 영감이 우리를 속인 것인가?”
자기 외손자가 와 있는데, 어찌나 재능이 없는지 마나 유저를 만드는 것도 돈이 엄청나게 들었다고 푸념을 풀어 놓기도 했다.
결혼식 때였는데,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하고 파티장 구석에서 시녀와 단둘이서 주눅이 든 채 멀뚱멀뚱하게 있었던 것 같다.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한 불쌍한 소년으로 리안을 기억하는 토몬드 백작이었다.
투트트트트!!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던 사이 토몬드를 태운 오토호스가 재정렬 중인 아군의 진형에 도착했다.
그런데.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무슨 일이더냐!! 신)올몬드 백작군은 왜 재정렬 중이라더냐!”
서로 다른 방향에 있었지만, 자신의 군대와 흡사한 모습이 보였다.
“신)올몬드 백작군도 습격을 당했다고 합니다.”
“누가? 설마······.”
생각해 보니 이상하긴 했다.
데르 가문의 장녀까지도 온 상태인데, 반란 토벌군이라 주장하는 것 치고는 규모가 너무 조촐했다.
다만, 워낙 정예들이라서 조금 납득이 갔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나머지 병력은 어디에 있을까?
“아트로네-데르 연합군이라더냐?”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뭐?! 그럼?”
“구)올몬드 백작의 계승자라는······.”
“그게 말이 돼?!!”
이미 구)올몬드 백작가의 존재는 망령이나 다름이 없다.
잉글슨 왕국에게 끝까지 대항했기에 멸문을 당해야만 했다.
지금 신)올몬드 백작가는 이름만 계승했을 뿐 단 한 방울도 피가 섞이지 않았다.
퍼어어어엉!!!
그때 엄청난 충격음이 들려왔다.
“크하하하!!! 나 거프를 막을 자, 어디에 있는가?!”
신)올몬드 백작군의 후방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법 확성기라도 지닌 걸까? 사람의 목소리가 이렇게 클 수는 없다.
만약 이것이 마법의 도움이 아니라 본인의 진짜 목소리 크기라면······.
“물주먹 거프?!!는 아니겠지?”
해적왕의 또 다른 이명.
“해적왕이 뭐 먹을 게 있다고 아일리 섬의 내륙에 있겠습니까.”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렇다.
소드마스터라고 불리며 어느 나라에 가도 후작을 받을 수 있는 능력.
다만, 그는 물 속성이라 내륙으로 들어오면 힘이 조금 달리긴 했다.
물론 비가 오거나 개울이나 호수의 근처라면 말이 달라지긴 했지만, 지금은 해당 사항이 단 하나도 없었다.
퍼어어어엉!!
그때 또다시 들려오는 충격음.
“지··· 진짜. 해적왕 거프인가?!! 그럼 데스몬드 백작가에 대규모 봉기가 일어난 것도 사실이란 건가?”
그렇다면 잉글슨 본섬의 고위 귀족이 왔을 터.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걸 대체할 만한 존재로 해적왕도 나쁘지 않았다.
최근 잉글슨-스랑 해전에서 잉글슨의 편에 섰던 것이 해적왕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토몬드 백작이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아일리 섬의 귀족들의 힘을 빼려는 잉글슨 왕국의 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신이 오스라거와 싸운 것도 갑자기 구)올몬드 백작이 등장한 것도 전부··· 함정이고 계략인 것은 맞지만 당사가 국가가 아닌 개인이란 사실은 전혀 알 순 없었다.
***
거대한 충격음을 들은 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오오! 타이밍 완벽하고!”
토몬드 백작을 놓쳐 아쉬웠지만, 양군의 작전 타이밍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지금 저 반대쪽도 이곳과 비슷한 풍경이 일어나고 있을 거다.
아니. 오히려 훨씬 더 심각할 수도 있다.
해적왕은 소드마스터이고 소드마스터는 재앙 그 자체이기 때문.
“비라도 오면 금상첨화인데.”
야누스의 심장이 있었다면, 비도 부릴 수 있지만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후를 조종하는 것 자체로 큰 메리트가 있지만, 전력 전체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것과 항로를 지배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요새 쪽도 슬슬 빠져야 할 텐데······.”
***
지금 이 전장에서 가장 취약한 방향은 아이러니하게도 알베찰 요새 방면이었다.
더 웃긴 것은 알베찰 요새를 지켜야 할 병력이 밖으로 나왔고.
더 황당한 것은 그들은 궁지에 몰린 오스라거 백작을 막아섰다.
“물러서지 마라!!!”
거기서 태산같이 자리에 앉아 병력을 지휘하는 사내가 있었다.
피이이잉~!
그의 옆으로 총탄 하나가 스쳐 지나갔지만, 눈 하나 꿈쩍이지 않고 있었다.
“으어어어!!”
부관으로 참여한 콕은 놀라 바닥에 엎드렸다.
원래는 미비앙의 부하였던 자였다.
“으아아아!!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아아.”
“아직. 적의 기세가 오히려 약해졌어.”
주가다 남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 궁지에 몰려 필사적으로 이곳을 뚫으려 했던 오스라거 백작군의 공세가 조금은 약해진 상태.
자세히 보니 오스라거 백작군을 몰아붙이던 적들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더··· 더 큰 게 몰려올 것입니다!!”
불길한 눈빛으로 떠드는 콕.
주가다 남작도 알고 있다.
이 작전에 대해 언급을 한 적이 있으니.
“맞다. 이 병력으로 세 개의 백작군을 막아야 한다는 걸.”
“그러니 지금이라도······.”
“무슨 소리. 도련님의 작전이 성공했다.”
리안이 콕을 붙여 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작전에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서다.
“그래도··· 그래도··· 적의 기세가 강하면······.”
물론 작전이 성공해도 타이밍 좋게 요새군이 빠져 줘야 하는 것도 맞았다.
다만 피해가 너무 큰 것도 문제다.
‘병력을 뒤로 물리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애초에 주가다 남작의 머릿속에 후퇴란 단어 자체가 빠져 있었다.
그럴 것이 그는 철저한 사명감을 가진 요새의 사령관이다.
‘너무 어려워······.’
매뉴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피해가 얼마가 발생하면 뺀다?
대략적인 피해를 계산할 순 있어도 한창 전투 중인데 사상자가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시간이 다 되면 뺀다?
리안군과 해적왕의 군대가 서로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장담을 못 하는데 요새군이 어떻게 아리.
“남작님! 적이··· 적이 뭉칩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치고받고 싸우던 사이였다.
그런데, 보기 좋게 화해하고는 이곳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막아라!! 뼈를 이곳에······.”
“묻으면 안 되지요. 저어어얼대!! 뼈는 제 고향에 묻을 겁니다. 그러니 어서 후퇴를······.”
“아직 제대로 싸우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우린 뭘 한 겁니까!! 놀았습니까? 우린 지금 한계입니다. 저기 병사들의 표정이 보이시지 않습니까?!!”
열심히 싸웠다. 죽도록 용맹하게.
남작이 싸우지 않았다고 한 말의 뜻은. 세 개로 합쳐진 상태의 적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 총사령관님의 명령서입니다.”
결국 콕이 꺼내 든 것은 리안에게서 미리 받은 명령서.
“흠··· 후퇴한다!”
남작의 명령으로 빠르게 뒤로 물러나는 요새군.
그런데, 요새 안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요새 앞으로 난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