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40화 (140/253)

140화

##140

파트라슈는 곧장 병력을 몰아 데르 백작령의 수도로 향했다.

줄리아 데르가 거의 전 병력을 이끌고 왔기에 저항할 병력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저항은커녕 문을 활짝 열어 파트라슈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오랜 세월 백작가의 재산을 관리해 온 집사장이 선두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여백작이라 부르도록. 바르지 자작.”

그녀는 볼을 푸들거리며 집사장을 압박했다.

사실 파트라슈에게 그는 오랫동안 눈에 거슬리던 자였다.

줄리아의 파벌이었기에.

“죄송합니다. 데르 여백작님!”

여자든 남자든 작위를 가지면 그냥 작위만 부르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여자들은 구분해 주길 바랐다.

구분하지 않으면 가끔 백작 부인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

그만큼 여자가 작위를 물려받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다만, 데르 백작가는 부족 시절부터 7:3 비율로 압도적으로 여자가 족장이나 가주 혹은 작위를 가져왔다.

데르가의 거인 혈통은 여자에게 더 진하게 남겨졌기에.

“아니다. 족장으로 부르도록.”

“하지만 가주님께서…….”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온다면 그때 가서 정식으로 인정받겠다. 그러니 일족에게 알려라. 내가 모두를 책임지겠노라고.”

“알겠습니다. 족장님.”

사실 집사장 바르지 자작도 데르가의 피가 섞여 있었다.

다만, 직계는 아니고 방계였으며 거인의 피가 옅었다.

“왜? 나보다 언니가 더 순혈 같아서 아쉬운 건가?”

“아… 아닙니다.”

일족들은 당연히 거인족의 발현이 더 강한 자가 가주의 자리에 앉길 바랐다.

그렇기에 외부에는 가주라 칭하지만, 자신들끼리는 족장이라 부르는 이유다.

“그런데 난 열세의 상황에서도 언니를 꺾었다. 나의 증명이 부족한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좋다. 그렇다면 족장의 방으로 안내해라.”

“장로님들의 동의가…….”

“언제부터 족장이 족장의 방을 누군가에 허락을 받고 갔던 것이지?!”

파트라슈가 화를 내자 바르지 자작은 곧장 시선을 피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기에 기사단을 가진 줄리아를 꺾었음에도 병력의 손실이 없어 보인다.

‘정말로 줄리아 님이 패배한 것일지도…….’

결국 굴복한 그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앞장서서 족장의 방으로 향했다.

족장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선 두 명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금전을 관리하는 집사장과 외내무를 관장하는 재상이었다.

재상도 족장과 마찬가지로 데르 일족이었다.

“아가씨.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은 걸 보니 많이 늠름해지셨습니다.”

재상은 집사장과 달리 미소를 띠고 있었다.

사실 그는 데르의 피가 정말 옅었다.

남작령을 가진 그였는데, 그로 인해 자신의 입지도 많이 흔들린다고 해야 할까.

자신의 가문에 정적이 많았다.

만약 파트라슈가 가주가 된다면, 데르의 피가 진해야 우두머리가 되어야 한다는 명분을 많이 부술 수 있을 것이다.

“재상도 나를 아가씨라 부르는군요.”

“방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때부터 족장님이라 불러 드리겠습니다. 아가씨.”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호의적였기에 파트라슈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들어가시죠.”

재상과 집사장이 인증을 하자 궁전의 지하에 은밀한 곳에 위치한 족장의 방문의 잠금이 해제되었다.

사실 그들이 없어도 문을 열 순 있겠지만, 실력 있는 마법사를 초빙해야 했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끼이이익!

문을 열고 들어간 파트라슈.

방안의 중앙에는 데르가에서 오랫동안 보관하던 반지가 있었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것을 손에 넣게 된 파트라슈.

솔직히 재상이나 집사장을 압박하지 않고 호의를 베푼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하루빨리 이 지긋지긋한 저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번쩍!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반지를 통통한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놀랍게도 마법 걸려 있는지 고무줄처럼 늘어나더니 쏘옥 하고 들어갔다.

“꺄악……!”

그 순간 온몸이 찌릿해짐과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다.

의식이 몽롱해지며 온몸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레온 님…….’

마지막으로 그 귀엽고 앙증맞게 생긴 소년이 보고 싶어졌다.

안 본 사이 늠름해져서 돌아온 그 소년을 말이다.

* * *

리안은 전투가 끝나자 곧장 고잉미샤호에 올랐다.

전리품으로 온몸이 포박된 줄리아를 싣고서.

“나… 나를 어쩔 생각이지?!!”

독대를 하게 된 줄리아는 경멸의 눈으로 리안을 바라봤다.

포박을 어찌나 세게 했던지 밧줄 사이로 곳곳에 살집들이 집혔다.

결코 살이 쪄서가 아니었다.

‘장난 아니네.’

2차 성징이 시작되어서 그런지 리안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부담스러워질 정도였다.

“안 되겠다.”

결국 리안은 그녀의 포박을 손수 풀었다.

“지… 지금 뭐 하는!!”

“어차피 구속구만 있으면 되는 데. 대기사라고 신경을 쓴 모양이네.”

온몸에 가학적으로 묶인 밧줄을 풀고서야 겨우 이성을 차릴 수 있는 리안이었다.

어차피 안전상 문제는 뒤로 채워진 수갑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마나나 오러를 제한해 버리니까.

물론 일반인에게는 그래도 위협적이겠지만, 리안도 대전사이지 않은가.

“흥! 이… 이런다고 내가 고마워할 줄 알아?!!”

앙칼진 눈으로 올려다보는 줄리아.

여자치고는 체격이 좋은 편이라 커다란 암사자를 보는 것 같았다.

“고마워할 필요 없네요. 형수님.”

“뭐… 뭐라고?!! 내가 왜 네 형수야…….”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낌새를 느낀 줄리아의 눈 끝이 미묘하게 처졌다.

“그럼 소아성애자로 남든가.”

“귀… 귀족의 정략 결혼은… 나이를…….”

“그렇다 한들 나와는 너무 급이 안 맞아서 말이지.”

“내가 데르 백작가를 이어받으면!”

그녀가 다급하게 리안을 설득했다.

지금이라도 리안이 자신의 편을 들어준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기에.

“이미 파트라슈 남작이 지금쯤이면 수도를 장악했을 것 같은데?”

“그대의 부하들과 그대의 외가 아트로네 백작가의 도움을…….”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 말에 말문이 턱 하니 막힌 줄리아.

“그게… 그러니까…….”

“어차피 파트라슈 남작도 나와 동맹이다. 그녀가 가주, 아니 그대들은 족장이라 부르는가? 어쨌든 그녀가 족장이 되어도 나쁘지 않아. 그리고 참고로 난 잉글슨 국왕에게 명예 후작위를 받았거든.”

“후… 후작이라니…….”

말이 명예 후작이지. 잉글슨령에 속한 어떤 땅이든 작게라도 가지는 순간 명예가 아닌 진짜 후작이 되어 버린다.

“뭐. 자세한 것을 알 필요 없고. 아마도 아일리 섬 남쪽도 내 것이 되지 싶은데 말이야. 그러니 백작가의 후광 따위는 내게 의미 없어.”

리안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그녀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 아트로네 백작가의 얼간이 형제 중 한 명과 결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말이 결혼이지 이런 상황에서 넘겨진다면 성 노리개나 다름이 없다.

십중팔구 자신의 오러를 폐쇄해 버리겠지.

“제발. 부탁이다. 그놈들에게 넘겨지는 것은…….”

무인으로 살아왔기에 죽음이 두렵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데, 태어나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 그녀였다.

* * *

아트로네 백작령.

백작이 잉글슨의 수도로 자리를 비운 순간부터 작게 소요가 있었다.

그 이유는 후계자인 두 손자가 치고받고 싸우면서였다.

“형님. 그만 포기하시죠.”

“너야말로 포기하거라. 알베찰 요새의 전투가 우리 외가가 유리하게 돌아간다더라.”

“어디서 이상한 헛소문을 듣고 온 모양인데, 유리한 건 우리 외가라고요!!”

오늘도 두 형제가 전쟁터 한복판에서 만나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시작했다.

사실 이러는 이유가 서로 가진 병력이 많지 않아서였다.

남작가와 남작가가 싸워 봐야 규모가 얼마나 크겠는가.

“형님. 이러다가 우리 공멸한다니까요.”

“흥! 아직 나를 지지하는 귀족들이 많다!”

다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두 형제의 싸움이 잦아지자 누적된 피해는 상당했다.

그럴 것이 아트로네 백작가가 두 갈래로 갈라져서는 두 형제에게 지원을 끊임없이 했기에.

물론 다른 이들의 시선 때문이라도 눈에 띌 정도로 대규모 지원을 하진 못하지만 수시로 조금씩 밀어 넣는 형태였다.

다만, 슬슬 지지자들도 힘에 겨운지 발을 빼려는 기미가 보였다.

“가이스. 넌 도저히 말로는 안 될 놈이구나.”

“거참. 형님도 참으로 고집불통이유.”

아마 오늘도 말싸움으로 시작해서 전투로 끝날 모양이다.

양측 병사들은 이런 상황이 이골이 난 상태다.

아이러니한 것이 이 싸움으로 아트로네 백작가에서 가장 많은 정예 병사를 가진 것이 두 형제가 되어 버렸다.

어쩌다 보니 훈련이 되어 버린 것.

“가자!! 나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아. 이긴다면 그 영광을 너희에게 돌리겠다.”

“흥!! 나는 저놈의 재산을 산산이 분해해서 너희에게 모두 나눠 주겠다!”

우와아아아아!!!

오오오오오!!!

거의 매일 같이 벌어지는 싸움에 이골이 날 만하건만 싸움이 길어질수록 병사들의 사기는 점점 더 높아졌다.

당연할 것이 옆에 동료가 하나 죽으면 나눠 가질 돈이 더 많아질 테니.

참으로 웃긴 것이 사상자는 항상 양측이 엇비슷하게 났다.

그러니 양측의 병력은 매일매일 조금씩 쪼그라들었다.

퍼버버버버벙!!!

그때 양군 사이로 엄청난 폭발이 터져 나왔다.

“뭐… 뭐야?!!”

숲의 나무들을 쓸어 버리며 평야로 튀어나온 거대한 전함.

고잉미샤호였다.

드그그그극!!!

고잉미샤호는 대치하고 있는 양쪽의 중간쯤에 대충 섰다.

더 경악할 만한 것은 고잉미샤호에서 끝도 없이 내리는 병력들이다.

“처… 천 명은 되어 보이는데…….”

두 형제는 모두 경악했다.

사실 고잉미샤호에서 내린 병력이 천 명이 되지는 않는다.

원래부터 있던 승조원 300명이 안 되는 숫자에 미비앙의 설득으로 따라나선 500여 명의 패잔병들이었다.

리안은 파트라슈가 편안하게 수도를 접수할 수 있게 병력들을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다.

-나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해산하도록. 단, 수도 방면으로 갈 자들은 더블리에서 보름간 머물다가 간다.

리안이 줄리아의 병력을 지워 버리자 데르 백작가의 수도는 완전히 난리가 나버린 것이다.

가장 두려울 때가 바로 정보를 차단당했을 때다.

파트라슈가 어떻게 줄리아를 이겼는지 알 수 없으니 그녀가 귀족들을 장악하는 데 훨씬 수월할 것이다.

“배에 오르시지요. 남작님. 레온 백작께서 기다리십니다.”

리안은 부하를 보내 정중하게 두 사촌 형들을 불러들였다.

두 형제는 자신들이 병력을 합쳐도 리안의 병력보다 작았기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병력을 제하고서도 거대한 전함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위력 시위를 위해서인지 몰라도 배의 포문이 열려 있었다.

방금 포격으로 기가 질릴 대로 질려 버렸다.

“오… 오랜만이다. 리안!!”

“하하. 안 본 사이에 키가 좀 더 커졌구나.”

두 형제는 리안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굽신거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지만, 자신의 영지에서 병력을 끌고 온 모양.

물론 여기엔 줄리아 데르의 패잔병이 섞여 있는 것을 모르기에 생겨난 오해였다.

“두 분은 후작께 예를 갖추시길!”

그때 뒤에 점잖이 서 있던 세바스가 목소리를 누르며 경고했다.

당연히 두 형제는 그 소리에 머리가 어벙벙했다.

다수의 병력이 내리는 걸 보고 백작위를 얻는 데 성공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후작이라니.

“그게 무슨……!”

“세바스 남작. 괜찮아요.”

리안이 손을 할랑할랑 흔들며 세바스를 제지다.

물론 이것은 사전에 미리 짰던 것.

애초에 세바스는 리안을 믿고 있었기에 리안에게 직접적인 위해가 없는 한 허락 없이 움직이지 않았다.

“국왕 전하께서 글쎄 제게 명예 후작을 내리시지 뭐예요. 하하하.”

“국왕 전하라… 면… 잉글슨의??”

“그럼 누구겠어요. 제 주군은 공왕 전하이시니. 당연히 국왕이라면 잉글슨의 전하이시죠.”

도대체 리안이 뭐가 예뻐서 후작위를 준단 말인가?

애초에 리안은 잉글슨에 땅 한 덩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무관한 인물이다.

더군다나 다른 땅을 가지고 다른 주군을 가졌다.

“자… 잘되었구나.”

“그… 그래. 너라면 그래도 되지…….”

둘 다 속에도 없는 말을 했다.

여전히 무슨 이유에서 리안이 후작이 된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 이거 놔라!! 놓으란 말이다!!”

그때 줄리아가 포박되어 갑판으로 끌려 나왔다.

그녀의 머리는 살짝 풀어 헤쳐진 것으로 보아 대우를 제대로 못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미모는 빚이 바라지 않았다.

철퍼덕!

그녀는 리안의 앞에 내동댕이쳐졌다.

참고로 패잔병들은 모두 배에서 내리게 했으니 리안의 부하들과 두 형제밖에 없었다.

그러니 눈치 보지 않고 막 대하고 있었다.

“설마…….”

“그런…….”

두 형제는 동시에 무언가를 떠올렸다.

어쩌면 자신들이 차지해야 할 저 여자와 땅 그리고 작위를 리안이 가로챈 것이 아닐까?

머릿속에 오만 생각이 다 떠올랐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