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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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장 쿠커의 각성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안광을 번뜩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시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선장님! 평생을 따르겠습니다요.”
햇살에 그의 민머리가 반짝였다.
“평생 음식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리안은 싱긋하게 웃어 주고는 하얀 큐브를 꺼냈다.
이제 자신의 차례.
“계약을 할 테니. 지켜봐 줘요.”
“걱정 마십시오!”
계약을 할 때 무방비에 노출될 수도 있다.
특히나 갑판이었기에 배가 흔들리면 자칫 바다에 빠질 수도 있었다.
이제 중견급이 된 쿠커였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리안을 지켜 줄 수 있을 것이다.
휘이이잉~!
리안이 큐브를 쥐자 갑자기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닥쳤다.
‘이런 기분이였네.’
몸이 가벼워지며 감각이 확장되는 기분이다.
이 비슷한 느낌은 마나를 느꼈을 때와 비슷했다.
제3의 기관이 생겨난 것 같았다.
공기라는 것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졌다.
“이게 될까?!”
계약이 끝나자 사뿐히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난다요?”
그러자 놀랍게도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몸이 머물러 있었다.
이것은 바람과 계약한 대전사들이 공용으로 가지는 스킬이다. 마치 물과 계약한 대전사들이 물 위를 빠르게 달릴 수 있듯이.
‘이제 고유 스킬을…….’
그다음은 그 사람의 체질에 따라 발현되는 스킬.
사람마다 달랐다.
‘이건가?’
뭔가 간질거리는 느낌.
마치 아이가 일어나 걸음마를 시작하듯 본능적으로 무언가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바람돌이!!”
라 외치며 힘을 개방했다.
휘이이잉~!!
순간 바람이 몰아치며 정면을 향해 빠르게.
퍽!!!
나아가 선교의 계단에 부딪혔다.
“아얏아아~~!”
중견급 대전사가 주변에 셋이나 있었지만, 겨우 하급인 리안을 잡아 줄 수가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선장님!!”
세바스와 샤로트 그리고 쿠커가 거의 동시에 달려와 리안을 부축했다.
그들이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날았기 때문에 충격이 적지 않았다.
“흐이잉!!”
리안은 면상을 비비다가 뭔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고는.
“씨부레… 코피!”
* * *
해적 섬에 돌아오니 해적들은 출항 준비를 마쳐 놓은 상태였다.
그중 항구의 구석에 눈에 들어오는 배가 있었다.
약간은 다른 양식.
지중해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배였다.
“세바스 아저씨.”
“네. 선장님.”
“선원 중 휴식이 필요한 자가 있으면 저 배에 태워서 섬으로 보내세요. 그리고 섬의 요새화를 지시하구요.”
“알겠습니다. 처리하겠습니다.”
고잉미샤호가 항구에 닿자 해적왕이 마중을 나왔다.
“마실치고는 좀 오래 걸렸구나. 그리고 강해졌군.”
역시 소드마스터답게 해적왕은 리안의 성장을 바로 알아차렸다.
“약간의 기연이랄까.”
“기연에만 의지하면 제대로 영글지 못하니 주의하거라.”
“조언 감사드립니다.”
“그럼. 슬슬 출발해 볼까?”
해적왕의 말에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해적 섬의 항구는 또다시 대규모 출항이 이어졌다.
* * *
바다를 끼고 있는 제법 높은 산의 중턱.
그곳에 몸을 낮추고 있는 중년 남성과 소년이 있었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놈들이야.”
산의 아래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마을을 점거했다.
그들은 올몬드 백작의 봉신 토라 남작의 병사들이었다.
토라의 옛 명칭은 트라몰.
부선장의 고향이였다.
“저것. 맞출 수 있겠어?”
중년 남성이 소년에게 말했다.
그의 손가락은 앞장서서 산을 오르는 선임 병사를 가리켰다.
병사들은 마을을 터는 걸로 만족하지 않고. 주민들까지 잡아들이려 했다.
“해 볼게요…….”
죽은 소년의 아버지는 어촌 마을의 유일한 사냥꾼이었고. 소년 또한 작은 산짐승을 잡아 마을에 기여했다.
탕!!!
소년은 아버지의 유품인 마총을 당겼다.
“서… 선임 병사가 당했다!!!”
“기사님을 모셔 와야 해!!”
병사들은 우르르 마을로 돌아갔다.
그들에게도 마총병이 있었지만, 적이 보이지 않아서 대응 사격을 할 수 없었다.
“아아… 네 아비가 잘 가르쳤나 보구나.”
“네에…….”
소년의 사격 솜씨에 중년 남성은 감탄을 했다.
“그나저나 큰일이야. 시간은 벌었으나 기사까지 데려오면 버티기 힘들 텐데…….”
“일단 제가 남을 테니. 아저씨는 마을 사람들을 도와서 떠나세요.”
“미안하구나.”
작은 어촌 마을에 싸울 줄 아는 이는 소년이 유일했다.
평소 마을 사람들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지만, 그런 그들을 지키고자 했다.
“어서 가세요.”
소년은 아버지에게 배운 사냥 기술을 활용해 몸을 숨겼다.
기사가 온다 하더라도 한동안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탕!! 탕!!! 탕!!!!
산 곳곳에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어디야!! 어디서 쏘는 거야?!!”
기사는 땅에 발을 치며 쓰러지는 병사들을 바라봤다.
영악하게도 적의 마총병은 기사를 노리지 않았다.
원거리에서 마총으로 각성한 기사를 맞춘다 해도 단번에 쓰러뜨릴 수 없을뿐더러 위치까지 발각당할 것을 알기에.
“그보다 왜 동시에 쏘지 않는 거지?”
소년 그것도 한 명 뿐일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정확한 위치는 특정하지 못하지만, 대략적으로 유추했을 때 총을 쏜 방향은 모두 달랐다.
“기사님! 어떻게 합니까??”
“이 정도면 꽤 건지긴 했는데…….”
어촌 마을치고 꿍쳐 놓은 돈이 꽤 있었다.
“그럼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벌써 다섯이나 죽었습니다. 거기다 선임 병사까지…….”
“하지만 영주님께서 이곳에 신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했는데…….”
“괴소문과 달리 마을이 멀쩡했지 않습니까.”
어촌 마을의 사람들이 밤일에 정신이 팔려 도시로 나오지 않고 있단 소문.
그런데, 병사를 위장해서 정보를 캐 보니 다들 일상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모르니 병사를 끌고 접근하자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산으로 도주해 버렸다.
“헛소문이었나 보군. 그래도 모르니 주민 몇 놈을 잡아다 가야겠어. 그래야 영주님께 할 말이라도 있지.”
최근 영주의 후계자가 죽어 버리는 바람에 토라 남작가는 비상이었다.
영주는 늙었지만 다시 후계를 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들려온 소문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병사들을 보낸 것.
-거부하면 모두 죽여서라도 가져오라!
정력과 관련된 것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았다.
“좀 다쳐도 어쩔 수 없겠네. 내가 마총에 맞아 쓰러져도 당황하지 말고! 지정하는 위치로 달려라!!”
기사는 스스로를 희생해 적의 위치를 잡아낼 생각이다.
한 놈이라도 잡으면 적은 위축 될 것이다.
“괜찮겠습니까?!!”
“흥! 치명상 정도는 피할 수 있다.”
기사의 천적이라 불리는 마총이지만, 원거리에서 쏘는 것 정도는 적당히 방어가 가능했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오는 탄환도 위력이 약하다면, 몸의 오러가 적당히 튕겨 내 줄 것이다.
“가자아아아……!!!”
기사가 준비를 하고 달리려던 찰나 병사들의 시선이 바다로 향했다.
“뭐야?”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봤다.
“어어?!”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기사도 입을 떡 벌렸다.
그럴 것이 바다에 시커멓게 덮은 대규모의 배들 때문이었다.
“뭐… 뭐야. 저것들은.”
“해… 해적왕입니다.”
해안가에 위치한 남작가의 병사들답게 해적왕을 알아봤다.
딱히 겁을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일리 섬은 암묵적으로 해적들이 활동을 잘 하지 않았다.
그럴 것이 해적 섬은 아일리 섬의 부속 섬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붙어 있었고.
해적도 이웃한 아일리 섬과 마찰을 원하지 않았다.
특히나 이번 스랑 vs 잉글슨의 전쟁에서도 잉글슨의 편에 섰었다.
“어딜 저리 가는 거지?”
의문이 들때쯔음.
“한 척이 접근하는데요……?”
조금 특이하게 생긴 함선이 빠르게 마을로 향했다.
와아아아아!!
갑자기 산속에서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것들 갑자기 왜 저래??”
뭔가 불길함을 느낀 기사가 급히 병사들을 추슬러 마을로 발을 돌렸다.
일단 최대한 우호적으로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자신이 남작을 모시고 있다지만, 해적왕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배였다.
철커덩!!
철갑선이 어촌의 부두를 박살 내며 육지로 올라왔다.
“에고. 또 부쉈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배에서 내리는 소년.
해적이라고 하기에는 과하게 좋은 원단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
“어떤 연유로 마을에 방문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기사는 정중하게 그들에게 물었다.
“넌 뭐냐?”
“……!!!”
건방진 꼬마의 말투에 기사의 이마에 있는 핏줄이 투둑 하고 튀어나왔지만…….
대항하기엔 병력이 부족했다.
“이 마을을 지배하는 토라 남작가에서 온 기사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은 소심한 복수랄까.
겨우 해적에게 이름을 밝힐 이유가 없다는 무시랄까.
“뭐야. 마을 사람들이 안 보이네.”
리안은 한 귀로 대충 듣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은혜를 내린 사람들인데…….”
리안의 표정이 조금 씁쓸해졌다.
그제야 뭔가 일이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 기사였다.
궁핍한 어촌 마을치고는 의외로 가진 돈이 좀 있다 싶었는데, 눈앞의 높아 보이는 꼬마와 관련이 된 것으로 보였다.
“그 전에 토라 남작가의 지배하에…….”
“닥쳐라. 남작가의 개 주제에 감히!!”
그때 꼬마의 뒤에 있던 노인이 으름장을 놓았다.
그 패기에 병사들이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쪽은 누구신지…….”
기사도 위축되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아트로네 백작이다. 여기 이 아이는 내 손자로 레온 백작이고.”
백작이 무려 둘씩이나.
자신이 모시는 토라 남작 선에선 해결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아트로네 백작은 아일리 섬의 전통 강자다.
“그리고 하나 빼놓았네요.”
“음?”
리안이 싱글 웃으며 부선장의 등을 툭쳤다.
그러자 부선장이 앞으로 나섰다.
“백성을 가짜 영주를 모시는 놈아. 나는 트라몰 남작이다.”
“트… 트라몰이라면!!”
기사는 순간 등에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매우 위험…….
슈욱!!
하다고 생각할 때 그의 시야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날았다고 하기엔 몸 아래가 가벼웠다.
저 아래 땅에는 자신의 몸뚱이가 천천히 쓰러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죽었구나.’
솟아오르던 머리가 땅으로 툭 떨어지고 세상이 암전되었다.
“기… 기사님!!!”
그를 따르던 행정관이 말을 더듬었지만, 그도 그 이후의 말을 잇지는 못했다.
“나는 바람돌이 리안이다!!!”
레이피어를 번개같이 뽑아 든 꼬마가 어느 순간 자신의 뒤에 서 있었다.
평범한 몸으로는 리안의 움직임을 쫓지 못했다.
타다다다당!
그 이후 들려오는 마총 소리.
리안의 뒤에 있던 해적들이 조준 사격을 했다.
으아아악!!
병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늦게 땅에 처박힌 것은 행정관이였다.
“호오! 리안아. 드디어 각성한 것이더냐?”
“흐흐흐. 어때요? 할아부지?”
“훌륭한 움직임이었다. 다만 끝까지 움직임을 컨트롤하거라. 너무 빨라서 조금 위태롭구나.”
“노력할게요.”
리안의 어린 시절.
아트로네 백작가는 꽤 많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아주 힘들게 마나 유저가 되었다.
신관까지 데려와 검사를 해 보았지만, 결과는 바닥 중의 바닥의 재능.
“그보다 마을 사람들이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부선장이 과거 트라몰, 지금은 토라라 불리는 영지를 되찾는 명분이 되기에 좋았다.
백성이 과거의 주인을 지지하는 것만큼 큰 명분이 또 어디에 있으랴.
“음?”
그때 산에서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이었다.
조금 특이한 것은 그들의 손에 죽은 병사들이 끌려오고 있었다.
“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레온 백작 각하!!”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리안의 앞에 죽은 병사들을 내려놓고는 바닥에 엎드렸다.
참고로 죽은 병사들 자체가 전리품이 될 수 있고. 그걸 리안에게 바친 것이다.
“오!! 살아들 계셨네요.”
“백작 각하께서 살려 주신 몸. 함부로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촌장이 조금 두려운 듯 몸을 떨었다.
아무리 자신들을 위협한 병사들이라고는 하나 공권력에 대항한 주민들.
이런 반항기가 심한 백성을 반기는 지배자는 없다.
“다행이네요. 그보다 마총에 당한 흔적들인데…….”
리안이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마을에 실력 좋은 사냥꾼이라도 있는 모양.
다만, 마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조금 달랐다.
‘미안하구나…….’
아마도 본보기로 병사들을 죽인 자만 처벌할지도.
“제… 제가 그랬습니다. 각하! 부디 마을 사람들은… 용서를.”
리안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소년이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으며 마총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