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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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은 레온 백작령의 귀족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협조하는 자는 기용하겠지만, 협조하지 않은 자는 앞으로 국물도 없을 거라고.
“흐햙. 햐아아~!”
그렇게 말한 리안은 레온 백작령에 없었다.
이미 루데악 백작령으로 몰래 침투해 열심히 걷는 중.
“꼬맹이. 평소 앉아만 있으니 그렇게 체력이 없는 거다.”
부선장이 힘들어하는 리안을 보고 약 올렸다.
“아니. 우리 우리 배에서 나만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세요!!”
리안 스스로도 재능은 더럽게 없지만, 조금이라도 수련을 해서 몸속의 마나를 늘리고 싶었다.
그런데, 어린 몸으로 조타수를 맡아 조종을 하고 나면, 쉬는 시간에는 퍼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련이고 뭐고 할 여력이 거의 없는 거다.
“그러니까 좀 업어 주세요~~!! 네에~? 우리 듬직한 부선장 아저씨.”
“거참. 목마를 타지 않겠다고 약조하면 태워 주지.”
“목까지도 기어 올라갈 힘이 없다구요!!”
“에휴~ 내가 어쩌다 보모가 되어 가지고.”
부선장은 리안에게 등을 내어 줬…….
“이랴~ 가자~!!! 나를 따르라.”
지만, 결국엔 기어이 목으로 기어 올라가 외쳤다.
그걸 본 선원들은 그걸 또 속느냐며 깔깔 웃어 댔다.
사실 부선장도 이리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강행군에 지친 부하들을 웃겨 주기 위해서였다.
단거리 달리기라면 몰라도 이런 장거리 행군은 처음이었다.
* * *
고잉미샤호가 움직였다.
천천히 루데악을 향했는데, 그 뒤로 레온 백작령의 대규모 병력이 뒤따랐다.
“거참. 참말로 크구만.”
“타 보면 훨씬 더 크다니까요. 제가 수도로 갈 때 저걸 타고서…….”
“그보다 이번에는 왜 안 태워 준대?”
“보급 물자를 실었잖아요. 덕분에 우리도 가볍게 가는 거고.”
천 명에 가까운 병력이 움직이는 데도 수레가 얼마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병사들의 짐이 늘어야 정상인데 그들도 가벼워 보인다.
고잉미샤호가 보급품을 잔뜩 싣고 있었기 때문.
“그 말을 들으니 참말로 편하구만.”
“그렇다니까요. 제가 계승 전쟁 때 참가해 봐서 알아요.”
청년 하나가 같은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장정들에게 침을 튀기며 떠들어 댔다.
계승 전쟁 때 징집되었다가 리안의 병력으로 곧장 흡수된 자였다.
이후 추가로 징집이 되었는데, 자기 동네 사람을 만나 반가워 보인다.
“그보다 큰일인데…….”
“아저씨는 아까 전부터 울상이던데…….”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어.”
“그게 뭔데요?!”
중년의 남성의 말에 다들 호기심을 가졌다.
“루데악 영지의 마노 요새에 절대로 가지 말라고. 거기를 공격하러 간 사람의 절반은 죽는다고.”
“에이. 우리 백작님이 생각도 없이 쳐들어가겠어요?”
“모르지. 난 걱정뿐이야.”
이런 이야기는 루데악 근처의 영지들에 꽤 많이 퍼져 있었다.
브루타뉴 공국 이전 시절 전쟁이 활발할 때의 이야기가 아직도 전해진 것.
사실 이 절반은 루데악 영지에서 퍼뜨린 것이기도 했다.
“거기!! 조용히 안 해?!! 재수 없게 말이야!”
“죄… 죄송합니다. 훈작님!”
병력을 이끄는 지휘관 격인 훈작이 사기가 떨어질까 크게 나무랐다.
훈작은 영주의 아래 개념으로 조금 큰 마을을 다스리는 준귀족이었다.
대개는 기사 계급이었는데, 일부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젠장! 가뜩이나 불안한데…….’
사실 징집병들뿐 아니라 귀족들도 불안에 떨었다.
그렇다고 협조를 하지 않자니 리안의 보복이 두려웠다.
결국 자신의 사비까지 탈탈 털어 무구를 구입해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정병들을 긁어모았다.
일부 돈이 없거나 소속도 없이 징집된 자들은 농기구를 그대로 들고 나온 자들도 있었다.
‘젠장. 헛돈을 쓴 것도 아까워 미치겠네.’
훈작은 출발하기 전 땅을 치고 후회했다.
없어 보이지 않게 무기를 지급했건만, 출정을 하기 직전 무구가 부실한 자들은 보급품을 지급해 줬다.
‘이 전쟁에 진심인 거야.’
사실 영주가 무기를 지급해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농노가 아닌 평민 집안은 보통 차남이 징집되는데, 징집 명령이 떨어지면 집안에 대대로 보관 중인 무기를 꺼내 준다.
물론 무구가 없는 경우는 뭐라도 팔아서 마련해 주고.
그런데, 영주가 직접 무기까지 지급했단 말은 제대로 밀어붙이겠단 말이었다.
아예 행군 중에 군사 훈련까지 하고 있었다.
덕분에 행군 속도는 늦춰졌지만.
‘불안해…….’
결코 중간에 물러서지 않을 생각인 것이다.
이렇게나 준비한 걸 봐선 마노 요새를 점령할 각오인 것으로 보였다.
‘젠장. 소문이 진짜가 아니길 바라야지.’
마노 요새는 브루타뉴 공국에서도 악명 높은 곳이다.
훈작쯤 되는 위치면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 * *
전승이 끊어지지 않게 관리하는 소문의 원산지인 루대악 백작령.
그곳을 다스리는 백작은 태평했다.
“그래. 청야전술은 제대로 실행했겠지?”
“그렇습니다. 백작님. 그런데… 이런 작전을 펼쳐도 되는 것입니까?”
루데악 백작령의 수도는 영토의 중심부에 있었고. 레온군이 오는 방면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보통은 공격군이 병력을 조금씩 분산시켜 현지 보급(약탈)을 하면서 전진하는데, 이 작전 때문에 건질 것이 없을 것이다.
이로 인해 곧장 마노 요새에 집결할 것이다.
“방어를 하다가 한 번에 쓸어 버려야 해. 어정쩡하게 도시나 성을 점령하게 두면 안 된단 말이지.”
현지 조달이 안 되니 점령도 할 수 없다.
그러려면 레온 영지에서 직접 보급을 해 올 수밖에 없는데, 보급만으로 점령지를 관리하려면 힘들다.
거기다가 백성들까지 모조리 비운 상태.
요새나 성을 관리하기 위해선 병사만 가지고 안된다.
필히 백성을 동원해야 했다.
“첩보에 따르면 철갑 부유선에 보급품을…….”
“그래 봐야 보름 치지. 그 안에 마노 요새를 점령하지 못한다면, 저놈들이 철수하는 길은 악몽이 될 것이야.”
그보다 문제가 되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신형 철갑선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부유선이 떠다니는 요새란 말이 있지만, 진짜 요새에 비빌 수는 없다.
문제는 상대의 부유선이 목선이 아닌 철갑선이라는 것.
“크하하. 그것만큼은 걱정할 것 없어.”
루데악 영주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 요새는 고대 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백작가에만 은밀히 전해져 오는 비밀이 있었다.
“그런데… 피난민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냥. 대충 천막이나 쳐서 지내라고 해. 조만간 집으로 돌려보내 준다고 하고. 흐하하하.”
전쟁에 무조건 승리한다고 믿는 루데악 영주였다.
불만이 많으면 전쟁이 끝나고 ‘적당히 빵이나 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레온 백작령을 집어삼키지는 못한다 해도.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전쟁 배상금을 받을 수 있으니.
‘요즘 좀 궁했는데 잘되었어. 바다의 신께서 나를 보살펴 주시는구나.’
역시 인어를 키우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루데악 백작이었다.
* * *
리안은 해병대와 함께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낮은 눈에 띄니 밤에만 은밀히.
사락사락.
결국 루데악 영지를 열심히 가로질렀다.
“내 곱디고운 발이…….”
휴식 시간이 되자 아무렇게나 바닥에 주저앉은 리안이 울상을 지었다.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 행군 생각이 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람의 가호가 걸린 신발이라도 사 둘걸…….”
무려 백작이나 되는 귀족이 이렇게 며칠이나 주야장천 걸을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육지에선 당연히 오토호스나 오토마차를 타지.
“젠장. 네 것만 사지 말고 우리 것도 좀 사 다오.”
부선장도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해적 된 자로서 이렇게 걷는 것은 그와 해병대원들도 마찬가지.
아니. 해병대원들은 사정이 그나마 조금 나았다.
“흐잉~ 도련님… 전 여기까지인가 봐요. 저를 사뿐히 즈려밟고서…….”
“조금 있으면 편한 길이 나올 거야. 거기선 마포도 끌고 갈 수 있어.”
샤로트와 포병들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그들은 포병인 동시에 마총병이기도 했기에 개인 화기도 등에 메고 있는 상태.
소형만 가져온 데다가 해병대들이 밧줄을 걸어 함께 끌어 주기는 했지만, 그들은 마포 자체에 손을 대진 못했다.
마도구에는 만지는 것만으로도 마나가 한동안 잔류하는데, 다른 이의 손을 많이 타면 정확도가 낮아진다.
그 말은 길이 조금만 안 좋아도 포병들이 짊어져야 했다.
“흐엑! 정말이요~?”
“이런 식이라면 도착하기 전에 지치겠다.”
리안도 체력이 바닥이다.
마음 같아선 이들만 보내고 싶었지만, 길을 아는 것은 리안 본인뿐이었다.
그것도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고 약간의 느낌도 더해야 했다.
“찾았다!!”
드워프 동굴.
진짜로 드워프 동굴인지는 모르겠으나.
루데악 외각에서 수도를 감싼 분지 안까지 이어지는 작은 터널.
다시 말해 험준한 산맥을 넘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 구성으로 산맥은 절대로 못 넘지.’
그 전에 발각될 확률이 더 높았다.
전망이 좋은 곳에는 망루와 봉화가 있으니 어설프게 산맥을 넘으려 시도하다간 몰살당할 것이다.
아무리 리안의 부하들이 정예라 할지라도 병력도 모자라고 지형도 몰랐기 때문.
애초에 산맥에 도착하기도 전에 소규모 정찰대에게 발각당할 확률도 있었다.
아직은 외각이라 괜찮지만, 조금만 더 루데악 영지 깊이 들어가면 위험하다.
“저런 후진 마을에 그런 통로가 있다고?”
부선장은 저 멀리 마을을 보며 말했다.
“고대에 지어진 시설이니까요.”
게임 중반쯤 발견되는데 플레이어가 개입하면 초반에도 이용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드워프 동굴이라 이름 붙였는데, 후반부에 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진 바로는 그냥 단순히 고대의 수로였다.
‘루데악 영지는 거대한 워터파크였고.’
리안이 추측하기로 고대는 현대보다 훨씬 발달한 문명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백작령의 수도와 부근 직할지의 넓이는 현대의 도시 면적과 비슷하니.
‘내가 살던 세계도 단순히 물놀이를 위해서…….’
100평방킬로미터가 넘는 지역을 호수로 만드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마을에 들어가도 되는 거야?”
“일단 사람이 있나 없나 확인해 봐야겠지만, 아마도 비어 있을 거예요.”
리안은 현 루데악 백작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
요새만 믿고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정말 싹 비웠다고?!”
“말로 기마대를 만들지 않는 시대라 다행이죠.”
만약 그랬다면, 주변의 초목까지 싹 다 불태웠을 것이다.
“그럼 저기 탄 흔적들이…….”
“주민들이 피난 갈 때 미처 가지고 가지 못한 것들을 모아서 태운 거겠죠.”
“젠장. 빈집을 털 기회라 생각했는데!”
“직업 정신이 투철하네요.”
어차피 들고 가지 않아도 이들에겐 성에 차지 않을 거다.
그저 가난한 작은 마을일 뿐이니.
“그보다 그런 통로가 어디에 있단 말이야?”
아무리 봐도 이런 마을에 수십 킬로에 달하는 지하 통로의 입구가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우물 아래예요.”
“응?!”
원래는 정상적인 입구가 있었겠지만, 세월이 지나며 사라졌다.
“정확히는 입구도 아니죠.”
수로는 수맥을 지나갔고. 때마침 우물이 근처에 파였을 뿐.
“잘생긴 토우기슈끼 럽 아저씨. 한 방 먹여 줘요.”
“으잉? 우물로 내려가는 거 아니었어?”
“진짜 입구가 아니라니까요.”
“뭐. 맡겨만 줘.”
포병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굳이 마포를 들고 온 이유 중 하나가 저 우물 때문도 있었다.
* * *
퍼버버벙!!!
마노 요새에 도착한 고잉미샤호가 마포를 뿜었다.
당연히 산맥 중턱에 있는 마노 요새에는 닿지 않았다.
“도대체 맞지도 않는 거 왜 쏘는 거야?”
“몰라. 선장이 하루에 한 번씩 쏘라던데?”
고잉미샤호의 모든 포병들이 리안을 따라간 것은 아니었다.
이걸 위해 소수의 포병들이 남았다.
“포를 쐈으니 이제 음악 감상 시간이군.”
“도대체 선장은 무슨 생각인 건지…….”
“모르지. 지금까지 한 일들을 보면 저 요새도 조만간 함락당하겠지.”
“에잇. 모르겠다. 그냥 노래나 듣자.”
하루에 한 번 포를 쏘고 나면 흐리아 민이 갑판으로 나가 공연을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와아아아~~!]
속 시원한 샤우팅!
그녀의 뒤로 빛무리가 마구마구 퍼져 나갔다.
연출자는 전쟁 신의 사제 세이나가 맡았다.
와아아아아!!!
레온 군은 공연으로 모두가 들떠 있었다.
처음엔 뭔 저런 괴상한 음악이 다 있나 싶었는데, 계속 듣다 보니 중독성이 있었다.
이 짧은 공연이 끝나고 나면 훈련이 있을 예정.
한편.
이 광경을 요새에서 내려다보는 루데악 백작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저놈들 언제 쳐들어오는 거야?!”
보름 중 절반이 훌쩍 넘어 거의 10일이 다 되어 갔다.
이 미친 짓거리를 계속 지켜봐야 한다니 콩팥이 갑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