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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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두 신에게 축복을 받은 데다가 그의 부하들의 면면이 하나같이 위용은 대단했다.
멀리서 지켜볼 때와는 달리 대전사들이 주는 숨 막히는 압박감은 피부로 느껴질 정도.
샤락샤락.
그들중 유일하게 각성자가 아닌 인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전 백작 부인이 리안의 바로 뒤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저 여우 같은 년이!!’
전 백작 후처이자 여섯째 아들의 어머니인 마스쥬는 이빨을 갈았다.
함께 계승 전쟁을 벌인 주제에 승자처럼 굴고 있는 것이 얄미웠다.
‘뭐야?’
케네이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예전 같았으면 허공에서 불꽃이 튀었겠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도 없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되었나 보네. 쯧쯧.’
그렇게 시선을 돌리려던 찰나.
“오오. 내 동생?”
리안이 걸음을 멈추고 막내 여동생의 앞에 섰다.
“귀여워라!!”
그러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흐잉?!”
놀란 막내는 급히 자신의 어미 뒤로 숨었다.
아직 어렸고 리안과 교류가 거의 없었기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
“나탈리아. 오빠가 귀여워해 주는 거란다. 그렇게 피하면 못 써.”
잔뜩 긴장하던 마스쥬의 얼굴이 활짝 만개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리안이 여동생을 귀여워해 준다면 한시름 놓았다.
아무리 영향력 있는 측근이라 할지라도 리안의 의지를 쉽게 꺾지 못할 테니.
“그래! 나탈리아!!! 아. 미안해.”
갑자기 리안의 억양이 강해진 터라 나탈리아는 더욱더 어미의 뒤에서 나올 줄 몰랐다.
‘이 녀석하고는 잘 지내야 하는데… 젠장.’
레온 백작의 핏줄 중 유일하게 쓸만한 녀석이다.
가끔 그녀가 여백작에 오르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는데, 상당한 운영 능력을 지니고 있다.
다른 건 그다지 볼 게 없지만, 영지 관리력과 성품이 선하다.
선하다는 것은 공감 능력이 뛰어난 편이랄까.
‘이 녀석이 레온 백작령을 맡아 주면 든든할 텐데 말이야.’
리안의 테크트리는 전쟁 군주가 될 수밖에 없다.
수도는 항상 바뀌겠지만, 실질적인 수도는 레온 백작령이 될 것이고 믿을 만한 사람을 책임자로 앉혀 놓아야 한다.
물론 지금은 꼬꼬마일 뿐인 여자아이지만.
“애가 낯가림이 심합니다. 송구합니다. 백작 각하.”
“각하란 호칭은 생략해도 괜찮습니다. 둘째 어머니.”
다른 부인들이 죽고 케네이나와 마스쥬만 남은 상태.
핏줄이 섞이지는 않았지만, 둘 다 리안에게는 어머니다.
“앞으로는 큰어머니와 작은어머니로 모시겠습니다.”
둘 모두 리안의 어머니보다 서열이 아래였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 것이 딱히 핍박을 받은 기억이 없기 때문.
“고마워요. 백작.”
“가족끼리 잘 지내야지요. 특히 나탈리아에게 기대가 큽니다.”
리안은 작은어머니의 뒤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나탈리아를 향해 웃었다.
어찌 보면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우리 동생은 뭘 좋아할까나.”
리안은 쪼그려 앉아 나탈리아에게 물었다.
“애는. 오빠가 묻는데 어서 답해야지.”
“…돈!!”
역시 관리력 잠재력이 A급답게 어릴 때부터 돈을 밝혔다.
“우리 나탈리아는 돈이 왜 좋을까?”
“파파가. 돈만 있으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했쪄.”
아마 저 모두는 자신의 영향력에 있는 영지민들을 포함한 것일 터.
“기특하구나. 그럼 선물을 줘야지. 세바스 아저씨.”
리안이 뒤로 손을 내밀자.
“네. 각하!”
세바스는 곧장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리안의 손 위에 동전들을 올려놓았다.
다만, 표정이 그렇게 좋지 않아 보였는데, 최근 들어 리안이 돈을 펑펑 쓰고 있어서이다.
“자. 오빠가 주는 선물이야.”
“쥔짜. 나 주는 거야?”
“그럼~!”
리안이 건넨 것은 무려 120페니의 가치가 있는 금화 10개였다.
가장 저렴한 생활용 오토호스의 가격이 1,200페니 정도였으니 코흘리개가 받기에는 큰 선물이었다.
“어서. 오빠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고마웡. 오뽜~!”
“으이구. 귀여워라.”
“힝~”
돈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온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자 놀라서 다시 후다닥 자신의 어미로 숨었다.
“백작님. 귀빈들이 기다린답니다.”
그때 큰어머니(케네이나)가 살짝 귀띔해 줬다.
그러고 보니 귀빈들을 너무 방치했다.
솔직히 리안에게 큰 의미가 없는 자들이었지만.
“아. 이거 실례했네요.”
이번 전쟁에서만큼은 저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름 이 땅에서 영향력을 가진 자들이니.
“오랜만에 동생과 만난 터라 정신을 놓고 있었네요.”
리안이 살짝 고개를 숙이자 귀빈들도 급히 고개를 숙였다.
감히 지금의 리안에게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을 만한 자는 없었다.
리안의 뒤를 지키고 있는 부선장이 무서워서라도.
저벅저벅.
가볍게 고개를 숙였던 리안은 홀의 중심부로 짧은 다리를 놀렸다.
그러자 부하들도 리안을 따라 움직인다.
파티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
이 자리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스릉!
리안은 곧장 성검을 뽑아 식탁에 내리꽂았다.
팍!!
레이피어가 얇은 검신을 가졌지만, 제법 무게가 나갔다.
어린아이의 몸이지만, 그래도 마나 유저다.
티이잉~!
손잡이에서 손을 떼자 검이 울린다.
“오늘은 이 몸이 정식으로 백작위를 계승받은 뜻깊은 자리지만, 마냥 기쁘게 즐길 수만은 없습니다. 왜인지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귀빈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리안이 선전 포고를 했고 총동원령을 내렸으니.
이제 곧 영지전이 벌어질 것인데, 하하호호 웃으며 먹고 마시고 즐길 수만은 없었다.
“…….”
연회장은 고요해졌다.
다들 숨소리를 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럴 것이 리안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고 뒤에 있던 부하들이 살기를 펄펄 풍겼다.
‘젠장. 상전인 어린아이가 가장 무섭다더니 진짜군.’
다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가진 권한이 만만치 않다.
“레온 백작령의 권력 공백을 틈타 승냥이 같은 루데악 백작이 내 순진하고 착한 둘째 동생을 꼬드겨 계승 전쟁을 벌이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절대 용서할 생각 없습니다.”
“콜록콜록!!”
그때 누군가 기침을 했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부선장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연회장에 들어오기 전 리안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라고 명령을 받았기에.
“크헥! 그게 아니오라! 백작 각하를 지지합니다!”
기침을 했던 하급 귀족이 놀라선 급히 소리쳤다.
“저… 저도 지지합니다!”
“엄연히 적법한 계승자가 있음에도 군사 지원까지 한 것은 명백한 내정 간섭입니다.”
“맞습니다. 이대로 넘어가면 우리 레온 백작령의 위신이…….”
그걸 시작으로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기침을 했던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딱히 이뻐서가 아니라 여기서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간 나중에 자신도 위험하기 때문.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이니 기쁩니다. 내일부터 최대한 협조를 해 주리라 믿습니다. 자자. 그러니 다들 딱딱하게 있지들 마시고 오늘만큼은 마시고 조집시다.”
말투가 완전 애늙은이 같았다.
리안은 전생(?)의 직장 상사가 하던 말투를 따라 해 봤다.
“아직 잔을 채우지 않은 사람은 뭡니까?!”
특유의 거만하고 강압적인 말투에 다들 급히 잔을 채우느라 바빴다.
“자! 조지자!”
“조… 조지자!!!”
리안이 우유 잔을 높게 들어 외치니 다들 술잔을 높이 들었다.
“캬~~ 이 맛이지.”
리안이 오늘 짠 싱싱한 우유를 들이켰고 다들 따라서 잔을 비웠다.
“흐리아 민!”
“네. 백작님!”
“풍악을 울려라~!”
“알겠습니다! 나인데빌! 출격합니닷!”
리안이 외치자 그녀는 몇몇 선원들과 눈빛 교환을 한 뒤 악기를 켜기 시작했다.
“끄꺄아아아아아아~~~~!”
곧장 마이크 마도구에 대고 힘차게 고함을 지르는 흐리아 민.
쟌쟌쟌쟝~!!
동시에 개량된 마법 악기들이 거친 소리를 내며 울려 퍼졌다.
“흐엇!! 뭐야.”
“깜짝이야.”
“이건… 무슨…….”
귀빈들은 화들짝 놀랐다.
“다들 소리 질러~~!”
흐리아 민이 소리쳤지만.
“……!?”
귀빈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리안이 나섰다.
“뭣들 해요!! 소리 질러~~!”
“와아아아아~~”
귀빈들은 어쩔 수 없이 어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것도 잠시.
징지이징~쟈쟈쟝~!!쟝!
거친 악기 소리와 리안의 강압적인 압력에 어느 순간 귀빈들은 동화되기 시작했다.
리안은 돌아다니며 술을 따라 줬고.
귀빈들은 감히 버리지 못하고 벌컥벌컥 마셔댔다.
“다시 한번 소리 쥘러~~!!”
“우와와왓왓!!”
술이 들어가자 정신없는 음악에 다들 정신이 없어졌고.
점점 파티장은 난장판이 되어갔다.
* * *
다음 날이 되자 궁전은 좀비들이 점거를 했다.
다들 밤늦게까지 마시다 보니 파티장에서 그대로 뻗어 자는 이들이 대부분.
그야말로 광란의 파티였다.
“의관을 정제하시고 저녁 회의에 참석해 주십시오!!”
고용인들이 돌아다니며 귀빈을 한 명, 한 명 챙겼다.
억지로 일어난 이들은 퀭한 눈으로 속을 풀거나 뒷간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는 동안 한나절은 금방 지나갔다.
탕탕!!
리안은 탁자를 두들겼다.
“다들 정신들 차리세요!”
어제까지 파티 홀로 쓰던 곳을 말끔히 치우고 회의장으로 만들었다.
궁전이 워낙 작다 보니 다수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장소가 모자랐기 때문.
“죄… 죄송합니다. 각하!”
아직 숙취로 인해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정신력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중.
“재상이 죄송할 건 없지. 그래서 서류는 완성되었나?”
“시간을 더 주셔서 다듬을 시간이 있었습니다.”
“배포해 줘.”
서류들은 즉각 귀빈들에게 나누어졌다.
그걸 본 이들은 숙취도 한 번에 날아가 버렸다.
“이…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서류에 적힌 것은 보름 만에 전쟁을 끝낸다는 시나리오.
거기에 맞춰 보급 물자나 징집병의 행군 루트가 기록되어 있었다.
“어차피 마노 요새만 넘으면 끝이야. 루데악 백작령의 궁전은 허허벌판에 있으니.”
루데악 백작령의 수도는 분지의 중심에 있다.
그 분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마노 요새.
물론 요새를 돌아가는 샛길도 있었지만, 길이 좁고 매복에 취약했다.
“요새를 함락할 방법이 없습니다. 각하!”
“왜 없나요. 나에게는 부유선이 있는데. 마포만 30문입니다.”
리안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마노 요새에도 마포가 있습니다. 아무리 부유선이 이동하는 요새라 하더라도… 요새의 마포는 공략하기가…….”
“맞습니다. 함락한다 하더라도. 피해가 막심할 것입니다.”
결국엔 병력을 밀어 넣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피해가 있을 것이고. 전쟁에 승리한다 해도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총동원령을 내린 이상 일반 백성들이 대규모로 동원될 것이다.
인구 특히 정남의 숫자는 곧 영지의 힘이다.
“다들 어제 내게 뭐라 말했습니까?!”
“…….”
리안이 호통을 쳤다.
“실망입니다.”
“그게 아니오라…….”
“반대하는 자는 나가세요. 앞으로 평생 찾을 일이 없을 테니!”
리안이 강하게 말하자 다들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실컷 까불어라. 네 힘이 약해지면 우리도 나쁘지 않지.’
이런 생각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
영주의 힘이 너무 강하면, 하급 귀족들이 허리를 펴기가 힘드니까.
“자. 그럼. 다들 협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여기 계획에 맞춰 움직여 주시길.”
리안은 빈정이 상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임시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도대체… 무슨 수로 출정 후 보름 만에 전쟁을 끝낸다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피해가 더 커질 텐데…….”
“아직 어려서 모르는 걸까…….”
“그러기에는 보좌하는 인물들이 만만치 않던데…….”
아무리 부유선이라 할지라도 요새를 함락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형의 이점을 잘 살린 곳이라면 더더욱.
‘이 사실을 루데악 백작님께 어서 알려야겠다. 후후!’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그중 일부는 미소를 숨겼다.
이웃 영지인 만큼 정보를 대가로 돈을 받아 온 자들도 있는 것이다.
* * *
이 소식은 당연히 루데악 백작의 귀에도 들어갔다.
“백작님!! 급보입니다.”
“왜. 벌써 쳐들어오기라도 한대? 그냥 외곽에 있는 땅들이나 약탈하고 돌아가라고 해.”
어차피 수도만 지켜 내며 시간을 벌면, 상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점령한다 해도 기회를 봐서 재탈환하면 그만.
“그게 아니오라. 레온 백작이 주요 인사들을 모아 놓고 총회의를 했답니다.”
“음? 그래? 그래서 뭐라는 데?”
“보름 만에 우리 마노 요새를 돌파하겠다고… 모든 작전을 거기에 맞췄답니다.”
“크하하하하!!! 미쳤군. 미쳤어. 어린놈이 백작위에 오르더니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아주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막아 내고 레온 백작령을 먹어 버리는 것이 좋겠어.”
초췌한 얼굴이었던 루데악 백작의 얼굴이 활짝 폈다.
마노 요새는 대대로 악명 높은 요새다.
공격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강요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