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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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이 가짜라는 사실에 기사들은 물론 일반 병사들까지도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계승 전쟁은 관련자만 참여할 수 있는데, 지금 레온 백작령은 계승 전쟁 중이다.
다시 말해 장남을 따른 것만으로도 그들 자체가 괴뢰군 또는 반란군이 되어 버린 것이다.
척척척!!!
공포심에 절로 무릎이 꺾였다.
리안은 부단장의 죄만 물었지 그들의 죄를 물은 것은 아니다.
“일단 저 둘을 데려가서 참하라. 그리고 오늘부로 케리시안 남작령은 해체한다. 그것으로 너희의 죄를 사하겠다.”
딱히 죄를 물을 생각도 없었고 물을 수도 없었다.
이들을 모두 처벌한다면, 백작령 자체의 전력이 깎이는 것은 물론이고 사기까지 저하된다.
거기에 더해 평판까지도 나빠지겠지.
“각하!! 백작 각하!! 살려 주십시오.”
그때 요새에서 귀부인이 뛰쳐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리안 또래의 아이가 딸려 있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라고 물었지만, 누군지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인 불륜녀였지.
“저는 케리시안 남작 부인입니다. 각하!”
“네 남편은 어찌하고 홀로 왔는가?”
리안은 삐딱하게 서서 물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불충하게도…….”
“아니. 이 앞의 불순한 녀석의 진짜 아비 말이다. 참으로 어이없군. 샤로트!”
“네. 도련님!”
“해병대를 데리고 요새에 가서 끌고 와. 염소수염을 한 놈이다.”
“네. 도련님.”
리안이 명령을 내리자 샤로트가 일부 병력을 끌고 성으로 쳐들어갔다.
“너흰 뭐 하냐? 안 가고? 얼굴을 알 것 아니냐. 놓친다면, 기사 작위도 박탈당할 줄 알아라.”
리안이 외치자 기사들이 우르르 일어나 요새로 달렸다.
기사 작위를 박탈당하면, 다른 영지에 가서 기사 노릇을 하기 힘들어진다.
어찌어찌 새 주인을 모신다 하더라도 구설수에 오르기 딱 좋다.
“이거 놔라!! 내가 누군 줄 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장이 줄에 묶여 끌려 왔다.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도 났다.
“으으으~ 도련님. 화장실로 도주하는 걸 겨우 잡았어영. 흐에엥.”
마법이 발달한 세계라 수세식 화장실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다만, 소규모 요새와 같은 군사 시설은 당연히 푸세식이었다.
“으휴. 누가 좀 씻겨요!”
리안이 말하자 등 뒤 두 곳에서 물대포가 날아갔다.
첨벙!!
부선장 외에 해병대장과 요리장이 물 속성 대전사였다.
그걸 본 케리시안의 기사들이 놀라워했다.
부선장과 샤로트가 대전사인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둘이나 더 있었던 것이다.
“세바스 아저씨!”
“네. 명령하실 것이라도.”
리안이 부르자 세바스가 정중히 옆으로 와서 섰다.
“일단 세 놈을 매달아요.”
“조금 어수선하긴 합니다.”
세바스가 두 손으로 허공을 쓸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덩굴이 쑥쑥 자라더니 장남과 죽어 가는 부단장 그리고 집사장이 공중에 매달렸다.
마치 마법사처럼 보였지만, 그는 땅 속성 중에서도 식물 계열이었다.
-대전사만 여섯이었어?!!
세바스의 등장으로 기사들이 술렁거렸다.
자신들의 돌격이 성공해서 무사히 갑판에 안착했다 하더라도…….
-전멸이었어…….
-백작 각하의 자비였구나.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이미 자비는 처음 포격 때 보여 줬었다.
“백작 각하! 용서해 주십시오. 저 아이는 양자입니다! 차남이 자랄 때까지 후계자 자리를 잠시 맡아 두기 위해…….”
갑자기 말을 바꾸는 남작 부인.
“닥쳐라! 감히 전쟁의 신이신 탱글 님을 모독하는 거더냐!!”
리안이 앳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어린아이의 모습이었지만, 권위 때문인지 모두 움찔했다.
“그 아이가 인정된 양자였다면, 붉은색이 아니라 다른 흰색이 나왔을 것이다.”
흰색은 대리인이라는 표시다.
핏줄이 섞이지 않아도 누군가의 부탁을 받았다면, 그것도 인정이 된다.
가령. 영주가 죽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권리를 맡기거나 넘겼다면 그것을 감안해서 권능이 발한다.
다른 건 다 속여도 하늘은 못 속인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나 보다.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 그런… 죄송합니다. 백작 각하. 맞습니다. 양자가 아니라 가짜로 세운 허수아비입니다. 여기 제 옆에 있는 아이는 진짜로 케리시안 가의 후계자입니다. 확인을 해 보시면…….”
둘째는 진짜로 케리시안 남작의 아이가 맞다.
그런데, 저 아이도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이 함정이다.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스토리대로라면 이 년 뒤쯤 장남의 목에 포크를 꽂아 죽여 버린다.
그것도 밥을 먹고 식당을 나가다 기습적으로.
그 뒤로도 엽기적인 행각을 많이 벌였는데…….
아마도 분노 조절 장애이거나 사이코패스 둘 중 하나다.
“지금 나를 우롱하는 것인가? 세바스. 이년도 매달아.”
“알겠습니다.”
스사사사~!
“꺄아아악!!”
바닥에서 자란 넝쿨이 남작 부인도 거꾸로 매달아 버렸다.
그 와중에 둘째는 당황하지 않고 그 광경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사이코패스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후… 세 명 모두 목을 잘라서 광장에 걸어라. 한 달간 누구라도 손을 대는 자가 있다면 처벌할 것이다. 거기!”
리안이 대기사 하나를 지목하자.
“저… 저 말씀이십니까?! 각하.”
“그래. 네가 가장 높아 보이는데 맞나?”
“맞습니다. 각하!”
브루타뉴 공국에서 스타트한 적이 별로 없어서 이름이 가물가물한데, 대충 부단장 다음으로 높은 녀석이란 건 안다.
특이하게도 바람 속성이니.
“그래. 네가 책임지고 처리해라. 그리고 사람을 풀어서 각 마을의 촌장을 불러오도록. 최대한 빨리.”
“알겠습니다. 각하!! 그런데…….”
“뭐가 또 남았나?”
“둘째 도련님은 어떻게…….”
그는 말을 얼버무렸다.
만약 둘째가 작위를 잇게 된다면, 자신의 어머니의 목을 친 자신에게 원한을 가지지 않겠는가.
“내가 방금 뭐라 했나. 케리시안 남작가를 해체한다고 했다.”
“그 말씀은…….”
“이곳은 백작가의 직할령으로 쓸 것이다. 그걸 알리기 위해 촌장들을 불러오라고 한 것이고.”
“아…….”
“그 아이는 요새의 감옥에 가둬라. 어려서 죽이기 찝찝하니.”
요새에 가둬 놓으면 오래 가지 않아 죽임을 당할 것이다.
원한을 산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니.
듣기로는 어릴 때부터 재미로 하인이나 병사를 죽였다고 했다.
미친놈이 권력을 가지면 안 되는 이유다.
“알겠습니다. 각하!”
그렇게 리안은 고잉미샤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살려 주십시오! 각하. 제발… 저 아이는 진짜로 남작가의 핏줄이 맞습니다.”
남작 부인이 애원을 하자 리안이 고개만 살짝 돌렸다.
“아! 이걸 잊었네. 네 남편이… 아. 저기 있는 기둥서방 말고 진짜 남편 말이야. 그자가 어찌 죽었는지 아나?”
“……!!”
“나를 암살하려다 역으로 걸려서 죽었어. 이걸 목격한 자는 꽤 많고 말이야.”
원래 고잉미샤호에 타고 있던 해군들이 그 증인이었다.
물론 증언을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 그런…….”
“이러나저러나 반역이야. 아저씨.”
리안이 다시 고개를 돌리며 세바스를 부르자.
“끄으윽!! 끄응!!”
남작 부인의 입까지 줄기가 자라 재갈이 물렸다.
고잉미샤호로 걸어가는 길은 조용했다.
어느 순간부터 신음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남작가를 없애 버리면 여기 관리는 누가 해?”
옆에서 함께 걷던 부선장이 궁금한지 물었다.
“딱히 영주가 필요는 없어요. 우리가 산의 협곡을 따라와서 그렇지 쳐들어올 만한 곳이 딱히 없으니까요.”
웃기게도 기사단을 관리하는 영지가 가장 안전한 후방에 있었다.
“거기다 여긴 레온 백작령의 최대 곡창지 중에 하나예요. 뭐. 다른 나라의 곡창지에 비하면 부끄러울 정도지만.”
그런데 웃긴 것이 기근이 들면 여기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인구도 더럽게 늘지 않았고.
“농사만 짓는데, 영주가 왜 필요해요. 영주와 농노가 아니라 농민과 행정관만 있으면 되지.”
* * *
리안이 명령을 내리자 기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이고 나으리들. 여긴 어쩐 일로…….
명색이 기사 영지라 불리는 곳이었지만, 각지에 있는 마을에선 기사를 직접 보는 일이 적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을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농사만 지었기에.
-촌장 어디에 있느냐!!
-사람들을 거느리고 경작지에 나가 있습니다. 이제 곧 봄이 오니…….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가서 데리고… 아니다!
그들은 그럴 시간도 촉박했다.
리안이 명령했고 ‘언제까지.’라고 물으니 ‘최대한 빨리.’라 답했기 때문.
-아이고 나으리들!!!
기사를 발견한 촌장은 놀라 읍했지만.
-타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온지.
-백작께서 찾으신다. 그러니 잔말 말고 타거라.
각 마을로 흩어진 기사들. 대부분의 사정은 비슷했다.
그들은 오토호스에 촌장들을 태우고 달렸다.
평소라면 오토호스의 뒤에 평민인 촌장 따위를 태우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아직 평민이 되지 못한 촌장도 의외로 많았다.
-영주님 일가가 모두 죽었어!
-빌어먹을. 잘 죽었지. 씨바르 연놈들!
-젠장. 우리만 놔두고 요새로 피신하다니.
영주 저택이 있는 마을은 마을대로 난리였다.
광장에 걸린 목 때문이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저 거대한 부유선은 또 뭐고…….
-저렇게 큰 것이 움직이다니.
-촌놈 자식. 바다에 가면 저것보다 더 큰 것도 떠다닌다고!
본 마을 사람들의 상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영주와 그 가족들의 평판이 최악이어서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안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각하!! 각 마을의 촌장들 소집이 끝났습니다.”
“여기 본 마을 사람들도 광장으로 모으도록. 기사단장.”
“네에에?! 기사단장이라니요…….”
그 이름 모를 바람 속성의 대기사가 깜짝 놀랐다.
“그럼 밖에 있는 기사들을 누가 통솔할 거야?!”
“가… 감사합니다. 각하!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어. 그래. 잘해라.”
리안은 손을 까딱이며 축객령을 내렸다.
“그보다 이름이 뭐였더라…….”
여전히 기억나지 않았다.
워낙 무난한 놈이고 성격도 고만고만했던지라.
“뭐. 당장 내가 다스릴 것도 아니고. 그냥저냥 굴러만 가면 되니.”
당장 브루타뉴 공국에서 무력으로 뭔가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잠시 묵혀 놓아야 하는데, 굳이 등급이 높은 자를 기사단장으로 앉혀 놓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등급이 높은 자가 있으면 데려가서 레벨 업을 시켜야지 이런 데 처박아 놓으면 손해다.
등급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경험을 쌓느냐 못 쌓느냐에 따라 능력치가 달라진다.
물론 A급 정도부터는 송곳이 바지를 뚫듯 없던 경험도 만들어 알아서 쌓겠지만.
“자. 가 볼까나.”
리안은 복장을 적당히 점검하고 밖으로 나왔다.
의상이 별로 탐탁지 않았지만, 백작 부인의 권유로 어쩔 수가 없었다.
“잘 어울려. 역시 내 아들.”
“아부 안 하셔도 안 죽인다니까요. 가뜩이나 사람도 모자란데.”
“호호호. 고마워. 내가 잘 설득할게.”
“그. 작은어머니의 남동생은 고향으로 돌려보내세요. 군사적으로 그다지 재능이 없으니.”
데리고 있어 봐야 손실만 생긴다.
“그리고 제 동생 두 놈은 키워서 써야죠.”
팔다리 꺾어서 공작이나 어디 왕을 시키면 된다.
당연히 그곳의 실질적인 관리자는 리안의 측근을 앉혀야 하고.
“그 녀석들 참 복도 많아. 이렇게 능력 있는 형을 둬서 팔자를 펴는구나.”
“그 능력 있는 형을 누군가 죽이려 했지만 말이죠.”
“호호. 내가 그땐 살짝 미쳐서 그랬지.”
세뇌 때문인지 리안의 능력을 봐 버려서인지 딴생각 따위는 품지도 않았다.
그저 이 배의 다른 선원들처럼 하늘 보듯 했다.
“그보다 이 옷 꼭 입어야 해요?”
“딱히 권위를 차리고 싶지 않은 건 알겠지만, 그런 화려한 옷을 입어 줘야 약발이 잘 먹힌단다.”
정령 갑옷이 있다면 다 필요 없이 그것만 입어도 위엄이 살겠지만, 아쉽게도 리안은 각성을 하지 못했다.
‘조만간이야.’
신센롬 제국에서 가져온 식물만 키우면 된다.
거기에 마초와 해적 섬 근처의 죽은 바다에서 잡은 고기를 거름으로 하면…….
“그럼 가 볼까나.”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본 마을에는 대부분이 평민이었지만, 각지에 흩어진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농노였다.
“우리들의 대영주이신 리안 레온 백작 각하이시다!! 어서 오십시오 각하!!”
기사들이 도열해 있었고. 새롭게 임명한 기사단장이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나 원래부터 여기 있었거든.’
마을의 바로 옆에 배를 대 놓고선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당연히 리안은 놀았지만, 선원들은 열심히 저택을 털어 왔지만.
“음. 내가 너희들에게 전달할 것은 단 두 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