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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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로트가 모는 함선은 어느새 적 함대의 꽁무늬에 붙었다.
적들은 워낙 정신이 없는 터라 샤로트가 따라붙었는지 모르는 상태.
MNMN
샤로트의 눈앞에 지그재그로 경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가야 노란색 자금선에 닿을 수 있을지.
감정이 들떴지만, 이번만큼은 최대한 눌렀다.
“흣흣흣!!”
웃음을 참아 가는 그녀를 보는 해병대들의 눈에는 괴기스럽게 보였다.
이곳에서 싸움을 두려워하는 자는 없었지만, 샤로트의 웃음은 두려웠다.
“젠장… 끅!”
누군가 욕을 내뱉으려는 순간 배가 급가속하기 시작했다.
* * *
고잉미샤호는 백병전이 시작되었다.
조금 특이한 것이 있다면…….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다들 열심히 버텨 보죠.”
리안은 선교에 잠금을 걸어 놓고 통로로 걸어갔다.
적들이 침투하기 좋은 갑판 아래 통로에 물건을 쌓는 단원들이 보였다.
샤로트가 탄 배에 전투원들을 몰아주는 바람에 인원이 부족한 것.
쿠우웅! 쿠웅!! 쿵!!!
적선들이 고잉미샤호에 빈틈없이 붙였다.
찰캉. 찰캉.
머리 위 갑판 위로 적들이 뛰어 들어오는 진동이 느껴졌다.
“빨리빨리 움직여!!”
화포장이 통로까지 소형 마포를 끌고 와서 설치했다.
당연히 적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천으로 덮어 놓았다.
“적 선장을 찾아라!!!”
갑판 위는 물론 선교에도 사람이 없자 적들이 갑판 아래로 뛰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잉미샤호의 그동안 행태에 약이 단단히 오른 것이다.
“여기 있다!! 여기 적들이 모여있다.”
뭔가를 발견한 누군가 소리쳤고. 그 이후 벌 떼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리안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줬다.
“어서 와!”
그 이질적인 모습에 적들은 다시 나가려고 했다.
직감적으로 함정임을 눈치챈 것이다.
타다다당!!
포병들이 마총을 쐈다.
그들은 백병전이 벌어지면 기본적으로 마총을 사용했기 때문.
끄아아악!!
좁은 통로를 몰려오던 적들은 순식간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내려온 것이다.
가끔 통로에서 농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 해전은 워낙 정신이 없었다.
“비켜어어어!!”
그때 덩치 큰 사내가 철판을 들고 앞장섰다.
갑옷을 걸친 걸 보니 대전사로 보였다.
스윽.
리안이 대포를 덮고 있는 천을 당겼다.
그러자 통로의 불빛에 반짝이는 소형 마포가 등장했고.
펑!!!
철판째로 거한의 남자를 날려 버렸다.
대전사들은 마포를 쳐내거나 막을 능력이 있는 자들이지만, 이런 지근거리에서는 불가능했다.
“자자~! 이동!!”
마포까지 쏴 버렸으니 이제 이동할 차례다.
부선장이 있다지만, 처음부터 힘을 빼며 칼을 맞부딪히는 것은 좋지 않았다.
바리케이드가 설치 중인 곳은 아직 많이 남았다.
“꼬맹이 정말 버틸 수 있는 거야?”
한 층 아래로 내려가는 리안에게 부선장이 물었다.
“지금쯤이면 당황할 때가 되었는데…….”
“뭘 말이더냐?!”
“저들에게 중요한 게 털리고 있을 테니까요. 흐흐.”
* * *
오스 제국의 부제독은 들려오는 보고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사람이 몇 명인데 아직도 제압을 못 했더냐?!”
고잉미샤호의 움직임이 멈추고 아군이 올라탔을 때는 금방이라도 배를 접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5척이나 되는 배에서 전투원들이 밀어붙이고 있었다.
“배 내부에서 마포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해병대와 대전사 한 명이 전사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한단 말이더냐. 힘으로 밀어붙여. 언제부터 우리가 백병전에서 몸을 사렸더냐!”
오스 제국의 해적들은 우세한 쪽수 밀어붙이는 백병전이 특기였다.
적들이 아무리 정예라 해도 쉴 새 없이 몰아붙이면 결국에는 밀리게 되어 있다.
이것은 백병전의 정석.
‘내부가 철갑선이라 저런 농성이 가능하구나.’
저런 식으로 저항하는 적들은 꽤 되었다.
그러나 목선은 벽이 나무로 마포로 쏴서 뚫고 가거나 벽을 도끼로 찍으며 새로운 통로를 개척하는 것도 가능했다.
심지어는 바닥을 뚫고 아래로도 갈 수 있다.
그런 전략이 막힌 것이다.
“밀어붙여라!!”
부제독은 부하들을 강하게 몰아붙였지만, 마음은 조급했다.
그의 시선은 저 멀리 두 곳을 향했다.
“후… 발이 제대로 묶였다.”
그의 시선은 당연히 누나헬이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함대의 선발대가 무사히 도착해 구출해 내는 데는 성공했다.
문제는 다른 방향에서 몰려오는 이벨 왕국의 함선들이었다.
“부제독! 그냥 격침을 시키면 안 됩니까?!”
“적의 신형 전함이다. 오스 제국으로 가져가 연구해야 한다. 앞으로의 전쟁 양상이 바뀔 것이니 대비하지 못한다면 우리 오스 제국의 바다는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선교에 사람도 없는데 그냥 끌고 가면 되지?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두 가지의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선교의 조타석에 마법으로 암호를 걸어 놓았다.
“해독은 멀었던가?!”
“상대 마법사가 상당한 실력자입니다. 해제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거기다 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기관실에서 엔진을 강제로 꺼 버린다면, 운항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다만, 지금 당장에 엔진을 끄진 않았다.
한번 끄면 다시 점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퍼버버벙!! 펑!!
이벨 왕국의 함선들이 자리를 잡고 신나게 때리기 시작했다.
오스 제국의 함선들은 반격도 못 하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후… 그만 격침하고 퇴각해야 하나……?”
부제독이 한숨을 쉬며 포기하려던 찰라.
“부제독!!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기에 호들갑이더냐?!”
“자금선이 탈취당했습니다!!!”
“뭐?!!”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했던가?
이번 해전에서의 손실을 메꾸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자금선이었다.
누나헬은 그 누구도 믿지 못했기에 그동안 모은 재산을 항상 하나의 배에 싣고 다녔다.
“안 된다! 다시 탈취해야 한다.”
* * *
파사삭! 파삭!! 파사사삭!!
샤로트가 모는 배가 적선들을 지그재그로 이리 치고 저리 치며 황금색 배에 당도했다.
짧은 순간 배는 완전히 너덜너덜해졌다.
“돌겨어어억!! 나를 따르랏!!”
샤로트가 조종구를 놓고 선교를 박차고 나갔다.
해병대들은 어질어질한 정신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샤로트의 뒤를 따랐다.
꼬르르르~!
그들이 황금색 배에 올라타니 천천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이봐! 샤로트. 배가 침몰하는데?”
“어차피 이걸 뺏어 타고 갈 거예요!!”
해병대장 이염의 말에 샤로트가 리안에게 들었던 말을 내뱉었다.
그들은 해적들답게 빠르게 도선했다.
“막아라!! 절대 배를 빼앗겨선 안 된다.”
의외로 자금선의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누나헬이 진짜 믿을 수 있는 인원만 추려 놓은 것이다.
탕탕!! 챙! 퍼어억!!
순식간에 두 무리는 갑판 위에서 충돌했다.
의외로 순식간에 리안의 부하들에게 쓸려 나갔다.
누나헬의 부하들은 대부분 고향 사람들로 무력은 그리 높지 못했다.
그나마 대전사도 끼어 있었지만.
“저놈은 내가 맡을 테니 빨리 배나 뺏어!”
“맡길게요. 여유 있는 사람들은 엔진실부터 장악하세요!”
“알겠다!”
샤로트는 두 명의 인원만을 대동한 채 선교로 향했다.
“샤롯!! 문이 잠겼어!”
“비켜요옷!”
이 배는 고잉미샤호와 달리 목선이다.
그 말인즉슨!!
“간다아아아앗!”
그녀의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소형 마포에 뚫린다는 것이다.
콰아아앙!!!
순식간에 선교의 문은 박살 났고. 샤로트는 갑옷으로 갈아입은 뒤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스으으윽!!
그녀가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판 안으로 들어가요오옷!]
“젠장!! 물귀신이 되기 싫으면 빨리 들어가자.”
샤로트는 갑판을 살피고는 남은 사람이 없자 조타를 마구잡이로 돌리기 시작했다.
주변에 호위를 하던 배들은 정신을 차리고 접근했지만, 미치광이처럼 움직여 대는 자금선에 배를 대지 못했다.
호위선의 선장들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빌어먹을. 조타수 뭐 하는 거야?! 어서 배를 붙여!”
“자금선이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저 배는 군함이 아니라 상선으로 만들어진 배라…….”
내구력이 약하단 소리였다.
그렇다고 대포를 쏘지도 못한다.
“증원 요청을!! 기함에 이 소식을 알려라!”
* * *
안 그래도 개판이 오스 제국의 진형은 더욱 엉망이 되어 버렸다.
부제독은 이를 갈며 고잉미샤호를 격침 시키고 자금선을 되찾기 위해 움직이려고 했다.
그때 유유히 배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건 누구 배지?”
오스 제국의 양식이었다.
갤리선은 아니었고 정석적인 부유선이었지만, 오스 제국 특유의 건조 방식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부제독은 단번에 알아봤다.
다만, 깃발이 못 보던 모양이다.
“음?! 저건…….”
기억났다.
악명 높은 오스 제국의 해적은 맞으나 자신들 함대 소속이 아니다.
“잠깐…! 저놈들은 튀니스에 있어야 할 놈들인데…….”
그때 그 정체불명의 배에서 무언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그 모습을 본 부제독은 기겁을 했다.
“대… 대항인이 왜……!!”
사실 정체불명의 배는 흐리아 민이 조종하는 배였다.
튀니스에서 노예들이 탈취해 교황청으로 몰고 갔고. 리안이 접수한 그 배 말이다.
-흐리아 민. 넌 대기하고 있다가 이벨 왕국의 마스터를 구해서 데려와라.
-네에?! 제가 적들을 뚫고 갈 수 있을까요?
-배에 오스 제국 깃발이 있잖아. 처음에만 잘 피해 다니고. 포격 때문에 정신없을 테니 그때 섞이면 돼.
-아!!
리안의 지시대로 흐리아 민은 누나헬과 대항인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대항인을 태웠다.
누나헬이 자신의 함대를 불러들인 터라 자칫 대항인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 순간 흐리아 민의 배가 대항인을 태웠고. 그에게 외쳤다.
-명예 성기사님이 보내셨습니다!
대항인은 처음에 이교도들의 배라 의심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처음 고잉미샤호와 등장한 배임을 떠올랐다.
거기다가 리안이 성기사의 검을 맡겨 놓았기에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콰아아앙!!!
대항인은 단번에 기함으로 날아왔다.
“마… 마스터다!”
대항인을 본 적들은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몇몇 용맹한 오스 제국의 해병대가 달려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그가 등장하자 고잉미샤호의 선원들도 갑판 위로 올라와 그의 뒤를 받쳐 주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그는 곧장 기함의 선교로 쳐들어갔고.
퍼어어억!!
단숨에 오스 제국의 부제독을 죽였다.
여유가 있었다면 사로잡았겠지만, 기함 주변이라 생각보다 적의 숫자가 많았다.
적의 머리를 빨리 꺾지 않으면 정비해서 다시 달려들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부… 제독이 죽었다……!”
“도… 도망!”
적들의 사기가 단번에 떨어져 내렸다.
기함 주변의 배들이 도주를 시작하자 공포가 함대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미 누나헬이 탄 배는 전선을 이탈한 지 오래였다.
대항인과의 전투에서 약간의 부상을 입은 듯 보였다.
와아아아아!!!
이벨 왕국의 함선에서 포효소리가 들렸다.
이런 식으로 일방적인 승리를 쟁취할지 몰랐던 것이다.
끼걱. 끼걱.
적들이 정리되자 대항인이 리안에게로 걸어왔다.
“올라~~!”
그는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소문에서만 듣던 마스터 대항인을 뵙습니다. 저는 리안 레온 백작이라고 합니다.”
리안도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아 줬다.
“와우! 그대가 명예 성기사 리안 레온 백작이라고? 듣던 것보다 더 어린데? 대단해!”
아마도 여기까지 오는 길에 흐리아 민에게 대충이나마 호구 조사를 좀 한 모양이다.
“대항인께서 나서 주시지 않으셨다면, 위험할 뻔했습니다.”
“하하하! 아니야. 겸손은. 어차피 내가 아니었더라도 상관이 없었을 텐데?”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겠지만, 일이 꼬여 그를 데려오지 못했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리안은 이미 자금선 탈취를 명령했고. 언제 적들이 물러날지 타이밍을 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들이 후퇴할 타이밍에 다시 선교를 장악하고 포격전을 개시하면 되었다.
물론 사방이 적이라 제법 두들겨 맞았겠지만.
“약간은 도박이었습니다. 선교를 탈취해도 이전과 같이 피해를 안 입을 순 없었을 겁니다.”
거리와 속도가 있어야 리안도 기술을 쓸 수 있으니 말이다.
“거참. 이런 일을 저질러 놓고 자랑해도 모자랄 나이에 겸손이라니. 대단하군. 대단해.”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배도 자네 배인가?”
그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노란색 배를 보며 말했다.
“흐흐흐. 위험을 무릅쓴 보람이 있네요.”
“잠깐. 저 배는…….”
“맞습니다. ”
“설마 그대 혼자 저걸 다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오랜 시간 오스 제국의 해군과 싸워 온 그였기에 누나헬의 자금선에 대해서는 들었을 것이다.
분위기를 잡는 것이 탐이 안 난다면 거짓일 거다.
“우리가 남입니까?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