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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55화 (55/253)
  • <55화>

    리안은 놀라는 그녀를 진정시켰다.

    "놀라지 않아도 돼. 황자님은 지금 방 안에 편하게 계시니까. 다시 소개하지. 난 그분을 호위 중인 리안 레온 백작이야."

    "도대체……."

    마법 같은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닐 텐데?"

    "아…! 배에 타란 말씀은……."

    리안은 미소를 짓는다.

    "새장에서 꺼내 준단 말이지. 평생 갇혀서 노래하는 새로 살건 아니지? 새는 자유롭게 날아야 진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법이지."

    맞다 자고로 새와 '흐리아 민'은 날아야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SR급 재능을 가진 소녀 흐리아 민.

    그녀의 진짜 재능은 연주 따위가 아니다.

    물론 음악적 재능에 A급이 붙긴 하지만, 진짜배기는 바로 조타수다.

    타고난 균형 감각. 음악적 재능으로 인한 리듬감.

    창의적인 임기응변. 신이 내린 배포.

    물론 그녀보다 고평가되는 SSR급 조타수가 있기는 있지만, 가장 특색 있는 조타수를 꼽으라면 당연 흐리아 민이다.

    '내가 지금 당장 구할 수 있는 만족할 만한 조타수이고.'

    S급 이상 조타수 중 소속이 없는 사람은 드물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재야에 있는 캐릭터 중에 위치를 추정 가능한 사람은 눈앞의 소녀가 전부다.

    A급 몇 몇이 기억나긴 해도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그 반면 흐리아 민은.

    때마침 네르데르 공화국을 지날 일도 있고. 황자도 있으니 적기다.

    "참고로 부업으로 해적도 겸하고 있지."

    "해적이요?!"

    "다시 말해 자유롭단 말이야."

    그녀의 소꿉친구가 자신을 보러 오기위해 객사했지만… 동시에 여행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둘 모두였을 거다. 여행에 대한 로망은.

    현질을 해야 살 수 있는 스킨의 배경에는 뒷산을 뛰어놀며 모험의 기분을 내고 있는 어린 소년, 소녀가 있다.

    물론 리안은 고민 끝에 사지 못했지만…….

    "저… 정말! 저를 데려가 주실 건가요? 해적이면 모험도 하고……."

    "당연하지."

    소심해 보이는 성격.

    하지만 저 성격에 속으면 안 된다.

    조타만 잡으면 미친…….

    "그런데. 저는 사람을 죽일 자신이… 해적은……."

    "그딴 건 네가 할 필요 없어. 하고 싶어 하는 놈들이 내 배에는 천지거든."

    해적이 약탈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장사도 하고. 용병도 하고. 관강업까지 한다.

    오히려 약탈은 정규군이 더 악랄하다.

    군대가 현지 보급을 위해 약탈하는 것은 이 세계의 패시브랄까.

    그렇기에 그녀가 해적에 반감이 심하지는 않은 이유다.

    내륙에 살아서 해적에게 약탈을 당하는 걸 본 적이 없는 거다.

    결정적으로 그 밥에 그 나물이란 거겠지.

    어쨌든 그녀가 관심이 있는 것은 모험과 자유.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린다.

    진짜 대충 던져도 낚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곳에 찾아온 것도 영입하는 조건이 '매우 쉬움' 이란 것도 있다.

    자유분방한 영혼.

    역마살.

    성격 특성이다.

    저런 녀석을 한곳에 머무르게 한다면 정신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아… 어릴 때 빼내 와서 기르지 않으면 성격 특성에 <미치광이>가 붙는구나…….'

    사실 어릴 때 주워서 길러도 <광란> 이란 특성이 붙기는 붙는다.

    다만, <미치광이> 와 <광란>의 차이는 분명하다.

    명령을 얼마나 새겨듣느냐, 하는 통제력에서.

    "어때? 저 넓은 대양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끝 없는 수평선에 해가 뜨면 바다가 보석처럼 반짝이지. 싱그러운 바다냄새와……."

    사실 리안은 이제 수평선만 보면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어린 몸뚱이로 수평선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배를 모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려진 탓에 호르몬 때문인지. 산만한 정신 상태를 누르기가 힘들었다.

    "으으으… 음… 마지막으로 하나 더요……."

    바로 넘어오지 않는다니. 의외다.

    "부모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이렇게 보여도 귀족이라 편하게 모실 방법은 많거든."

    "그것도 좋긴 한데… 그게 아니라… 제가 여자라…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은… 불안해서."

    이 녀석도 자기가 이쁜 것은 알고 있었다.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일 거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넌 그저 그런 악사로 승선하는 것이 아니라 간부가 되는 거거든."

    "네? 제가요?"

    "넌 이등 조타수. 네가 원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네 몸에 손을 못 대. 선장인 나라도 말이지."

    "……???"

    머리가 혼란해 보이는 흐리아 민.

    당연히 음악적 재능을 보고 데려가는 줄 착각했을 거다.

    "넌 모르겠지만. 나는 알아볼 수 있어. 네 속에 부유선의 심장을 움켜쥘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 들어 있다는 걸."

    "아무리 제가 어리지만, 저도 알만큼은 알아요. 조타수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악랄한지."

    조타수가 된다는 것은 로또와도 같다.

    수료만 해도 대기사급 임금과 대우를 받을 수 있으니.

    당연히 배우는 것부터 목숨을 걸어야 했다.

    사관 학교면 다행이지… 야매 천지인 민간 교육소의 상황은 끔찍하다.

    "넌 그런 무식한 과정 따위는 필요 없어."

    이것은 게임 중반에 나오는 이론인데.

    "음악적 재능과 부유선 조타 능력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럼 유능한 음악가들을 조타수로……."

    비례한다는 거지 당연히 100%는 아니다.

    "누구나 그렇지는 않지."

    리안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빠른 템포. 거친 질감."

    그것만으로도 흐리아 민은 뭔가에 홀린 듯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말은 자주 듣는 말이었다.

    "제 하프 선생님도 똑같은 이야기를… 제가 나쁜 습관을……."

    당연히 이것은 지금 세계의 음악가에게 나쁜 기질이다.

    "음악은 본능으로 하는 거란다. 교칙을 강요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 본능을 죽이는 탄압이자 폭력이다. 부유선은 인간의 본능대로 움직이는 악기고."

    "저… 정말이요? 저는 거칠고 빠른 게 좋아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제발 뜯어말려도 그렇게 된다.

    그녀의 이명은 <타락한 음악가>.

    음악계에서는 이단아가 될 운명이다.

    당연히 유저들은 어이가 없어 했지만, 팬들도 많았다.

    -아니. 아무리 세계관 짬뽕인 게임이라 해도 헤비메탈은 너무하잖아. 이런 세계관에 헤비메탈이라니.

    ㄴ게임 회사 직원들이 헤비메탈 콘서트장에서 술 빨다가 만든 캐릭터란 소문이 있음.

    ㄴ ㅋㅋㅋ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만 등장하면 나오는 노래는 뭐임?

    ㄴ게임 설정상 '흐리아 민'이 신나서 외부 스피커로 튼다고 되어 있음.

    ㄴ아… 그래서 패시브로 <맨탈 브레이커>가 있구나.

    그녀는 어떻게 자라든 헤비메탈의 큰딸로 성장하게 되어 있다.

    참고로 <맨탈 브레이커>라는 패시브가 있는데… 이건 딱히 마법 같은 것이 아니다.

    효과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 것이 괴랄한 스킬이다.

    리안의 입장에서 지금 생각해 보면.

    아군들은 노래가 익숙해서 나름 즐기는데, 적군은 노래를 들으면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 정도? 응원가 비슷한?

    그래서 '악마의 노래' 라는 소리도 듣는다.

    "아아… 정말 저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수 있나요?"

    눈을 글썽이는 그녀.

    목 옆에 있는 핏줄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묻는 것은 실례란다. 그냥 '데려가 주세요.'라고 부탁하면 얼마든지."

    "가고 싶어요. 데려가 주세요!!! 단 한 번이라도 날고 싶어요!!!"

    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한 듯.

    "그런데… 어떻게……."

    "데려가서 가르치겠노라. 그 말 한마디면 돼. 흐흐흐."

    가르치긴 하겠지만, 종목이 조금 다르다.

    음악이 아니라 부유함 운항이다.

    뭐. 종목이 다르지만, 가르친다는 것에서 딱히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니.

    "그걸로 정말 허락하겠어요?"

    어차피 오린녜 통령도 딱히 명분이 없다.

    양녀로 데려온 것도 아니고. 첩으로 데려온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후원을 한다며 잘 살고 있는 집 딸을 반쯤 강제로 납치해 온 것이나 다름없다.

    위대한 빌럼아 오린녜 공.

    그의 유일한 치부가 바로 저것이다.

    나무랄 것 없는 군주지만… 유저의 개입이 없다면 말년에는 결국 흐리아 민을 첩으로 들이려다가 지지율이 조금 깎인다.

    스스로도 몰랐을 거다.

    흐리아 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당연히 80% 정도의 확률로 흐리아 민은 결혼 직전에 탈주한다.

    "넌 이제 내 선원이다. 선장을 믿어라. 이등 조타수!"

    그렇게 말하고는 리안은 발코니의 문을 활짝 열고 나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외쳤다.

    "여러분. 저는 흐리아 민 양의 후원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이없고 격식없는 그 폭탄 발언에 사람들은 입을 쩍하고 벌렸지만.

    가장 황당하고 기가 찬 것은.

    "아니!!!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이 황자님!"

    빌럼아 통령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물었다.

    감정이 들어갔는지 언성이 조금 높아진 것은 덤이었다.

    전쟁 영웅이라 그런지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제국으로 데려가. 크으은!! 교육을 시키겠단 말이지요."

    "아니!! 이런 외교적 실례가 어디에 있습니까!!!"

    결국 빌럼아 통령은 폭발했다.

    만약 자신이 아닌 진짜 레오폴트에게 저리 대했다면 이리 말했을 거다.

    '아니. 왜 애 기를 죽이고 그래. 흐흐흐.'

    리안은 옳다구나, 하며 몸을 휘청거렸다.

    "화… 황자 전하!!!"

    순식간에 백작 부인이 달려와 부축한다. 그리고 통령을 노려봤다.

    배짱이 보통이 아니다.

    "이건 무슨 무례한 행동입니까?!! 통령님!"

    시골 백작 부인 주제에 일국의 통령에게 고함을 빼액 지르다니.

    만약 그때 리안을 공격하지 않고. 다른 포로들과 함께 풀려났다면?

    레온 백작령을 먹을 때 꽤 애를 먹었을 거다.

    웅성웅성.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당황하기는 매한가지.

    그들은 그냥 신분도 아니라 각국의 대사나 공사급 인사들이었다.

    외교적인 내용을 전달하거나 가끔은 국가의 입장 전권을 행사하는 대단한 인물들이다.

    -이 황자가 좀 무례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린아이에게 저런 살기를..

    -자칫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군.

    -신센롬 제국은 날이 풀리면 로이센이 아니라 이곳 네르데르로 진군하겠군.

    신센롬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날이 풀리고 봄이 온다면, 슐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하브스 황가 사람들은 몸이 약하다던데, 오린녜 공이 너무 윽박질렀어.

    -설마 독살은 아니겠지?

    -저대로 시름시름 앓으면 큰일인데.

    만약 여기서 레오폴트가 잘못된다면, 전쟁을 준비 중인 신센롬 제국의 대군은 네르데르를 응징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당연히 그리되면 잿밥에 관심이 많은 이벨 왕국도 끌어들이겠지.

    "황자 전하!! 여독을 풀기도 전에 이런 연회는 안 된다고 했거늘… 흑흑!"

    갑자기 백작 부인이 흐느꼈다.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엿을 먹일까가 기본적으로 탑재된 여자였다.

    이런 걸 즉석에서 바로 시전해 버리다니. 무서운 여자다.

    "건강한 내 아들 레온 백작도 지금 요양 중인데……."

    누가 보면 네르데르 측의 강요로 환영 연회가 열린 줄 알겠다.

    네르데르 측은 오히려 억울했다.

    '연주자 없이는 밥을 먹지 않는다며!'

    연주자와 식사?

    당연히 연회를 열어달라는 뜻이 아닌가 오해를 한 것.

    잘되었다 싶어서 무례한 꼬맹이들에 대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각국 대사나 공사를 초대한 것이고.

    '젠장! 못 볼 꼴을 보이게 된 것은 나였군.'

    오린녜 통령은 속으로 한숨을 푹하니 쉬었다.

    * * *

    이후 빈방에서 리안과 독대를 하는 빌럼아 오린녜 통령.

    "혹시 이곳에 오기 전에 지병이 있으셨던 거요?"

    "지병 따위가 문제 인줄 아세요? 통령 아저씨. 그걸 말이라고. 어린 나이에 여행한다는 건 어린 나이가 아니면 모른다구요!"

    오린녜 통령은 아주 기가 찼다.

    어차피 리안과 레오폴트는 또래로 보였다.

    '내가 잘 아는데, 엄청 힘든 일이야. 반박하지 마. 넌 어른이잖아.'를 시전하고 있다.

    "그보다 여기서 과로로 돌아가시면… 독살의 의혹을… 받을텐데… 아아~"

    "그러니까, 레온 백작이 증명을 해 주면……."

    "그걸 누가 믿을까요… 통령 아저씨도 참 순진하시다니까. 내가 없다고 그 사이에 그런 사고나 치시고. 이래서 어른들이란.."

    그렇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국가 간에는 원하는 것과 책임 그리고 힘의 논리만 존재할 뿐.

    명예나 정의는 그저 명분이라는 건덕지를 건지기 위한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레오폴트가 잘못되면 그저 전쟁의 빌미를 줄 뿐이다.

    "후… 원하는 게 뭔가? 레온 백작."

    결국 빌럼아 오린녜 통령도 내려놓았다.

    그는 기분 나쁜 걸 무시하고 국가의 수장으로 리안을 대했다.

    리안은 일개 백작일 뿐이지만, 그 뒤로 비치는 후광인 스랑 제국, 잉글슨 왕국 그리고 신센렘 제국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본국으로 돌아가시는 동안 흐리아 민이 옆에서 연주를 한다면 안정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단지 원하는 것은 그뿐인가?"

    "뭐. 네르데르에 들른 것도 더 발런 거리에 가 보는 게 목적이긴 했으나 레이디 민이 함께 간다면 그 또한 해결될 것 같네요."

    빌럼아 통령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어떻게 애지중지 키운 아이인데, 황자의 노리개로 넘기다니 분통이 터졌다.

    '그래. 그래. 더 화를 내라. 흐흐흐.'

    리안은 웃음을 겨우 참았다.

    이 세계에 떨어져서 '다른 사람 빡치게 하기.' 라는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것 같다.

    아니면…….

    '박 차장 이 새끼!'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것은 사실, 원래부터 저 재능을 가지고 있었서였던 것인가?

    박 차장이 그 도발에 걸려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고.

    모르겠다. 그것보다 당장 중요한 것은.

    "그것 말고도 마잎(마초의 원재료)에 대한 무역권도 조금 나눠 받고 싶네요."

    "설마! 그게 진짜 목적이었던가?!"

    빌럼아 통령은 눈앞의 꼬마에게 속았단 생각이 들었다.

    마초의 원재료인 마잎은 서쪽 대양을 넘어 신대륙에서 난다.

    북 신대륙은 잉글슨, 스랑, 이벨. 이 세 나라가 나눠 먹은 상태다.

    세 나라는 신대륙 특산품의 공급을 제한할 것을 협약했는데, 그중 마초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황자님이 애연가라. 좀 많이 필요합니다. 흐흐."

    리안이 원하는 것은 신대륙에서 마잎을 구매할 수 있는 권리 일부였다.

    마잎은 마초를 만들 수 있는 재료이긴 하지만, 리안이 만들려고 하는 영약의 재료이기도 했다.

    그 영약 중 최상급은 리안 같은 둔재도 강제로 각성시켜 준다.

    "후… 그 '많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인가? 백작."

    "대충 10%면 만족할 수 있겠네요."

    마잎의 최대 수입국은 당연히 네르데르였다.

    마초 자체가 합법이긴 했지만, 공정을 거쳐 다시 다른 나라로 수출을 하기도 했다.

    네르데르의 마초 제작 기술은 율 대륙 최고였다.

    신대륙에서 나오는 마잎의 50% 지분을 네르데르가 가지고 있으니 10%면 전체의 5%나 되는 양이었다.

    "농도가 진한 걸 좋아하시니까요. 그리고 혼자 태우면 무슨 재미입니까. 친한 사람들과 함께 태워야 제맛이지."

    "알겠네. 다만 거저 달라는 건 아니겠지? 3년간 신센롬 제국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싶군. 비공식적으로."

    "흠… 2년! 아마도 3년은 힘들 거예요."

    빌럼아 통령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어리다고 만만하게 생각해 혹시나 하고 던져 봤는데 영악한 꼬맹이다.

    "후… 대신 삼 일 내로 떠날 것을 약속해 주게."

    지금 보니 이것들은 아주 폭탄이다. 그것도 대형 폭탄.

    계속 이 나라에 두면 온갖 사고란 사고를 다 치고 다닐 것이 분명했다.

    "배포가 크시네요. 통령 각하!"

    생각보다 전체 마잎의 5%면 엄청난 이득을 포기하는 것이다.

    마잎 자체가 비싸지만, 그걸 재가공한다면 몇 배의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환각성을 낮춰 담배를 만들어 팔게 되면, 거의 대부분의 율 대륙 국가들에게도 팔 수 있었다.

    "조약이 체결되는 순간 우리가 가진 지분의 10%를 넘기겠네."

    손해를 보면서도 조약을 원하는 이유는.

    신센롬과 로이센 왕국이 전쟁이 터지면, 승냥이 같은 이벨 왕국도 참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사님과 함께 신센롬 제국과 잘 조율해 보세요."

    "자네는?"

    "3일 안에 떠나라면서요. 조약이 끝날 때까지 관광이나……."

    "아니네… 내 신센롬 제국의 공사관과 잘 말해 보겠네……."

    딱히 리안이나 황자에게 그런 권한은 없지만, 리안은 여제가 만족할 만한 선물을 들고 갈 예정이다.

    그러니 딱히 걱정이 없었다.

    제법 큰 이권이 걸린 문제라 협상도 오래 걸릴 거고.

    "좋은 거래예요."

    "그래서 어디로 갈 생각이지?"

    "남서쪽으로 해서 작살 왕국을 거쳐 갈 생각이에요."

    작살 왕국은 게르 왕국 연합의 일원이었다.

    "뭐?! 스랑 제국이 아니라?"

    "게르 왕국 연합은 여전히 신센롬 제국의 연방이자 우방국이에요."

    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너무 이야기가 길었네요. 저는 황자 전하께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황자 전하는 제가 잘 달래 볼 테니 걱정 마시길. 그럼 통령 각하. 아디오스!"

    리안은 두 손가락을 붙여 인사를 날려 주고는 퇴장했다.

    그걸 본 통령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빌어먹을 꼬맹이 놈!!"

    협상에서 손해 보긴 했지만, 더 참기 힘든 것은 흐리아 민을 넘기는 것이다.

    "꼬맹이! 그 조약이 체결될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자! 아디오스 좋아하시네. 그래. 아디오스가 좋다면 보내 주마!"

    아디오스는 이벨 왕국에서 '신세계로'라는 어원을 가진 인사였다.

    거기다 이벨 왕국은 네르데르 공화국의 최대 적이다.

    다시 말해 적국의 인사는 그에게 욕이나 다름이 없었다.

    "집사!! 지금 당장 로이센 왕국에 첩보를 보내. 이 황자가 삼일 내로 작살 왕국을 향해 출발할 거라고……"

    <5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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