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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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을 벗기는 것뿐만 아니라 발골도 순식간에 끝이 났다.
처치 곤란한 나머지 부산물들도 모두 잉글슨 왕국에서 비싼 값에 매입해 줬다.
“오~ 이렇게나 챙겨 주시다니.”
“전쟁터에서 물자는 귀한 법이지.”
철갑상어는 나름 영물이라 영약만큼은 아니더라도 보양식으로는 제격.
피해를 많이 입은 군함에 사기 증진용으로 쓴단다.
“이제 떠나는가? 식사는 하고 가지 그러나.”
“갈 길이 멀어서요.”
“자네가 다녀오면 전쟁이 끝나 있겠군.”
일이 그리 순탄하게만 돌아갈까?
생각보다 오래 질질 끌릴 거다.
두 나라의 해양 국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네. 건승을 기원드려요. 대제독.”
“고맙네.”
그렇게 고잉미샤호는 함대를 이탈했다.
동북쪽으로 쭉 북상한 뒤 아일리 섬이 보이자 해안을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땡! 땡!!
그리고 얼마 뒤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제법 건장한 대머리 남성이 식당 앞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줄 서!! 이놈들아!!!”
배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식당을 만들다 보니 좁아터졌다.
“요리장. 거 너무한 거 아니요. 빨리 식당 문 열어 주쇼!”
밥때가 되니 여기저기서 우르르 몰려왔다.
“네놈들 꼴을 봐라! 눈깔이 시뻘겋잖아. 딱 약탈할 때 눈깔인데. 열어 줬다간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오너께서 오실 때까지는 안 된다.”
그때 소년이 해적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좀 북적이네요.”
리안은 줄을 서지 않고 곧장 대머리 아저씨의 앞에 섰다.
이래서 선장이 좋은 거다.
“오오. 우리 젊은 오너! 그러니까 이놈들이 몸에 좋다니까 종소리가 무섭게
몰려와서는. 쯧.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리안을 안내했다.
당연히 식당 문은 열어 주지 않고 취사병들에게 걸어 잠그게 했다.
참고로 배에서 요리장의 권위는 막강하다.
배식을 통제하지 못하면 배에서 모두가 굶어 죽을 수도 있기에.
“동서양 막론하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죠. 흐흐.”
“역시. 우리 젊은 오너는 학식이 뛰어나다니까. 동양에 가 본 적이 있나 봅니
다.”
“가 본 적은 없어도 제가 어디서 왔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요? 흐흐.”
이 세상 밖에서 왔다오.
“귀족 출신인 걸 다 압니다. 앉으시죠. 하하하.”
요리장 쿠커는 리안의 의자를 빼 줬다.
함께 딸려 들어온 샤로트는 여자아이임에도 오히려 혼자 의자를 빼서 앉아야
했다.
“오늘따라 식탁이 좀 요란합니다.”
참고로 이 좁은 식당에 선장의 자리는 또 따로 있었다.
절대 다른 이가 앉지 못하는.
웃긴 것은 리안의 식사는 대부분 선교나 선장 개인실에서 따로 먹었다.
그럼에도 이 식탁은 꿋꿋하게 유지되는 중.
-여기 앉는 놈은 국자로 대가리 깨지는 거야!
요리장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감히 앉을 수 있는 놈은 없을 거다.
“특별한 식재료이지 않습니까?! 오너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짝짝!!
쿠커가 박수를 치자 취사병이 뚜껑 덮인 거대한 접시를 들고 왔다.
새어 나오는 냄새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그르르륵! 챙~!
뚜겅이 열리고 요리장이 입을 열었다.
“가장 풍미가 깊다는 철갑상어의 꼬리뼈로 육수를 우려······.”
“뭐라구욧?! 꼬리라구요오오?!”
샤로트가 흥분하자 리안은 이마를 탁 하고 쳤다.
아아. 빌어먹을 꼬리.
샤로트의 무기 재료가 꼬리뼈임을 겨우겨우 숨겼는데······.
덕분에 이밀 소령도 돌아갈 땐 조용히 돌아갔다.
물론 샤로트가 집착적으로 캐물었지만, 그는 의리의 남자답게 끝까지 입을 다
물었다.
“넌 뭐냐. 오너 아직 설명이······.”
“설명은 됐어욧! 문어 아저씨! 도련님! 어서 드세요. 아아아~!”
꼬리에 대한 미신은 리안이 원래 살던 세계보다 더 강력한 세계.
가뜩이나 몸에 좋다는 철갑상어의 꼬리면 말 다 했다.
“내··· 내가 먹을게. 먹여 주지 않아도 돼.”
“꼬리를 많이 먹으면 다산한다고 들었어요. 어서 도련님의 아이를 가지고 싶
은걸요!”
도대체 알고 하는 소리일까?
스토리에선 창녀였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그저 순진한 시녀 출신의··· 뭐랄
까? 그래. 고민을 할 것도 없다.
그냥 시녀 출신의 순진한 미친년이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교화시켜야 할지 머리가 아파 오던 찰나.
“샤로트. 설마 내 본부인이 될 생각은 아니지?”
“어어··· 어으··· 제가 어찌 감히······.”
좀 비겁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샤로트라는 거대한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독
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의식이 확고했다.
대전사니 호위 기사니 해도 결국 그녀는 시녀다.
“먼저 아이를 가지면 나중에 생길 본부인에게 내가 곤란하지 않을까?”
“움··· 그건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살던 곳의 옆 동네 영주님도 그것 때
문에 곤란해한다고 들었어요.”
다행이다.
말귀를 알아들은 모양.
“그래도. 연인이 함께 머리통보다 큰 꼬리뼈를 먹으면 사랑이 이어진······.”
쉽게 이루어질 수 있으면 선망하는 미신이 될 수 없다.
머리통보다 큰 꼬리뼈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런데, 우연일지 운명일지 샤로트의 눈앞에 잘 요리된 머리통만 한 꼬리뼈
요리가 나타난 거다.
“그래. 운명 같네. 빨리 먹자. 우리가 다 먹기 전에는 식당 문이 안 열릴 것
같으니.”
일단 식당 밖에서는 어찌어찌 통제가 되는 모양.
그런데, 저놈들이 식당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난장판이 될 거다.
물론 음식의 양은 조절되겠지만 소란을 피우는 놈이 한둘이 아닐 거다.
“오너! 이건 특별히 드셔야 합니다. 잉글슨 쪽에서 모두 가져가려는 걸 따로
빼 두었습니다.”
철갑상어의 알이었다.
덩치만큼이나 알도 제법 컸다.
하나가 메추리알 크기.
다른 부위와 달리 이것은 확실하게 영약이다.
따로 법제할 필요도 없고 가열하거나 다른 재료를 첨가해도 영약의 성분이 변
질 또는 손실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요리사들에게는 최고의 식재료이고 귀족들에게는 하이브리드 요
리인 거다.
요리를 먹으며 동시에 영약도 먹는 셈이니까.
“아. 이건 제가 먹어도 그냥 똥만 되겠네요.”
“으으으. 제 모든 역량을 여기 알에 쏟아 넣었는데··· 빨리 각성을······.”
쿠커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 같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왈칵 쏟아 내어도 이상할게 없는.
그랬다.
그 역시도 리안의 각성을 염원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짠돌이 이전 선장과는 다르게 식재료의 질이 많이 좋아졌다.
이전 해적 섬에서의 일도 아쉬웠다.
한참 세 어린 꿈나무들이 단련을 할 때. 제대로 된 보양식을 먹이지 못한 게
한이랄까.
무식한 해적 놈들이 머무는 해적 섬이라 그런지, 영약들의 종류는 세련미 없
이 무식하게 먹어야 하는 종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했지만······.
“영약이 맛이 없는 걸 압니다만. 그건 다릅니다. 한 알이라도 먹어 보십시오.
오너!”
간절히 부탁했다.
그는 가설을 세운 것이 하나 있었다.
리안의 입이 까탈스러워서 영약을 몰래 버렸지 않을까?
각성을 하지 못한 것은 그 이유가 아닐까?
“후··· 우리 쉐프님이 그러시다면. 먹어야죠.”
“감사합니다. 오너!!”
세상을 잃은 표정에서 세상을 모두 가진 표정이 된 쿠커.
그는 두 손을 모아서 리안이 알 요리를 먹는 걸 지켜보았다.
풍퐁~!퓽~!
알은 어떻게 조리했는지 젤리처럼 섹시했고. 푸딩처럼 달콤했으며. 소고기처
럼 담백하게 입에서 녹아내렸다.
이 요리는 모순이었다.
이런 것이 영약이라니.
“아아아······.”
마지막으로 퍼지는 풍미까지.
이것은 혁명이다.
“간만에 솜씨를 좀 부려 봤습니다.”
“대단해요. 쉐프 아저씨!!”
“감사합니다. 오너. 하하.”
리안이 만족스럽게 허겁지겁 먹어치우자 그의 얼굴은 자긍심으로 번졌다.
5개의 알 중 4개나 해치운 리안.
“음?! 오너. 너무 급히 드시면··· 아무리 요리라도 그것은.”
“괜찮아요. 어차피 약발이 안 받는 저주받은 몸뚱이라.”
리안의 입은 행복했지만, 마음은 서글펐다.
다른 사람에게는 영약일지 모르겠지만, 리안에게는 그저 맛있는 요리일 뿐이니.
꿀꺽.
그때 식탁 건너편에서 샤로트가 침을 삼켰다.
아직 남은 알은 하나가 있었다.
“먹을래?”
“아··· 아니에요!! 저는 도련님이 맛있게 먹는 것만 보아도 행복해요. 도련님
을 위해서라면 평생 밀 곡단만 먹을 수 있어요.”
입가에 묻은 고기 살점이나 떼고 말할 것이지.
딱히 신빙성이 없는 건 아니다.
성격이 아주 독하니.
“하나 먹어. 어차피 내가 먹어도 똥이야.”
“저··· 정말이요?!”
샤로트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감사해요. 도련님! 꼭 강해져서. 도련님의 아이를 순풍순풍 낳겠어요!”
“···에휴.”
뭐. 어떻게 반발을 못 하겠다.
귀족 특히나 영지를 가진 귀족에게 있어서 후계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 세계는 일부일처제가 기본인데, 백작부터는 3명의 첩까지 인정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영주가 대를 잇지 못하면, 그때부터 그 영지의 평화는 사라진다고 보면 된다.
영지민들이 영주의 후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그래. 외세에 짓밟히는 것보다 나으니까.”
겔만 왕국 연합(신센롬 제국의 속국) 지역만 봐도 답이 나왔다.
계승 문제로 영지민의 1/3이 날아가 버렸으니.
차라리 내부에서 자식들끼리 치고받는 것이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보단 훨씬
났다.
풍퐁~! 퓽~! 꿀꺽!
샤로트의 입에서도 묘한 소리가 났다.
“아아아······.”
역시나 감탄. 그런데, 리안이 내뱉었던 감탄과는 조금 다른······.
샤아아아아~!!
샤로트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기세니 기운이니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로 아지랑이 같은 것이 일렁였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래?”
요리장 쿠커가 기겁한 얼굴을 했다.
“왜요?!”
“오너. 저 아이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 않습니까? 2차 각성입니다.”
샤로트의 눈깔이 살짝 돌아가 있긴 했다.
“설마 내 요리를 먹고 깨달음을 얻을 줄이야······.”
샤로트가 아무리 SSR+급 최상급 네임드 캐릭터긴 했지만, 성장이 미쳤다.
고잉미샤호에서 중견급 대전사는 다섯 명 중 부선장과 세바스 둘뿐이다.
이제 셋이 됐다.
“와··· 너무~ 너어어어무~ 맛있다아아아!”
정신을 차린 샤로트가 뱉은 말이다.
경박한 저 말투에서 무게가 느껴졌다.
공기가 다르다.
리안도 유저이기에 마나의 유동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추··· 축하해. 샤로트.”
배가 살살 아파 오려고 한다.
될 놈은 어떻게 해도 된다고. 알 4개를 먹은 리안과 달리 1개만 먹고도 중견
급 대전사가 되다니.
중견급 대전사는 중소 영지의 기사단장을 할 수 있다.
“네? 뭐가욧? 그보다 이거 더 없어요? 대머리 아저씨?”
“없··· 없어!!”
요리장은 급히 부인했다.
사실 남은 게 있긴 있지만, 샤로트의 각성을 보고 욕심이 났다.
아직 자신은 초급 대전사에 머무르고 있었다.
뭐. 싸움에 동원되는 일은 잘 없지만······.
“히잉.”
“샤로트. 다음에도 맛있는 거 줄게. 쉐프 아저씨 곤란해하잖아.”
“네엡! 그리고 저 결심 했어요. 열심히 도련님의 아이를 낳아 드리기로!”
출산 이야기를 하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게 있다.
‘그러고 보니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이 되었는데······.’
땡땡땡~!!
때마침 종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고잉미샤호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경박한 소리.
철컥!
리안은 식당에 있는 창문으로 다가가 금속으로 된 창문 덮개를 열어젖혔다.
작은 창문 너머로 밖을 살펴보니.
-해적이다!!
해안의 어촌 마을에서 고잉미샤호를 보고 난리가 난 것이었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배가 적지는 않겠지만, 매번 저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잉글슨 본토는 군함들이 자주 순찰을 돌지만, 아일리 섬은 관리가 소
홀했다.
“털어먹을 것도 없는 어촌처럼 보이건만.”
아무리 요리 실력이 뛰어난 쿠커라 하더라도 그 역시 해적.
사고방식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털어서 향신료가 나올 만한 곳을 선호했다.
“음······.”
리안은 얼굴이 살짝 화끈거렸다.
게임을 할 때엔 저런 어촌이 나올 때마다 노가다 하듯이 털며 지나다녔다.
현실과 게임의 차이랄까.
참고로 해적만 약탈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해적이 더 신사적일 때도 있다.
자국의 군대조차도 상황에 따라서는 도적 떼가 되어 버린다.
겔만 왕국 연합 또한 저번 전쟁으로 인구 1/3이 날아가지 않았던가.
“무과금러의 애환이······.”
이 세계의 지휘관들은 어떤 느낌인 걸까······.
“딱한 사람들이긴 하죠.”
딱한 사람들이 맞다. 특히나 이 마을 사람들은.
“가자!”
“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오너.”
“선실에 연락 넣으세요. 모든 인원 전투 준비를 하라고.”
아주 악질적인 녀석이 저 마을에 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