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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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파수대에서 혼자 장난을 치며 놀고 있던 샤로트 베리.
그녀는 전리품으로 얻은 망원경이라는 마도구에 심취해 있었다.
타르카르칵칵칵. 투르칵칵!!
길이를 미친 듯이 줄였다 늘였다를 반복했다.
가까이 보기 멀리 보기를 수동으로 조작하는 방법이다.
“으으으······.”
그걸 지켜보던 파수병은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눈을 가져다 댄 채 저리 빨리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면 보통 사람은 버티지 못
할 텐데······.
“꺄르르르~!! 너어어어무우우~ 재밌어.”
아주 신이 나서 좁은 파수대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으으으. 제발. 가만히 좀 있으면 안 되냐?”
“꺄하하~! 가만히 있질 않아서 너무너무너무 재밌어요~~”
파수병은 신경 끄기로 했다.
일단은 선장의 애인인 데다가 정령갑옷과 계약한 대전사다.
자신이 말해 봐야 씨도 안 먹히겠지.
“이제 처형하나?”
파수병은 시선을 돌려 플랑크의 처형을 지켜봤다.
플랑크란 이름을 가졌던 인간은 상어 밥으로 변했고 바다에 조금씩 뿌려졌다.
바다가 붉게 번졌다.
상어를 부르기 위해 피부터 뿌려 댄 것이다.
만약 상어가 오지 않으면, 기다렸다가 상어가 많은 지역에 가서 다시 집행될
것이다.
그때.
“어어어어··· 빛난다. 빛이 나요. 바닷속에서.”
샤로트가 파수병에게 이야기를 했다.
“뭐가. 빛난단 말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진짜예요. 보세요. 저기!”
“안 보이는··· 뭐지?!”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뭔가가 바닷속에서 반짝였다.
파수병 일을 오래 한 그도 이런 경우는 처음.
“헙!! 철갑상어다! 역시 플랑크 정도 되는 거물이라 상어도 저런 거물급이 오
는 건가······?”
파수병은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아래쪽으로 소리쳤다.
“부선장. 철갑상어가 오는뎁쇼?”
“기다릴 필요가 없어서 좋군. 어느 쪽이냐?!”
“2시 방향 뱃머리 오른쪽 대각선이요.”
그의 말에 부선장은 뱃머리로 느긋하게 걸어나갔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저놈!!!”
경악스러운 얼굴을 했다.
아는 녀석이다.
아니. 어찌 잊으랴.
“선자아아아앙!!!”
급히 선교로 달려가 선장을 불렀다.
“어우! 깜짝이야. 전쟁이라도 터졌어요? 못생긴 만큼이나 매너가 없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놈이야. 그놈이 나타났어!”
“그놈이 누군데요?”
“저번에! 선장이 바다에 빠졌을 때 달려들었던 철갑상어!”
현대에서의 철갑상어는 삼대 진미 중 하나인 캐비어를 주는 고기다.
상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경골어류.
그런데, 이 세계에서 철갑상어는 바다의 장군으로 불리는 몬스터로 분류가 된다.
“음··· 바다가 생각보다 좁네요.”
“아니야. 그 장소와 여기는 생각보다 멀지 않아. 서식 반경 안이야.”
이곳은 서해이며 스랑 제국의 연해다.
다시 그 철갑상어와 마주친다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뭐. 다시 만난 건 반가운데, 복수라도 할 생각이에요? 저는 딱히 악감정이
없는데······.”
실수라지만 바다로 뛰어든 것은 리안이었고.
육식 동물인 철갑상어는 먹잇감을 봤으니 달려드는 것은 정상이다.
그 녀석이 딱히 인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놈의 눈알에 우리 집 가보가 박혀 있어! 되찾아야 된다고!”
“오오. 부선장 아저씨. 감동이에요. 저를 구하기 위해 그런 귀중한 것을 잃었
었군요!”
그렇다면 말이 조금 달라진다.
어쨌든 리안은 부선장에게 목숨을 빚졌으니.
가보는 그 과정에서 자신 때문에 잃어버린 거고.
당연히 선장으로서 되찾아 주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다.
“준비하세요! 사냥 시작입니다.”
리안의 명령에 따라 전 선원에게 전투 명령이 떨어졌다.
철갑상어가 크다지만, 부유함에 비하면 작다.
다만, 포격도 정통으로 맞지 않으면 별 데미지를 받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갑
옷을 두르고 있었다.
이름만큼이나 거창한 갑옷이다.
댕~ 댕~
배에 타종이 울리고 선원들은 전투 배치가 되었다.
파다다닥!
철갑상어가 놀라서 도망가지 않게 주기적으로 플랑크로 만든 상어 밥을 떡밥
으로 던져 줬다.
녀석은 기분 좋게 받아먹었고.
[선장! 우현 카논포 2문. 준비됐어.]
함포장이 보고를 해 왔다. 이어서.
[선장님. 갑판 위에 마총병 배치가 완료되었습니다.]
철갑상어를 화력으로 잡기 위해선 운이 필요하다.
어설프게 대미지를 주면 바다 밑으로 도주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에.
“미끼를 모두 투척하세요. 한 방에 갑시다! 쏴!!”
리안이 선내에 방송을 때렸다.
펑펑!! 타다다다당!!
신호와 함께 두 문의 카논포와 마총병의 일제 사격이 거행되었다.
자옥한 마나 연기가 배 옆만을 채웠다. 그리고.
끼기기긱!
고잉미샤호와 철갑상어가 밧줄로 연결이 되었다.
“오오오! 성공이다.”
한 면에 15문이나 되는 마포를 두고 왜 캐논 2발만 쐈냐 하면, 포알이 아니라
작살을 쐈기 때문이다.
작살은 백병전을 걸 때 상대 배에 쏘는 것으로 당장 쓸 수 있는 것은 두 개뿐
이었다.
(다른 포를 쏘지 않는 이유는 작살에 맞아 튕기거나 부러질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그리고. 갑판 위에서는.
“걸어!! 딸려 가지 않게 조심해!!”
마총병들도 총알이 아니라 마총에 작살을 놓고 쐈다.
대부분은 튕겨 나왔지만, 몇 개 정도는 운 좋게 철갑상어의 몸에 박혔다.
“이제부터 내 영역이군.”
“부탁해 귀엽고 깜찍한 미소년 선장.”
“흐흐흐. 그 정도로 간절하다면야.”
리안은 침을 삼키고 조종구 위에 손가락을 살포시 얹었다. 그리고는 살랑살랑~
배가 춤을 추듯 잘게 움직였다.
“으으으~!! 끊어진다···! 조심해. 선장.”
리안이 급히 움직였다.
작살과 연결되어 팽팽해진 밧줄이 조금 느슨해졌다.
이건 마치 낚시를 하는 것 같았다.
“후아아. 손맛 죽이네!”
리안은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밧줄이 끊어져 놓친다면 선장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끼기기긱~! 팅!
밧줄 하나가 끊어졌다.
놀란 리안은 급히 배를 몰아 다시 밧줄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파도를 타고 적의 포탄을 피하는 것보다 훨씬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했다.
손가락 한 번 잘못 놀렸다가는 밧줄이 끊어져 버릴 거다.
[선장님. 갑판 위 마총병 재장전 완료했습니다.]
세바스의 통신이 들어왔다.
실 하나는 끊어지기 쉽지만 여러 개가 되면 밧줄 부럽지 않다.
“빨리 쏴요. 수평으로 맞출게요!”
리안은 미세하게 고잉미샤호를 움직여서 줄을 팽팽하게 맞췄다.
순간적으로 철갑상어가 고정되었다.
타다다다당!
마총병들이 쏜 작살이 이번에는 더 많이 맞았다.
“휴우우~!”
한시름 놓았다.
철갑상어의 힘이 훨씬 더 빠진 것 같다.
줄이 끊어질 염려가 없어서 리안은 조금 더 과감하게 힘 싸움을 벌인 것.
[선장님. 재장전 완료입니다. 마지막 작살입니다. 배에 남은 것이 더는 없습
니다.]
“알겠어요.”
리안이 다시 줄을 팽팽하게 만들었고.
타다다당!
마총병들의 작살이 다시 발사되었다.
퍼버버벅!
철갑상어의 몸은 작살로 인해 고슴도치처럼 변했고 그 위로 연결된 밧줄 때문
에 인형극을 보는 것 같았다.
이제 결전의 시간!
“끌어 올려!! 모두 달라붙어.”
선원들이 밧줄로 달라붙었다.
부선장도 밖으로 나가 도왔다.
쉐에에에~!
세바스는 식물의 줄기를 키워 철갑상어의 몸을 둘렀다.
파닥거리던 철갑상어의 움직임이 많이 봉쇄되었다.
와아아아아!!!
선원들이 함성을 질렀다.
이내 철갑상어는 갑판으로 올라왔고 그 크기가 갑판의 1/3을 차지할 만큼 어
마무시했다.
당연히 다른 배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방금 끝났는데 태평하게 낚시라니.
-철갑상어 저거 잡기 힘들지 않아?
-조타수가 장난이 아닌가 보네. 에이스급은 되어야 시도할 법한 방법인데.
처음 작살을 쏜 후 다음 작살이 날아갈 때까지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배들이 철갑상어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이유다.
괜히 힘만 뺄 뿐.
-전리품을 제대로 건졌네. 저거 비싸지?
-몸속에 부유석을 품고 있으니까. 그리고 알은 영약으로 쓰이지.
-가죽도 비싸지 않아?
-마법사들뿐만 아니라 대장장이들도 환장하는 물건이긴 하지.
시작은 부선장의 가보를 되찾기 위해서지만, 그 보상이 작지는 않다.
갑판 위에서 파닥이는 철갑상어의 목숨을 끊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와우~!”
리안의 입에서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가까이에서 녀석을 보니 그 압도적인 크기에 섬뜩하기까지 했다.
자칫했으면 이놈에게 먹힐 뻔했으니··· 살짝 오한이······.
퍽!!
부선장이 리안에게 다가와 등을 때렸다.
“으앗!”
“아. 미안미안. 너무 기뻐서 말이야. 정말 고마워. 선장.”
부선장의 눈동자가 글썽거렸다.
그는 상어의 눈가로 가서 검을 뽑아 들었다.
생각해 보면 부선장도 대단한 인간이다.
저런 놈에게 기죽지 않고 눈에 단검을 박아 넣은 인간이었다.
“으하하하!! 드디어 되찾았다. 조상님을 볼 면목이 없었는데······.”
리안은 가까이에 가서 단검을 지켜봤다.
단검의 문양이 어딘가 묘하게 낯이 익었다.
“어···!! 올몬드? 설마··· 부선장 아저씨. 혹시 올몬드 지역의 옛 백작가와
관련이 있나요?”
“응? 그걸 어떻게······.”
“거참. 저를 납치해 온 양반이 제 이력을 모르는 건 아니겠죠?”
“알지. 아트로네 백작가의 외손자··· 그래도 과거의 백작가까지 아는 거야?”
그냥 가물거릴 뿐이다.
열 판을 플레이하면 세 판 정도는 아일리 섬이 잉글슨 왕국에서 분리 독립을
시도한다.
그때 옛 과거의 아일리 왕국 시절 백작 후계자들이 등장하는데, 아일리 섬 남
동쪽 구석에 박힌 곳이 올몬드 백작령이다.
그곳은 백작뿐만 아니라 남작조차도 주장자가 나오지 않아서 공석이었는데,
거기서 본 문양이 묘하게 단검에 그려진 문양과 닮았다.
“내 선조가 올몬드 백작가를 모신 트라몰 남작가였다.”
‘트라몰. 트라몰이라.’
리안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겨우 떠올렸다.
아무리 고인물이라 해도 아일리 섬의 세부까지 바로 기억해 내긴 힘들었다.
“항구네요.”
“잘 아는군. 확실히 꼬맹이답지 않단 말이지. 우리 선장은 말이야.”
대충 자신이 어떻게 하다가 해적들에게 납치당했는지 알 것 같았다.
백작 부인이 올몬드 해적단과 접선한 것은 딱히 우연은 아니었다.
올몬드 해적단의 출신 자체가 아일리 섬이었고 그곳에 대해 나름 잘 알고 있
었고 주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의문.
올몬드 해적은 왜 동족이나 다름없는 리안을 납치했는가?
그것은 일종의 앙금과도 같았다.
올몬드 백작령은 사라졌지만, 리안의 외가인 아트로네는 여전히 건재했다.
이들의 눈에는 매국노로 보였겠지.
그렇다면 또 의문.
그들은 왜 리안을 선장으로 인정하고 잘 따르는가?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리 매국노의 외손자라 하더라도 아일리 섬과 무관하지 않고 백작가의 고
귀한 피를 가지고 있으니 자신들이 모시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거다.
생각해 보면 의외로 해적들은 리안에게 고분고분했던 것도 그 이유였던 것이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아일리 섬 자체가 모순덩어리인 지역이다.
“거참.”
“미안하게 됐어. 선장. 원한다면 배에서 내려도 좋다.”
“무슨 소리! 일궈 놓은 게 얼마인데. 이제 와서? 그래서 부선장은 트라몰 남
작가의 후손이다, 이거죠?!”
“으응······.”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순박하게 뒤통수를 긁는 부선장.
리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흐흐흐.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사실 리안도 살짝 고민을 하긴 했다.
전쟁의 신 사제까지 구해 놓긴 했는데, 거점을 어디로 삼아야 할지 말이다.
아무리 외가가 아일리 섬의 귀족이라 하더라도 너무 막무가내로 선전 포고를
해 버리면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었다.
“또 무슨 음흉한 흉계를 꾸미는 거냐?”
“흉계라니요. 거국적인 계획에 대해 잠시 생각했을 뿐이라구요.”
잘하면 날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올몬드 백작령은 공석이다.
진짜로 공석이 아니고 그 땅은 현재 잉글슨 왕국의 귀족이 차지하고 있다.
“스랑 제국을 조질 게 아니라 잉글슨을 먼저 조져야 하나··· 아니면······.”
올몬드를 접수한 뒤 잉글슨 왕국의 지원을 받아 브루타뉴 공작령에 있는 레온
백작령을 먹어도 되고.
선택지가 다양해졌다.
“자! 그럼 빨리 출발하자구요. 외가에 얼굴도장도 찍을 겸.”
정통성을 높이기 위해선 아일리 귀족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날려 줄 필요가 있다.
그냥 날려서는 아니고 누구누구의 외손자가 이번 전쟁에서 활약했다더라. 정
도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잉글슨 대제독에게 약을 조금 쳐 놔야겠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