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014
아일리 섬의 서북쪽에 존재하는 해적들의 고향 헤브리디스 제도.
사실 원래부터 해적들이 기항지로 삼은 곳은 아니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지리적 요충지도 아니었으며 수산 자원 또한 희박한.
워낙 쓸모없는 땅이다 보니 어느 순간 해적들이 와서 눌러살게 되었을 뿐.
그 버려진 섬 중에서도 서북단으로 조금 떨어진 돌섬.
“아니. 꼬맹이. 이런 곳에 뭐가 있다고! 여긴 가끔씩 포격 연습을 하는 곳이
잖아.”
부선장은 투덜거렸다.
검푸른 바다 위에 우뚝 솟은 거대한 돌섬에 건질 것이 무에 있다고.
“흐흐. 그럼. 사격 연습이나 좀 하고 가지요.”
“나 참. 도통 이 꼬맹이 머릿속에 뭐가 든 것인지 알 수가 없구만.”
그리 말했지만, 명령까진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포장은 좋아했다.
“역시 나이는 어려도 귀족 출신 선장이라 그런지 깨어 있군. 좋아! 전 포대
개방!”
배의 양옆으로 포문이 개방되었다.
그 구멍으로 그그극! 거리며 마나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자. 보자. 어디 보자.”
리안은 천천히 섬을 크게 돌며 위치를 찾았다.
묘하게 뾰족 튀어나온 곳. 그곳에서도 사람으로 착각할 법한 바위.
“찾았다.”
“뭘 찾았다는 거야?”
“저기. 저 바위 사람 같지 않아요?”
“하여튼. 꼬맹이들의 상상력이란.”
“꿈나무의 마음을 꺾지 말아 주시겠어요? 못생긴 부선장 아저씨?!”
부선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꼬맹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말은 꼬마, 꼬마, 하지만, 의외로 냉철한 녀석이다.
저 속에는 다 늙은 아저씨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배를 끌고 해적 섬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안한 거냐?”
스랑 제국의 최신형 군함.
바다를 생계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보물로 보일 터.
“최소한 이 배의 위력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3층 구조. 마나포 30문. 최신형 쾌속함.
스펙을 아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
이 배를 적으로 싸워 보긴 했으나 그건 정상적인 전투가 아니었다.
괴물급 조타수의 사기와도 같은 싸움.
그렇기에 스펙을 시험했다고 볼 수 없었다.
“발사!!”
리안이 통신구에 소리쳤고 포격실에 명령이 하달되었다.
포수들은 익숙하게 마나포를 조작했다.
퍼버버벙!!
마나포들은 바위를 두들겼다.
“반대로!!”
리안의 명령이 하달되며 배가 돌산을 향해 상대로 반대로 회전했다.
포수들은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해적선은 포격보단 백병전이었기에 포수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달려! 달려 머저리들아. 우리 꿈나무 선장께서 비싼 비용을 들여 훈련을 시
켜 주시는데!! 으하하하.”
마나포는 마나석을 소모한다.
거기다가 포탄도 소모한다.
훈련도 공짜가 아니란 말.
“아주 마음에 들어. 우리 꿈나무 선장. 크하하하.”
해적의 전투가 백병전 위주라 보니 포수들에게 소홀한 편.
그런데, 꼬마 선장은 첫 만남부터 자신을 띄워 줬다.
그것도 모자라 이렇게 마나포가 많은 배까지 나포하지 않았던가.
앞으로의 대우가 나쁘지 않을 거란 말.
퍼버버벙!!
다시 마나포가 불을 뿜었다.
“이런 멍청한 놈들!! 그걸 못 맞히나! 달려. 반대로 달려!!”
발사 후 곧장 반대로 달렸다.
배가 다시 반대로 회전했다.
번갈아 가며 쐈기에 마나포를 식히는 방열 작업은 따로 필요 없었다.
“빨리. 더 빨리. 우리 꿈나무 선장이 우릴 뭐로 보겠나!!”
딱 사람 크기의 딱 사람 모양의 바위.
크기가 작아서 그런지 의외로 맞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얼핏 보기엔 돌출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교묘하게 주변 지형에 보호를 받았다.
“꼬맹이. 우리 포수들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니야?”
부선장은 답답한지 투덜댔다.
“원래. 맞히기 힘들어요.”
“툭 튀어나와 있구만.”
“지형이 튀어나왔지 저 형상이 튀어나온 건 아니니까.”
가까이 접근하고 싶었지만, 돌섬 주변의 암초들 때문에 지금이 한계다.
운이 나쁘다면, 재보급을 하고 와서 다시 시도해야 할지도 모른다.
“꼭 저걸 맞춰야 하나?”
“난도가 높아야 훈련이 되죠. 그리고 해적 섬에 들어가면 포수의 숫자부터 채
워야겠네요.”
“배도 커졌으니 해병 대기실도 늘리지.”
“아니에요. 해병대는 지금이 딱 적당해요. 사람이 많아지면 복지가 떨어질 수
밖에 없으니.”
원래 해적선은 해병대를 꽉꽉 채워 다닌다.
백병전이 주 전투 방식이니.
“복지?! 그게 뭐야?”
“전반적인 삶의 퀄리티 향상? 인간에겐 퀄리티 오브 라이프가 얼마나 중요한
데요.”
“꼬맹이 아니랄까 봐. 별걸 다 신경 쓰네.”
리안은 다시 조종간 위의 수정구를 조작해서 배를 움직였다.
퍼버버벙!!
배가 반대로 회전하자 마나포가 불을 뿜었다.
확실히 부선장에게 수련을 받고 나니 마나를 다루기가 더 좋아졌다.
지금은 마나의 느낌이 확실히 선명해졌다.
오감이 아닌 새로운 감각 기관이 생긴 것 같았다.
“더 괴물이 되었군.”
부선장은 조종간을 다루는 리안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럴 것이 리안은 지금 삐딱하게 앉아 손가락 하나로 까딱까딱 조작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배는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천재라 불러 주시죠.”
리안은 피식 웃었다.
원래 세상에서 아무런 재능도 없는 쓰레기와 같았던 자신이었다.
실패한 인생. 방안으로 숨은 히키코모리.
유일하게 인정받은 곳이라고는 게임 속.
점점 게임에 빠져들었고.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다 했지만······.
‘빌어먹을 101위.’
그걸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그러나.
‘어쩌면 나 SR+급 조타수 아니야?!!’
저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자신이 재능충이라니.
이럴 줄 알았다면, 게임에 들어오기 전 세상에서 카레이서와 같은 일을 할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콰아아아앙!!!
그때 바위산이 폭발했다.
도저히 마나포에 맞았다고 상상이 안 들 정도.
분명 폭발형이 아니라 일반탄을 썼다.
“뭐··· 뭐야.”
부선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분명 마나 유폭이다.
파장이 다른 마나끼리 부딪히면 일어나는 현상.
일반 포탄도 마나포의 영향을 받아 약간은 마나를 머금고 있다.
다시 말해 돌산에 무언가 있단 말.
“저기··· 선장?”
“뭐 해요. 가서 조사해요. 마법 아이템일지 누가 알아요?”
“응?!”
리안은 물의 정령 갑옷을 입은 세 명의 대전사를 바위섬으로 보냈다.
그들은 바다 위를 제트 스키처럼 가르며 돌섬에 도착했다.
“이··· 이게 뭐야.”
사람 크기의 조각상.
한 손에는 커다란 양피지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횃불을 든 채 저 멀리 비추
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날개를 단 여인.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부선장. 이거··· 마법 아이템 같은데······?”
“으음······.”
부선장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알고 이곳으로 찾아온 것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꼬마.
“일단 챙겨 가자.”
“알겠쑤다.”
세 명의 대전사는 조각상을 챙겨서 배로 돌아왔다.
갑판 위는 구경을 나온 선원들로 가득했다.
“이게 뭔 일이래?”
“심상치 않은 물건인 것 같은데······.”
“팔면 비쌀 것 같아.”
선원들도 조각상의 포스에 감탄했다.
해적질을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물건에 대한 안목이 늘어나기 마련.
“아아. 신이시여.”
그때 흑발의 단아한 소녀가 갑판 아래에서 걸어 올라왔다.
아직 돌봐야 할 환자가 많기에 밖으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군종 사제 세
이나였다.
“누나. 기도를 올려 주겠어?”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모시는 신의 성물이 아니라 할지라도 신성한
것은 같습니다. 이는 이 배의 축복이에요.”
그녀는 조각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탱글의 신실한 종이 길을 잃은 모든 것들의 희망. 운명을 밝히는 등불의 주
인 세트 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등불의 여신 세트.
한 손에는 커다란 책을 다른 한 손에는 등불을 쥔 천사의 형상.
인간에게 불을 전해 줬다는 신화 속 주인공이다.
모험가들의 신이기도 했다.
쏴아아아!!!
기도에 대한 화답이라도 하는 걸까? 폭탄이라도 터진 듯이 눈이 멀 것 같은
빛이 사방에 뿌려졌다.
모두가 그 신성한 빛에 무릎을 꿇었다.
“오오오!!”
다들 감탄을 터뜨렸다.
조각상에서 빛 가루들이 떨어져 내렸다.
알 수 없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조각상의 피부에 빛이 돌며 살아 있는 듯한 생
동감을 주었고.
그 온화한 표정에 다들 감동한 눈치다.
쏴아아아.
이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툭!!
여신상이 들고 있던 평평한 양피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락이 떨어졌다.
앞으로 이 배에 등불이 되어 주겠노라고.
“배 앞에 걸어라! 기존의 선수상은 바다에 던져 버리고.”
“어어······?!”
다들 놀란 눈치다.
이제야 눈치를 챈 것이다.
등에 달린 4개의 고정 고리. 조각상은 표준 규격의 선수상과 같았다.
선수상에 표준 규격이 존재하는 이유는 간혹 고대에 선수상들이 지금까지 남
아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풍덩!
스랑 제국을 상징하는 황금용이 바다로 빠졌다.
도금이라 어디 팔아먹을 때도 없다.
녹여서 쓰려고 해도 감히 녹이려는 이는 없을 거다.
해적 섬의 대장간이라 해도.
철컹!
새로운 선수상이 뱃머리에 걸렸다.
그것만으로도 배에 축복이 걸린 듯한 느낌을 주었다.
심리적인 안정감.
“꼬마. 이거 도로 붙여야 하는 거 아니야?”
마도 공학자이자 기관장인 헤르미가 호기심을 보였다.
그녀는 조각상에서 떨어져나온 양피지 모양의 조각 앞에 쪼그려 앉았다.
‘왜 내 정면에서 그러고 있는 거냐고!’
언제 봐도 저 비키니는 부담스럽다.
“안 그래도 누님에게 부탁을 좀 할까 했는데. 잘되었네요.”
리안이 시선을 살짝 옆으로 틀었다.
비키니가 적지 않게 신경 쓰인다.
“응? 설마 이게 뭔지 알고 있는 거야?”
“레이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오러, 마나, 신성력 같은 에너지에 반응하죠. 사람이 뭉쳐 있어도 반응합니
다. 다만 이걸 활용하려면 약간의 설비가 좀 필요하죠.”
선수상은 레이더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 중 상급.
스토리 후반부에나 얻을 수 있는 물건이다.
해적들의 고향 헤브리디스 접근해서 가까운 돌섬에 포격을 한다?
한 나라의 왕쯤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해적들이 뭉치면 한 나라의 해군력과 맞먹는다.
그래서 해적 섬의 주인을 해적왕이라 불렀다.
그렇다고 그 해적왕이 진짜로 해적들의 왕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해적 섬의 주인 정도.
해적들은 기항지를 제공받기 위해 해적왕에게 적당히 고개를 숙일 뿐 충성하
지는 않는다.
해적왕도 딱히 그런 걸 바라지도 않고.
“대충 바닥에 마나 회로가 지나가게 만들면 되나?”
“빙고. 그러면 궁금증은 자동으로 풀릴 겁니다.”
“도대체 이런 지식을 어떻게······.”
“이 몸의 외가가 아일리 섬의 백작가지요. 헤헷!”
그 말에 이번엔 샤로트 베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웅? 도서에는 관심도 없으셨으면서······.”
다만 그다지 깊게 생각하는 눈치는 아닌 모양.
그저 조금 흐리멍덩한 것이 다른 고민이 있는 듯했다.
“그보다 오러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몸속에 마나로를 개통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저런 고민이었다.
서는 걸 가르쳤더니 걷기도 전에 뛰는 걸 알려고 하는 그녀.
“그럼 선교에 바로 설치 부탁드려요. 누님!”
“알겠어. 뭐 어려운 일이라고.”
리안의 말에 기관실로 곧장 내려가 몇몇 장비들을 챙겨 와서는 뚝딱거렸다.
돌아이 같은 성격이었지만, 실력은 확실해 보였다.
“상태창!!”
리안은 혹시나 몰라 외쳐 봤지만, 그딴 건 없었다.
갑자기 이러는 이유는 해르미의 능력치가 궁금해서다.
능력으로 봤을 땐 대충 A급은 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오오. 역시 성물은 신기하단 말이지.”
그녀는 작동하기 시작한 레이더에 흥미를 느꼈다.
리안도 놀랐다.
“우와. 진짜. 레이더 같네······.”
양피지 조각 위에 빛이 들어왔는데, 시계처럼 기다란 선이 원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았다.
그 선이 지나갈 때 뭔가가 생겼다 없어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레이더와 비슷해 보인다.
“어?!!”
그런데, 해적 섬 근처에 점들이 생기는 것은 이해했지만.
“서··· 선장. 돌섬 뒤쪽에 희미하게 뭐가 있는데? 호··· 혹시 바다 괴물?”
통신 마법사가 호들갑을 떨었지만.
바다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