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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6화 (6/253)

6화.

## 006

전열함.

함포의 숫자가 60문이 넘어가면 전투만을 위한 배. 전열함이라 불린다.

전열함은 전술뿐만 아니라 전략에도 영향을 끼치는 괴물이다.

그런 배가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제도지만, 수심이 얕은 이유로 배가 다닐 수

있는 경로는 정해져 있었다.

“하필이면 전열함이라니.”

해적들은 전열함이란 소리를 듣고선 기가 죽어 침묵을 했지만.

“다들 뭘 그리 기를 죽고 그래요. 지금 우리가 나포한 배는 최신형 철갑함인데.”

“그게··· 선장. 철갑으로 둘렀으면 뭐 해. 그저 조금 더 버틸 뿐이야. 정말

그뿐이라고.”

마법사의 말에 꼬마 선장 리안은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알기론 이 배는 육지에 올릴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극비인······.”

한쪽에 포박되어 있던 해군 함장이 입을 열다가 급히 다물었다.

이 세계의 모든 전함들이 부유함이라 불리지만, 완전히 공중에 떠 있지는 않다.

공중으로 뜨려는 성질 자체를 비틀어 추진력을 얻는 형태기에.

육지와 바다를 동시에 운항할 수 있는 배들은 극히 드물다.

“꼬마. 분석해 보니 이곳과 이곳은 아슬아슬하게 넘을 수 있는 것 같아.”

항법사가 리안에게 지도를 들이밀었다.

당연히 육지에 오를 수 있는 부유함이라고 모든 지형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항법사가 가리킨 곳은 육지 쪽이다.

섬들을 가로지르고 싶어도 대부분 돌섬이라 절벽이 대부분이고. 지형이 워낙

좋지 않아 상륙 과정에서 하부가 심하게 긁힐 수도 있었다.

(하부가 긁히는 순간 더 이상 바다로는 가지 못한다.)

“음··· 육지로 가는 건 그다지 안 내키네요.”

처음에는 육지로 갈까 생각이었지만, 이곳의 위치를 알고 나선 곧장 포기했다.

고인물이 괜히 고인물이 아니었다.

“호오. 지도를 읽을 수 있는 건가? 요즘 귀족가에선 꼬맹이에게 별걸 다 가르

치는군.”

“이 몸이 대단하다고는 생각 안 해 봤어요? 항법사 아저씨?”

딱히 어려운 지도가 아니다.

이 게임의 중급 랭커만 되어도 대충 해석을 할 수 있을 정도다.

전략 시뮬레이션에서 지도란 기본 중의 기본.

“그래도 전열함을 상대로 싸우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육지라고 전투가 없을까요?”

리안은 항법사가 보여 준 지도를 손가락으로 그었다.

다시 바다로 나가기 위한 경로.

부유함은 비행기가 아니다.

다닐 수 있는 길은 한정적이다.

당연히 그 경로들에는.

“요새가 세 개나 있네요.”

전함은 움직이는 요새다. 어중간한 요새보다 훨씬 강한.

이 배의 화포 수는 30문.

정확히는 한 면에 15문.

“겨우겨우 그 요새를 다 뚫는다 해도. 바다로 나갈 때쯤은 너덜너덜해지겠네.”

“그래도 전열함보다는······.”

작은 요새 3개와 고민할 정도로 전열함은 압도적이었다.

만약 넓은 바다에서 만났다면 몰라도 상대는 요새처럼 바다로 나가는 길을 막

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생각이지? 꼬맹이.”

부선장이 다가와 물었다.

“어쩌긴 뭘 어째요? 남자라면 직진이지!”

“그럼 반대야. 난 여자거든.”

그때 한 여자가 갑판 위로 올라오며 외쳤다.

육감적인 몸매에.

‘비키니?’

그 위에 커다란 혁대를 차고 있었다.

혁대에는 각종 연장들이 대롱대롱.

마도 기술자다.

“우리 배의 기관장. 실력만큼이나 지랄 같지.”

부선장의 속삭임에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딱 봐도 미친년이다.

“아이고 누님~”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손바닥을 비비기 모드로 들어갔다.

방구석으로 도피했던 원래의 성격과는 달리.

순간 깨달았다.

이 세계가 자신에게 훨씬 어울린다는 사실을.

고집보단 이해를 택한 자신을 보며.

“뭘 그리 섭섭한 말씀을. 남자는 직진 여자는 돌파라고 말하려던 참이었습니

다. 오늘부로 선장을 맡게 된 리안입니다.”

리안은 게임에서 보던 귀족들의 인사법을 흉내 냈다.

“아아. 통신관으로 들리던 애새끼 목소리가 네놈이었나 보네. 배가 비명을 질

러 대는 걸 수습하느라 힘들었지.”

“신세를 졌습니다. 그리고 애새끼까지는 아니고 질풍노도의 예비 성인쯤으로

봐 주셨으면 해요.”

“털은 제대로 났나 모르겠네.”

아직 2차 성징이 일어나지 않은 몸.

이 세계의 문화상 2차 성징(성인)이 아님이 큰 패널티임을 리안도 인지하고

있었다.

“애들은 금방 크는 법이거든요. 그래서 이 배는 좀 둘러봤어요?”

“예술 그 자체였지. 애새끼가 장난감 만지듯 개같이 굴려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한!”

“그 애새끼가 저는 아니겠죠? 헤~”

기관장이 노려보자 슬쩍 시선을 돌렸다.

더럽게 신경질적인 눈이다.

특정 취향의 남자들이 보면 환장할 얼굴이다만, 그쪽으론 면역이 적은 리안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설마 누구겠어. 사랑하는 앙코의 기관실을 씹창 내 놓은 게.”

“그래서 짜잔~!! 누님을 위한 선물이 여기에 있네요. 그 이름하여 고잉미샤호!!”

두 팔을 활짝 펼치자 그녀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런 선물이 아니었다면 내 직접 네놈을 바다에 처박았을 거다. 어디

서 이런 뻔뻔한 애새끼가 굴러온 건지··· 쯧.”

“굴러온 게 아니라 납치당한 겁니다만. 어쨌든 운항에는 지장 없단 말이죠?

이건 선장으로서 묻는 겁니다.”

“아직 매뉴얼을 다 익히진 못했지만, 어찌어찌 가능하겠어.”

리안은 그 말에 속으로 감탄을 했다.

이 배는 스랑 제국의 기술을 갈아 넣어 만든 최신 전함이다.

구조를 단기간에 파악했다면, 실력 있는 마도 공학자란 말이다.

해적선에 있기는 아까운 인물이다.

게임에서 이 정도의 배에 기관장으로 임명하기 위해선 선박과 마도 공학 능력

치가 각각 60은 넘어야 했다.

‘상태창! 상태창! 상태창!! 빌어먹을.’

상태창 같은 것이 없어 모르겠지만, 어쨌든 눈앞의 이 여자는 그 조건을 충족

했단 말.

“흐흐흐. 누님. 사랑합니다.”

“딴 데 가서 알아보렴. 난 소아성애자가 아니니까.”

“사랑은 안 받아 줘도 임무는 받아 주시죠. 선장으로 내리는 첫 명령입니다.

흐흐흐.”

“애새끼 호기심을 풀어 주기엔 내 몸이 너무 고급인데······.”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여자의 몸에 대해선 미뤄 두고. 잠시 나 좀 보죠.”

리안은 그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정도의 마도 공학자가 있는데, 굳이 빙빙 돌아갈 필요가 없다.

원대한 계획을 아낌없이 풀어냈다.

“하늘을 날 겁니다.”

“너 상상 이상으로 미친놈이구나?! 누가 어린 꿈나무가 아니랄까 봐. 후~ 뭔

가를 기대한 내가 바보지.”

“실현이 가능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미친놈이 아니라 천재라 불리는 거랍니

다. 창의적인 이 꼬마 선장에게 존경심을 좀 가지세요. 누님.”

리안의 입은 실실 웃고 있었지만, 눈은 진지했다.

세상을 피해 방에 숨은 히키코모리에게 현실이 된 이 세계는 너무 소중했다.

말은 쉬워도 조금만 실수한다면 이 세계는 끝장날 것이다.

“좋아. 성공한다면 까짓것 애새끼에게도 존경심을 안 가질 이유가 없지. 그래

서 실현 가능한 계획이 뭐지?”

“앙코라고 했나요? 원래 해적선.”

“그래. 나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눈 녀석이지. 누구 덕분에 아주 씹창이 난

내 애인 말이야.”

리안은 광기 어린 그녀의 광기에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누구라도 저 눈깔을 본다면 같은 행동을 했을 거다.

“그 앙코 형님께 의미 있는 멋진 최후를 만들어 드리는 건 어떨까요? 예를 들

어 재수 없는 스랑 제국의 전열함에게 엿을 먹이는 일을.”

“우리 앙코가 스랑 제국의 군함들에게 치욕적인 일을 많이 겪긴 했지. 그래서

그 계획이 뭐지?”

기관장의 눈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앙코 님은 스랑 제국의 전열함을 향해 유유히 돌진시키는 겁니다.”

“그걸 가만히 두고 볼 거라고 생각해?”

“아니죠. 상대에게는 나포당한 해적선인 척하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전열함 앞에서 배를 까발리며 뒤집히는 겁니다.”

“······?!”

기관장의 눈이 커졌다.

썩 괜찮은 생각으로 여겨질 것이다.

상대가 마나포로 공격하지 못하게 코앞에서 시야를 막아 버리는 것은 썩 괜찮

은 계획으로 여겨질 것이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비켜 간 뒤에는? 마나포는 배의 양쪽에 있다고. 우리가 우회해서 지나간다

면······.”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는 날아갈 건데. 상대가 생각할 시간을······.”

“뭐?! 잠깐. 후··· 난다고?”

기관장은 리안의 사고를 따라오지 못했다.

배가 날아간다는 것에서 이미 생각이 꼬인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상대가 대응하지 못할 거예요. 당연히 그 이후에 미끼로 포로를······.”

“아니. 난다는 건 무슨 말이야!”

그녀는 빠져나간다는 대전제보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더 흥분했다.

선장과 기관장의 차이랄까.

애초에 대전제의 성공이 ‘난다’에 맞춰져 있으니 그 부분을 해결 해야 하는

입장이니 그럴 수도 있었다.

“이 배의 출력은 아시죠?”

“당연히. 괴물이지.”

“그럼 오를 수 있는 경사각은요? 이 배가 수륙 양용이 가능한 건 아시죠? 딱

딱한 바닥만 있다면 뭐든지. 더군다나 곡선인 배의 아랫부분이······.”

“어어어······?!”

“육지의 언덕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해요. 아무리 전열함이 3층 갑판

구조라 높다 해도 중간에 무언가 있다면 타고 넘을 만한 게 있다면······.”

“젠장. 너 정체가 뭐야?! 가능해. 충분히 가능해. 미친. 이딴 정신 나간 생각

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 거지?”

당연히 리안이 창의력이 높은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그저 고인물이라 알고 있을 뿐.

“잠깐. 배는 누가 뒤집을 건데?”

이 또한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

“그건 마법사 아저씨에게 물어보면 되죠. 딱히 먼 거리는 아니고. 우리 마법

사 아저씨가 2서클이니 해결책이 있을 텐데요?”

“잠깐만··· 있어. 몇 가지 물품을 조합하면······.”

확실히 눈앞의 비키니 차림의 정신 나간 여자는 능력자였다.

대충만 말해 줘도 알아서 그 방법을 떠올렸다.

사실 리안은 그 디테일한 방법 따위는 몰랐다.

그저 게임에서 대략 어떤 식으로 했다더라 정도만 알고 있을 뿐.

”그보다 누님은 이 배의 출력 리미트나 풀어 주세요.”

“리미트를 풀어? 그게 쉬운 줄 알아? 최신형 마법 전함의 코딩이 얼마나 복잡

하게 꼬아 놓은··· 그보다 진짜로 한다고?!”

경악하는 그녀와 달리 리안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가짜로 합니까? 착륙할 때 충격을 완화도 해야 하니까 기동력뿐만 아니

라 부유력도 신경 써 주세요.”

“하··· 리미트를 풀면 ESP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자세 제어가 열 배는 힘들어

져.”

ESP는 배가 균형을 잃고 바다에 처박히지 않게 해 주는 장치.

위급 시에 개입을 해 준다.

물론 보조 장치일 뿐 ESP의 유무 따위와 상관없이 초짜가 조타를 잡으면 배는

십중팔구 1분 안에 바다 위에 꼬라박겠지만.

“나 같은 에이스는 ESP가 오히려 조타에 방해 된다구요. 조타석에서 on/off

할 수 있게 개조해 줬음 좋겠네요.”

“이런 미친 애새끼를 선장으로 모시게 될 줄이야. on/off 스위치는 부품이 없

어 당장에 힘들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얘들아! 일이다. 움직여!!”

그녀는 자신의 부하들을 데리고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꼬맹이!”

기관장과의 면담이 오래 걸리자 부선장이 찾아왔다.

“저 정신 나간 여자가 움직이는 걸 보니 뭔가 있긴 있구나.”

“못생긴 부선장님도 선장에 대한 존경심이 필요할 것 같네요. 일단 포로들을

포박해서 갑판에 대기시키세요. 한 방에 바다에 빠뜨릴 수 있게.”

과연 자부심이 높은 스랑 제국이 포로가 있다고 해서 공격을 하지 않을까?

다만 상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면? 더군다나 충격적인 무언가를 보

여 준 직후라면?

“미친!! 크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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