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005
“씨발.”
‘좆됐네.’
다짜고짜 욕을 내뱉는 리안.
어린아이의 표정이라고 하기엔 너무 험상궂게 변했다.
하고많은 영지 중 하필이면 레온이라니.
정말 코가 막히고 귀가 막혔다.
레온 백작령이 속한 곳은 브루타뉴 공작령.
그곳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심각한 내전이 벌어진다.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다.
그것도 모자라 레온 백작령도 정상은 아니다.
레온 백작령의 가신 구도는 상당히 복잡하다.
총 세 개의 가신 가문이 있었는데, 그중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무관장
케리시안.
문제는 아까 전 자신의 명령으로 뚝배기가 날아가 버렸다.(마법사의 그리스
마법으로 인해)
그가 없다면, 백작위를 승계받는다고 해도 다른 가신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백작 부인의 편에 서서 자신을 죽이려 했지만,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귀족
의 사정이란 거다.
그나마 믿을 만한 자였고. 살아만 있었다면, 어찌어찌 통제가 가능할 텐데···
죽어 버렸다······.
이대로 백작위를 승계한다면?
세 가지의 선택지 아니 선택‘살’이 남는다.
독살, 피살, 자살.
“하······.”
답이 보이질 않는다.
더군다나 지금 스랑 제국의 함선까지 조져 놓은 상태다.
브루타뉴 공국은 스랑 제국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위치.
돌아간다 해도 정치적 부담감이 적지 않다.
멀쩡히 포로들을 돌려준다 해도 제국에서는 적지 않게 자존심이 상할 터.
‘무릎을 꿇고 빌어라도 볼까······.’
아마 용서해 줄 확률은 제로에 가깝겠지.
“이거 이리된 거 싹 죽여 버리고. 우리랑 같이 가는 게 어때? 꼬맹이. 상대는
스랑 제국이라고. 브루타뉴 공국의 백작 따위는 기침 한 번이면 끝장이라고.”
알고 있다.
스랑 제국 귀족들의 대부분과 내 관계가 험악으로 바뀔 예정이다.
거기다가 돌아가 봐야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상황도 개판이다.
만약 게임이라면, 일주일 접속 불가 페널티를 감수하고서도 스토리를 다시 시
작하는 것이 나았다.
어차피 성장은 스토리 반복 클리어하고 그 성장을 바탕으로 PvP를 하는 형태
기 때문에 크게 타격도 없다.
더군다나 유료 아이템을 쓰면 페널티를 없앨 수 있다.(스타팅이 랜덤이라 핵
과금 유저들은 스토리를 새로 시작할 때마다 리세마라를 한다.)
어쨌든 최악의 난이도다.
그렇지만.
아무리 리안 스스로가 이 세계를 게임이라 세뇌하고 있다지만, 게임이라고 하
기엔 다른 점이 있었으니.
콱 “죽어 버릴 수도 없고··· 음?”
그때 머리에 반짝하고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가 죽어 버리면 가장 곤란한 것은 누구일까? 하고.
아까부터 부선장이 꼬드기고 있기도 했다.
자살 소동이라도 벌여서 주도권이라도 벌려야 하나··· 라고 생각하는 도
중······.
쿵!!!
파도에 밀려 배가 흔들렸다.
두 배가 단단히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서로 비켜 나가며 작은 충격이 일어난
것이다.
“으아아아! 씨발!! 떨어진다! 죽는다!!!”
죽을까? 라고 생각만 한 거라고!
죽기 싫었다.
개같이 꼬인 상황이라도 원래 세상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세계다.
돌아간다 해도 루저일 뿐.
“뭐··· 뭐야! 미친!!!”
“실성을 한 건가?”
“처음부터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긴 한데······.”
해적들은 리안이 바다에 빠지는 걸 멀뚱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다만··· 몇몇 머리가 돌아가는 이들은 급격하게 얼굴이 어두워졌다.
특히 부선장은.
“빌어먹을 꼬맹이! 하필이면 이때!!!”
갑판에서의 백병전.
마총에 맞거나 칼에 찔려 바다에 빠진 이들이 많다.
붉은 피가 바다에 스며들었다.
그 비릿한 냄새에 끌린.
샤아아아!!!
바닷속에 검은 무언가가 함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 상어.”
어이없게 난간에서 떨어진 리안도 보았다.
파도를 가르며 다가오는 거대한 지느러미를.
“좆됐다.”
이미 몸은 뉴턴의 운동 제1 법칙 관성에 의해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중력에 의해 자유 낙하를 시작했다.
풍덩!!
“어푸푸푸푸!!!”
거기다 잊고 있던 중대한 사실이 떠올랐다.
“어푸푸푸!! 어푸푸푸푸······.”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신을 구해 줄 사람이 있을까?
상어의 위협을 무릅쓰고 말이다.
아쉬운 대로 자신이 없다 해도 해군의 조타수를 위협해서 이곳을 벗어나는 방
법도 있다.
“빌어먹을 꼬맹이!!”
첨벙!
그때 단검 한 자루를 입에 물고 바다로 뛰어든 이가 있었다.
“푸~아~~! 부선··· 장?”
아마도 정령갑옷은 쿨 타임일 것이다.
아무리 마나를 잘 다루는 전사라 할지라도 바닷속에서 맨몸으로 상어를······.
“하다 하다 별짓을 다 하네.”
부선장은 리안의 앞으로 빠르게 헤엄쳐서 대기했다.
피 냄새에 흥분한 상어에게 첨벙거리는 작은 리안은 아직 죽지 않은 싱싱한
먹잇감으로 보일 것이다.
샤아아아!!!
상어는 빠르게 다가왔다.
“얼간이 놈들!! 뭘 지켜보고 있어?!!”
부선장이 소리쳤다.
탕! 타다당!!
갑판에 위에서 지켜보던 몇몇 해적들이 상어를 향해 마총을 쐈다.
파다다닥!!
마총에 맞았지만, 움찔거릴 뿐 속도를 죽이지 않는 상어.
일반 상어가 아닌 철갑을 두른 상어였다.
마총 한두 발에 물러날 녀석이 아니다.
“젠장!!”
결국 상어는 부선장을 덮쳤지만, 그는 중급 전사다.
그는 한 손으로 상어의 코를 부여잡고 입속으로 들어가는 걸 버티며 다른 손
에 쥔 단검으로.
푸욱!
그대로 눈 아래를 찔렀다.
단단한 철갑상어의 피부가 찢어지며 바다가 피로 물들었다.
눈을 찌르려 했지만, 아쉽게도 빗맞았다.
파바바바박!!!
놀란 상어가 파닥거리더니 급히 몸을 돌려 도망갔다.
녀석의 눈 아래에 꽂혀 있는 단검의 보석이 햇빛에 반짝거려 위치를 알 수 있
었다.
반짝임이 점점 멀어진다.
“제기럴··· 우리 가문의 인장이······.”
아무리 약한 부위인 눈 주변이라 해도 웬만한 검으로는 제대로 박히지 않았을
거다.
거기다가 부선장이 중견급 대전사라 해도 눈을 정확히 찌르는 것은 힘든 일이
었다.
리안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비싼 보검을 잃은 샘.
“어푸푸푸! 어푸푸!!”
“멍청한 꼬맹이. 수영도 할 줄 모르는데 바다로 뛰어든 건가? 영악한 꼬마 놈
의 목숨값이 더럽게 비싸네.”
물속에서 저리 발버둥 치는 것을 보니 진짜로 죽으려고 한 것이 아님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당연히 리안이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 자살 소동을 벌였다고 오해할 수밖에.
‘아무도 찍소리를 못하겠군.’
덥석!
리안을 잡아챈 선장은 그대로 배 위로 끌고 올라갔다.
해적들이 밧줄을 던져 준 터라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첨벙! 첨벙!!
조금만 늦었으면 구하지 못할 뻔했다.
어느새 배 주변으로 가지각색의 상어가 몰려들었다.
대부분 겁이 많은 일반종이었지만, 먹을 게 남지 않았다면 살아 있는 사람이
라도 공격할 확률이 높았다.
피 냄새에 잔뜩 흥분을 한 상태기 때문에.
“꾸에에엑!! 콜록콜록!!”
갑판에 대자로 누운 리안에 기침을 했다.
마법사가 다가가 기력 회복을 시켜 주는 마법을 곧장 시전해 줬다.
따뜻한 느낌이 몸을 감쌌다.
뭔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론 좋았다!!
완벽한 자살 소동!
이 세계가 게임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만,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선
최소 백작령이 필요하다.
그런데, 작위를 승계받고 안정화까지 헬급 난이도.
상대적으로 쉬운 길을 놔두고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 쉬운 길이란?
해적들은 자신에게 형식이나마 선장 자리를 주려고 하고 있다.
놈들은 해적 주제에 정령 갑옷으로 무장한 대전사가 무려 다섯이나 있다.
거기다가 움직이는 성이라 불리는 부양 전함도 한 척 얻은 시점.
이 정도면 웬만한 백작령의 전력과 맞먹는다.
기회가 된다면, 영지를 먹을 수도 있다.
그런 존재를 플레이하면서 보았다.
극초반에 등장하는 노르드인들.
대충 바이킹 정도로 보면 된다.
잉글슨 왕국의 북부 일부가 그들에게 먹힌 상태이고 그 때문에 과거 아일리
왕국령에 대한 지배력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만약 지금 왕이 승계를 제대로 못 하고 죽는다면? 아주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는 거다.
두 개와 작은 제도들로 이루어진 브리튼의 땅에 춘추전국시대가 초래한다.
이런 상황은 열 번 플레이하면 두 번은 벌어진다.
‘가만··· 내 외가가 과거 아일리 왕국의 땅의 귀족이라고 했지?’
워낙 고인물이라 이 세계에 웬만한 놈들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리안 레온
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게임을 시작하는 시점에 이곳에서 이미 뒈져 버려서 그런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리안 레온이며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레온 백작령에 대한 압박 명분과 과거 아일리 왕국의 영지에 대한 미
압박 명분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적이 되어 영지를 먹어도 종교 지도자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으
며, 문명 국가들의 인정도 받을 수 있다.
해적의 장점과 백작 후계자의 장점을 모두 가지게 된 것이다.
“흐흐흐흐. 으흐하하하하!!!”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웃는 리안.
“바다에 빠지더니 실성했어.”
“물귀신에게 홀렸나 봐.”
“아아. 바다의 신 메살이시여······.”
해적들은 리안에게서 모두 한 발자국씩 물러났다.
그렇지만, 다급한 쪽은 상황을 알고 있는 해적 간부들이었다.
그들은 보았다. 리안의 능력을.
리안이 이대로 미쳐 버리면, 올몬 해적단은 그대로 붕괴한다.
“저··· 저기. 선장? 정확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살고 봐야지?”
“그래. 그래. 오크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단 말도 있잖아.”
“머리 아픈 귀족이 되는 것보다 우리와 대해를 누비는 것이 어때?”
선교에 있던 해적들이 리안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몰라. 레온 백작령으로 돌아갈 건데.”
“들어 보니 돌아가도 곤란한 상황 같던데?”
그때 지도를 살피고 있던 항법사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가 뭘 알아.”
“내가 해적이지만, 귀족들에 대해서 좀 알고 있지. 돌아가면 죽을 거야. 그러
지 말고 우리들의 선장이 되어 준다면 작위 계승을 도와주지. 어때, 부선장?”
그의 말에 부선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만.
“150골든.”
“뭐어?!”
“꼬맹이. 네놈이 어려서 아는지 모르겠지만, 150골든에 우리를 영지전에 밀어
넣는 것은 싸게 먹히는 것이라고.”
골든은 화폐라기보단 화폐가 다른 국가끼리의 거래를 위해 만든 순수 금 무게
를 기준으로 한 단위라고 보면 된다.
금화마다 금 함량이 달랐기에 이런 요상한 화폐단위가 생긴 것이다.
150골든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평균적으로 백작령의 일 년 순수익이 대충 100골든 정도다.
“언제는 해적 선장이라며.”
“꼬맹이 네가 작위를 계승하는 데 성공하게 되는 순간 더는 우리의 선장이 아
니다. 우리는 해적. 네 녀석이 백작위를 계승한 뒤에는 바다로 돌아가야 할
몸. 그 대신 1년간 친위대를 해 주지.”
나쁘지 않은 조건이긴 하다.
용병의 하루 일당이 대략 2페니다.
(1실령=12페니. 1골드=120페니. 1골든=1200페니)
300명의 용병을 1년간 고용하면 182.5골든이 나오니 이득이었다.
그런데 여기 해적들의 숫자가 모자라긴 해도 정예인데다가 전사가 5명이나 된다.
나쁘지 않다.
“약탈물의 분배 비율은?”
“선장 30. 간부 20. 운영비 20. 나머지 30은 동등하게 가른다. 운영비로 150
골든이 모이는 순간 언제든 용병이 되어 주지.”
“좋아. 접수했어. 어쨌든 내가 백작이 되기 그전까진 선장이란 말이지? 그 말
모두 인정해?!”
리안이 주변을 돌아보며 외쳤다.
일반 해적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지만.
“환영합니다. 선장!”
“선장. 잘 부탁해.”
“좋은 선택이다. 앞으로 선장으로 모시지.”
“꼬맹이를 선장으로 모시는 건 또 처음이네.”
“선장 권한은 확실하게 지켜 주지.”
선교에 있던 인물들은 내 능력을 봤기에 만장일치.
“뭐?! 꼬마가 진짜 선장이라고?”
“에잇! 몰라. 부선장이 선장이라잖아.”
“그럼 뭐. 인정해야지.”
“일단 모르겠다. 팬티 벗고 소리 질러!!”
“와아아아아!!!”
“빅토리!!”
갑작스러운 선장 선포에 해적들이 환호를 질렀다.
겸사겸사 승리에 대한 함성이기도 했다.
“그래서 선장.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부선장의 말에 해적들의 시선이 주목되었다.
그들에게 리안의 나이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꼬마라 할지라도 선장임이 중요했다.
배 위에서 선장의 명령은 거의 절대적이다.
스릉!!
해적들이 무기를 점검한다.
만약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면 모두 바다로 던져 버릴 거다.
지금 배 아래는 상어들이 파티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리안!! 수틀려서 도망갈 모양인가 본데! 그렇게 안 될 거다. 우릴 죽이면 곤
란할 거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급해진 것은 백작 부인이었다.
당장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해 왔다.
“이런··· 닥쳐!!!”
그때 조용히 포박되어 있던 군함의 함장이 그녀를 저지하기 위해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자신의 인질로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정보를 뱉었다.
“이 제도의 입구에 전열함이 대기하고 있다!! 너희가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