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103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28)>
이번 건 좀 충격이 왔다.
온몸이 전기안마 받은 것처럼 찌릿거렸다.
“크… 윽.”
오랜만에 고통의 신음을 내뱉어 봤다. 그런 자신 자체가 약간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상상 이상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으… 흐윽! 아, 아파… 아프다고!
마탄의 폭우가 끝나고 폭연이 가라앉았을 때, 아스라한 눈앞에서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마녀 한 마리가 포착됐다.
맨 처음 내 공격이 적중했던 마녀. 플루트의 킬라리스였다.
―아흐으으…!! 아파아……!
킬라리스는 뱃가죽을 뚫고 나온 장기들을 두 손으로 그러모았고. 허겁지겁 뱃속으로 우겨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당연히 부질없는 짓거리는 곧 실패했고. 그녀는 곧 목 놓아 펑펑 울었다.
―어, 어떡해. 이거… 어떡하냐고!! 돌아가질 않아. 사, 상처… 아아아! 흐아앙……!!
마치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별안간 하늘을 향해 꺼이꺼이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추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저놈들의 시간 마법은 만능이 아니지.’
되감기가 가능한 시간은 지극히 짧고. 또한 생명체의 시간을 되감는다 해도, 이미 입었던 상처가 회복되진 않는다.
그리고 그걸 알기에 나는, 일단 한 놈부터 확실히 다운시키는 전략을 사용한 거다.
‘치명상을 회복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희생이 필요하지.
아마 놈들은 아까 ‘그것’을 다시 사용하려 들 터.
옆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다른 두 마녀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듯하다. 그녀들이 화들짝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아… 키, 킬라리스.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디리링!
재차 주위의 시간을 빨아들이는 합주가 시작되었다.
장중하게 공기를 울리는 선율이 빠르게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이번엔 맨 처음의 합주보다 훨씬 격렬하고, 강렬한 곡조였다.
―우리는 셋이서 하나잖아?
―다시 고쳐줄게. 할 수 있어……!
전조를 느낀 나는 이미 침묵 스킬을 사용해 방어했지만.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아까의 지옥도가 다시 한번 이곳에 재림한다.
“끄아아아악!!”
“아아악! 그, 그만… 그만해애애!!”
“살려줘!! 제발!!!”
처절한 비명과 함께 하나 둘, 재가 되어 사라져가는 수많은 사람들.
나는 애초에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애새끼처럼 질질 짜고 있는 마녀 년에게 시선을 붙박은 상태였다.
피식. 전에 없이 싸늘한 조소가 떠올랐다.
“좋겠네.”
덮어놓고 쳐울면 해결해 줄 사람이 옆에 있다니.
내가 어렸을 때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천성이 무뚝뚝하고 냉혈한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부럽구만.”
덕분에 난 웬만하면 울지 않게 됐다. 울어도 해결될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래서 뭐든 울어서 해결하는 착즙기 새끼들. 좀 싫어한다.
―아, 아아… 도, 돌아온다. 돌아오고 있어!
슈르륵, 슈륵.
내 기분이야 어쨌든. 킬라리스의 상처는 거짓말처럼 아물기 시작했다.
장기와 핏줄기가 스멀스멀 스스로 움직여 뱃속으로 들어갔고, 뻥 뚫렸던 복부의 살가죽도 꾸덕꾸덕 뭉치며 원상복구 되었다.
―아아, 다, 다행이야.
―킬라리스. 정말 다행이야……!
두 마녀가 회복된 킬라리스를 보고 안도한다. 우거지상이었던 킬라리스도 그제야 다시 밝은 얼굴이 되었다.
글쎄. 다행인가? 난 그건 잘 모르겠다.
“스파이럴 블러드.”
놈들이 한없이 방심하고 있는 지금.
나는 재차 5연속 비약을 사용해 순식간에 접근했고, 딜레이가 적은 스킬 중 최강의 스킬을 때려 박았다.
푸화아악!
매서운 혈사포에 휩쓸린 건 바이올린의 마녀. 다포르네였다.
―꺄아아아악!!
콰드드득!
다포르네의 하체가 붉은 혈폭풍에 집어삼켜진다.
그대로 잘게 분쇄되어, 배꼽 아래부터가 휑하게 뜯겨나갔다.
너덜거리는 척추뼈가 아슬아슬하게 덜렁거리는 게 보였다.
―아, 아… 아아아……!!
―안 돼. 다포르네, 안 돼……!!
디리링!
나머지 두 마녀들은 다시 패닉에 빠졌다. 서둘러 각자의 악기를 들고 재생의 노래를 연발하기 시작한다.
쿠르륵, 쿠륵!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다포르네의 하체도 순식간에 재생된다.
“그러시든가.”
이번엔 채 안도할 틈도 주지 않았다.
푸화악!
내뻗은 장검형 사복검이 마녀의 등가죽을 꿰뚫었다.
가슴팍을 비집고 튀어나온 사복검 끝자락에는, 아직도 생생하게 맥동하는 심장이 있다.
―끄… 그륵, 크가아악!!
단숨에 심장을 적출당한 건 리라의 마녀. 헬라이트다.
세 마녀가 한 번씩. 차례로 치명상을 당했다. 이번에도 멀쩡한 두 마녀는 숨을 크게 삼켰고, 허겁지겁 악기를 들어올렸다.
―안 돼… 주, 죽으면 안 돼!!
―살려내. 살려야 해… 하, 할 수 있어. 지금이라면!!
죽이고. 살려내고.
또 내가 죽이고. 또 그녀들이 살려내고.
그러면 다시 한번 처죽이고. 그리고 다시 한번 살려낸다.
―아아… 아아아아!!
―안 돼. 죽고 싶지 않아… 안 돼애애애!!
마녀들의 삶에 대한 집착은 광증 수준이었다.
셋 중 하나가 치명상을 입은 순간 눈깔이 돌아가 버린다.
살아야 한다. 살려내야 한다. 그것 외엔 다른 생각조차 못하게 되고, 오직 자기 자매들을 살려내는 데만 혈안이 돼버렸다.
‘이미 끝났어.’
그러니까 첫 치명상이 터진 순간. 이 전개가 이미 약속되어 있었던 거다.
나는 이제 이것을 무한정으로 반복할 것이다. 언제까지?
‘알아서 살아남길 포기할 때까지.’
불사신을 죽이려면 정신을 먼저 죽여야 한다. 불사신이 스스로 죽게 할 수밖에 없다.
불사신인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죽이고 살리기의 지리멸렬한 반복.
그 와중에 가끔씩 날아오는, 증오에 찬 마녀들의 반격.
―죽어, 죽어!! 죽어어어어!!
―이… 망할 인간! 왜!
―왜! 우리를 방해하는 거야!!
―왜!!! 왜애애애애!!
투두두두!!
되감기에 되감기에 또 되감기. 동일한 시간대가 몇 번이나 겹쳐진 광탄들이 일제히 내게 쏟아진다.
그러면 나는 사복검을 늘어뜨려 숨을 한껏 삼키고.
“느려.”
로망 넘치는 중2병 대사를 한 번 읊어준 다음. 곧장 디스펠 스킬을 발동해 신체의 감속을 해제했다.
빠르게 주위를 살핀다. 빈틈. 없다. 그렇다면.
‘쳐낸다. 전부.’
키기기기긱!!
전후좌우로 일사불란하게 휘둘리는 사복검의 궤적. 나를 향해 날아오던 광탄들이 그 궤적에 따라 속절없이 흩어져 내렸다.
아름다우리만치 절제된 움직임. 그리고 포악하리만치 예술적인 방어다.
‘왜지.’
무아지경으로 광탄을 튕겨내는 와중. 의문에 휩싸였다.
이 느낌은 익숙했다. 전에도 한 번 느껴본 적이 있는 감각이었다.
‘왜 이렇게 쉬워졌지.’
10차 붕괴의 <시간의 마녀>는 전에도 싸워봤다.
원래라면 이 광탄의 포화에 온몸을 두들겨 맞았어야 정상이다. 칼질로 막는 데에 한계가 와서 배리어를 사용하고, 그마저도 찢어져 육체의 내구력으로 나머지를 버틴다.
그러면 나는 리스토레이션으로 순식간에 몸을 수복한 다음. 폭연을 꿰뚫고 마녀의 배후를 후려친다.
‘분명, 이런 계획이었는데.’
계획이 틀어졌다.
예상보다 내가 훨씬 강해서였다.
광탄이 전부 보인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느껴진다. 휘두르는 사복검은, 마치 내 몸의 일부가 된 듯하다.
‘내가 성장했나?’
아니. 그럴 리가.
내 성장 한계점은 진작에 찾아왔다.
전과 똑같다. 이브… 혈천갑의 스탯 보정이 전보다 강해진 것이다.
‘이브가 성장할 때만 강해지는 게… 아니었구나.’
이브가 성장하면 그 보상 개념처럼 스탯 보정이 더 붙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스킬만 그런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광대를 사냥할 때의 나보다, 그리고 직전 붕괴 때의 나보다도 분명히 강했다.
‘이브와의 호감도가 더 늘어났다는 증거인가.’
아니면 그냥 시간이 지날 때마다 점점 더 강해지는 건가.
어느 쪽이든, 강해졌다면 좋은 소식이다.
“생겼다. 빈틈.”
나는 중얼거렸고.
투하악!
스킬 ‘블러드 스트림’과 ‘비약’을 동시 발동. 순간 속도를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수없이 방어한 끝에 드디어 찾아낸 비좁은 틈바구니, 그곳을 비집고 치솟아 오른다.
“이제 좀, 뒤져.”
무형검은 사용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내가 수십 번째 배후를 점할 때까지. 마녀들은 끝내 나의 템포를 쫓아오지 못했다.
콰자작! 휘두른 사복검은 킬라리스의 허리를 대각선으로 찢어발겼다.
―끄아아! 카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이젠 짐승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괴성이었다.
마녀들도 당연히 학습이란 걸 한다. 이젠 자매 중 누군가 토막 나도, 그녀들은 눈 하나 깜짝 않는다.
―괜찮아. 괜찮다고. 아직 괜찮아……!
―살릴 수 있어. 살 거야. 우리는, 살 수 있어……!
―돌리자. 시간을. 한 번 더.
―빨리. 시간이 없어……!
멀쩡한 마녀들은 익숙한 행색으로 악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진저리치듯 중얼거리며, 수십 번이나 반복된 노래를 다시금 연주한다.
수십? 수백? 잘 모르겠다. 아무튼 엄청나게 반복된 행동인 건 확실하다.
―어어… 이상해.
―이거, 이상해……!
그리고 지금. 갑자기 마녀들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왜? 왜 이러는 거야?
―돌아가지 않아. 어째서.
마녀들이 당황했고. 더욱 격렬하게 연주를 이어갔다.
그러자 어느 정도 상처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회복은 지나치게 더뎠다.
―끄… 아. 카하악……!
킬라리스가 죽어가는 신음을 흘렸다.
후두두둑.
그녀의 잘려나간 환부에서 장기와 핏덩이가 쏟아져 내린다. 그럴 때마다 다른 마녀들의 표정은 초조함으로 물들었다.
―시간이, 계속… 흘러가!
―어떡해. 시간이 흘러가버려! 흘러가고 있어……!
―죽을 거야. 죽어버릴 거야!!
―아아, 안 돼. 싫어…! 살아야 해! 죽으면, 안 돼!!
왜 갑자기 회복이 느려졌을까?
간단하다. 마녀들의 활력재생은 타인의 생명의 시간을 희생하는 것. 다시 말해 제물을 담보로 한다.
그 제물. 반경 50km 일대의 사람들이, 남김없이 죽어버린 것이다.
―아… 아아. 이젠, 싫어.
그리고 그 순간.
던전의 종식을 결정짓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아파… 이젠, 더는… 싫어. 죽여줘. 차라리, 죽여… 제발!!
킬라리스 본인의 처절한 넋두리였다.
그녀는 애원하듯이 마녀들을 쳐다봤고, 시뻘건 선혈과 함께 힘겹게 말을 토해냈다.
절박한 행색에 우뚝, 다른 마녀들의 연주도 덜컥 멈춰버렸다.
‘바로 지금.’
그리고 나는 연주가 멈추는 이 순간을 노렸다.
투학! 최후의 도약을 감행했다. 신형이 쏜살같이 마녀들을 향해 쏟아졌다.
―…아.
―아아.
마녀들은 이번에 드디어 내 접근을 눈치챘다.
그러나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반응하지 않았다.
“…죽어.”
쉬리리릭!
체념이 깊게 어린 마녀들의 면상을 향해. 사복검이 용서 없이 쇄도한다.
―으극.
―악.
―컥.
푸화악!
왼쪽부터 오른쪽 시야 끝까지, 장대한 진홍의 횡베기가 작렬했다.
마녀들의 단말마의 외마디 비명이 울리나 싶더니, 쩌적. 차례차례 얼굴을 가로지르는 시뻘건 혈선이 그어졌다.
―시간. 이.
―다시…….
―흘러가고, 있어.
주르륵, 철퍽.
예리하게 잘린 세 개의 머리통.
혈선을 따라 미끄러져, 바닥을 향해 볼품없이 추락한다.
[제59던전 ‘시간의 틈새’의 던전 마스터, ‘시간의 마녀 세 자매’가 세계와 단절되었습니다.]
다포르네, 킬라리스, 그리고 헬라이트까지.
모두 두부(頭部)를 상하로 절단당한 채, 한 순간에 절명했다.
[게이트가 힘을 잃고 소멸합니다. 던전의 붕괴가 종식됩니다.]
시선을 멀찍이 들어 주변 풍광을 가만히 살폈다.
을씨년스러운 침묵. 아무것도 없다. 살아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시체조차 남지 않았다.
“…쯧.”
대충 백만은 넘게 몰살당했겠지.
머리로만 대충 가늠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