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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05화 (205/235)

205화

<103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 (27)>

게이트의 균열은 회차 후반부로 갈수록 규모가 커진다.

마치 붕괴할 던전의 난이도와 규모를 대략적으로 보여 주려는 듯이.

1차 붕괴 땐 학교 운동장만하겠다 싶었던 허공의 균열. 이제는 어느새, 직경 수 킬로에 달하는 거대한 구멍이 되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야… 저, 저! 저거!!”

지금은 서울의 어디에서도… 아니.

우리나라의 어디에 있어도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당연히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만큼 압도적인 광경이라는 소리다.

“게, 게, 게이트다……!”

“또야…! 또, 또 게이트가!!”

무너져 내린 도시의 상가와 민가들 사이.

피난과 생존을 위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생존자들이 하나씩 기어 나왔다.

시선은 모두 하늘로 향해 있고. 다들 공포에 젖어 두런거렸다.

“으아아아! 도, 도망쳐!!”

“이런 X발! 진짜 지긋지긋하다고!!”

“살려줘… 아니, 차라리 죽여줘! 이젠, 정말 다 싫어어어!!”

“주여. 전능하신 아버지……!”

그 와중에 살겠다고 허겁지겁 도망가는 사람, 모든 걸 포기하고 허허실실 웃는 사람, 그대로 주저앉아 현실부정을 외쳐대는 사람.

그리고 각자의 신을 찾아 부르짖는 사람도 더러 있다.

“오오…! 봐라! 선지자님들의 말씀대로다! 또 다시 던전이 붕괴했다고!!”

“아아, 믿습니다. 던전 신님, 굽어 살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실성을 넘어 던전을 찬양하기 시작한 일부 광신도들까지.

애덤 크로스를 괴롭히던 광대는 내가 처리했다. 아마 저들이 찾는 던전 신은 내가 알던 그 ‘던전교’의 신과는 다르겠지.

그럼에도 세기말 사이비 종교는, 어김없이 생긴 듯하다.

‘…그만큼 발생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건가.’

많은 것이 변한 회차였지만 저것들만은 변함이 없다. 세기말 종교의 탄생은 육사도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확정성이 높은 사건인 듯하다.

뭐… 곱창 난 거리의 풍경에 걸맞은, 곱창 난 군상들이긴 하다.

“음.”

나도 거리에서 시선을 떼고 하늘을 쳐다봤다.

어느새 거대한 공허를 비집고 흘러나온 인형(人形)이 셋. 세 명의 여인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아아. 안 된다.

―이대로는 안 돼…….

그것은 노파였다.

성성한 백발이 허공에 흐드러졌고, 탄력을 잃은 피부는 축 늘어져 마치 고목나무 같다. 추하게 늙은 외관은 판화로 찍어낸 양 똑같았다.

―시간이,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어…! 빠져나가고 있다……!

―죽을 거야. 이대론, 죽고 말 거야! 아아, 안 돼!!

여인 셋은 각기 다른 악기들을 연주하고 있었다.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바이올린, 플루트, 그리고 리라였다.

세 여인의 합주가 이어진다. 들려오는 곡조는 구슬프면서도 장중하다.

―후회… 하고 싶지 않아.

―이런 최후는 싫어. 절대로 싫다고.

―받아들일 수, 없어……!

그리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소리들이 그 안에 섞여 들린다.

여인들의 후회에 찌든 넋두리였다.

‘다포르네. 킬라리스. 헬라이트.’

나는 세 노파의 이름을 차례로 상기했다.

바이올린이 다포르네. 플루트가 킬라리스. 그리고 한손용 하프인 리라를 든 노친네가 헬라이트라는 이름이다.

삐빅. 가장 먼저 왼쪽의 다포르네부터 상태창을 스캔했다.

[몬스터 정보]

[명칭: 시간의 마녀 다포르네]

[체력: 74 마력: 121]

[힘: 12 민첩: 24 지능: 73]

[상세: 제59던전 ‘시간의 틈새’의 던전 마스터 중 하나. 각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당하는 시간의 파수꾼. 영원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한다.]

‘상태창은 한 놈만 봐도 충분하지만…….’

어차피 세 여인은 모두 동일한 스펙이다. 사실상 동일 개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세 여인을 모두 현자의 눈으로 스캔했다.

‘셋 다 똑같군.’

그것까지 확인한 뒤에야 좀 안심했다.

나는 철저하거나 꼼꼼한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디테일은 아예 강제적으로 습관을 박아버렸다.

스륵. 나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상태창을 물려버렸다.

“그러면 공략법도… 똑같겠지.”

혹시나 이런 사소한 부분을 놓쳤다가 나중에 뒤통수 맞으면, 그로 인해 수아나 내가 죽고 리트라이를 하면, 그거만큼 억울한 게 없으니까.

파지직! 비어 있던 내 왼손 안에서 전광이 날름거렸다.

―되돌리자.

―다시 한번.

―가장 빛났던, 그 순간으로.

디리링.

리라가 선율을 연주한다. 그 뒤로 바이올린이 깔리고, 곡조에 맞춰 플루트가 구슬픈 음색을 내뿜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군. 나도 그에 따라 본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스킬 발동: 침묵의 장막]

쿠우웅!

묵직한 마력파동이 나를 중심으로 일대에 퍼져 나갔다.

반경 10미터 정도의 협소한 장방형 공간.

나와, 내가 휘두른 사복검의 최대 리치 정도의 영역이 침묵에 휩싸였다.

동시에 홀릴 것 같은 마녀들의 삼중주가, 지평선까지 닿을 기세로 퍼져 나갔다.

“뭐야. 이 소리……!”

“드, 듣지 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그리고 그 효과는 자명했다.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뚝, 그 자리에서 행동을 멈췄고. 이내 온몸을 마구 뒤틀며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아, 크학……!”

“끄아, 아아아악!!”

괴로움으로 부릅뜬 눈.

죽어가는 신음이 도처에서 흘러나온다.

“그르륵, 크극……!!”

“카학! 쿠하아악!!”

악기의 감미로운 삼중주에 비명의 합창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스르륵, 스륵. 바닥을 뒹구는 사람들의 외관이 시시각각 변해간다.

“뭐야… 왜, 이래!!”

“모, 몸이! 으아아아아……!!”

그들의 피부가 잡아 늘린 것처럼 쭈글쭈글해졌고. 머리는 하얗게 세며 눈에선 생기가 빠져 흐리멍덩해진다.

단순히 외관이 변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순식간에 늙어가고 있었다.

“하아… 카학, 학……!”

“사, 살려줘. 살려……!!”

푸스스!

사람들은 늙다 못해 곧 그 자리에 쓰러졌고. 회백색 잿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있던 자리엔 옷가지만이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을 뿐이다.

―아아. 그래. 그래……!

―이거야. 바로, 이거라고……!

그에 따라 마녀들의 외관에도 영향이 갔다.

풍성한 흑발과 흑안. 백옥 같이 매끈하고 허연 피부. 그리고 풍성하게 흐늘거리는 눈처럼 하얀 드레스까지.

마치 사람들의 생명력을 흡수한 듯, 그들은 반대로 젊어져 있었다.

“잘 빨았냐.”

스르륵.

깔아놨던 침묵 스킬을 해제했다.

마녀들과 가장 가까웠던 나였지만 외관엔 변화가 없다. 방금 주변에 깔아놓은 침묵스킬 덕분이었다.

‘노랫소리를 들으면 노화가 시작되지.’

그리고 일단 한 번 노화가 시작되면, 그 뒤론 무슨 수를 써도 막을 수가 없다.

죽을 때까지 젊음을 빨리다, 그대로 끝까지 빨리고 사망해버린다.

“처먹을 땐 좋았겠지.”

파지지직!

왼손에 라이트닝 헬릭스, 오른손의 사복검에 벼락을 인챈트 했다.

파파팍!

우선은 견제용으로 원거리 마법부터 한 발.

“다시 뱉을 시간이다.”

그리고 투학! 푸른 섬광의 꼬리를 따라 나도 쐐기처럼 달려들었다.

시야가 온통 새하얀 번갯불로 명멸하길 잠시.

―너는…….

―무슨!

마녀들의 지척까지 쏟아져 간 순간, 드디어 놈들이 내 기척을 포착했다.

당황에 찬 탄성들이 일제히 쏟아졌고.

“죽어.”

쉬리릭!

나는 여느 때처럼 사복검을 늘어뜨려 놈들에게 휘둘렀다.

용서도 자비도 없는 쏜살같은 횡베기. 칼날 채찍이 시뻘건 궤도를 허공에 그린다.

정확히, 놈들의 목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놈이……!

―감히, 어딜!!

그러나 채채챙! 찌르는 금속음이 기습의 실패를 알려준다.

10차 붕괴까지 치달은 지금, 던전 마스터의 무력은 녹록치 않았다. 마녀들은 각자 꼬나 쥔 악기들로 내 공격을 가뿐히 막아낸 상태였다.

“쯧.”

혀를 차고, 곧장 허공도 걷어찬다.

콰쾅!

짓밟은 공기가 폭발하듯 내 신형을 밀어냈다.

그 추진력이 한계까지 달했다 싶은 순간, 나는 한 번 더 허공에서 도약했다.

‘비약.’

콰콰쾅!

그 과정이 세 번 더 이어졌다.

지그재그를 그리며 놈들의 시야를 교란. 한계 속도까지 가속된 신형은 마녀들의 배후에서 득달같이 쇄도하는 중이었다.

키리릭!

찰나의 순간, 마녀 하나외 신형이 교차했다.

“죽으라고.”

푸화악!!

어느새 장검 형태가 된 사복검 끝자락. 핏줄기가 힘차게 솟아나왔다.

내가 헤집고 지나간 플루트의 마녀. ‘킬라리스’의 상체에서 쏟아진 것이었다.

―끼야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후두둑!

단번에 관통된 킬라리스의 하복부에서 길다란 무언가가 흘러내려 축 늘어졌다. 선홍색 장기다발이다.

지구의 인간과 똑같은 색. 나도 모르게 멈칫한다.

‘한번, 물어볼까.’

그리고 그런 발상이 치고 들어왔다.

너희들은 무얼 실패했냐. 어떤 경위로 던전 마스터가 됐는가.

아마 기억을 잃었겠지만, 만의 하나가 있으니 물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슬쩍 입을 열었고.

―아… 아아! 킬라리스!

―언니를… 이, 새끼… 개새끼가아아!!

단숨에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두 자매를 본 뒤. 곧바로 계획을 변경했다.

그냥 죽이자. 저건 이미 말이 통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죽어! 죽어어어!!

여인들의 명칭은 <시간의 마녀 세 자매>.

그 닉값에 충실하기 위함인가. 그녀들을 중심으로 시간에 관한 마법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시간을……!

―허비시키지 말란 말이야!!

파지직!

내 일대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놈들의 시간은 한껏 가속되었다.

키키키킹!

수많은 공격 마법이 내 주위로 빼곡히 들어찼다. 주문의 영창시간도 가속 마법의 효과로 짧아진 것이다.

“……!”

콰쾅! 쿠과과광!!

수많은 광탄과, 악기로 만들어낸 형태를 가진 폭음들이 내 전신을 두들겨 댔다.

직전에 배리어를 둘렀지만 늦었다. 내게 적용된 감속 마법은 신체의 속도뿐만 아니라, 영창속도까지 앗아갔다.

‘괜찮아.’

혈천갑 덕분에 치명상은 없다.

그러면 아무 상관없다. 어디를 다쳤는지 파악할 시간도 아깝다.

꾸드득!

리스토레이션 스킬로 곧장 전신을 수복한 뒤. 나는 허공을 내달려 전방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스킬 발동: 디스펠]

파키잉!

감속 마법을 해주한다. 주위 경관이 다시 본래 속도를 되찾아 간다.

그 인식차를 실시간으로 적응하며, 나는 다시 한 번 5연속 비약을 사용했다.

“잡았다.”

리라를 든 ‘헬라이트’의 배후를 점했다.

그리고 촤아악! 눈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 참격을 가했다.

―두 번은…….

―안 당하지!!

키잉!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두 마녀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이 새끼들과는 몇 번이나 싸워봤기에 이 정도 반항은 예상했다.

‘리와인드.’

마녀들이 자신들의 시간을 되감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예상 지점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마녀들은 어느새 그곳에 나타나 있었다.

약 10초 전까지 그녀들이 있던 곳이었다.

‘정지만 빼고 전부 가능하던가.’

빨리감기가 가능하다면 당연히 되감기도 가능한 법.

시간의 감속과 배속, 그리고 역행까지. 아마 시간 정지만 빼고 전부 가능한 걸로 알고 있다.

분홍색 스톱워치가 절실해지는 순간이다.

―이것도 한 번……!

―막아 보시지!!

마녀들이 다시 내게 손을 뻗었고. 시간 마법이 발동되었다.

발동된 마법은 차례대로 감속과 되감기, 그리고 가속. 감속은 당연히 나를 향해 발동된 거고. 되감기와 가속은…….

“…이런.”

마법.

아까 자기들이 사용했던 공격 마법들이었다.

―아하하핫!

―죽어! 죽어어엇!!

콰과과광!

일대의 시간이 한꺼번에 역행한다. 그러자 아까 발동되었던 마법들이 재발동 되었고, 또한 가속 마법까지 추가되었다.

투두두두두! 정신이 아찔해지는 마탄의 포화가 재차 갑주를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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